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66화 (66/250)

Chapter 66 - 기억의 책갈피 (삽화 有)

테이블에 앉아있는 로만과 에클레어.

불이 붙기 시작한 대화에서 주류가 되는 것은 리케와 클로에가 필두가 되는 이야기였지만.

주제가 둘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로만과 에클레어 드리트나는 소속과 명찰은 달라도 결국에 개인의 '무력'을 최고 가치로 두는 직업.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방향으로 기울었다.

까다로운 몬스터의 퇴치부터 병장기의 효율과 관리.

로프티 아카데미에 대한 사사로운 정보에서 조기 졸업을 지낸 여기사의 청춘에 대한 짧은 이야기까지.

서로가 보는 시점이 완전히 다르기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럼 그 보고가 거짓이 아니었다고?"

"어쩔 수 없는게. 애초에 더럽더라도 그렇게 처리하지 않으면 뒤에서 덤터기 쓰는건 모험가가 되니 ㅡ "

모험가 중에서도 백금.

정점에 이른 자의 의견은 실로 흥미로웠다.

시간가는줄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며 에클레어는 쌓여있던 궁금증을 해소했다.

-

대화의 주제가 수십개로 퍼지고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로만은 허기를 참지 못하고 요리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에클레어는 이때까지 관심이 없어 몰랐지만 가게에는 디저트만이 아닌 식사 메뉴도 제대로 존재했다.

이것저것 눈이 가는대로 주문을 마치자 기다렸다는듯 요리가 나오며 탁자를 채웠다.

"좀 들지? 벌써 점심때 다 됐을껄?"

분명 가게에 들어올때는 생각이 없었는데 요리 냄새가 방 안을 채우니 허기가 진것 같기도 하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로만은 앞접시에 정갈하게 음식을 담아 에클레어의 앞에 놓았다.

"챙겨주는 사람이 생겼다더니···어째 챙기는게 더 익숙해 보이지않나."

"그런가? 남자는 이런 사소한 것만 잘해도 사랑받는다고."

···백금과 후작영애.

둘은 어떤 형태의 연애를 하고 있는걸까.

망설임이나 수치심 없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로만이 신기했다.

'경험없는 감정이란 이해할 수 없으니 더욱 신기하군.'

대륙에서 보기힘든 애처가나 다름없는 그의 발언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후 - 이제 좀 살겠다. 제법 배부르네."

허기를 면할 정도에서 식사를 끝내고 그제서야 에클레어는 품에서 검은색 브로치를 꺼냈다.

"어쩌다보니 이야기가 뒤로 밀렸지만. 오늘 만나려고 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로만이 탁자에 놓인 브로치를 보고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을 한다.

"그거? 어디 문제라도 생겼나?"

"아니. 문제가 있는건 아니다."

"아···알았다! 내가 모르는 기능을 또 찾았구나!"

"그것도 아니다."

"?"

옆에서 타인이 본다면 뜬금없이 스무고개를 즐기는걸로 보이겠지만.

정작 에클레어는 궁금증을 해소 할 때와 다르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꺼내야 할 말이기에 그녀는 일단 던지자는 생각으로 문장을 꺼내기 시작했다.

"···염치없지만. 이 물건을 클로에에게 양도하고 싶다."

"주인 마음대로 하면 되지.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예상보다 많이 싱거운 로만의 반응에 에클레어의 어깨에서 힘이 쭉 빠졌다.

이러면 고민한 자신이 바보같지 않은가.

"정식으로 구입한게 아니라 선물 받은 물건이지 않나···! 호의로 받은 물건을 타인에게 양도하는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ㅡ."

에클레어가 어떻게든 자신이 고민했던 속내를 찔끔찔끔 풀어내자 로만은 어떤 말도 꺼내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녀의 작은 발표회가 끝나는걸 확인하고서 이해했다는 얼굴로 그는 고개를 주억였다.

"이해는 했는데···내 결론은 변함없이 기사님 마음대로 하라는 겁니다."

그 말에 오히려 곤란하다는듯 에클레어는 은발을 쓸어넘겼다.

"너무 쉽게 답을 얻으니. 안심이 되면서도 허무하군···장단을 맞출 맥락이고 흐름이고 아무것도 없었어."

그 후 잔에 가득 담겨있던 커피가 비워지는데 10분 정도가 걸렸다.

이제 돌아갈 생각으로 에클레어는 주섬주섬 일어나 코트를 입기 시작했다.

가게를 나갈 채비를 마친 그녀는 뜬금 로만에게 말했다.

"알고있나? 그대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고민하는 내가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좋은 뜻이지?"

"후후 - 글쎄?"

에클레어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이며 의문에 의문으로 답을 했다.

그것도 아주 잠시.

평소와 같은 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는 탁자에 놓인 영수증을 집어들었다.

"···다음에 보도록 하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

ㅡ 라고 코트를 펄럭이는 멋진 퇴장을 본게 당장 며칠 전이었는데.

황실의 의뢰로 인해 모험가 길드의 접견실에서 보자는 에클레어의 편지가 날아왔다.

'요즘 이상하게 자주 보네.'

리케의 동글동글한 글씨체와는 다른 딱 꺾이고 딱 끊어지는 곧은 글씨체.

하지만 마지막 줄에 날짜를 기입하는데 살짝 흐트러진 펜놀림이 보인다.

