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77화 (77/250)

Chapter 77 - 저택에 들이닥친 광인

후두두둑ㅡ

바로 방금까지 인간이었던 고깃덩어리들이 선술집 바닥에 쏟아진다.

휘익~♪

내 입에서 에클레어의 일검을 보고 감탄을 실은 휘파람이 나왔다.

아무것도 없이 순수검법만으로 치고받는다면 에클레어를 이기는건 누가와도 힘들지 않을까?

에클레어가 사용하려했던 버터 나이프를 던져 바텐더의 머리를 꿰뚫었다.

푹-!

"끄억···."

이 장소에 남아있는 모든 인간이 반역자의 휘하에 있는 '커틀러스'이자 한통속.

선술집 2층에서 1층으로 뛰어내려 문으로 향한다.

"정한대로. 가면서 두개는 해결할테니 나머지는 부탁한다."

"음. 금방 합류하겠다."

구석에 있는 잔당까지 깔끔히 도려낸 에클레어가 들고있는 검에는 혈흔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키티."

"···왜 부르지."

이제 에클레어라 불러도 될만한 상황임에도 그녀는 키티라는 이름에 완전 적응한 태세였다.

'내가 가는게 맞아.'

늙은 사냥개를 잡는건 에클레어 같은 올곧고 딱딱한 성격은 맞지않다.

지금까지 어떻게 만든 자매관계인데. 어이없게 다치면서 칙칙한 정사를 따를 필요는 없다.

내 취향상 드리트나 자매에게는 확정적인 해피엔딩이 어울린다.

"다치지 마라."

칼을 휘두를 때도 미동이 없던 에클레어의 눈이 커졌다.

숨을 후! 하고 짧게 뱉더니 내 가슴팍을 손등으로 툭- 친다.

"별 걱정을···그건 내가 할 말이군. 혹여 로만이 부상을 입어 영애의 분노를 살까. 솔직히 좀 무서운걸."

이젠 대화 도중에 드문드문 농담까지 섞는 쾌거를 보인다.

짧은 며칠사이. 잠도 안자고 고생 좀 같이 했더니 확실히 가까워진게 느껴졌다.

'이게 용병시절에도 몰랐던 전우애인가?'

저 은색 고구마의 성장에는 미약한 빛이지만 찡- 하고 오는 감동이 있다.

덜컥-

피비린내 나는 선술집을 나가기위해 문을 열었더니 앉아서 흐리멍텅한 얼굴로 졸고있는 남자가 보인다.

숙면을 즐기느라 담배에 불도 안붙이고 입에 물고만 있는 대단한 근무 행태.

입구에서 무기휴대를 전담하는 커틀러스의 인간이었다.

"····"

뿌드득!

졸고있는 뒷목을 잡아서 뼈째로 부러트린다.

즉석에서 생성 된 시체 하나를 선술집 내부에 던져두었다.

딸그락.

[ 영업 종료 ]

"깔끔하네."

시체만이 남은 선술집 간판을 돌려두고 길을 나섰다.

-

오늘 림노에서 커틀러 듀어와 그의 휘하에 있는 커틀러스를 지운다.

많은 생명이 사라질 이 행위에 대단하고 원대한 이해관계?

그딴건 없다.

강대한 권력을 가진 누군가의 분노가 자리하고 있고.

거기에 원하는게 있는 누군가는 달려들어 이득을 보는 단순한 사리사욕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서 커틀러 듀어의 저택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두곳.

하나는 간판도 없는 건물로 커틀러스의 창고용도. 또 하나는 림노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흥신소 개념을 가진 가게였다.

에클레어가 림노에 넓게 퍼져있는 5개의 지점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커틀러 듀어에게 향하며 두개의 지점만 정리하면 된다.

*****

커틀러 듀어가 아닌 커틀러.

몇년 더 늙으면 자신도 듀어라는 성을 까먹지 않을까.

도망자이자 실패자의 변명이라 해도 이견이 없는 여러가지 이유로 십여년을 조용하게 살긴했지만 이름은 변하지 않았다.

이름을 말하고 다닐 일 자체가 없고. 부하들에게는 사장이나 대장으로 불리지만.

지금도 림노에서는 성만 버리고 '커틀러'라는 이름만 고집하여 사용하고 있다.

결국 이 짓거리가 자신의 목을 조르고 날려버릴 위험한 행위인걸 알면서도 이건 죽어도 포기할 수 없는 하나의 아집이었다.

제국역사에 큰 획을 새기는 것도 실패하고 볼품없게 영락했다.

이런 자신과 다르게 제국의 5기사 중 네번째 기사라느니 하며 아직까지 이름을 날리고 있는 그 바보같은 녀석이 자신의 이름을 듣고 림노에 찾아오는걸 망상하기도 했고.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오늘은 마리안과 페리를 안을까···.'

멍하니 생각하다보니 사들인 여자들을 모아둔 저택에 갈까 말까 고민이 된다. 예전처럼 가자! 하고 대쪽같은 결심이 서지는 않았다.

림노도 젊을때야 밑도 끝도 없이 즐거웠지만 나이를 먹으니 한적함을 즐기며 혼자있는게 좋아졌다.

저녁이 되면 저택에서 모든 사용인을 물리고 아침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미래보다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돌아본다.

실패로 점칠된 인생을 돌아보는게 슬프다기보단 생각보다 흥미롭고 즐거웠다.

모든건 혁명을 위해 피땀흘린 도전의 결과였으니.

혼자있는것의 장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보필만 받던 귀족의 삶을 버리고 혼자 무언가를 해보면서 배우는 것도 분명 존재했다.

후룩-

'우유를 좀 더 넣었으면 좋았겠군. 물 온도도 아쉬워.'

