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3 - 돌아온 남자와 돌아가고 싶은 여자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리케는 외로움을 잊기위해 고군분투 하고있다.
저녁을 세리아와 간단히 해결하면 돌아와 마당에서 혈마법의 실험을 하고 바니타스를 휘두르거나 집 안에서 토납법을 시행한다.
휘리리릭-!
텁.
던졌던 대낫이 빙글빙글 돌아와 자연스럽게 리케의 손에 감겨 들어온다.
붕! 쉬익-
바람을 가르는 이 단단한 무기는 살아있는 생물과 유사했다.
자신의 정보를 나에게 알려주고 어떻게 다뤄야할지 기본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흐아-!"
온몸이 땀에 푹 젖고 마나까지 동이 나버리니 밤바람에 몸이 살짝 떨린다.
집에 들어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빠르게 끝낸 리케는 로만의 옷가지를 부둥켜안고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오빠아··."
자신이 매일 자던 위치가 아닌 로만의 자리에서 로만의 배게를 사용하면 편하게 잠들 수 있다는걸 이틀 전에 깨달았다.
-
그녀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으으음-!"
아직 아카데미를 가기에는 아주 이른 새벽.
리케는 어둠이 아직 남아있는 시간에 일어나 세안을 마치고 외출복으로 환복 했다.
보여주기 용으로 검을 허리에 매고 집을 나와 광장 옆의 상권으로 향한다.
전 후작가의 영애라 해도 일반 제국민들 중에 자신의 얼굴을 아는 자가 있기나 할까?
아니 애초에 귀족의 얼굴에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도 없는게 대부분이다.
귀족들 사이에도 얼굴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리케는 여기서 한없이 자유로웠다.
자신의 얼굴을 알 만한 인물은 자기 발로 식료품점이나 빵집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이제 자신은 귀족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며 리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절그럭-
걸음과 동시에 검이 움직이면 시선이 잠시 모였다가 빠르게 흩어진다.
처음에 후드를 쓰고 나왔을때 살짝 비치는 얼굴을 보고 추파를 던지거나 귀찮게 하는 남자들이 있었지만.
무시로 일관하거나 칼을 뽑아서 들이밀어주면 알아서 물러났다.
얼굴을 가리는게 역효과라는걸 알고 이제는 아예 편한 옷을 입고 얼굴을 보이고 다니게 되었다.
경비들도 자주 돌아다니는 위치라 도를 넘어 귀찮게 하는 인간은 아직 없었다.
'냄새 좋다···.'
리케가 첫번째로 가는 가게는 정해져있다.
매번 들리는 빵집에 도착하니 푸근한 인상의 부부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쟁반을 닦고있는 여인과 눈이 마주치자 리케가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여인도 리케가 익숙한듯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어서오세요! 아직 준비 중이라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네."
"우유는 지금 꺼내셔도 된답니다. 계산은 한번에 하면 되니까요."
"···감사합니다."
리케는 우유를 마시며 입구에 서서 갓 만든 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인 부부도 이제 익숙해졌는지 리케를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할 일에 몰두하고 있다.
'혹시 오늘 오빠가 온다면 뭐가 먹고싶을까···.'
모락모락 냄새를 풍기는 빵들을 보며 리케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
그루버가 이끌고 온 남자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조각난 시체들을 한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반이 넘게 날아간 릴조의 얼굴을 들어 이리저리 확인한 그는 이제 확신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릴조가 확실하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별말씀을···함정은 대강 정리하긴 했지만 혹시 남아있는게 있을지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조심하도록 하지요."
"그럼 전 돌아가보겠습니다."
릴조가 이끄는 용병단의 정리가 끝나고 조금 있다 도착한 그루버에게 모든걸 인계하고 난 미련없이 도바트로 돌아갔다.
발이 푹푹 빠지는 축축한 늪지는 불쾌하기만 했다.
-
'일단은···.'
수도로 바로 돌아가기에는 늪고래의 아가리에 들어갔다 온 이 몸뚱이에서 나는 악취가 너무 심했다.
새로운 신발에 속옷. 거기에 깔끔한 옷을 위아래로 하나 사서 여관을 잡아 몸을 씻었다.
평소라면 그냥 집으로 들어가 잠이나 퍼질러 자다가 길드 선술집에 한잔하러 가겠지만 이제 그리 망나니처럼 지내면 안될 일이다.
쏴아아아-
뜨거운 물을 맞으며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리케를 위해 도바트에서 사야 할 선물이 뭐가 있을까.
예술의 도시라 하기에는 전문적으로 장신구를 취급하지 않아 아쉬웠다.
해봐야 그림이나 조각상인데···.
'여행객들이 몰리는게 있겠지.'
일단 명물이라 하는 초콜릿으로 만든 조각상을 샀다.
여행지 특유의 바가지가 붙어 아무리 모양이 이쁜 초콜릿이라 해도 가격이 비싸기는 했다.
그런들 어떠하리 손이 가는대로 이것저것 샀다.
'이번에 돌아가면 모험가 일은 좀 쉬고···휴일에는 리케랑 여행도 하면서 두번째 형상을 여는데 신경쓸까.'
예전이라면 며칠 몸 관리를 하다 강박적으로 다음 임무를 떠났겠지만.
굳이?
의뢰를 하지 않으면 몸이 굳을거라는 걱정도 형상을 위한 실전으로 매꾸면 될거라는 가벼운 생각이 든다.
긴장감으로 팽팽했던 정신이 조금은 느슨해진 기분이었다.
-거실에 두면 행운을 모은다는 여신님의···!
-딱 은화 하나로! 도바트의 마법사가 앞으로의 미래를 보여드립니다!
-미래에 거장이 될 조각가가 만든 조각이 지금 오시면···!
