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0 - 야심 없는 모험가? -2-
"당신들이 죽고 못사는 그 힘. 나는 그딴걸 인생의 최고 목표로 둔 적이 살아생전 한번도 없다고."
믿을 수 없다는듯 부들부들 떨며 커틀러가 재차 물었다.
"···무슨 뜻이지?"
"나는 인간이 가진 마나의 한계와 힘의 끝을 보는걸 인생의 목표로 잡은 적이 없으며. 그걸 위해서 소중한 무언가를 버릴 생각도 없다는 말이다. 생각없이 살다보니 이렇게 됐다. 어때? 들으니 기분 좋지?"
"···"
진실의 여부를 떠나 커틀러 같은 부류에게 큰 혼란을 주는 말인건 확실하다.
내 인생과 노력을 내 입으로 깎아내리는 한이 있어도 그의 정신을 계속해서 건드린다면 승기는 확실히 잡힌다.
"당신이 이 어두컴컴한 골방을 연상시키는 림노에 틀어박혀 평생을 수련해도. 내가 소박한 행복만을 쫓으며 탱자탱자 모험가를 해온것 보다 못하다는 말이지."
인정할 수 없다는듯 커틀러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궤변···억지를 품은 거짓말이구나. 그런 무기의 사용법과 대처는 젊은 새싹이 아니지. 죽고죽이는 경험과 실전이 태산처럼 쌓이며 나오는 것이다."
혼동을 목적이라 해도 내가 내 인생 대충살았다 하는데 적이 그걸 인정하지 않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럼 당신이 나보다 노력없이 대충 살았나? 내가 이 나이에 진짜 오러를 익혔다면. 당신은 이 나이에 뭘 했지?"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재능의 차이지. 여신은 생명을 창조하며 공평함을 언급하지 않는다."
"참 편한 말이야. 부족한건 재능이라는 단어 뒤에 숨으면 되니."
"닥치거라!! 어린 녀석들은 모르는 세상의 진실을 말할 뿐이다···귀를 열고 들어라!!"
격노한 커틀러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아까는 귀가 잘려도 웃더니 조울증이 의심되는 영감이다.
"저기 저 여자 보이지?"
한쪽에 숨죽이고 있는 에클레어를 가리키자 커틀러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다시 나에게 향했다.
"말하고자 하는게 무어냐···."
"저 기사가 젊은 나이에 진짜 오러를 사용한다면. 그것도 그저 재능이라는 단어로 치부할건가?"
뿌득-
커틀러의 양손에 잡힌 검이 악력에 반응하여 바짝 섰다.
"젊은 친구- 말해봐라. 그럼···재능이 아니라는 것이냐?"
"나라고 '재능'이라는 요소를 완전히 무시하는건 아니지. 분명 존재해. 하지만···그것도 서사를 품어야 빛을 발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
"에클레어 드리트나에게 재능이 있냐고 묻는다면···있겠지.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 고난과 고생이 없었을까? 외로움을 견디고 뼈를 깎는 노력은? 사실 재능이 없는데 대륙 전체에서 제일 노력했을 가망성은?"
커틀러가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철컥-!
쌍검을 집어넣고 품에있는 손수건을 꺼낸다.
반듯하게 접은 손수건으로 굳은 피딱지와 땀을 닦아낸다.
"끌끌···답지않게 흥분했구나. 백금의 모험가가 기사 따위를 잘 알고 있다는듯 말하는게 퍽이나 우습구나."
"기사는 몰라. 하지만 이야기를 해보면 사람은 알 수 있지···한없이 올곧고 우리 둘과 달리 실수와 치부에 부끄러워 할 줄 안다는 것. 존경 받을 만한 여자야."
"아둔하구나. 그런건 경험이 부족하다는거다. 이런 망가진 세상에 실수를 정직하게 부끄러워 하는건 덜 여물었다는거다."
이번엔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영감이나 나나 그냥 철면피를 쓴 쓰레기인거야. 어찌할 도리가 없는 쓰레기지."
단정짓는 말에 커틀러는 피로 물든 손수건을 정원에 버리고 검의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제국의 기사따위를 어지간히 추켜세우는구나."
"누차 말하지만 기사는 모르고 관심도 없어. 내가 될 수 없는 모습을 존경하고 있는거지."