저녁식사 후에는 우유를 섞은 커피한잔. 이후에 반복적인 수련을 끝내고 애검 두자루를 닦는 것으로 일과를 마무리한다.

예전이면 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도 술병과 여체를 안고 나뒹굴었지만 이제는 그럴 생각이 들지않았다.

최근 빈도로는 여자를 안는것도 주에 1번이 있을까말까였다.

'오늘만은 인정해야겠어. 늙은게지··.'

제국에 있을때와 비교가 불가능한 많은 여자를 수집했지만 욕구 자체는 메말라 간다.

젊고 이쁜 여자는 아직도 모으고 있지만 이제는 그것도 관상용 컬렉션 같은 느낌이었다.

"····"

그리고 위기감 보다 큰 실망감.

자신의 아늑한 저택을 통째로 집어삼킬듯 차오르는 살기의 파도는 절대 플로이드, 그 미련한 남자의 것이 아니었다.

콰앙!!

서재의 벽과 문이 동시에 부서지며 뿌연 가루가 피어올랐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번쩍임에 닦고있던 검을 잡았다.

째앵ㅡ!

날아온 검을 튕겨냈지만 손목이 덜컥 울렸다.

화려한 기술이 없는 직선으로 날아드는 투척. 그 부딪힘에 군마가 이끄는 수레를 연상시키는 무식한 힘이 느껴졌다.

피어오르는 먼지 사이로 목소리가 울린다.

"하늘을 동경한 뱀이 용이 되기를 꿈꿨지만 땅꾼에게 잡혀죽다."

"····."

"내가 생각해본 묘비명인데 어때? 마음에 들면 금화 하나에 팔아주지."

듣는사람은 웃을 수 없는 말을 뱉고 낄낄거린다. 경박하다 할 웃음소리를 내며 남자 하나가 박살난 파편을 짓밟고 들어온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눈가에 도는 붉은 빛이 살기인지 광기인지 모를 인간남자.

'그냥 정신나간 광인이 아니다··.'

이럴때 격분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게 나이를 먹는 장점이 아닌가 싶다.

"젊은 친구가 드물게도 운치가 있군. 좋아 - 그건 내가 구매하지. 대신 담배 하나 태울 시간은 주겠나? 마지막 한 개피라네."

"쯧···돗대는 어쩔수없지."

치익-

"쓰읍- 불은 있는데. 자네는 안피우나? 마도구가 아니라 성냥을 선호한다면 성냥도 있다네."

"됐어. 맛도 없는거···다시 태어나면서 끊었거든."

주름하나 없이 탱탱한 면상으로 영문 모를 농담을 즐기는 남자였다.

'제국의 요즘것들에 드리트나를 제외하고 이런 인재가 있었나? 보통이 아니군···.'

입과 코로 연기를 뿜으면서 눈을 굴렸다.

한창 전성기로 오르고 있는 젊은 느낌을 풍기는 주제에 몸은 담금질이 끝난 완성체.

그 시기가 정확하게 겹치는건 더 없이 어려운 일이라는걸 알고있다.

재능인지 노력인지 몰라도 어떤 면으로 질투가 일어나는건 사실.

"딱봐도 제국에서 보낸건 맞는데··· 거참, 기사는 아닌것 같군. 아니면 요즘 기사들은 허례허식을 버리는 혁명이라도 맞이한겐가?"

새끼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고 있던 젊은 남자는 오른쪽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씨익 웃었다.

"영감. 죽으면 필요 없어질 정보로 입 아프게 나불거릴 필요는 없어. 이제부터 나와 해야할건 림노에서 흔하디 흔한 오락의 하나라고."

치익.

재떨이에 담배를 집어넣고 관리가 끝난 검 두자루를 잡고 일어났다.

"그래···젊은 친구가 말하는 오락이 뭔지 들어나볼까. 늙은이들은 아닌척해도 이렇게 말을 나누는게 최고의 낙이거든."

시이잉-!!

두개의 검이 세상에 드러나며 시원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양 손에 빈틈없는 묵직함이 전해지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실전에서 시작과 동시에 두자루를 뽑는게 얼마만인지. 주책맞은 고양감에 기력없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길거리 도박처럼 규칙은 간단해. 상대의 머리통을 깨부수면 승리. 목을 꿰뚫어도 좋고 날붙이로 폐를 종잇장처럼 찢어도 승리라 하자고. 아! 참고로 기권이나 반칙패는 없는걸로."

번들거리는 눈알에 검을 잡은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누군가의 흉내가 아니라 저건 진담이다···미친놈들은 다 성가신 부류인데.'

에클레어 드리트나가 있는데 제국에 또 무슨 인재의 홍복이 불어닥친 것인가.

이건 황실에서 몰래 기른 충견? 아직 이 남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예측되지 않는다.

"끌끌···드물게도 흥미가 가는 오락이구나. 이기면 이 노익장에게 뭘 줄텐가?"

그는 흉터가 있는 턱을 긁으며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내일의 해를 볼 수 있는 기회."

승리에서 오는 보상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커틀러는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경험에서 비롯한 관측을 멈추지 않았다.

'···검이 무기가 아닌가? 맨손이나 암기까지는 상정해야겠고.'

아까 내던졌던 칼은 구석에 내동댕이 쳐져있었다.

저 검의 양식은 저택이나 부하에게서 빼앗은 물건이 아니었다.

"젊은친구. 무기가 없으니 주우러 간다느니 김빠지는 소리는 하지말게. 암습에 실패한 대가는 있어야지."

자신의 선수치기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어이가 없다는듯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누가."

"음··?"

촤르르륵-

여신에게 맹세코 빈손이었던 손아귀에서.

숨기려해도 숨길수 없는 길이의 쇠사슬과 날붙이가 뱀처럼 흘러내렸다.

"누가 무기가 없다고?"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