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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79화 (79/250)

Chapter 79 - 야심 없는 모험가? -1-

누구의 목소리도 듣지않고 앞으로 달려가는 시간이라는 이기적인 존재. 두렵다.

이마가 넓어지고 머리카락은 힘없는 실처럼 얇아진다.

식욕은 예전같지 않고 기름진걸 피하게 된다. 다음날을 생각하면 술잔을 드는것도 망설여진다.

남자의 생명이자 낙이라 언급하던 것들이 하나씩 멀어질수록 나에게는 검 두자루만이 남았다.

유흥의 도시라는 림노에서 착실히 수련한 감각이 어떤 해답이자 열쇠였는지.

흔히 기사들의 꿈이라 불리는 경지에 도달했지만···기쁘지 않았다. 이 감정과 진취를 숨김없이 나눌 상대가 없으니.

늙는다. 늙어간다.

농지의 밭고랑 같은 주름이 얼굴에 자리하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터무니 없이 적다는걸 체감한다.

혈기왕성한 욕망이 소용돌이 치는 도시에서 - 젊음을 흉내내며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왔다.

가족 조차 가차없이 내다 버린 제국의 반역자에게 어울리는 최후?

분노한 숙적이 찾아와 이때까지 쌓인 모든 상처와 미련을 토하고. 후회와 만족 조차 없는 텅 비어버린 가슴만을 품은채 바스라지고 싶었다.

분에 넘치는 마지막을 내가 원했기에.

허락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 망상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사치라는듯···야성이 극에 달한 맹수같은 남자가 찾아왔다.

하룬 제국은 반역자 따위에게 명예로운 죽음은 보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패배하면 제국의 황제는 체통을 잊고 배가 찢어져라 자신을 비웃을 것이고.

내 시체는 끌려가 들짐승의 먹이. 혹은 효수 된 머리가 수도의 입구에 걸려 본보기가 될 뿐이다.

뿌드득ㅡ

분노가 차오르며 꽉 물린 잇몸에 힘이 들어간다. 적어도 그런 최후는 꿈꾼적도 없고 당할 생각도 없다.

상대가 경지에 달한 천재. 그것도 두명이나 된다면 그 배가 되는 경험으로 이겨내라.

나는 기사를 버렸지 않은가.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시대를 이끌어갈 젊은 천재들을 역사의 한줄에 언급되는 가련한 운명으로 만들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죽인다. 죽이겠다. 죽이고 지나가겠다.

나는 여기서 살아남아 진짜 숙적을 다시 한번 기다리겠다.

-

녹빛을 품은 검이 복잡한 검로를 타고 휘둘리고 검붉은 오러를 내제한 단검이 간단히 검로를 틀어막았다.

카가강-!!

오러끼리 부딪히는 순간 커틀러는 검을 밀어붙일 수 없었다.

순수한 근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걸···이런걸 오러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모험가의 손에 들린 검붉은 오러는 우중충한 하늘을 열고 내리꽂힌 우레를 닮아있었다.

숙련된 오러는 마나에 대한 지배력과 응용력이 훌륭하다는 것을 표현한다.

그것을 명확하게 증명하기 위해. 가시화 된 형상은 흐트러지지 않도록 고정적이고 또렷하게 다듬기 마련이다.

허나 이 모험가의 오러는 그런 상식을 무시하고 넘어섰다.

강력한 의념은 담겨져 있으나 정해진 형상이 없고 전격처럼 튀어오르며 오러의 잔류를 사방으로 뿌리고 있다.

그 삐져나온 오러가 검을 마주하는 순간 자신의 신체로 타고 넘어오려한다.

치이익-

1초도 안되는 부딪힘.

손등으로 넘어온 오러의 줄기가 피부를 거칠게 갈랐다.

경상이라도 마나로 강화된 신체를 뚫고 들어오는 오러. 쌓인다면 중상이 될게 당연하다.

"숨어서 놀고먹은 할아범이 자꾸 아련한 얼굴 하지말라고. 짜증나게."

"허··허허! 숨어? 이 내가? 나는 숨지않는다! 이름도 바꾸지 않았고 찾아오는 적을 피하지도 않는다···여기에 내 의지로 자진해서 서있는 것이다!"

모험가라서 그런가.

백금다운 입심이 보통이 아니라 반응하기 싫어도 반응하게 된다.

어린 놈이 자신을 다 안다는듯이 말하는게 불쾌하지 않다면 그것보다 더 한 거짓말은 없다.

"아니.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서있는거야. 나는 알고있단 말이지. 당신같은 부류를."

"흠···늙으면 말이 많아지는 법이지만. 핏덩이인 자네가 보이는 그 입놀림은 천성인가? 싸가지 없는 혀놀림이 명을 재촉할걸세."

꽈아악-

손에 힘이 들어가니 갈라진 피부에서 핏물이 또록- 흘렀다.

한 손으로 단검을 빙글빙글 돌리는 저 건방진 태도를 고쳐주고 싶다.

사이사이 다 예상했다는듯 비웃음을 보일때는 신경전이라는걸 알면서도 분노하게 된다.

상대에게 이렇게 살심을 느끼는건 오랜만이었다.

"인간이라 부르지도 못할 커틀러스인가 하는 쓰레기들을 버리지 않고 부리고 있던 이유. 제국에서 통솔하던 단원들이라는 허울좋은 이유가 아니잖아. 가족도 헌신짝 버리듯 한 영감이."

"···?"

마치 연극을 하듯 양손을 펼친 모험가는 웃음을 담아 누군가를 흉내낸다.

