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8 - 뒷골목 회담 -2-
에클레어가 오러를 개화한 시기는 터무니 없이 이른 12살 때였다.
재능이 두각을 보인건 오러 하나만이 아니다.
검을 배우고 얼마지나지 않아 날붙이가 휘둘리는 이치를 깨닫고 가문의 기사들과 대등하게 합을 나눌 정도니 드리트나 가문에 유례없는 천재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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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은 제국을 흔들어도 세상의 넓이는 영지 하나가 전부였던 어린 그녀에게 가족이 가지는 의미는 모든 것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몸에 타인과는 다른 힘이 있다는걸 알고 천사같은 동생과 가문을 건사하기 위해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며 다짐했다.
내가 중심에서 모두를 책임지고 움직이게 하는 커다란 톱니바퀴가 되겠노라고.
누군가 들었다면 재능하나 믿고 건방지다고 할 생각이다.
잔혹한 현실을 모르는 어린 나이에나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치기어린 결심···하지만 그녀의 독기와 능력은 남달랐다.
베고.
찌르고.
끊고.
꿰뚫고.
에클레어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한참 전 부터 가문의 기사들과 실전에 뛰어들었다.
그때 베어 낸 도적들과 산적들을 쌓으면 시체로 작은 언덕이 만들어질 것이다.
처음에는 걱정하던 부모님도 이제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며 기쁜 얼굴을 하셨다.
'그래 이대로만···이대로만 가면 된다.'
노력만이 전부.
한순간도 안주하지 않고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검이 제일 중요해도 학문도 놓아서는 안됐다.
잠 잘 시간을 줄이고 모든 생활을 미래를 향해 불태웠다.
그러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거라 의심하나 없이 믿었다.
··
··
한 날은 정말 고강한 상대를 만났지만 결국 이겨냈기에.
이 들뜨는 업적과 성취감을 부모님에게 보고하고 싶어 갑주를 벗지도 않고 정원으로 향했다.
-손잡이를 파지하는 법은 계속 신경쓰셔야 합니다.
정원에 붙어있는 야외 훈련장.
부모님은 안계셨지만 기사들 앞에서 검을 배우고 있는 클로에가 보였다.
'열심히 하고 있구나···.'
앙 다문 입과 비장함이 느껴지는 표정에서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다.
타고난 천성이 착하고 부드러운 아이라 보기만해도 피로가 녹아서 사라진다.
최근 밖으로 계속 나돌았으니 클로에와 놀아주거나 이야기를 나눈 것도 오래 되었다는걸 깨달았다.
'보고는 간단하게만 하고 오자!'
부모님과 짧게 이야기를 끝내고 몸을 단정히 하고 돌아왔을 때도 클로에는 훈련 중이었기에 그녀는 방해가 되지 않게 무성한 조경수 사이에 숨어서 클로에가 훈련받는걸 지켜봤다.
"···?"
훈련을 보고 있으면서 에클레어는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저 기사가 저렇게 화가 많았나?'
'저렇게 잘하는데 왜 칭찬해주지 않는거지?'
클로에의 실력과 재능은 드리트나 가문에서도 뛰어난 편이다.
넘치면 넘쳤지 부족함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가르침에 있어 자신이 관여할 수 없기에 차오르는 화를 누르며 지켜봤다.
교육을 담당하는 기사가 한숨을 쉬며 클로에에게 말했다.
-에클레어님은 그 나이에 이미···.
-클로에님도 에클레어님 처럼···.
-가주님이 거시는 기대가···.
기사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클로에는 그 말을 다 듣고도 입꼬리를 떨며 부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
그저 무력하게 끝나기를 기다렸다.
-흑··언니이···.
수업이 끝나고 혼자 남아 퉁퉁 부은 눈가를 닦으며 방으로 돌아가는 동생을 보고 에클레어는 석상처럼 한참을 굳어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동생에게 몇날 며칠 저런 날이 이어졌을까.
이때까지 전장에서 큰 상처를 입은 적은 없었지만, 몸이 난도질 당한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알게 된 날.
