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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56화 (56/250)

Chapter 56 - 본인만 알고있는 각자도생의 시간들

수업이 시작하기 전 점심시간.

천막에서 스카디 영애가 중심이 되어 만든 토마토 스튜를 먹었을때 에클레어가 정말 놀란건 빈약한 재료를 모아 맛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요리 스킬이 아니었다.

이것이 자신에게 향한 감정은 아니지만.

그 작은 그릇 안에서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연인에 대한 연심.

귀찮은 절차를 당연하게 감수하고 사소한 부분을 고려하는 정성.

자신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질적인 감정들이기에 그것들은 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미각에 만족을 느끼고 허기짐을 충족하기 위한 목적을 기본 전제로 가진 것이 음식이고 요리지만.

본말전도라 할 정도로 진하고 거대한 감정에 요리가 가진 본래의 의미는 뒤로 밀려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

째앵-!!

에클레어가 왼손으로 클로에의 검을 받으며 점심에 먹었던 스튜를 떠올린 이유가 있다.

당장 로만이 클로에를 어떤 상태까지 끌어올려 자신에게 보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쓸데없는 짓을···.'

앞으로 창창한 미래와 발전의 가능성이 그려지는 검 보다.

지금까지 클로에가 보낸 인고의 시간이 검을 타고 느껴지면서 에클레어의 정신을 괴롭혔다.

"하압-!!"

채재쟁!

한 호흡에 이어지는 묵직한 3연격.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호흡을 짧게 들이마시고 미련없이 방어로 전환하는 과감함이 돋보인다.

드리트나 검법의 골자를 그대로 옮겨낸 정직하고 방어적인 검법.

지금 동생이 보여주는 드리트나 검법은 가문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기사들 보다 밀도가 높았다.

'···클로에.'

이건 절대 하루 아침에 쌓아올릴 수 있는 완성도가 아니었다.

내가 사죄라는 명목으로 클로에의 시선이 닿지않는 전선에서 자기합리화에 취해있을때.

부모조차 제대로 봐주지 않았을 긴 시간 클로에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 수 있다.

어째서?

나는 왜 당연하게 클로에가 방에서 계속 울고만 있을거라 생각했는가.

( ㅡ 그 어린 시절 동생이 아니라 이제 다 큰 성인이라는걸 납득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진전이 안된다는 말이다. )

뒷골목에서 자신이 답답하다는듯 로만이 했던 말이 정신을 때렸다.

'확실히 그 남자가 짜증낼만 해··.'

검 좀 쓰는 무력따위가 뭐라고?

제국의 5기사라는 명예가 내 마음대로 타인을 정의할 근거는 되지 않는것을.

남들이 대단하다 치켜세우니 우쭐해서 클로에를 자신이 지켜야 할 나약한 존재라고 인식하고 생각했다.

···내가 클로에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모든 일을 견뎌내고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었을까.

정작 중요한 일은 답을 내지 못하고 피하기 급급한 내가 아닌가.

사실 진짜 나약한 인간은 누구도 아닌 ㅡ.

-

"···기사님은 저희 언니와 잘 아는 관계라고···들었어요."

쏟아지는 기억과 상념들에 입을 닫고 검을 받고 있으니 클로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로만이 도대체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클로에는 궁금한게 있는 얼굴이었다.

에클레어는 묵직한 투구를 위아래로 움직여 긍정을 표했다.

"알다마다. 누구보다 잘 알고있지."

얼마전까지는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인물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만은 자신이 자신을 제일 잘 알것 같았다.

"하지만 그리 언급 하고 싶지는 않군."

그렇기에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과거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어째서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는 클로에를 보며 나는 다시한번 나를 돌아봤다.

나는.

에클레어 드리트나는 어떤 인간이지?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당장에 몇개라도 말할 수 있었다.

"···그깟 검에 재능 좀 있다고 혼자 숭고한 사명이라도 지고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

"혼자 달려나가느라 주위가 얼마나 고통받는지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기사님··?"

"언제나 주위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것도 모른 채···존재 자체만으로 주위를 망가뜨리 ㅡ"

"기사님-!!"

에클레어는 클로에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앞을 봤다.

"···왜그러지?"

"어째서 그런 심한 말을 하는건가요···."

늘상 힘없이 아래를 향하고 있던 클로에의 벽안이 자신을 꿰뚫을 기세로 보고있었다.

"언니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의사로 다시 들어올린 클로에의 검에는 은은한 푸른 불길이 감돌고 있었다.

*****

"생도는 '검으로 말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클로에는 이 교관이 자신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매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상대와 이렇게 합을 주고받다 보면 무기를 타고 감정이 넘어 올 때가 있다."

그저 얄팍한 서로의 이념과 정의를 대립시키고 이득을 얻기 위하여 무기를 휘두르는 행위에 상대의 감정까지 고려해야 할 필요를 느낀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지금 내 검은 어떻지? 과할 정도로 큰 동작과 필요이상으로 실린 힘은 절박해 보이나? 아니면 내가 화가난 것 같나?"

마치 이걸 알지 못하면 절대 보내주지 않을 기세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내가 들고있는 이 검은 단순한 금속이기에 당연하게 차갑다.

하지만 클로에에게 감정이라는 단어로 연상되는 이미지는 차갑지 않았다.

차가운 것으로 차갑지 않은것을 표현하고 이해하라는 말은 그녀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쿠당탕-!

"으윽···."

