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1 - 돌아가는 길 -1-
이 잣대는 확정적이라 할 수도 없으며 무조건이라 말할 수도 없다.
그런 주제에 모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세간에서 사실인냥 떠드는 이유는 그 사이에 숨길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흔히 눈에 보이는 행실은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 발자취이자 거울이라 부른다.
다양한 인간이 있지만 기사, 용병, 모험가 등 목숨을 담보로 잡는 거친 일을 하는 자들의 하루하루는 일반 시민들과 어떻게 다를까?
그들은 유달리 과거의 경험을 말하며 아닌척 현재에 매달린다.
본인의 존재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내일의 불안. 시간이 먼 미래일수록 흐릿한 안개가 끼어있다.
선명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그리기 힘들다.
그렇기에 그들은 입을 모아 누구의 목표가 비대한지 자랑하고 질 수 없다는듯 더더욱 커다란 꿈을 말한다.
목숨이 붙어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뿌연 안개와 같은 미래를 넘어 눈에 비칠수 있도록.
자신의 미래는 분명 존재한다고.
ㅡ
커틀러 듀어는 로만에게 변명의 여지조차 없이 완벽하게 패배했다.
푸화악-!
새하얀 불길을 따라 갈라진 몸뚱이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가면 위로 핏물이 튀기며 절단 된 사체가 무너져내린다.
'로만···.'
탁!
대저택의 조경을 담당하는 나무에서 내려와 한걸음 한걸음 그에게 조심스레 걸어갔다.
기사인 나는 모험가인 그를 보며 무엇을 느꼈는가.
백금의 모험가. 로만의 전투를 직관하는건 처음이었다.
보고 받았던 기록적인 사항들을 이룰 능력이 존재했고 황실이 그를 주시하고 있는 이유도 납득했다.
어떻게 저렇게 강맹할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수를 남겨뒀으며.
갑자기 생겨난 기괴한 가면은 무엇이고, 궁금증이 쌓여 묻고 싶은게 산더미라도.
그를 위해 묻지 않는게 불문율.
"로만··?"
화악-!
가면과 검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더니 시선이 내게 돌았다.
언제나의 천진난만 한 미소로 웃는다.
"돌아가자."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수도로 돌아갈때 까지 끝이 아니라는걸 생각하며 입꼬리가 올라가는걸 눌렀다.
"아니. 상처를 치유하는게 먼저다. 림노에도 교단이 있으니 거기로 가자."
"됐어~ 포션이 있는데 교단까지는···돌아갈때 옷이나 좀 사야겠다. 칼자국이 너무 많아서 걱정할것 같네."
가죽 포켓에서 붉은 액체가 든 병 두개를 꺼내더니 하나는 마시고 하나는 샤워라도 하듯 몸에 뿌린다.
털썩-!
포션을 뿌리던 로만이 비틀거리더니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신형이 무너지는걸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괘,괜찮나?!"
"아 - 마나를 너무 썼나. 머리가 핑핑 도네. 형상은 굳이 쓸 필요도 없었는데···아직 효율이 영···."
형상이라는게 무엇인지 에클레어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장기전을 상정하지 않은 오러의 폭발적인 사용에 스킬까지.
짧은 순간에 전력질주를 이어갔으니 지치지 않는게 이상했다.
부상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안심이었다.
"···아까 신호를 보냈다. 곧 청소를 위한 정보원들이 오면 기력을 보충 할 만한 물건도 가지고 있을거다."
피와 포션으로 엉망이 된 머리를 쭉 넘긴 로만은 자리에서 억지로 일어났다.
"복잡해지는건 이제 지겹다. 그냥 가자. 우리가 있을 필요는 없지?"
"그래···보고는 따로 하면 되니. 부축해주겠다."
부축해주려 다가가니 로만이 어정쩡한 발걸음으로 한발 물러났다.
"야야- 옷에 피 묻는다. 혼자 걸을 수 있어."
이런 상황에 웃기지도 않는 말을 하는 로만의 팔을 틀어잡았다.
"억지부리다 넘어지지 말고 이리와라. 나도 피가 좀 묻어야 일한 티가 나겠지."
저항할 생각은 없는듯 살짝 당기니 로만의 거구가 끌려왔다.
신장 차이가 상당했지만 그걸 넘어서는 신체능력이 존재하기에 로만을 반쯤 들어올려 자리를 벗어났다.
예상치 못하게 반대편에서 오는 정보원들과 마주쳤지만 되려 다행이었다.
림노의 숙소로 돌아갈 필요없이 준비된 마차의 위치를 받았으니.
ㅡ
다시 한번 게이트가 있는 영지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 저번과는 다른 마부가 모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말을 다루는 실력만은 큰 차이가 없어 로만도 불만이 없어 보였다.
멍하니 밖을 보는 로만에게 어떻게든 감사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는 어떤 면으로나 독특했지만 살육과 결투에 미친 광인이 아니다.
자진해서 강자를 찾아다니며 싸움을 걸고다니는 부류라 나를 대신한게 아니다.
밖에서 멀어지는 찬란한 조명들. 림노를 보며 에클레어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제 림노도 끝이군."
"다신 안올것 같네. 저 동네는 취향이 아니야."