"허허··언제 그런걸 물었나? 어린 녀석이 이야기의 갈피를 못잡는구나. 그럼 마나와 힘을 '따위'로 치부하며 쫓지않는 모험가의 인생 목표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거지?"
째애애앵-!!
커틀러의 검 두자루가 다시한번 녹광을 발하기 시작했다.
"욕심을 위해 가족을 내다버리고, 뛰어난 검법을 알려주겠다 하니 자식 앞에서 어미를 베는 것을 보여주고··· 그런 인간들도 익히는 진짜배기 오러니 하는 것보다 ㅡ 난 단순하게 재밌고 행복하게 사는게 목표거든."
"재미? 행복··? 지금 내 앞에서 그딴 하찮은걸 내세우는 것이냐? ···장난은 집어치워라!! 진정 속에 품고있는 야망을 이 노인에게 피로하거라."
커틀러의 감정기복에 따라 마나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온다.
코에서 한줄기의 선혈이 흐르며 그의 몸에 무리가 가고 있다는걸 보였다.
"존경할만한 인물을 존경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인물들과 술을 마시고. 사랑하는 여자와 소박한 미래를 꿈꾼다. 그게 내 인생이지."
핑!
허리를 꺾어 목을 노리는 녹색 서클을 피해낸다.
"···눈치없는 모험가의 농담이라고 말하라. 힘과 재능을 타고나서 천민이나 다를게 없는 삶을 꿈꾸고 살아왔다는 것이냐? 그러면서 내 앞에 섰다고?"
이건 원대한 야망을 가졌던 커틀러의 가치관에 있어 지진이나 다름없다.
그는 야망과 욕심이 있어야 그에 걸맞는 힘을 얻으리라 생각했으니.
강한 힘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는 대단한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행해야 한다 생각하며.
원대한 목표를 설정함으로 그에 걸맞는 그릇과 힘을 얻는다 생각하는게 제국의 귀족 대부분이 품고있는 생각이다.
비대한 야망과 사상을 가진 숙적을 맞이하고 성대한 뜻을 내재한 죽음을 그려왔던 커틀러에게 있어서.
나는 진정 악몽이나 다름없다.
내게 패배하는 순간 모든건 뜻을 잃고 반역을 꿈꿨던 노력조차 내 소박한 행복의 아래에 깔려 편입되는 것이다.
"영감. 내게 능력이 있다고 제국의 전복이라도 꿈꾸라고 하고싶나? 말로는 듣지않는 나를 계몽시키고 싶으면 힘으로 하라고."
[ 반쪽짜리 어둠 ]
스릉-!
칠흑같은 검이 허공에서 뽑혀나온다.
이제 커틀러는 그게 당연하다는듯 보고있다.
"젊은 친구. 여기서 죽고 다시 태어난다면 그 힘을 더 크게 펼치거라. 그게 남자라는 생물이다."
"힘이 있으면 기회는 있을지라도 그럴 의무는 없지. 나는 내 멋대로 살거라···이제 재롱도 적당히 피웠으니 조각내서 땅에 묻어드리지요. 영감님."
상대가 강하더라도 그로토가 소환했던 늑대를 닮은 악마와는 경우가 다르다.
이 노인은 그보다 강하지만 목숨은 하나 뿐인 피가 흐르고 내장이 존재하는 인간.
제물함에 있는 수백명을 소진할 때까지 죽여야 할 필요도 없이 단 한번.
딱 한번만 치명상을 가하면 나의 승리다.
ㅡ
[ 호리젠탈 붐 (Horizontal Boom) ]
촥-!
비대한 근육이 믿어지지 않는 기가막힌 몸놀림으로 피해낸다.
이때까지 쌓인 유효타는 있었지만 치명타는 없었다.
그리고 착각이라 믿기힘든 놀라운점.
몸에 상처가 늘어날수록 모험가의 몸놀림이 날카롭고 매서워지고 있다.
"크··한뼘만 옆으로 갔으면 눈알을 파버렸을텐데."
"····."
이마를 타고 흐르는 혈액으로 앞머리를 넘기는 모습에 절로 압도 되는것 같다.
오래 살면서 자타공인 미쳤다고 자부하는 광인들을 만나왔지만 이건 진짜 미친놈이었다.
검으로 베어도 진짜 죽기는 하는가 의심이 들 정도.