본인도 쓰면서 당황하지 않았을까.

'지금 나한테 맡길만한 의뢰가 있나?'

환생 초기에 적어두었던 노트가 한계에 봉착하였다.

실질적으로 메모한 내용들은 플레이어블인 로버트의 시점에서 보는 메인 스토리의 줄기가 크다.

차원에 관련된 정보는 확실하게 기입되어 있지만 정작 형상에 공헌 할 언데드가 어디 있는지 조차 확실히 모르지않나.

정보의 방향성이 잘못된 것이다.

로만이라는 인물의 삶은 '아카라이트'의 메인이 아닌.

사이드 퀘스트나 NPC의 대화에서 보던 소문에 깊게 연관 되고있으니 당장 내가 필요한 정보들에 비하면 부족한게 많다.

그러니···도서관에서 얻은 책갈피를 쓸때가 온것이다.

1학기 실전수업도 마무리 되어 시간 여유도 생겼고 이제 새로운 형상을 열기위한 적기였다.

[ 기억의 책갈피 ]

▷대상의 특정 시간대 기억을 열람합니다.

▷기억의 열람을 위해서는 대상의 동의 혹은 일기장이 필요합니다.

▷일회용 소모품 입니다.

도서관에서 습득과 동시에 사용하고 싶었지만 기회는 단 한번이기에 얻어야 할 정보를 적어보고 한번 정리하고 있었다.

알아와야하는 정보를 적어둔 메모를 다시 한번 정독했다.

'흐음- 빠진건···없나?'

게임상에서 책갈피를 사용해도 현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리케가 며칠 안남은 아카데미에 등교한 시간.

햇빛이 들어오고 있는 침대에 사지를 쭉 펴고 편하게 누웠다.

기억을 열람하는 대상은 전생의 나.

시간대는 20XX년 10월 20일.

긴 시간이 지났어도.

그날이 어떤 날인지 잊지않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 기억이 존재하는 마지막.

죽기 바로 전날이다.

책갈피의 발동 목표는 로만이 아니라 전생에 존재하던 나.

될지 안될지 도박수에 가까웠기에 정보의 기입을 마친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불가능이라면 두번째 수로 가야한다.

-스으으으

책갈피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흐름을 탄다.

내가 나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는 신기한 감각.

'···된다!'

황금색 책갈피가 빛을 뿜었다.

*****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북부에 있는 타지리시.

푸우-

"그래 담배는 이맛이지."

판타지 세계의 싸구려 공정 담배와는 질적으로 다른 맛.

나는 폐쇄된 건물의 지하에서 눈을떴다.

뿌연 먼지가 떠다니는 지하실.

바로 옆에는 의자에 묶여있는 대머리 시체가 보인다.

'신기하네.'

원래 책갈피를 타인에게 사용하면 유령처럼 떠다니며 대상을 관측 하는게 끝이다.

본인에게 사용하면 이렇게 되는건가?

이게 만들어진 가상 세계라는걸 여실히 체감할 수 있고.

머릿속에 제한시간이 돌아가는 감각이 느껴지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이 대머리가 이름이 뭐더라···.'

책갈피를 사용해 눈을 뜬 때는 시기적절하게 임무가 끝난 순간이었다.

반쯤 잊고 살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전생에도 전쟁터를 돌며 용병으로 살았으니 생명을 담보로 하는 모험가의 삶은 정해진 수순이 아니었나 싶다.

하아ㅡ

'맛 죽이네.'

마지막으로 한모금 깊게 빨고 핏물이 흥건한 바닥에 꽁초를 던져 구둣발로 짓밟았다.

'로만'의 신체에 비하면 사이즈가 작은 근육덕에 셔츠를 입고도 움직이기 편하다.

손에 들린 코만도 나이프는 챙길 필요가 없으니 미련없이 버리고.

홀스터에 잠든 권총은 뽑아 볼 생각도 들지않았다.

의자에 걸린 코트를 챙겨 투숙 중인 호텔로 향하려 했다.

-후웅!

지하실에서 걸어 나오는 순간 나는 숙소에 와있었다.

테헤란의 관광 명소.

밀라드 타워가 한 눈에 들어오는 객실.

'과연···가상의 세상이란 말이지.'

업무차 들고 온 캐리어를 뒤져봤지만 컵라면 같은건 없었다.

담배에 이어서 간절하게 생각나는 맛이었지만 없다면 어쩔 수 있나.

아쉬움에 혓바닥을 질겅질겅 씹으며 양주를 한모금 들이킨 뒤.

침대에 놓여있는 노트북을 켠다.

오묘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전원이 들어오기 전.

까만 화면에 내 얼굴이 반사되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머리스타일도 그렇고···얼굴에 흉터···다르긴 하네.'

돌아가면 헤어스타일을 이렇게 바꿔볼까 고민하며 라이브러리에 저장되어있는 아카라이트를 켰다.

줄 지어있는 세이브 파일과 캡쳐해둔 설정집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딸깍- 딸깍!

'첫번째로 볼건···.'

이런 면상에 이런 직업으로 쉬는 날에는 집에 처박혀 술먹고 게임이나 즐기는 인생.

나쁘지는 않았지만.

생각하고 있으니 벌써 제국에 있는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어차피 이 몸뚱이는 오늘이 지나면 죽을 목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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