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46화 (46/250)

Chapter 46 - 붉은색은 바쁘다. (삽화 有)

아카데미의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해방감에 기뻐야 할 순간.

"흥이다··!"

세리아는 입이 오리마냥 튀어나온 채로 수도를 종횡무진 걸었다.

리케와 저녁을 먹은게 벌써 한참 전 일이었다.

오늘 저녁을 권유해볼까 했는데 리케는 이미 사라진 뒤.

최근 리케도 로버트를 은근히 가드 해내는 자신의 노고를 의식은 하고 있는지 예전과 달리 점심때 자신과 꼭 식사를 하고 자신의 몫까지 도시락을 준비해서 올 때도 있다.

그게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당장 내일도 도시락이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니지!'

리케가 새벽에 일어나 준비 할 도시락을 생각하면 섭섭한 마음이 달아나 버린다.

'결국 말 안해주겠지···.'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는건 확실했다.

정황상 증거가 이리 퍼져있는데 모르는게 이상하지.

예전에 비해 분명 친해지고 가까워진건 맞는데 속 이야기를 하지 않는 리케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말 못할 사정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섭섭한건 섭섭한거야!'

무튼간 그런 이유로 세리아는 오늘에서야 참고있던 디저트를 전부 해금하기로 결정.

이왕 먹는거 비싸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가게를 향해 콧김을 뿜으며 발을 움직였다.

그 가게에 혼자 오는 손님은 항상 자신 뿐이었지만 한번 해보니 벌써 익숙해졌다.

당장 눈에 가게의 간판이 보이니 입에서 단맛이 감돈다.

"으엥?"

거침없던 세리아의 발이 멈췄다.

가게 앞에 주인 잃은 대형견 마냥 빙빙 돌고있는 여성이 보였기 때문.

특히 아카데미 정복을 입고있어 세리아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여성인 자신도 촉감이 궁금한 흉부의 지방덩어리와 허리까지 오는 회색머리에 큰 키.

실전 수업을 할때 몇번이고 봤던 기사학부 생도였다.

'뭐하는 거지?'

세리아는 그냥 무시하고 가게로 들어갈까 했지만.

옆에서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울적하여 다른 의미로 예전의 리케를 연상하게 했다.

"···안들어가요?"

"힉?!"

가게 앞을 서성이길래 살짝 말을 붙였는데 칼이라도 맞은것 마냥 발작을 하며 놀란다.

세리아도 덩달아 놀랄 정도였다.

"놀라게 하려고 한건 아닌데···미안해요."

"아,아뇨! 제가 죄송해요···."

시선을 땅에 고정시키는 그녀를 보고 세리아는 빠르게 그녀의 성향을 인지하고 이해했다.

이때까지 아카데미 수업에서 본 정보들이 규합된 것에 가깝지만.

"혼자 온거면 같이 먹을래요?"

"네···?"

세리아가 고민하는 클로에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그녀는 주위를 보며 세리아를 슬금슬금 따라가기 시작했다.

"제 지론인데 맛있는건 나눠먹어야 더 맛있거든요."

오늘은 케이크를 더 맛있게 먹고싶으니 어울려달라며 세리아는 클로에를 이끌었다.

*****

마음이 갑갑하고 정신에 피로감이 충만해지면 먹고싶어 지는게 있다.

최근에는 언니가 챙겨주는 저염분 건강식만 먹고 있었으니 입이 아릴 정도로 달달한 디저트가 자꾸 생각났다.

그러던 와중 혼담 이야기를 기점으로 언제 팔려나갈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가 참기 힘들어 클로에는 혼자서 외출을 강행했다.

호기롭게 나온건 좋았다. 딱 나온것 까지만!

아카데미 입학을 하고 기사학부의 여생도들에게 친목회라는 명목으로 한번 끌려왔던 유명한 디저트 가게의 앞.

그 맛을 잊지못해 홀린듯 들어가려고 가게의 문고리를 잡는 순간에 정신이 들었다.

'어,어떻게 하지?'

안에는 테이블에 지인들과 옹기종기 모여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처럼 혼자 온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먹고싶은데···.'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자니 눈 앞에 디저트가 아른거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게 앞만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늘에서 붉은색 구원의 끈이 내려왔다.

"···안들어가요?"

-

"여기는 몽블랑이 진짜 맛있어요."

"마,맞아요!"

클로에는 세리아의 말에 공감하며 트레이에 놓인 조각케이크를 조심히 옮겼다.

세리아는 작은 체구가 무색하게 엄청난 양의 당분을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신기하다···.'

먹는걸 말하는게 아니다.

사실 그것도 포함해서···초면에 이렇게 대화를 나누기 편한 사람은 오랜만, 아니 처음이었다.

실전 수업을 할때 세리아를 본적 있지만 전투적인 분위기를 보이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지금 모습은 뒷산에서 내려온 작은 소동물을 보는것 같다.

이야기 하는 것도 디저트에 관한 것 뿐이라 클로에도 크게 생각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더 먹을 수 있겠어요?"

"···네!"

다시 한번 3단으로 쌓인 트레이가 들어오고 그것까지 비우고 나서야 그녀들은 만족한 얼굴이 되었다.

"후아! 저녁은 못먹겠네···오늘 언니 있었으면 혼났겠다."

세리아의 혼잣말에 클로에는 자연스럽게 에클레어를 연상했다.

제대로 된 끼니가 아니라 디저트를 이렇게 먹은걸 알면 뭐라할까?

화를 낼지 한숨을 쉴지 그냥 무심하게 그러냐고 할지 모르겠다.

"···"

"다음에도 혹시 올거면 같이 와요! 리케는 이만큼 못먹어서···매번 구경만 하고 저 혼자 먹고있거든요."