"하나 묻지만···자네 목이 잘리면 죽는건 맞겠지?"
"질문 좀 그만하라고. 맥이 자꾸 끊어지잖아!!"
치잉ㅡ!
근육에 붙들려 휘둘리는 시커먼 장검.
거기에는 누군가에게 배운 흔적도 없으며 기분에 따라 휘둘리는 본능만이 여실했다.
문제는 평생 쌓아온 그 수준이 너무 높아 무형(無形)이라는 검법이 아닌가 싶을 정도.
'이대로는···.'
오러에 스킬까지. 무리하게 쓴 마나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에 반해 상대는 패를 전부 보이지도 않았으며. 이제 시작이라는듯 쌩쌩한 느낌이 들어 저게 심리전일거라 생각을 하면서도 정신이 궁지에 몰린다.
이제 오러에 노출되지 않기위해 섬세한 컨트롤을 하는 것도 한계였다.
챙-!
카가가각!!
부딪힌 검을 콱! 눌러 벽까지 몸을 밀어붙인다. 기회다 생각했는지 검붉은 오러를 터트린다.
"이놈이··!!!"
미친듯이 눌리는 검. 몸이 그대로 짜부러질것 같은 근력이 오러를 동반하여 들이닥친다.
"으르으으-!!!!"
치지지직ㅡ
"끄윽···."
번개처럼 날뛰는 오러의 잔류가 튀어올라 살점을 파고든다.
'아직은···!'
아직 그걸 쓸때가 아니다. 명확한 승기는 지금이 아니다.
몇번의 대화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죽더라도 이 건방진 놈은 안고가고 말겠다는 일념이 자리했다.
전류가 통한듯 자잘하게 갈라진 팔에는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카아악ㅡ!!"
채앵!
커틀러는 피가 역류할 만큼의 마나를 끌어올려 위기를 벗어났다. 이대로면 이길 가능성이 없는 열세.
어떤 검로를 타고 들어가도 동물같은 예리한 감각으로 변화를 대처한다.
재능을 넘어 감각까지 남다른 종자였다.
"····"
마음을 굳혔다.
자신의 목을 노리고 기다리고 있는 천재 하나가 더 있는 이상 어차피 자신은 죽는다.
'···길동무로 삼아주마.'
노익장은 자연스럽게 자세를 바꿔 상단을 지키고 복부쪽을 살짝 열었다.
여기가 베기에 너무나 편해 보이도록. 본능에 따르는 움직임을 보이는 상대일수록 무의식을 따르게 된다.
배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검을 방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낸다.
"흡ㅡ"
푸욱!
검은 날붙이가 커틀러를 뚫고 나왔다.
[ 인듀어 (Endure) ]
복부로 파고들던 검이 커틀러의 스킬에 아주 잠시 멈췄다.
땡강ㅡ
쌍검을 버린 양손으로 모험가의 양손을 덥썩 부여잡았다.
생명을 태우며 한줌 마나를 끌어올린다.
"쿨럭-!! 죽··-어라 어린놈!"
ㅡ
커틀러의 스킬은 총 3가지.
참격을 수평으로 쏘아내는 호리젠탈 붐.
몸을 굳히고 고통을 인내하는 인듀어.
그리고 마나를 형상화 하여 화살처럼 쏘아내는 단검. 바운드 스틸레토.
스틸레토는 손으로 던지지 않고 자동 발사되는 편의성은 좋지만.
위력은 그리 고강하지 않아 이 스킬로 강인한 신체를 뚫고 심장을 꿰뚫을 재간은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얼굴을 노리는 것이다. 마나로 강화하는게 한계가 있는 미간은 충분히 뚫는다.
[ 바운드 스틸레토 (Bound Stiletto) ]
피융-!
날아가는 마나 덩어리를 보고 커틀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겼··다!'
때앵!
살점이 아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
피가 울컥하고 터져나와야 할 모험가의 면상에서 흉측한 가면이 생겨났다.
가면에 맞고 튕겨나간 스틸레토는 마나의 가루가 되어 허망하게 흩어졌다.
"아아···."
배를 꿰뚫었던 칠흑의 날붙이는 사라지고.
손에는 새하얀 불길을 뿜어내는 검 한자루가 나타났다.
"모험가는 이런 수 하나는 가지고 있지."
촤아악-!
커틀러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