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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82화 (82/250)

Chapter 82 - 돌아가는 길 -2-

에클레어 드리트나에게는 전투에서 보호받고 의지한다는 발상이 없다.

늘 앞에서 이끌었고 단원들을 책임지고 과정에 따른 결과를 부담해왔다.

그런 여기사에게 상처란 뗄레야 뗄 수 없는 물과 물고기. 수어지교의 관계.

"조금이라도. 친구가 다치는건 그다지 보고싶지 않더라고."

당연하고 익숙한 장소에서 준비도 없이 떨어져 나가는 불시의 순간.

저 말을 듣자 눈 앞이 핑그르르 돌아가는 감각이 찾아오고. 본의 아니게 언성이 커졌다.

"나,나는 기사란 말이다! 부상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알고있어···상의도 없이 혼자 판단하고 나섰으니. 당연히 기분 나쁘겠지. 미안하다."

평소의 날아갈듯 가벼운 장난기를 모두 버리고 사과하는 로만을 보니. 나도 모르게 목청이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려가 기분 나쁜건 아니라고. 그래도 혹시라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을 희생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입에 담아낼 문장과 생각은 있는데 입술 사이에 아교가 발린듯 딱 붙어버려서 언어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읏···! 그-!"

"실력을 못믿었다거나 네가 품고있는 기사의 마음가짐, 신념을 비하한다느니 그런 의도는 아니야. 그냥···내 썩은 고집이지."

"···."

입을 닫고 있으니 로만이 난처한 표정으로 삐질삐질 웃었다.

커틀러의 화려한 검로도 여유를 가지고 우습게 피하면서.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저런 당혹스러움을 품다니.

저택을 일격에 조각내는 강적이 아니라, 저 감정이 나로 인해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타고 손이 떨려왔다.

이건 항상 나를 놀려먹던 친구에게 한방 먹였다는 짜릿함인가?

내가 품고도 내가 판단할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 덜덜 떨려오는 손을 꽉 쥐었다.

힘이 들어가 주먹을 형태를 갖춘 손을 본 로만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에클레어. 그렇게 화 내지마···검은 안되는데, 주먹은 몇대 맞아줄 수 있어. 얼굴만 피해주라."

"그,그럴··생각은 없다. 후우ㅡ."

속에 꽉 차있던 숨을 크게 내뱉으며 몸을 숙였다. 떨림이 잦아든 양손을 펴 얼굴을 감쌌다.

지금 얼굴은 나도 예측할 수 없어.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그저 타인에게 위안을 받는게 익숙하지 않을 뿐···그것 뿐이다··.'

미약한 냉기가 올라오는 마차의 철제 바닥을 보고 있으니 고장났던 머리가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손가락 사이로 멍하니 있는 로만을 보니 유치하게도 욱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전투 당시에도···입심이 보통은 아니더니. 내가 진짜 때린다고 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지? 말을 쉽게 하면 언젠가 후회할거다···."

내 충고를 듣고 그는 이제서야 당혹감을 버린 평소의 얼굴로 웃었다.

"하하하!! 때린다고 하면 맞아야지 뭘 어떻게 해?"

"···가볍긴. 들은 사람이 나밖에 없어 다행이지만. 로만 - 심리전을 위한 말이라도 모험가 길드 소속인 백금이 제국의 기사를 존경 한다느니 하는 소리는 하지마라."

그 방법이 확실히 커틀러 듀어의 심기를 건드렸지만. 끝이난 뒤에는 어떤 쪽으로 생각해도 좋은건 아니었다.

길드소속 모험가와 제국의 기사는 대외적으로 대척점이자 정반대의 경쟁자나 마찬가지. 대중의 인식은 물과 기름이나 다름없다.

모험가 길드 최정상에 있는 백금이 제국의 5기사를 존경한다는 말은 농담으로 치부해도 혼돈만이 남는다.

"심리전? 다른건 몰라도 그건 설전 같은걸 위해서 한 말이 아닌데?"

충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머리가 아니면서, 로만은 인정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은···많은 이들을 혼란스럽게 할거다."

"알고있어. 나도 누구의 앞에서나 하지는 않아."

덜컹-!

모난 돌뿌리를 밟았는지 마차가 한번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대화가 잠시 끊어졌고.

흔들리는 소리가 잠잠해지자 로만이 입을 열었다.

"대저택까지 오면서 지부를 들려 커틀러스를 부수고··· 그 사이 악행을 보고 분노했기에 선공으로 나섰냐고 물었지?"

"그래. 기억하고 있다."

"나는 거기에 대단한 선의를 가지지 못한다고 말했고."

"맞다."

바로 전에 나눈 대화를 잊을리는 없다.

"에클레어···대저택까지 오면서 철장에 갇혀있는 이종족과 납치된 여성들을 보고 분노했지?"

"···기사라면 당연하다."

"그런 일을 벌인것도 기사였어."

"····."

그들이 영락해버린 전직 기사라는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는걸 그녀도 알고있다.

커틀러스에 비견해도 뒤지지 않는 악인들이 기사라는 직함을 달고 제국에 기생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있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걸 보면 화를 내고 상대에게 분풀이를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광경을 마주하면 '그럼 그렇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단 말이야."

"그게 침착하고 완숙한거라 생각한다. 커틀러 듀어의 말처럼 나는 덜 여물었다···그렇게 봐야겠지."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듯 로만이 눈썹을 찡그렸다.