··
··
'히든 피스 중에 먼저 가야할건···.'
제대로 다룰 수 없는 히든 피스는 빛 좋은 개살구 그 자체니 내 스타일과 성향에 맞는 물건만 있으면 된다.
머리로 몇가지 정리를 하며 시끌벅적한 도바트의 거리를 걷는다.
-
벌컥-!
수도로 돌아온 로만은 날아오를듯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카데미는 한창 수업을 하고 있겠지만 정말 혹시나 리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진짜 난 미친놈인가?'
리케한테 아카데미 열심히 다니라 했으면서 땡땡이를 기대하다니.
집 안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내가 없는 사이 리케가 관리를 열심히 했는지 가구의 배치도 살짝 변해있고 처음 보는 물건들도 있었다.
세탁이 끝난건지 잘 접어둔 메이드복도 눈에 들어온다···.
'요리책?'
진심으로 시작했는지 옆에 두꺼운 노트와 필기구까지 놓여있다.
리케가 만드는 요리는 정말 맛있다.
요리는 어머니 쪽의 재능일지도 모르고.
리케의 성격상 기본적인 틀을 벗어나 실험적인 요리를 하지 않기에 맛은 보장 된 단계였다.
나는 100점을 주는데도 정작 본인은 공부까지 할만큼 자신의 요리를 용납하지 못하는듯 했다.
'귀엽네 귀여워~'
나는 집 내부에 크고작게 변한 것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리케가 남긴 흔적을 감상했다.
"음?"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했더니 식탁에 토마토가 올라간 포카치아가 놓여있었다.
거기에 동글동글한 글자가 적힌 메모까지.
[ 오빠꺼! ]
내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아카데미를 갈때마다 매일 준비해둔건가?
흐뭇함에 입꼬리가 찢어질것 같다.
나는 자리에 앉아 포카치아를 뜯어먹으며 다짐했다.
"이건 좀 못참겠는데···."
오늘 밤은 리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
휴일도 누워서 쉬는게 아니라 필요한 곳에 사용해야한다.
그게 그녀의 생각이다.
오랜만에 비는 시간이 생겼기에 부모님에게 안부를 전하러 저택으로 돌아온 에클레어 드리트나.
그녀는 오자마자 들리는 이야기에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눈치를 보고있었다.
"안됩니다."
"그래도···이게 클로에를 위한 길이라고 이 어미는 생각한단다."
"본인에게 물어봤습니까?"
"그 아이야···."
자기주장이 없으니 말하면 어차피 따를거라는 뒷말을 생략하는 어머니를 보며 에클레어는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꼈다.
학업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동생에게 갑자기 혼담이라니.
"최소한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신부수업이 싫으면 기사가 되라한건 아버님과 어머님 아닙니까?"
"···혼담은 그 나이가 되면 늦는단다. 지금 클로에가 진짜 기사가 되고 싶은거라 생각하니? 한때의 반항심으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건 어리석은 일이란다."
그건 에클레어 본인도 모르는 일이다.
동생은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얼굴이기도 했지만 혼자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있다는걸 안다.
하지만 그 노력은 기사가 되고싶은게 맞나?
내가 그렇다고 클로에를 대변 할 입장인가?
"···."
확실하게 장담하지 못하는 에클레어의 모습에 드리트나 가문의 안주인은 안심하고 말을 이었다.
"클로에가 진정 기사가 되고싶다면 아카데미에 가지 않고 언니의 종자가 되거나 직접 검을 배우는걸 원했겠지."
"···아카데미에도 훌륭한 강사진이 있습니다."
"그래봐야 수준은···."
드륵-!
에클레어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직접 클로에와 해보겠습니다. 절대···절대로 강요하지 마십시오···드리트나가 언제부터 이리 권력에 목말라 했습니까?"
쾅-!
감정이 실린 손동작에 문이 거칠게 닫혔다.
에클레어는 예의가 없다는걸 알지만 어머니의 말을 끊으며 대화를 급하게 마쳤다.
조금만 더 이야기하면 폭발할것 같았다.
"하···."
방을 나온 그녀는 눈을 감고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예전에는 집안 분위기가 이러지 않았는데.
분명 가문은 부유해졌는데 왜 갈수록 팍팍해지는 착각이들까.
애초에 이게 착각이긴 한가.
복도에 걸려있는 화려한 미술품들을 보고 있으니 거꾸로 허무함이 가슴을 채우는 기분이었다.
'저택에 언제부터 사치품이 이렇게 많았지···.'
충직함 하나로 인정받던 드리트나 가문을 병들게 하고 무너뜨리고 있는건 오히려 자신이 아닐까.
에클레어는 검을 휘두르는 방향성 자체를 잘못 정한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검술학부에 들어가 길드의 교관이나 경비대에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황실의 일을 처리하느라 마음 놓고 쉬어 본 날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5기사 중 에클레어를 제외한 나머지.
그들은 모두 가문의 가주를 겸하고 있어 제국을 대표하는 기사라는 단어 조차 명예직에 가까워 얼굴을 보기 힘들다.
이런 때에 자진해서 황실의 일을 처리한다면 가문의 이름을 드높일 기회인건 확실했다.
제국의 5기사가 된 이후로 에클레어는 쉬지 않고 일했다.
충성심에 상응하는 보답은 분명 존재했기에 드리트나 가문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맥과 힘이 생겼다.
그것에 더불어 에클레어가 기대했던 결과는 이것이었나?
모르겠다.
'조금···.'
피곤했다.
갑옷을 입지도 않았는데 목 부근이 답답한게 숨이 막힌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자란 저택에 있는게 불편해졌다.
차라리 나가서 생각 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을 하고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