그날부터 클로에와 대화를 나누기가 무서웠다.
자신을 질책하고 원망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부모님에게 쪼르르 달려가 업적을 과시하고 자랑하듯 보고할때 클로에는 무슨 일을 당했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리를 계속 회피하기 시작하니 분위기를 읽은 클로에도 점차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미래만을 보고 있는건 자신뿐이었다.
주위에는 달리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현재를 즐겁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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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를 조기 졸업했을 때도, 제국의 최고 기사인 아센 프리밀러의 종자가 되었을 때도 기쁨 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클로에를 생각하면 그 사실을 차라리 숨기고 싶었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서 검을 놓으면···?'
에클레어는 결정해야 했다.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멈추는게 아니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일신의 무력을 뜻하면서도 권력을 말하고 한편으로는 재력을 지칭하기도 했다.
방향은 정했다.
귀를 닫고 도착할 때까지 앞만 보라.
돌아보지 마라···절대로 돌아보지 마라.
에클레어는 멈춘다는 선택지가 아닌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빨리 달리는 선택지를 택했다.
가신들이 비교대상으로 언급조차 함부로 할 수 없도록.
평생 친구라 할 인물도 없었고 업무가 아니면 어딘가 멀리 가본적도 없다.
그저 앞에 있는 길만 바라보고 걷는다.
정말로 내 무지함을 속죄한다면 죄 많은 시체로 산을 쌓아라.
한끗이라도 가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도록 검으로 피와 살덩이를 끝도 없이 가르는 시간들.
살의가 소용돌이 치는 전선과 마물이 끓어오르는 불구덩이에 내 몸을 던졌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몇시인지도 모른다.
끼니를 언제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으며 신체에 새겨진 경험을 토대로 생각도 하지않고 몸을 움직였다.
'····'
클로에가 부럽다고 말했던 은발이 피로 검붉게 변했다.
몬스터의 괴성 그리고 아군의 비명소리가 구별이 되지 않고 감각이 불면 사라질 연기처럼 흐릿해진 날.
에클레어는 진정한 오러를 깨우치며 제국의 5기사로 임명 되었고.
··
··
클로에가 울며 방으로 돌아가는걸 본 날부터 외면하고 있던 뒤를 돌아봤다.
*****
"한때는 클로에를 교육했던 기사들이 잘못이라는 생각도 들었었지···하지만 그것 조차 부모님이 용인하고 있었던 사항이라는걸, 클로에를 위한 일이라고 말하는 부모님을 보았을때 나는···!!"
빠드득-!
에클레어의 손에 잡힌 검집이 비명을 질렀다.
이야기를 이어갈수록 에클레어는 해탈한듯 묵은 감정을 토해냈다.
"하···커다란 톱니바퀴라···말은 좋았지. 내가 중심에 들어가 많은 것들을 움직였더니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
"····"
"이가 맞물리지 않는데도 억지로 돌렸더니 주위가 모두 망가져있더군."
에클레어는 양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촉촉해진 붉은 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하늘로 올리고 생각을 전했다.
"어린 시절에 좋은 일 했으면 칭찬 좀 받고 싶을 수 있고. 가문 좀 살려보겠다고 힘낸건데 뭐 그리 잘못했다고 자진해서 다 뒤집어써?"
"···내가 아니라 클로에에게 이 힘이 있었다면 가문은 이리 변하지 않고 번영했을거다."
저 한점 흐트러짐 없는 동생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어디서 오는건지 모르겠다.
"결론은···원래 가지고 있던 신념으로는 정말 원하는걸 이룰 수 없다고 체감했다?"
"···이룰 수 없을 것 같다고 체감했다고 하지."
그녀도 나름 노력은 했을 것이다.
클로에를 자신의 저택에서 지내게 한 것도 자신이 해볼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겠지.
내가 볼때는 그냥 어이가 없지만 에클레어는 머리가 쪼개지도록 고민하다가 내놓은 결과일 것이다.