"하아ㅡ 정신이 있을때 낯부끄러운 말을 하는건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입을 비죽이며 볼을 긁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이어서 하려는지 상상이 되지않았다.

저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큰 변곡점을 만날것 같아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존재한다.

"내 말에 이상한점이 있었나? 지적이라도 좋다. 해봐라···."

"지적은 아냐. 하지만···주제넘었다 생각해도 할 말이 없고. 이 남자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냐고 욕지거리를 뱉어도 웃으며 들을 수 있어."

"···어떤 말이길래 밑밥을 뿌리고 뜸까지 들이는 거지?"

그의 침묵과 고민의 시간은 상당했다.

"기사 에클레어 드리트나···내 친구 키티. 실없이 대하고 행동해도 내가 너를 존경한다는 말은 거짓말 같은게 아냐. 나는···너를 보면 연꽃을 떠올리거든."

실없이 대하고 있다는 인식과 감각이 있다는게 의외였다.

'연꽃?'

ㅡ멍청하긴···연꽃이 더러운 흙탕물에 자란다고. 굳이 흙탕물을 찾아서 연꽃을 키우지는 않지.

그가 전투 중에 했던 말이 인상 깊었기에 뇌리에 새겨져있다. 떠올리려 하니 금세 떠올랐다.

설레발 따위 치지 않는다. 저건 외모를 찬양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귀족 자제들이 자신을 만나 외모와 연관지어 언급했던 꽃들 중에 연꽃은 없었다. 그렇기에 순수하게 궁금해졌다.

"어째서···연꽃이지?"

자신을 본 사람들은 연상을 한다면 곧잘 그런 말을 해왔다. 나는 제국의 보검 혹은 명검처럼 차갑고 잘 벼려져 있다고.

같은 인간인데 손을 뻗으면 손가락이 베일것 같다며 감탄하거나 두려워했다.

그런 병장기를 넘어 '연꽃'이라는 부드럽고 포근한 단어에 엮이는건 처음이었다.

"꽃이 가진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연꽃이 가지는 특성이···아니!! 그렇다고 외적인 가치가 떨어진다느니 그런 말은 아니다?"

때로 달변가의 기질을 보이면서. 무시하고 지나가도 되는 곳에서 아차!하는게 로만스럽다 느껴졌다.

"훗 -그럴 의도가 없다는건 알겠으니. 편하게 말해라."

"예전···모험가 초기에 돈이 없어서 지혈효과가 있는 식물에 대해 찾아보다가 익힌 단편적인 정보야···사전에서 연꽃을 다른 말로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 하더라."

"···."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는지 그는 숨겨놨던 실타래를 풀어가듯 이야기를 줄줄 풀어놓았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흙탕물을 맑게 정화시킨다 - 그 과정에서 더러운 물에 물들지는 않아. 연잎이 소수성이니 물이 붙지 않는다는 현실적이고···낭만없는 이야기지만."

다음 이야기를 하려던 그는 덜컥 숨을 멈췄다.

"아 ㅡ!!! 본인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건 진짜···! 그래도 시작했으니 끝은 봐야겠지···."

머리를 벅벅 긁던 로만은 피하지 않고 마주하던 시선을 창밖으로 스윽 ㅡ 옮겼다. 그의 얼굴은 술에 취한듯 아주 옅게 붉어져있다.

"···나는 이미 물들었어. 내 인생을 살기위해 불인지심을 모두 잃었고. 완전한 타인을 위해 소모할 감정 따위는 없어. 하지만 내 친구는 다르지."

아주 미진한 감각이 경고했다.

귀를 닫아라. 여기서 막아야 한다.

"제국의 중심에 있으면서 여타 귀족과 같이 물들지 않고. 연 하나 없는 타인을 위해 분노하고 움직이는 것. 그건 내가 절대 될 수 없는 모습이야. 그래서 존경한다고 거짓없이 말할 수 있어."

더 이상 가면. 그의 말이 가슴 속에 이르러 돌이킬 수 없다.

"····."

"핫! 또 실없는 농담이라 생각하지? 내가 해온 행실이 있으니···업보라도 좋아. 평소 자책이 심한 친구에게 언젠가 말해주고 싶었으니."

그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는듯 개운한 표정이었다.

"에클레어. 너에게는 연꽃의 정화와 같은···선의라 할까. 선한 영향력이 존재해. 나도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기사라는 직업에 그렇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지는 못했을거야."

"그··런가?"

생에 느껴본적 없는 감각.

어린시절 클로에가 울고있는걸 봤을때 가슴이 난도질 당하는 그때와는 달랐다.

허나 지금 마음에 생겨난 무언가의 크기를 상처로 따져 경상이냐 중상이냐 묻는다면? 중상이었다.

"그래. 내가 행실로 모험가 이미지를 깎아먹는 것과 정반대라는 거지. 나는 길드에 있어 악한 영향력!"

킥킥 웃는 그를 보고 있으니 신체 여러곳에서 오작동이 일어나는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해지는 감각에 걸치고있던 케이프를 잡아 올렸다.

"자라. 피곤해졌다···."

"하긴. 림노에서 한숨도 안자긴 했지. 눈 좀 붙일까."

나는 두툼한 케이프 뒤에 숨어 마차가 멈출 때까지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그는 잠시 시간이 지나자 일정한 호흡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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