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9 - 그녀는 퇴근만 기다린다.
폭이 좁은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는 클로에를 빤히 보았다.
그녀는 눈을 아래로 피하면서도 내가 앉아있는 의자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왔다.
불침번을 서고있는 다른 생도들도 클로에가 뭘 하는건지 시선이 모였다.
내 앞에 와서 입을 우물거리는 그녀를 향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생도가 자리를 이탈하고 움직인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
"죄,죄송합니다. 그게···."
클로에는 이쪽을 보고있는 생도들의 시선이 신경쓰이는지 푸른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우우웅-
소음차단은 모험가나 용병들에게 밥줄이나 다름없는 잡기.
교관이 되어 리케와 기억쿠키를 사러 카페에 간 이후로 처음 사용하는것 같다.
클로에는 이 마나의 흐름을 몇번이고 겪은적이 있는지 상황을 이해하고 이제야 입을 열었다.
"교관님에게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말해라."
그녀는 누군가를 찾는듯 시선을 비어있는 교관용 천막으로 보냈다가 나를 보았다.
"···수업을 해주셨던 기사님이 어디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그분과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입고있는 셔츠의 아랫단을 양 손으로 쥐어짜듯 누르며 클로에는 또박또박 말을 꺼냈다.
"제가 흥분해서···말 실수를 범한 것 같아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감정을 너무 고조 시켜서 보냈나?
내 입장에서는 시원시원한 전개라 생각했는데 클로에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너무 빠르면서 거침없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아쉽지만 워낙에 바쁜 분이라 이미 돌아가셨다. 그리고 딱히 문제가 될 만한 언급은 없었으니 걱정 할 필요는 없을거다···오히려 즐거워 보였으니."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조심히 기사의 신상을 물어보는 클로에에게 절대 안된다는 엄포까지 하고 나서야 그녀는 한발 물러났다.
"아직 물어볼게 있나?"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끈적한 아교라도 밟은듯 가만 서있는 클로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손을 꼼지락거리던 클로에는 돌연 허리를 인사하듯 훅 접었다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잿빛 머리카락이 따라서 사르륵 흘러내렸다가 자리를 찾았다.
"교,교관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야 한다 생각해서···."
"아 - 오러 때문인가? 오러는 교관이 아니라 생도 본인이 노력한 결과물이다. 오히려 뛰어난 생도가 등장했으니 성과를 내야하는 교관의 입장에서 감사해야겠지."
생도들은 못 볼 거리라도 내 시야에는 들어온다는걸 클로에도 알고있을 것이다.
"그런 ㅡ !"
"하지만 말이다. 그건 알아둬라."
부정적 대답을 하려는 클로에의 말허리를 잘랐다.
"네?"
"자신의 경지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단은 숨겨라. 이미 알려졌다거나 피치못할 사정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
내 말을 들은 클로에는 상당히 찜찜한 표정이었다.
물결치는 입술이 무어라 꼬리를 물기 전에 나는 차단막 역할을 하던 마나를 해제했다.
"이해가 됐다면 자리로 돌아가도록. 이러다 모닥불이 꺼지면 생도에게 책임을 물을거다."
*****
에클레어는 생도들이 모여있는 숙영지에서 벗어나자마자 갑주를 해제하고 수도로 돌아갔다.
생도들이 걸어서 두시간 거리.
혼자 편하게 움직이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절대 먼 거리가 아니었다.
수도까지 도착은 정말 한순간.
해가 떨어진 늦은 시간임에도 눌러쓴 로브를 살짝 들추는 것만으로 그녀는 귀빈용 출입구를 통과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저택에 돌아와 우르르 다가오는 사용인들을 물리고 에클레어는 누구의 방해도 없는 자신의 서재로 향했다.
드륵-
"····."
허리가 바로 서는 딱딱한 의자에 엉덩이를 끝까지 붙이고 앉아 그녀는 눈을 감았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있어 처리하지 못한 생각들을 정리 할 시간이 필요했다.
( 언니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
( 진짜 힘든건 주위가 아니라, 혼자 달려나간 언니가 제일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클로에의 분노가 깃든 노성이 아직도 귓가에 천둥을 동반하여 메아리 치는것 같다.
자신이 품고있던 불안감을 따박따박 반박하며 박살을 냈다.
그 조용한 클로에가.
"후후··."
참지못한 웃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내 생에 이렇게 커다란 위로가 있었던가?
누군가 자신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안식이 된다.
그 대상이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라면 다가오는 위로의 크기는 하나의 방주나 다름없으니.
손에 잡히는 검은색 브로치를 만지며 에클레어는 다시 한번 꿈만 같은 클로에와의 대련을 상기했다.
게으름 없이 꾸준한 시간으로 다져진 클로에의 검법은 단단했고 비뚤어짐 없는 곧은 정신이 느껴졌다.
'이 빚을 제대로 갚을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결과적으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기에 클로에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숨김없이 들을 수 있었다.
단순하게 그 하나의 요소만이 아닌 여러가지 개입과 우연이 맞아 떨어졌기에 만들어진 상황.
