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1 - 너의 이름은.
여기서 끊어내야 한다!
한발 더 뻗어서 질문을 하면 큰일난다고.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건 에클레어가 먼저였다.
"?"
"?"
상호 간에 비틀린 관점으로 눈길을 마주한 순간 시간이 멈췄다고 착각 할 정도.
급속도로 냉각되며 말을 꺼내기 어려워지는 분위기를 뚫고 로만이 용감하게 입을 열었다.
"···어디 아프냐?"
"아니, 아니다. 잊어라 - 조금 착각이 있었던것 같군··."
네모난 공간에 스멀스멀 퍼지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공기. 각자 다른 세계에서 헤엄치는 감각에서 벗어나기위해.
에클레어는 눈두덩이를 강하게 누르며 의뢰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마침 지금이 적기의 타이밍이니···쫓고있는 반역자에 대해 설명하겠다."
어딜봐도 적기라고 생각되지 않았지만 일단 묻어두기로 했다.
"귀는 열어두고 있어."
에클레어는 크게 호흡을 한번 하더니 길드 접견실에서나 들려주던 사무적인 목소리로 정보를 출력했다.
그것으로 분위기를 업무적으로 환기시킨다.
"반역자의 이름은 커틀러 듀어. 듀어라는 성 자체가 하룬 제국에서 지워졌지만 본인은 아직 사용 중 일지도 모른다. 혹은 비슷하게 변경해서 쓰고 있을 가능성도 존재하지."
"커틀러 듀어···? 성을 살려서 본보기로 삼지않고 지워야 할 정도면 힘 좀 쓰던 귀족이었나보네."
황제가 눈이 뒤집혀서 에클레어까지 보내는 것만 봐도 상대의 위험성과 크기는 가늠된다.
"옛 귀족 파벌을 이끌던 인물 중 하나로 권력의 튼튼한 기반은 물론이고 검술 또한 무척 뛰어나다 들었다. 현 제국의 5기사 중 네번째인 플로이드가의 주인과 아카데미 생도시절 라이벌이었다 하더군."
5기사 중 가장 연로한 4석과 같은 시절을 보냈다면 나이를 배부르게 먹었다는 뜻.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전성기에 접어든 젊은 기사보다 무서운게 경험 많은 능구렁이 아닌가.
"그때 수준은?"
"기록에 의하면 사건 당시 강맹한 푸른 오러를 사용했다. 그 상황에 전력을 숨겼다 생각하기도 어렵겠고···그렇지만 십년이 넘게 지난만큼 최악은 상정하는게 좋겠지."
나야 최근에 에클레어에 대한 세부 설정집을 읽은 남자.
관련 사건의 결과와 갈등의 발생위치 같은 중요 정보는 알고있지만 자잘한 사항만은 모르기에 필요한 정보만 긁어냈다.
"외형은 그 나이대로 보이려나? 림노에서 돈 펑펑쓰고 살았으면 회춘 했을지도 모르겠어."
"···정보원들이 용모파기를 끝내고 그려온 몽타주가 있다."
에클레어는 몸을 가린 망토. 케이프를 들추더니 벨트에 달린 포켓을 열었다.
돌돌 말린 종이뭉치 중 하나를 꺼내 내게 건낸다.
자료를 받으면서 나는 그녀의 새로운 복장을 한번 훑었다.
'···!'
천상기사인 에클레어의 성격상 절대 입지 않을것 같은 복장이 가진 놀라움.
게임사에서 드리트나 팬들을 위한 에클레어용 의상 DLC - 모험가.ver 을 발매 해준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한쪽 무릎에 착용한 투박한 보호대와 5기사라는 직책에 맞지않는 질긴 옷감의 의류들.
딱 달라붙는 하의에 손가락만 노출시키는 검은색 반장갑까지 착용하고.
상의는 크롭탑이라 명해도 손색이 없는 스타일이었는데 에클레어의 새하얀 살결과 일자 복근을 슬쩍 노출시키고 있었다.
"복장이 여성 모험가 표본 그 자체네. 황궁에 패션 잡지라도 팔고있나?"
"지원받은 복장을 그대로 착용했을 뿐이다···."
저정도면 에클레어를 지원하는 누군가의 사심이 들어간게 아닌가?
본인도 처음 입어보는 복장이 신경쓰이는지 늘어져있는 케이프를 당겨서 상체를 덮고 양 손으로 복부를 한번 더 감쌌다.
"그렇게 신경쓰이면 도착해서 새로운 옷을 사든지···."
말을 어정쩡하게 마무리 지으며 말려있는 종이를 펼쳤다.
샤락-
"오호."
반역자는 반역자라 이건가. 제국의 골목골목에 붙어있는 현상수배 그림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검은물감으로 선을 강조하여 흑백으로 그린게 아니라 다채로운 물감과 도료를 사용하여 머리카락에 눈동자 색까지 자세하게 표현한 몽타주였다.
종이 끝단에는 정보원들이 외견에 대해 서술한 자료도 달려있다.
'나 존나 나쁜놈이요 라고 얼굴에 적혀있네.'
어깨선에 늘어진 금발을 쭉 당겨서 천으로 묶은 꽁지머리를 하고 있으며 깔끔하게 관리한 수염 또한 같은 색.
눈동자는 탁한 녹안이며 과거보다 이마가 넓어졌고 고랑처럼 깊게 패인 주름이 있다.
