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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78화 (78/250)

Chapter 78 - 그녀는 보고있고 그녀는 듣고있다.

에클레어는 혼자였지만 5개의 지부를 궤멸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부랴부랴 먹는 식사 한 끼보다 짧았다.

픽-!

그녀가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바닥은 쌓여가는 시체로 디딜 틈 없이 좁아지고 검붉은 핏물이 벽면까지 퍼져나갔다.

나락까지 타락한 인간들이다.

흑마법사나 그 사역마를 베는 감각과 하등 다를 게 없었다.

'끝도 없이 여색을 탐하며 폭음폭식이 당연한 습관. 검의 파지법은 먼 옛날에 잊었으며 정신은 무너졌다··.'

이들은 시간으로 퇴색되지 않는 혁명과 반역의 이념을 간직한 채 림노에서 제국의 황실을 재차 능멸해보려는 준비를 하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 걷는 걸 멈추고 그저 몰락해 버린 한심한 작자들.

이들의 수장은 4기사인 플로이드 가주의 라이벌이라 불렸던 커틀러 듀어 아닌가?

허나 커틀러스에 속한 전 기사단원들은 그런 강자를 우두머리로 두고 있다기에는 한심하고 실망스러운 역량이었다.

'단죄에 일말의 망설임도 들지 않는군··.'

커틀러스라는 집단은 이종족 없이 인간들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림노에서 돌출되는 특징이다.

그런 특징 외에 내세울 건 전직 기사들이라 믿기 힘든 구성원들의 악독함.

총 5개.

커틀러스의 인원들만이 거주하는 지부를 들쑤실 때마다 에클레어는 눈을 찌푸렸다.

마약에 찌든 창부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거나. 가족을 찾고 집에 보내달라며 우는 이종족들을 철장에 가둬두고 가학적인 행위를 즐기는 자들.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제국의 기사출신이다. 한때는 제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명예를 노래한 자들.

유흥의 도시인 림노가 명예로운 자들을 타락시키고 정신을 병들게 만들었는가?

절대 아니다.

이들은 애초부터 이런 인간들이며 이게 민낯이다.

황실의 명을 받고 집행을 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허다하기에 기사가 명예롭다는 말은 정작 기사인 자신조차 쉽게 인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더러운 꼴은 과거 전장에서도 지겹게 봤고 한때는 환멸까지 느꼈다.

목숨을 바쳐 제국을 수호하는 한 자루의 검이 되기로 서약했음에도. 대다수는 공포에 쉽게 등을 보이며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끝도 없이 비굴해진다.

"···"

-키티~ 초콜릿 더 줄까?

'하 - 뜬금없는··.'

매번 집행을 할 때마다 찾아오는 암울한 감각에 물들기 전에 정신이 팟! 들었다.

자신의 상상 속에서 얼굴을 들이밀다니 정말 예측 불가능한 남자였다.

짝! 짝!

양손으로 볼을 때려 잠식되던 정신을 깨웠다.

지하에 있는 마지막 방에 들어가 세명의 목을 일검에 날리고 에클레어는 포켓에 있는 서류를 꺼내 줄을 그었다.

'··수가 적다.'

5개의 지부를 모조리 쓸어버렸음에도 에클레어의 예상보다 인원이 적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로만이 담당하기로 했던 두 개의 지부에 달려서 도착했다.

"기사님. 저희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인원들과 정보를 교차하니 커틀러스에 놓친 잔당이 있는 건 아니었다.

림노에서 숨죽여 오늘만을 기다린 제국의 정보원들은 커틀러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저 단순한 문제.

로만이 가는 길에 담당한 흥신소와 창고에 있는 인간들 수가 자신이 담당한 5개의 지부와 엇비슷했다.

[ 영업 종료 ]

예상보다 넓은 창고 정리에 시간도 잡아먹었을 테고···명패까지 돌려둔 여유를 보니 커틀러 듀어의 저택에 가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탓. 탓.

깃털 같은 몸놀림으로 가로등을 밟고 지붕까지 도약한 그녀는 지도를 재차 확인하고 포켓을 닫았다.

'바로 코 앞이다.'

몇 년 전에 커틀러 듀어가 한적한 곳을 찾고 있다며 중개상을 통해 이사한 곳은 상권에서 멀리 떨어진 림노의 구석.