자매가 한쪽이라도 사교성을 가지고 들이댔다면 이미 해결되고 남았을 일이 아닐까.
"그래서···결국 뭐가 이루고 싶은데?"
이게 제일 중요한 본문이다.
그녀가 가끔 만나는 업무 파트너나 다름없는 내게 이야기를 꺼내기나 할까?
사실 뜬금없이 만난 그녀가 이만큼 속 이야기를 해준 것도 믿기 힘들었다.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안면만 터있는 남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
"말 안해도 상관은 없-"
"돌아가고 싶다."
내 말허리를 덥썩 물어버리며 그녀는 손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과거로? 아니면 과거의 관계?"
"둘 다 겠지···부와 명예가 화목한 가정을 만들거라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았지만. 이미 돌아가기에는 늦었으니···그래서 돌아가고 싶다. 나는···클로에만이 아닌 부모님도 소중하다."
"····"
"내가···!! 가문에 권력과 재물이라는 독을 쏟아 넣으면서 모두가 병든거다···부모님은 변하지 않고 누구보다 자상할거라 생각했지만 그저 평범한 귀족이셨고, 지금도 가문의 번영을 이어가기 위해 방법을 구상하고 노력하고 있는걸 나는··나는··나쁘게 말할 수 없···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말이면서 그녀는 걱정이 과할 정도로 많았다.
팔은 두쪽밖에 없으면서 모든걸 들고있으려 한다.
"그런건 한번에 다 보는게 아니고 하나하나 해보는거야. 일단 동생이라도 제대로 챙겨."
알고도 던진 내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와서···내가 관심을 가지고 편애를 하기 시작하면 나를 이용해 보려는 귀족들이 클로에에게 향할지도 모른다···."
걱정하는 부분은 이해한다.
분명 그런 인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니 자신의 의견도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는 클로에가 불안하겠지.
그녀는 늘 최악을 상정하고 있으며 클로에와의 관계가 더 바닥으로 가지않을까 두려워하기에 나서지 못한다.
···그래도 이런걸 계속 듣고있으면.
"···짜증나네."
"짜,짜증?!"
잘 들어주던 내가 한숨을 푹 내쉬니 에클레어가 당황한듯 처음으로 높은 목소리를 냈다.
"걔도 아카데미 기사학부 생도인데 귀족들이 접근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마냥 홀라당 넘어갈것 같아? 언제까지 그렇게 싸고 돌지 모르겠는데, 그 어린 시절 동생이 아니라 이제 다 큰 성인이라는걸 납득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진전이 안된다는 말이다."
"····"
겉이 무르다고 속까지 무를거라 속단해서는 안된다.
"네가 말하는 노력···구제불능 쓰레기들을 모아서 반으로 가르고 명성만 키우는게 노력이 아니라고. 정 안되면 방향성 부터 바꿔야지. 몬스터를 베는것 보다 동생한테 말 한번 붙이는걸 더 힘들어하면서 칼만 휘두르는 그게 진짜 노력이라 할 수 있냐?"
남이 보면 답답해 죽을것 같은 자매에게도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사정은 있다.
그녀는 정말 자신이 해온 일이 순수하게 속죄라 생각했을 것이다.
한번 결정하고 걷기 시작하면 다른게 존재하는지 둘러 볼 여유조차 가지지 못한다.
그런식으로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에클레어는 방향성을 틀어주기만 해도 변화가 분명하게 생긴다.
"···답답해 죽겠네. 딱 말해. 도와줘?"
게임에서 조차 열린 결말로 끝난 드리트나 스토리가 생각나면서 말이 길어졌다.
에클레어는 많이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져서 입을 열지않고 나를 멀뚱멀뚱 보고있었다.
게임에서는 볼 수 없는 자매의 끝이 궁금해도 무상으로 해줄 일은 아니었다.
내가 황실의 일을 하며 봐온 그녀는 절대 빚을 잊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날에 쉬는 날 한번 잡아."
혹여 내가 리케를 지켜달라하면 죽는 한이 있어도 지켜줄 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