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57화 (57/250)

Chapter 57 - 이게 첫걸음이다.

"언니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꾸욱-

말을 하면서도 과할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건 비단 상대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

지금 드리트나 자매의 사이는 예전 같지 않았으니.

다시 생각해도 모르겠다.

다툰것도 아니고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어떤 순간을 기점으로 언니가 점점 멀게 느껴진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도 수도에 자리잡은 커다란 저택에 있으면 어색하고 분위기가 무겁다.

눈치 볼 필요없는 아카데미 기숙사로 이전하고 싶었다.

어릴때와 달라진 언니를 보면 눈을 마주하기도 힘들었으니.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은 저택에서 생활하며 언니의 일상을 보았다.

입학을 하고 지금까지 한번을 마음 놓고 쉬는걸 본 적이 없고···나보다 늦게 잠들고 나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직접 준비한다.

저택에 돌아오지 않고 일을 할 때도 있으며 검붉은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돌아올 때도 허다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은발에 핏물이 엉켜있는 언니의 행색을 보고 놀랐었지만 자신은 뭐라 입을 열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저렇게 돌아오는건 본가에 있었던 때도 익숙한 그림이었으니.

며칠이 흘러 또 다시 누군가의 피로 젖은 험한 꼴로 언니가 저택에 돌아온 날.

클로에는 침대에 누워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을 방해하고 절로 몸을 뒤척이게 하는 생각.

정녕.

'이 상황이 익숙해도 되는건가··?'

과거에도 비슷한 장면을 보아왔지만 감상은 콧물 흘리던 어린시절과 달랐다.

깊게 고민 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 알고있다.

드리트나 가문의 급격한 성장과 번영의 중심에는 언니가 있다.

우직한 아버지도···가문을 키우기 위해 항상 고민에 빠져있는 어머니도 평생 해내지 못한 일을 언니는 척척 해냈다.

본가를 떠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언니에 의해 가문은 더 없이 부유하고 강성해졌고 생활 수준은 경영이나 장사를 업으로 삼는 귀족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게 되었다.

그때 자신은 몰랐다.

부모님도 모르고 가신들도···누구하나 몰랐겠지.

사실 우리 모두 알고도 모른척 했을지도 모르겠다.

알게 되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지니.

이 부유함을 대가로 언니가 어떤 꼴로 어디서 어떻게 지내왔는지.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밟고 방탕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

··

화륵-!

클로에의 검에서 푸른 오러가 타오르며 아래로 떨어지는 궤적을 그렸다.

"오러를···쓸 수 있었나?"

마나가 가시화 된 검을 보급형 롱소드로 미끄러지듯 받아내며 기사가 물었다.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었다.

"후으··!"

상대가 보여준 믿기힘든 손기술에 속으로 감탄 해버렸다는게 클로에를 더욱 자극했다.

감정에 이끌린 무의식이었지만.

클로에는 처음으로 오러를 만들어 냈다는 기쁨을 느낄 틈이 없었다.

하나의 경지에 닿았음에도 상대의 진심을 꺼낼수도 없고 내 말이 옳다고 증명할 힘은 없었다.

한낱 오러에 전능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생도는 어째서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판단하는지 모르겠지만. 모르는게 아니라 정확하게 알고있는 것이다."

무심한 언변으로 자신의 신경을 긁는 기사의 이질적인 목소리에 클로에가 배에 힘을 주고 말했다.

"아뇨! 당신은 몰라요!"

이것만은 장담할 수 있기에 클로에는 물러날 수 없었다.

"····"

자신의 부족한 검으로는 이 답답한 마음을 전부 표현할 수 없다.

명목상 수업이니 맞더라도 죽지는 않을거라는 가정하에 내세울 수 있는건 언변도 없고 사회성도 없는 주둥이 하나였다.

대지에 못 박힌듯 멈춰있는 기사를 보고 클로에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기사님은 언니의 연인이신가요?"

"아니다··."

"그럼 친구인가요?"

"아니··."