주위의 민가들까지 모두 사들이고. 주인을 잃은 오래된 대저택을 개량하였다 한다.

정원사의 손길이 느껴지는 넓은 정원을 돌파하여 문고리가 부서져 열려있는 저택에 들어왔다.

에클레어의 눈에 불이 켜져 있는 방 하나가 보였다.

콰앙!!

내부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자 에클레어는 기척을 극한까지 줄이고 스며들었다.

두 남자의 말소리가 들린다.

'···이 이상 접근은.'

이미 둘은 자신이 여기 있는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안에는 치렁치렁 늘어진 쇠사슬을 잡고 있는 로만이 보였다.

거기에 반대편.

검을 뽑아 든 커틀러 듀어는 그저 멀리서 마주했을 때와 달랐다.

외형은 노쇠했음에도 마나의 농도와 기세는 현 플로이드 가주에 비해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

합격술의 각이 보이기도 전에 로만이 패배한다면? 그럼 그가 빼낸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이 이어서 커틀러 듀어를 단죄한다.

그게 황실의 검인 내 역할이고 목숨을 담보로 살아가는 모험가인 로만의 일이다.

-다치지 마라.

'본인이 말은 그렇게 해놓고···.'

일주일이 되지 않는 며칠. 그를 더 이해하고 알게 되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남자와도 닮지 않았고. 본인에게는 무심하면서 타인에게는 신기할 정도로 섬세한 남자였다.

그것조차 로만을 안다고 말하기엔 티끌만큼 작은 정보의 편린에 지나지 않겠지만, 친구라는 관계는 이런 편파적인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인가.

내가 나서는 일 없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육신이 편하고자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업으로 삼고 있는 '기사와 모험가'는 상처를 호흡처럼 달고 살며 죽음을 문 밖의 불청객으로 두는 몸.

불귀의 객은 당장 오늘이나 내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당연한 건 검을 들 때부터 받아들였다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냉정함을 잃고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유일한 친우가 어떤 부상도 없이 이기고 돌아와 자신을 웃기지도 않는 가명으로 부르는 것을.

*****

촤르르르ㅡ

쇠사슬에 단검 하나.

빈손에서 갑자기 생겨난 무기다.

혈기가 아니라 경험으로 살아가는 노장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도 표정으로 티 내지 않는다.

"젊은이가 재미난 수를 가지고 있군."

단검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에 사슬을 칭칭 감는다.

"어디ㅡ 즐거워하는 노인을 위해 재롱 좀 부려 볼까."

부웅!

채찍처럼 휘둘린 쇠사슬.

투척에서도 느낀 저 무식한 근력을 주의해야 한다.

커틀러는 직감에 따라 막지 않고 자리를 박차 회피했다.

콰과과과ㅡ!

내부에 강철 기둥을 박아 시공한 벽면이 그대로 갈려서 뜯겨나갔다.

어찌 된 게 뱀이 아니라 거대한 몬스터의 꼬리를 연상케 하여 간담이 서늘했다.

'무슨 원리로 저런 힘을··?'

눈으로 좇지 못할 속도도 아니고 사슬 전체를 오러로 감싼 것도 아니었다.

저게 그저 순수한 근력이라면? 창조주라는 여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인물을 만들어 냈단 말인가.

"쯧-"

생각은 끝없이 하되 움직임을 멈춰서는 안 된다.

채찍과 같은 부류는 돌아가는 타이밍이 약점. 꽉 잡은 검을 움직여 주인을 찾아가는 쇠사슬을 끊을 요량이었다.

채앵!

'안 잘려?'

정순한 오러를 실었음에도 이음새를 완전히 잘라내지 못했다.

이러면···오차 없이 똑같은 부위를 두 번 내리치거나 진짜 오러를 활용해야 한다.

간직한 패를 먼저 보이느니 일단 피하는 게 좋다.

"흐음- 평범한 사슬이 아니군."

"킥·· 늙어서 기력이 부족한 건 아니고?"

심장이 거칠게 박동하고 숨이 가쁜가?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허리를 펴고 단내 나는 숨을 감춰라.

불의의 일격을 허용하더라도 어떤 문제도 없는 척 상대의 정신을 갉아먹어라.

그래야만 살아남는다.

둘의 손에서 펼쳐지는 끝없는 견제는 정신을 괴롭혀 자극하고 상대가 먼저 수를 꺼내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피슷-!