그러나 몇번이고 죽어라 바닥을 구르다보면···자신같은 둔감한 인간이라도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백금의 모험가인 교관의 검은 언제나 자신을 압도하고 이때까지 쌓아 온 모든걸 간단하게 날려버렸지만.

지금은 아카데미에서 실내 수업을 할 때와 달리 검에 실린 힘의 분배와 속도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몇번을 더 굴렀는지 입 안에서 철맛이 섞인 흙맛이 나고 손목이 아려올때였다.

캉-! 팅-!

가르침을 주는 교관의 검이 힘을 실어 밀어내는게 아니라.

검을 허공에 던지듯 하여 튕겨내는 동작을 고수하자 자신을 얕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

그리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순간 욱 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고 다시 검을 휘두르니 교관이 만족했다는듯 말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어."

-

"허억···허억···!"

팔뚝 아래로 강한 전류가 흘러 근육을 쥐어짜는 감각.

그런 자신의 상태는 관심없다는듯 교관은 수업을 이어갔다.

"결국 이건 손해 볼 경험은 아니란거다. 오러는 결국 마나가 가시화 된 것이고···마나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구현하고 발현하는 물질."

손에 완전히 힘이 풀려 들고 휘두르는 순간 검이 손을 떠날것 같았다.

"거기서 의지와 마나의 매개체는 손에 들린 무기가 된다. 이해했나?"

타들어가는 갈증에 클로에는 대답은 하지 못하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럼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하려는지 작게라도 짐작할 수 있고. 오러가 아니라도 자신의 의지를 검에 실어낼 수 있다면 이게 도움이 될까 안될까?"

철컥-!

딱히 답을 들을 생각은 없는지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교관은 검을 집에 넣었다.

그리고 품을 뒤적이더니 자신에게 유리병 하나를 던졌다.

"마셔라."

"···이걸 왜 주시나요?"

수분없는 목소리가 쩍쩍 갈라지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붉은색 액체가 든 화려한 유리병은 자신도 익히 알고있는 물건이었다.

"다음 만나야 할 그 기사님은 제국의 5기사 에클레어 드리트나와 아주 밀접한 사이라고 하지."

"···!"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게 배운 이상 창피는 당하지마라···생도인 이상 대단한걸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냥 최선만 다하도록."

포션은 안 마실거면 땅에 부어버리라며 자신을 쫓아내는 교관을 몇번이고 뒤돌아 본 클로에는 포션의 마개를 조심히 열었다.

평소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무거운 호의지만 당장 앞에 마주해야 할 일을 떠올리면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나중에 돈으로 드려야지···.'

어릴때부터 한푼두푼 모아놨던 자신의 비상금이라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

··

반으로 구부러진 강철봉을 들고 돌아온 리케의 다음 차례로 멀리 보이는 평지로 향했다.

작게 보이던 기사님에 가까워지자 거인과 같은 존재감이 느껴졌다.

"클로에··드리트나 입니다··!"

언니와 가까운 사이라 들었지만 드리트나라는 이름에 빤히 보기만 할 뿐 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검을 뽑은 기사님은 왼손에 들린 검을 내밀었다.

"···당장에 와도 좋다."

-

째앵-!!

클로에는 드리트나 검법을 완벽하게 읽히는 감각에 이 기사님이 언니와 정말로 관계가 있다는걸 확신했다.

보고 막는게 아니라 자신이 내지를 방향을 먼저 선점하고 경로를 차단한다.

언니와 합을 주고받아 봤다면 자신의 검 정도는 당연히 애들 장난 정도로 보이겠지.

'너무 위를 보면 안되는데···.'

세상에 대단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고만 있어도 목이 부러질 지경이었다.

"···기사님은 저희 언니와 잘 아는 관계라고···들었어요."

수업 중에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걸 알고있다.

그럼에도 갑자기 언니에 대한 질문을 꺼낸 것은.

이 기사님과 검을 나누다 보면 자꾸 머릿속에 언니가 아른거렸다.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않는 언니를 이해 할 기회가 온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깨어나는 과거에.

봄날의 햇살을 연상시키던 과거의 언니를 클로에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를 기억하기에 지금 보여주는 모습의 괴리감이 너무 커 마주하기 어려운 점도 분명있고··.

하여 클로에는 에클레어가 갑자기 변해버린 이유가 늘 궁금했다.

부모님은 언니가 철이 든 것이라 했지만 자신이 보기에 그건 절대 아니었다.

혹시.

평생 피비린내 나는 장소를 떠돌며 가문을 위해 희생한 언니는 지쳐버린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리 언급 하고 싶지는 않군."

잘 알고있다는 말에 기대하고 있었지만 상대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어째서요?"

"···그깟 검에 ㅡ"

언급하기 싫다더니 장담하는 어투로 내뱉는 폭언.

시작과 동시에 끝도없이 늘어지는 험담.

검을 잡은 손이 찢어질듯 힘이 들어갔다.

이런 사람이 언니와 가까운 사이라니 분명 누군가의 착각이었다.

"어째서 그런 심한 말을 하는건가요···."

언니와 정말 밀접한 관계라면 매일 고생하는 언니를 보고 저런 말을 할리가 없잖아.

수업이 끝난 지금에서야 검에 감정을 실어야 할 이유를 알것같다.

사이가 비록 예전같지 않아도.

자신이 어릴때부터 보고 자란 언니는 누군가에게 험담을 들을만한 인물이 절대 아니었다.

"언니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지금 내 손에 들린 검으로 확신의 감정을 증명하고 싶었다.

화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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