"같은 기사단의 동료··?"

기사가 투구를 좌우로 저어 부정한다.

깡-!!

클로에의 검이 거센 기류를 담아 기사를 내리찍었다.

롱소드의 날이 아닌 폼멜만으로 자신의 오러를 막아낸 기사를 보고 클로에는 살아생전 없던 성난 목소리를 토했다.

"그,그럼 도대체 기사님이 뭐라고···언니를 나쁘게 말하나요!"

"····"

채앵!

자신의 검이 막히는건 당연했기에 클로에는 손목이 부러져라 롱소드를 누르며 기사에게 최대한 몸을 붙였다.

크드득-!

내가 왜 이럴까.

"진짜 힘든건 주위가 아니라, 혼자 달려나간 언니가 제일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여기에 오기 전 교관과 검을 나누고 난 뒤로 이상하게 감정이 큰 폭을 가지고 요동치고 있었다.

몇번이고 호흡을 해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피에 젖고도 무표정한 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터질 것 같은데.

정작 언니를 부정하는 이 기사와 검을 주고 받을수록 자꾸 언니 생각이 난다.

"한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한 사람을···주위를 둘러보지 않는다 말하는건 기사님의 시야가 좁은거겠죠!"

말과 동시에 클로에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사과하세요··."

감정의 둑이 터져버린 클로에의 정신은 하극상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뒷일도 완전히 잊은 상태였다.

마치 예전에 투구를 쓰고 자신도 모르게 스킬을 발동했던 날 처럼.

*****

클로에와 에클레어의 대련은 해가 떨어지고 정말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났다.

그걸 메꾸느라 나는 놀고있는 생도들을 한바퀴 더 돌렸고.

수업이 끝난 후 생도들은 저녁을 준비하기 전에 모닥불을 다시 만들어야 해서 정신이 없었다.

스륵-

내부에 램프가 걸려있는 천막을 열고 들어가자 투구를 벗고 건틀렛으로 얼굴을 덮고있는 에클레어가 보인다.

"우리 기사님~ 개운하신지요."

"아···그대인가."

"머리가 아직 복잡해 보이는데?"

"이것저것···떠오르는게 있어서."

마주앉아 멍하니 빛을 만들어내는 램프만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들어오는 생도들의 어수선한 소리를 듣고 있으니.

에클레어는 선이 도드라지는 손목을 쓰다듬으며 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생각해보면 말이지···클로에는 수업이 끝나면 매번 서럽게 울었지만 단 한번도 수업에서 도망가거나 빠진적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가혹할 정도로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도 도망치지 않았으며 타인은 보기만해도 눈을 돌리고 싶은 시간을 정면에서 견뎌왔다.

눈물이 많고 행동은 작을지라도 속은 야물고 옹골차다.

"말했잖아. 겉이 무르다고 속까지 무를거라 속단하지 말 것."

"참으로···마음을 관통하는 말이야."

마치 술에 취한듯 몽롱한 눈을 하고있는 그녀는 여전히 나에게 붉은 시선을 흘리고 있었다.

"이렇게 있으니 옛 생각이 나는군. 늘 위태로워 보이는 클로에에게 정신을 강하게 한다는 아니무스의 정수까지 구해서 몰래 먹였는데 말이지··? 의미없고 부끄러운 흑역사라 인증이 되었으니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다. 정작 그걸 마셔야 할 인간은 나였는데."

"아니···그건 진짜 잘했는데?"

푸념에 섞여있는 엄청난 정보에 나는 진지하게 에클레어를 칭찬했다.

벽을 넘어 전체 내성이 발달한 에클레어와 달리 클로에는 아직 한창 성장하는 단계.

다른 내성과 달리 0이라는 수치가 존재하는 정신 내성을 키우는 영약을 먹인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애초부터 그런 뒷설정이 있었기 때문에 클로에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로버트로 호감도 작을 할 수 없는 인물인지도 모르고.

"···뭐 오늘은 그대의 말이 그렇다면 그런거라 생각하지."