손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을 보며 커틀러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길게 휘둘리는 무기는 안으로 파고들어야만 답이 나온다. 그게 파훼의 정석.

던져진 사슬을 회수하는 순간 뛰어들어 품을 노렸지만. 기다렸다는 듯 단검을 찔러왔다.

명백한 비웃음과 함께.

'단검이 더 장기라니. 다재다능 한 젊은이군.'

예상을 뛰어넘는 정신 나간 단검술이었다.

왼손에 들린 단검은 사슬을 피하며 접근하는 걸 견제하고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상대를 아가리로 자진해서 뛰어들게 하는 미끼.

이런 실전에 닳고 닳은 느낌. 절대···때려죽여도 기사가 아니었다.

"이제야 알겠구나."

"응?"

"자네···모험가구만. 그것도 백금의."

나이를 먹어서인지 떠올리는 게 늦었다.

이때까지 제국에 대해 입수한 소문 중에 겹치는 인물이 딱 하나 있었다.

음유시인들과 무슨 척을 졌는지 겨우 찾은 무용담조차 악평뿐이었지만.

이 남자는 분명 그였다.

"알겠으면. 내 사리사욕을 위해 목숨을 헌납하라고!"

부우웅-!

쇠사슬이 압도적인 근력에 복종하며 들이닥친다.

견제에 밀린 걸 인정하고 숨겨둔 패 하나를 먼저 꺼낸 건 커틀러였다.

째애애앵ㅡ!!

쇳소리가 울리며 커틀러의 쌍검이 녹빛으로 발광했다.

허공을 유영하던 쇠사슬이 맥없이 잘려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이야 - 노인네답지 않은 오러를 가지고 있잖아."

"흐허허!! 이것 참. 늙은 채 살다 보면 이런 즐거움이 생기나··· 오 년쯤 되었나? 터득할 때는 무심했는데 진심으로 쓸 일이 생기니 이리 기쁘구만."

표독스러운 얼굴과 매칭되지 않는 커틀러의 웃음소리. 즐거운 꿈을 좇는 순수한 어린아이 같았다.

"그렇다고 변하는 건 없지."

텁.

왼손에 쥐고 있던 단검이 오른손으로 옮겨갔다.

"모험가 친구. 자네도 숨기지 말고 나에게 보여주지 않겠나? 패를 너무 아끼면 그것도 죽음을 재촉한다네."

"확실히 - 아끼다가 필요할 때 못쓰면 손해긴 하지."

"그래. 젊어서 그런지 이해가 빠르군. 죽음보다 손해와 적자를 싫어하는 게 모험가 아닌가?"

"영감. 나를 안다는 듯이 나불거리지 마. 난 적자를 그리 싫어하진 않는다고."

이득을 쫓는 단체의 정점인 '백금'스럽지 못한 답. 그를 본 커틀러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서 제국에 이용당해 여기까지 왔나?"

"이용이라···서로를 이용하는 거라 봐야지. 내가 아니라 '저 여자'가 선봉으로 나섰어도 당신은 무조건 죽어."

밖에서 퇴로를 차단하고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그녀를 커틀러도 인식하고 있다.

내가 아니어도 커틀러는 에클레어에게 죽는다. 그게 정사다.

"허허·· 확신이 있다면 그 경험으로 훌륭한 기사를 키울 수 있는데. 눈에 보이는 득실에 민감한 제국이 에클레어 드리트나를 혼자 보내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나? 제국은 여전히 자신들의 휘하가 아니라면 인재를 대하는게 박하군."

값을 책정할 수 없는 백금을 제국에서 고용한 이유. 커틀러는 5기사의 부족함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나를 어떻게 흔들려해도 입놀림이 영 부족한 노인이었다.

이용당하는 내가 제국을 이해한다.

제국의 입장에선 굳이 비싼 전력으로 무리수를 던질 필요가 없다.

"멍청하긴···연꽃이 더러운 흙탕물에 자란다고. 굳이 흙탕물을 찾아서 연꽃을 키우지는 않지."

귀신같은 손놀림.

단검은 어느덧 왼손에 돌아가 있었고 검 한 자루가 오른손에 들려있었다.

파직-! 파지직-

검붉은 오러를 마주한 커틀러의 입가가 기대감에 파르르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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