마도구로 추정되는 외눈 안경을 착용하고 있으며 무기는 제국에 있던 때와 같이 항상 두자루.
서로 길이가 다른 롱소드 두자루를 휴대하고 있다.
먼 거리에서 주위에 있는 물건과 비교하며 측정한 신장에 덩치.
무리를 지어다니는 일행에 대한 정보도 있으나 제일 중요한건 마지막 줄이었다.
[ 무기를 일행에게 맡기고 가게를 출입할 때도 있으나 무기를 해제하지 않고 그대로 출입하는 가게도 존재함. ]
"농담이 아니라···제국 정보원들이 일 다한다."
"나 또한 그들이 진정 제국을 지키는 인재들이라 생각한다."
하는 일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급료를 받고 애국심 하나로 목숨을 거는 정보원들은 놀랍게도 이런 양질의 정보를 물어왔다.
이것들이 모여 내가 밖에서 읽은 설정집이 되는거겠지.
··
··
-히힝!! 푸르르르ㅡ
근육질의 군마는 휴식시간에 포션까지 마셨다. 그럼에도 허연 거품을 물때까지 쉬지않고 달렸다.
점심도 이동하는 마차에서 마시는 것으로 간단히 처리하고 달렸음에도 우리가 림노에 도착한건 저녁시간 이라기엔 늦은 때였다.
마차는 림노가 보이기 시작하자 우리를 도로에 내리고 작별인사도 없이 어둠속을 뚫고 쿨하게 사라졌다.
발을 뻗어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질수록 유흥의 도시를 보고 느끼는게 있다.
"이야 - 엄청 밝네."
"아주 시끄럽기도 하지."
그 두가지 단어가 림노의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벽 밖으로 삐져나오는 눈이 시릴만큼 찬란한 불빛과 소음들.
즐거움을 담아 세상이 떠나가라 웃고 떠드는 소리부터.
찢어지는 비명과 분노로 가득찬 고함소리가 섞여있는 신기한 소음이다.
빈부격차와 불평등한 사회를 표현한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고 할까.
"···잠시만."
내 목소리에 에클레어의 발이 멈췄다.
"뭐지?"
"외관은 가리더라도 이름 정도는 가명으로 바꾸고 들어가야 하는거 아냐? 로만이라는 이름은 흔하지만 에클레어는 아니지."
이름도 없는 촌동네 부모들이 짓기 귀찮아서 '올해 태어난 남자들은 로만!' 이라고 통일시켰는지도 모르지만.
로만이라는 이름은 그만큼 흔했다.
모험가 생활 중 동명이인을 만나본게 3번인가 4번 정도 되고 어린시절 나와 교환당해 부모에게 먹힐 운명이었던 옆집 아이도 이름이 로만이었다.
림노에 입장 후 나야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도 문제될게 없지만 귀족인 '에클레어'는 다르다.
게임에서도 비중이 있는 네임드 NPC인 만큼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 뿜어져 나오는데···거기에 따라붙는 부티나는 이름이 동명이인으로 있을 확률은 너무 낮다.
살벌한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여자의 이름이 에클레어다?
놀러온 제국민은 당연하고 운이 안좋으면 견식이 넓은 연방국의 인물들을 만나는 순간에 의심을 살지 모른다.
내 말을 들은 에클레어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타당한 의견이다. 그럼 어떤 이름을 사용해야하지?"
"마음에 드는걸로 직접 정해. 흔할수록 좋아."
무거운 침음을 흘리며 그녀는 자리에서 빙글빙글 돈다.
땅을 구둣발로 툭툭 차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아는 이름이라 해도 귀족들이 대부분이라 정하기가 어렵다. 그대가 정해다오."
"그대? 그으대? 그런 단어를 남발하면 바로 시선이 모이는거라고."
"로,로만이···정해라."
겨우 일주일도 안되는 임시 명함이지만 키우는 개도 아니고 사람 이름을 짓는다는건 상당한 심력이 소모되는 어려운 일이다.
남자도 아니고 여성의 이름은 특히나.
나는 자리에 쭈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흙바닥을 긁으며 신중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막상 지었는데 내 센스가 아저씨 같다거나. 싸구려라 마음에 안든다 하면 마음이 아플것 같은데."
"농담할 때가 아니다···어차피 일주일. 까다롭게 굴지 않을테니 여성 모험가 중에 기억나는 인물이 있으면 언급해봐라."
여성 모험가라··.
기억속에 있는 평민 여성들의 이름을 머리에서 모아 집계하기 시작했다.
'모르가나? 요르? 유리아? 마키마? 블로나? 아니야···은연중에 나오는 저 딱딱한 기세를 누를만한 이름이···.'
따악-!
내가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자 시끌벅적한 림노를 보고있던 에클레어가 고개를 내렸다.
"드디어 생각났나?"
"기가 막힌 이름이 떠올라버렸지. 듣자마자 사람들의 경계심이 무너질 법한 흔하면서도 입에 딱 붙는 이름."
"그런가··대단하군."
미사여구가 길어지니 기대감이 오히려 떨어지는듯 에클레어는 흥미가 없는 무심한 눈을 하고있었다.
뚜둑- 소리가 나는 무릎을 펴고 일어나 앞장섰다.
"이제 가볼까. 키티."
한순간에 '에클레어'에서 '키티'가 되어버린 그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