내 말이 어설픈 위로 혹은 농담으로 들렸는지 그녀는 입꼬리를 작게 올리며 웃었다.

"아직 안심 할 상황은 아닌게 이제부터 잘 해야하는거 아니겠어?"

"그렇지···이제 첫걸음이야."

클로에도 마음의 변화를 맞이한것 같지만 제일 중요한건 에클레어가 행동하는 방향이다.

딱 봐도 클로에와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하는 그녀를 불러 깨웠다.

"그래도 온 보람은 있지?"

내 목소리에 초점을 찾은 에클레어는 포근한 미소를 보였다.

"인생에 손에 꼽을 경험이었다. 정말 혼이 빠질만큼 혼나버렸어···클로에가 화를 내니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섭더군.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평소에 조용한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서운건 뭐···."

나는 오늘 로버트의 정신을 처형시키던 리케를 생각하고 에클레어는 아마 클로에를 떠올렸을 것이다.

쪼르륵-

점심때 타두었던 식은 커피를 컵 두개에 적당히 나눠 하나는 그녀의 앞에 두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풍미를 잃은 커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 보다 많은 것을 받은것 같아 면목이 없다."

"뭘 또 그런말을 하시나. 장사에서 이득을 봤다 싶으면 조용히 있는거지."

"이 고양감을 숨기지 못해 그대에게 자꾸 언급하게 되는군···내일 일이 끝나고 저택에서 클로에를 만나는걸 벌써 기대 중이다."

나는 에클레어의 뿌듯함이 담긴 한 문장에서 이상한 단어를 잡아냈다.

"내일? 내일 일을 간다고?"

"그렇다만?"

아무리 그래도 며칠은 여유있게 휴가를 낸 줄 알았더니···.

에클레어는 이대로 아침까지 있다가 바로 출근 할 생각인듯 했다.

그녀의 체력을 생각하면 문제는 없겠지만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초인들도 몸은 몰라도 정신은 가능한 휴식을 해야한다.

"애초에 나 혼자 하는 일이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쉬어."

"···난 아무 문제없다."

'골치 아프네··.'

팔짱을 끼고 이상한 쪽에서 고집을 부리는 에클레어를 보고 나는 뒷통수를 긁었다.

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그녀를 쫓아내기로 했다.

"생도들이 잠들면 여기에 리케를 부를거거든."

"스카디 영애를···?"

"그래."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건지 눈을 굴리던 그녀는 한순간 이해했다는듯 얼굴을 붉혔다.

"···모험가식 언변이나 농에는 익숙하지 않으니 그만하지."

"하하- 농이 아니라 저런 좋은 여자를 두면 참을수가 없거든."

"그만···! 알겠다··돌아가겠다."

진작 그럴것이지.

어물쩡거리며 일어난 에클레어는 갑주를 해제하려했다.

"갑주를 왜 풀어? 나가다 들키면 어쩌려고."

"물건을 지금 돌려주려 했다만?"

이상한 자세로 멈춘 에클레어를 보며 나는 습관적으로 턱을 긁으며 고민했다.

저 물건이 있다고 내가 쓸 일도 없을것 같고.

리케도 갑갑하다며 질색을 하는 물건이다.

"그거 그냥 가져라. 일이 좀 풀린 친구한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해. 아니면 동생한테 주던지."

"···친구?"

갑주를 준다는게 아니라 다른 핀트에서 놀라는 에클레어를 보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왜 거기서 놀라? 공유하는 비밀도 있고 밥도 같이 먹고 커피 한잔 했으면 친구지. 그게 남이야?"

철컥-!

손에 들고있던 투구를 푹 눌러쓴 에클레어는 내 말에 답을 하지않고 요상한 걸음걸이로 천막 입구로 걸어갔다.

"···이 물건도 잊지않고 반드시 보답하겠다. 내일까지만 고생해라 친··구."

말을 어색하게 끝내고 한걸음에 사라지는 에클레어를 보고 나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저 찐따를 어쩌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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