확실히 둘은 아카데미에서 항상 붙어있었지.

실전 수업에서 리케가 봉을 무자비하게 쓰는 모습이 클로에의 머리에 깊숙히 박혀있다.

클로에는 거절하지 못하고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

아카데미에서 실전 수업이 있는 날은 아니었다.

시간이 된다면 아카데미에 한번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기에 학장실에 앉아 도란과 대면하고 있다.

"어떤가?"

도란이 보여주는 종이뭉치를 쭉쭉 넘기며 나는 피식 웃었다.

"익명인데 예상보다 반응이 약하군요."

"하하하!!"

도란은 내 반응에 시원하게 웃었다.

임시로 만들어진 수업 '실전 1'에 대한 중간 감상과 평가를 기사학부와 검술학부에게 받았다고 한다.

나는 리케에게 들어서 이미 알고있었다.

이때다 싶어서 너무 폭력적인 수업이니, 왜 1학년만 하는 것인지 등 불평불만을 꽉꽉 채워넣은 평가가 대다수지만 예상 외로 호의적인 평가도 있었다.

리케가 쓴 글은 낯부끄러운 찬양문에 가까워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선술집에서 수업의 초안을 만들때부터 당연하게 불만이 많을거라 예상했다네."

"뭐- 그렇지 않겠습니까."

귀족의 자제들이 생각하는 아카데미라는 기관에 대한 현재 인식은 어떤가.

한번뿐인 청춘을 구가하고 창창한 미래를 위해 인맥을 형성해야 할 아카데미 생활이다.

도란의 눈 밖에 나버린 2학년과 3학년은 큰 변화없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실전 수업 개설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 2학년에게는 실전 수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으니, 기연이나 마찬가지인 기회라도 정작 당하는 1학년 입장에서는 가혹하다 볼 수 있겠지.

주에 한번 귀족도 아닌 모험가가 와서 피터지게 두들겨 패버리니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들이 이리 반발 할 수록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하네. 이게 원래 아카데미의 본질이자 존재 의의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바로 잡을 기회가 있어 다행이라며 도란은 중얼거렸다.

"반응을 보니 더 강하게 하거나 이대로만 가면 되겠군요."

"음음- 그리고 정규수업이 아니니 따로 시험을 치를 필요는 없네. 그쪽은 출결과 연관지어 아카데미에서 처리하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로랜드가 제공한 의견이네만."

도란이 건내는 서류를 받아 나는 간략하게 눈으로 훑었다.

"야외에서 수업을 하기에는···괜찮겠습니까?"

아직 저번 일에 대한 걱정과 트라우마가 존재할거라 생각했는데 도란의 얼굴은 태평해보였다.

"마법사가 제일 두려워 하는건 준비가 되지 않은 순간이지. 준비만 제대로 한다면 걱정 할 필요가 없다는게 내 신념이네. 이대로 그때가 무섭다고 웅크리고 있는 것도 손가락질 당하기 쉬운 일이라 한번 돌파할 필요가 있어."

도란은 남아있는 한 팔로 수염을 쓸어내렸다.

"교단에도 사전에 협조를 요청하면 외면하는 일은 없을테고···로랜드의 말에 의하면 기사학부를 졸업하고 기사의 종자 생활을 시작하면 숙영에 대한 지식이 없어 고생하는 졸업생들이 많다 들었네."

나는 기사들의 체계를 모르지만 모험가들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숙영에 많은 고생을 한다.

"흐음···."

"물론 자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지. 아카데미는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이 절대 아니니."

"한번 구상을 해보겠습니다. 저도 좋은 의견이라 생각합니다."

리케는 나와 숙영을 해본적이 있으니 간단한 사항 정도는 알 것이고 나름 재미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족 가문에서 자랐음에도 밖에서 자는 것에 그리 큰 거부감도 없어보였고.

"고맙네···백금의 시간을 이리 잡아먹고 있어 내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걸 알아주게."

"그리 괘념치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한테도 좋은 경험이 되고 있으니."

사실 리케를 생각하면 아카데미에서 무상으로 죽을때 까지 일해도 모자라다.

"허허ㅡ 자네는 내가 생각하는 모험가의 이미지를 항상 변하게 하는구만."

"···그리 띄워 주시면 저도 좀 찔립니다."

"빈말이 아닐세. 꼴에 귀족인 로랜드 보다 훨씬 품위와 상식이 있지."

"···."

그 말에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

"그럼 다음 수업 전에 잠시 들르겠습니다."

"본업이 바쁠텐데 이리 시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네. 조심히 가게나."

드르륵-

도란과 짧은 면담을 끝내고 아카데미를 나왔다.

리케야 지금 이론수업을 듣느라 바쁠 시간이니 나는 다른 업무를 보면 된다.

-

정보 길드에서 혹시 넘어온 연락이 있는지 확인을 위해 빈민가 방향으로 향했다.

"쯧-"

허탕이었다.

이대로 집에 가서 아카데미가 끝날때 까지 몸이나 움직일까.

빈민가에서 집이 있는 수도 외곽으로 빠지는 길은 인기척이 적다.

건물들에 가려진 뒷길은 대낮임에도 해가 들어오지 못해 어둑어둑했다.

··

··

'····요즘 기가 허한가?'

잘못 봤겠지.

나는 못본척 하고 걸음을 옮기려 했다.

"못보고 지나간 것도 아니고···업무가 아니라해도 인사하나 없다니 너무 인색한거 아닌가?"

정말로 이해 못하겠다는 순수한 의문이 서린 얼굴.

내 지식으로는 공사다망한 에클레어가 왜 후미진 골목에 있는지 짐작가는 사항이 없어 심히 당황스러웠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