"동감이다. 아직도 소음에 귀가 아픈것 같군."
자신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지 웃으면서도 로만은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리숙한 언변으로 빙 돌리는 화법보다 직설적인게 통한다는걸 이제 알고있다.
"··로만."
"왜 키티."
기껏 사람이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는데···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그 이름은 그만써도 되지않나?"
"어쩌지? 입에 붙어버린것 같은데."
킥킥 웃는 능청스러운 태도에 잡아보려던 분위기가 녹아서 흘러내렸다.
"하 - 말 해봐야 귓등으로 듣겠지···."
"친구끼리만 알고있는 신호나 싸인 - 이런게 또 남겨두면 요긴하게 쓰인다니까? 남들 앞에서는 조심할게."
"···마음대로 해라."
"그래서 왜 불렀는데?"
들을 태도는 되어있는 로만을 보며 에클레어는 꼼지락거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비록 의뢰라는 형태를 취하고 행한 일이라도. 커틀러 듀어의 처단에 대한 건은 감사하고 싶다."
"감사는···그런 약속이었고 그런 일이잖아. 나도 이득을 보는게 있으니 한 행동이고."
"그렇다 해도 실력 미상인 상대에게 먼저 나설 필요까지는 없었지. 나를 먼저 보내 실력을 봤어도 그건 당연했다."
이야기를 듣고 창밖에서 눈을 땐 로만의 눈이 에클레어에게 향했다.
"에클레어."
오랜만에 불리는 자신의 이름과 진지한 로만의 목소리.
무의식 중 전신에 힘이 들어갔다.
"뭐,뭐지?"
"예전에 모험가 친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하더라고. 자신이 이상하다는걸 모르는게 제일 이상하다고. 이해할 수 있어?"
"잘 모르겠군···."
상황을 모르고 답하기에 아리송한 말이었다.
"재미는 없겠지만··· 입을 닫고있는 침묵 보다는 즐거울것 같은데. 이야기 좀 해도 될까?"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두근두근 기대가 되었다.
로만은 모험가라 하기에는 평생을 책만 읽은 학자 같은 부분도 있었고. 감상에 젖은 소설가 같을 때가 있었다.
습관처럼 턱에 있는 흉터를 어루만지던 로만은 입을 열었다.
"-어릴때 수도로 상경해 모험가가 되었을 땐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싶었고. 한 순간에 그게 식어버려서 어찌 돼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거든."
"···."
"반항심 비슷한 감정이었는지.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의뢰를 아무 의심도 생각도 없이 받고···결국 그 반항과 고집이 결실을 맺어 백금이니 하는 형태로 만들어 졌지만. 솔직히 아무 생각도 안들었어."
"왜지?"
"내가 바라는건 언제나 하품이 나오는 목가적인 평화라 생각했거든. 모험가라는 직업은 힘들어도 즐겁고 주위 녀석들은 유쾌하지만···죽을때까지 계속 이어갈 수는 없어. 내가 가진 힘도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이지. 이 대륙은 가진게 없으면 서정적인 평화조차 그릴 수 없잖아."
"···맞는 말이다."
이렇게 마차에 앉아있는 지금도 농가와 이름없는 무명촌이 도적이나 질나쁜 용병들에게 약탈당하고 짓밟히고 있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겠다는 로만의 꿈은 보통 조건으로 해결되는게 아니다.
실제 그렇게 살고있는 인물이 존재 하는지. 그것조차 모르겠다.
능력이든 물질이든 가진게 있으면 주위에서 냄새를 맡은 악인들이 구더기처럼 끓어오르고. 가진게 없다면 당한다.
그게 중간이 없는 현 제국의 모습.
"모험가를 그만둬야 하는 적절한 시기도 생각은 했지. 그런데 뭐···알다시피 아직은 아니야."
"평생을 할 직업은 아니지. 기사도 모험가도."
"맞아. 그리고 최근에 좀 느꼈거든."
"무엇을?"
그가 작게 웃으며 초콜릿을 건내기에 받았다.
"자신이 이상한걸 모르는게 이상하다···였는데. 최근에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는거지."
초콜릿의 포장을 뜯으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나 그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기대감이 있고 흥미진진했다.
"로만. 악의 없이 말하자면···내가 봐도 그대는 유별나다. 솔직히 평범하지는 않아. 그래서 궁금하군 그런 본인이 어디서 이상한걸 느꼈다는건지."
"아까 실력 미상인 상대를 대상으로 내가 먼저 나설 이유가 없다고 했지?"
"그렇다."
검은 머리를 쭉 쓸어넘긴 그는 허공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상하게? 그래···이상하게 느꼈지. 도저히 내버려 둘 수가 없더라고."
"림노에서 벌어진 커틀러스의 악행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말인가?"
로만이 대저택으로 향하기 전 두 지부를 박살냈으니 그런 악행을 두 눈으로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닌지 로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그런 대단한 선의를 가지지 못해."
조용히 답을 기다리니 시선을 내린 로만이 눈을 마주쳤다.
"우리 둘 중 누가 나섰어도 그 영감은 죽었어. 그건 확신해. 하지만 그런 늙은 독사의 처리를 친구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는거지."
"···어째서?"
"조금이라도. 친구가 다치는건 그다지 보고싶지 않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