그렇기에 이 상황이 대단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자신이 또 헛된 걱정을 하여 망설인다면 클로에는 당연하고 도와준 인물에게도 고개를 들 수 없으리.
-
잠을 자지않고 서재에서 날을 보낸 에클레어 였지만.
이른 새벽부터 씻고 출근을 준비하는 그녀의 컨디션은 전에 없을 정도로 최고의 상태였다.
제국의 기상은 항상 이르기에 저택을 나서면 물기를 머금은 습한 공기들이 그녀를 반겨준다.
"오셨습니까."
"음."
마차에서 내린 마부가 모자를 벗고 인사 한다.
자신보다 더 이른 시간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 마차를 타고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고 잠깐 휴식하는게 일상.
하지만 오늘은 눈이 똘망똘망하게 떠져 마차에서 보이는 수도의 풍경을 감상했다.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클로에도 집에 있겠지. 저녁시간이 겹치면 좋겠는데···.'
사방이 뚫려있는 야외에 귀족들이 뭉쳐있다는게 걱정은 되지만 오히려 안심되는 일면도 있다.
거기에 있는 백금의 손에서도 해결 못할 일이 터진다면 제국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을터.
우루스의 파티와 달리 황실과 호의적이며 일처리도 정확하고 빠른 백금의 모험가.
'그 로만과 친구···인가.'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어색한 단어에 그녀의 붉은 시선이 하늘로 올라간다.
자신에게 있어 타인과의 관계는 위 혹은 아래.
그것뿐이었다.
친구라 하면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 동등한 선에 있다고 봐야할까?
매일 전장에서만 뒹굴었으니 명확한 답이 정해지지 않은 이런 쪽은 역시 모르겠다.
다음에 만나게 되면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해야할지···.
똑-똑-
마부가 앞에서 마차의 벽면을 노크한다.
생각에 빠져 마차가 멈춘것도 모르고 있었다.
-
황실 산하에 있는 다수의 기사단 중 하나의 기사단에서 단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해도 실제 그녀가 일하는 시간은 집무실이 대부분이다.
허나 출근과 동시에 바로 집무실로 향하지는 않는다.
형식상이라도 단원들에게 얼굴은 비추고 간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절도있는 제식을 보이는 기사들을 하나하나 받아주고 집무실로 향하는 때였다.
"단장님! 잘 쉬셨습니까?"
집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의 인사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 플로이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특이사항이라도 있었나?"
"없습니다!"
"그럼 집무실 앞에 있을 이유가 있나? 단원들은 이미 연병장으로 나가고 있는데."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
에클레어가 침묵을 지키자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레오는 다리를 살짝 벌리고 열중쉬어 자세로 가슴을 쫙 폈다.
"외부 업무를 나가실때 저를 동행시키지 않으시는 이유를 알고싶습니다."
"···그걸 굳이 설명까지 해야하나?"
레오가 불필요하게 로만을 도발하여 코뼈가 박살난게 몇달 전.
그때 일이 터지는걸 실시간으로 보면서 자신의 눈 앞이 얼마나 캄캄해졌는지 이 귀공자는 이해하지 못한듯 했다.
"모험가와···다시는 그런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그 모험가와 만나면 사과할 의향이라도 있는건가?"
"····"
정작 그럴 생각은 없는지 레오가 입을 꾹 닫았다.
기사들의 프라이드는 높다.
거기에 황실이라는 깃발을 달고있는 명문가 출신 기사들의 프라이드는 곱절.
플로이드라는 고강한 가문이 자신의 등에 있는데 아무리 백금이라 해도 모험가에게 굽힐 생각은 절대 없을 것이다.
"사과···하겠습니다."
예상을 크게 벗어난 말에 그녀도 조금 놀랐지만.
레오는 상상만으로 화가 나는지 이를 뿌득 갈았다.
바깥으로 뿜어지는 투명한 분노를 본 에클레어가 그럼 그렇지 하며 눈을 잠시 감았다.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겠다."
"명심하겠습니다···."
레오를 지나쳐 집무실에 들어가려는 에클레어를 레오는 다시 한번 붙잡았다.
"다,단장님!"
"···또 뭐지?"
"혹시 오늘 업무가 끝나시고 ㅡ "
새로생긴 와인바의 분위기가 어쩌니.
예약을 해야하는데 자신의 이름이면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느니.
'부단장을 불러서 한번 이야기를 해야겠어···.'
이건 심각한 기강문제다.
비록 자신이 여자의 몸에 기사단 중 제일 어리다해도 단장 대우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업무 상담을 해달라 하여 식사 자리를 가졌더니 취미니 여행이니 헛소리만 늘어놓던 레오가 떠오른 에클레어는 한숨을 쉬었다.
"생각없으니 업무부터 제대로 하도록."
자신보다 나이도 한참 많은데 가문의 힘을 맹신하고 움직이니 치기어린 꼬맹이로밖에 안보인다.
쾅-!
집무실의 문이 부서질듯 닫혔다.
지금 에클레어에게는 퇴근 후 클로에와 이야기를 하는것 보다 중요한건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