"나의 숙적은 보거라! 같은 기사들 중에서 나만은 영락하지 않았다. 유흥의 중심인 림노에서도 수련을 멈추지 않은 날 봐라! 너의 라이벌이라 불렸던 나만은 이처럼 특별하다!"

준비없이 알몸을 보인 숫처녀의 마음이 이러할까. 얼굴에 열이 확 돌았다.

"허- 허허!! 흐하하하!!!"

뭐라 변명 할 구실도 없어 웃음만 나온다.

"이정도면 자기위로의 화신이지. 부끄러운줄 알라고. 그리고···혼자만 평생 라이벌이니 숙적이니 생각했을지도?"

입을 가린채 풉- 하고 비웃는 모험가를 본 커틀러가 입꼬리를 내리고 검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뒤에 있는 한명은 생각하지 않고. 자네만은 죽이겠네. 약조하지."

[ 호리젠탈 붐 (Horizontal Boom) ]

핑-!

커틀러의 몸을 시작으로 수평으로 터져나가는 녹색 서클.

보자마자 허벅지에 힘을 주고 점프했다.

즈적···쿠구구궁-!!!

커틀러의 대저택에 진한 먹선이 그려지며 건물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기둥과 벽면이 돌가루를 흩뿌리며 잘려나간다.

*****

촤아악ㅡ

갈라지는 대저택에서 유리창을 부수고 뛰쳐나와 정원에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제대로 흥분했군.'

전투의 양상에 있어서는 만족스러운 현상이다. 꺼낸 말이 약점 중에서도 더없는 역린이었나.

커틀러 듀어는 제국의 기사 중에서 한 손에 드는 강자의 라이벌이었던 자. 지금 돌아가도 그 위치는 변함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가 가진게 저 녹광의 오러뿐이겠는가. 강력한 스킬 한두개에 비장의 수도 품고있겠지.

자신만의 오러를 유지하면서 저런 광범위 스킬까지 사용한다?

보유한 마나에 커다란 구멍이 난 상태.

나만을 죽이기 위해 전력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버티기만 해도 나는 유리해진다.

"걱정하지 마."

벌써 저택에서 빠져나와 나무에 안착해있는 에클레어에게 신호를 보냈다.

"움직임이 덩치와 다르게 잽싸구나. 거기에 여유까지 있어."

탁.

정원의 분수대를 밟고 안착한 커틀러를 보고 나는 양손에 들린 무기를 바로잡았다.

"누구처럼 쉽게 흥분하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지."

"끌끌···한마디를 안지는게 백전노장을 상대하는 기분이군. 입씨름도 재능이라면 혼자서 모든 재능을 가졌구나."

말을 끝으로 커틀러의 신형이 당긴 고무처럼 늘어지더니 눈 앞에 나타났다.

캉-! 째앵!

노익장의 검에서 녹광이 발광하면 반사적으로 모험가의 검에서는 검붉은 빛이 터져나온다.

촤자자작ㅡ

쌍검에 더불어 근거리에서 뿜어지는 녹색 서클을 피하고 막아낸다.

초근접전에서 제일 먼저 빛을 발한건 전생부터 익혀온 단검술.

오른손에 들린 장검에 숨겨 과감하게 뻗은 찌르기에 커틀러의 한쪽 귀가 잘려나갔다.

푸슥!

외눈 안경이 지지대를 잃고 떨어졌다.

"크윽··! 이노오옴!!"

고개를 급하게 꺾지 않았으면 그대로 머리가 꿰뚫리고 게임은 끝났다.

귀 한쪽?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간다. 이런건 생사결을 멈출 브레이크가 되지 않는다.

상체를 토막 낼 기세로 스킬을 흩뿌리고 쌍검은 평생을 지나온 검로를 따른다.

휘리리릭ㅡ

뒷걸음을 밟으며 날다람쥐처럼 뛰어오른 모험가의 신체는 스킬과 검을 동시에 피해냈다.

핏!

완벽하게 피하지 못한 옆구리에서 솟구치는 핏물. 깊은 상처는 아니다.

[ 유혈귀(流血鬼)가 발동합니다. ]

공중에서 내려앉으며 눈을 굴린다.

하강하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커틀러에게 넘치는 힘을 담아 발을 뻗는다.

[ 교룡각(嚙龍脚) ]

빠악!!

두개의 검을 교차해서 발길질을 막아낸 커틀러가 아려오는 손목을 흔들었다.

"허··! 짐승새끼가 따로 없구나. 좋은 스승을 만나 무기 하나만 진득하게 익혔으면 무신이 되었을 녀석이."

"무신은 무슨···그런 거창한건 내 성격상 무리라고."

잘려나간 귀를 만져보더니 커틀러는 피를 털어내고 씨익 웃었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나?"

"영감. 맥을 끊는건 아주 달인이군."

"늙으면 말이 많아져서 어쩔수가 없다네."

"하아···."

한숨을 내쉬니 커틀러는 속에 있는 궁금증을 꺼냈다.

"그 나이에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보이지? 자신에게 전능함이 느껴지는가? 여신의 존재를 부모라 믿고 신앙을 품게되나?"

"뭐···?"

"대답해주게. 나는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 궁금한 한명의 무인이라네."

"···풉. 푸하하하!!!! 무슨 말을 하나했더니···크크큭···."

웃음을 참지못하고 빵 터진 나를 보고 커틀러가 인상을 찌푸렸다.

"천재들이 보기에 내 질문이 그리 어이가 없나."

"하아···영감. 진짜 슬픈 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

"당신들이 죽고 못사는 그 힘. 나는 그딴걸 인생의 최고 목표로 둔 적이 살아생전 한번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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