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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42화 (42/250)

Chapter 42 - 한쪽만 구원받는 이야기는 없다. (삽화 有)

늪고래가 아무리 영물이라 불려도 제국에서 이동경로까지 조사하면서 막을 필요가 있나?

라고 묻는다면 무조건 있다.

지나가다 사람을 보고 다짜고짜 공격을 하는 포악한 성격은 아니지만 이 덩치의 진정 무서운 점은 자신이 이동한 경로를 늪지대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늪고래를 죽이면 천천히 사라지는 디버프 효과지만 농지나 도시를 지나가기라도 하면 아주 대참사가 날 것이다.

황실에서 이게 제국민들을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어 나에게 의뢰를 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시민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허어···씹."

나는 늪고래의 해부도를 보며 욕짓거리를 뱉었다.

상처를 최대한 주지 않고 뇌만 꿰뚫어 처리해달라 하여 최대한 노력하겠다 했는데.

이 미친 몬스터는 뇌의 위치가 왜이리 아래에 있는건지.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서는, 말 그대로 진짜 몬스터다.

'아가리로 들어가서···찔러야 하나?'

다른 백금들이면 자존심상 절대 하지 않을 일이다.

그 이하도 마찬가지.

하지만 나는 욕을 뱉으면서도 이미 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황실이 주로 의뢰를 맡기는 이유도 내가 재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부분이 크다했었지···.'

그것도 그냥 내 기분 좋으라고 한 소리겠지만 이제 집에서 기다리는 여자도 있는데 좀 재야하지 않나 싶다.

···일단 이번까지는 하고.

*****

-부우우우-!!

이제 천둥처럼 울리는 늪고래의 소리도 익숙해진다.

"단장···이거 이대로 가면 그냥 답이 없겠는데요?"

거리를 두고 저 멀리있는 늪고래의 꼬리만 보며 뒤쫓고 있는 그들은 이제 일확천금의 꿈 보다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달려들었던 한 녀석이 검을 휘둘렀지만 상처 하나 못남겼다.

거꾸로 거대한 몸짓에 스쳐 한쪽 팔이 완전히 부러지는 바람에 모두 멀리서 보고만 있다.

"씁··저거 하나면 몇년은 펑펑쓰고 놀고 먹는데. 약점 같은거 없냐? 마법사들은 그런것도 몰라?"

릴조의 말에 마법사의 표정이 일그러질뻔 했다가 돌아왔다.

머리는 비었어도 릴조의 성질은 더럽고 잔혹하기로 유명하며 그에 걸맞는 실력도 있다.

"영물이니 저희 수준에서 해결하려면···밖으로 장기라도 꺼내주지 않는 이상 무리죠."

"···씨발. 이대로 물러나기는 너무 아까운데."

최근에 화끈한 벌이가 없었기에 이 기회를 그냥 무시하라는건 릴조에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숲을 떠돌고 있는 영물을 먼저 찾았다?

불법이고 자시고 이건 지나가다 주인 없는 보석 더미를 발견한 것과 같다.

뒷골목에서 영물의 살점이라 하면 천금을 들고와도 없어서 못 사는 물건이다.

릴조가 단단한 이를 빠득빠득 갈고있으니 가슴에 활을 걸고있는 남자가 뛰어왔다.

나무에서 계속 감시를 해야 할 녀석이 허겁지겁 내려오니 늪고래를 따라가던 릴조의 걸음을 멈췄다.

"단장···이상한 놈이 있는데요?"

"응?"

마나를 먹는 망원경을 건내받은 릴조는 늪고래 주위를 쭉 관찰했다.

"뭐야? 미친놈인가?"

맨 몸으로 숲까지 들어와 늪고래 주위를 얼쩡거리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근육이 막! 응? 장난 아니던데요?"

릴조가 근육을 찬양하는 부하의 뒷통수를 후려쳤다.

빡-!

"악!"

솥뚜껑 같은 손에 맞은 부하가 비명을 빽 뱉었다.

"에라이 병신아!! 근육이 아무리 많아도 마나가 없으면 소용 없는거 모르냐?"

근육을 키워서 바위를 부수는 것과 마나를 단련해 바위를 부수는 것에는 효율과 시간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체계적인 훈련에 목을 매는 기사들도 달리기나 근력운동의 비중을 연공법 보다 훨씬 적게 두는 이유였다.

'방금 눈이 마주친것 같은데···.'

그럴리가.

릴조는 헛웃음을 뱉으며 망원경을 다시 부하에게 넘겼다.

나무가 얼마나 많고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먼데, 마도구가 없으면 점 보다 작은걸 울창한 숲에서 찾아야 하는거다.

그게 가능한건 감각이 타고난 연방국의 엘프들과 수인들이나 할 수 있겠지.

강함과는 별개의 영역이다.

"어어-?! 저,저거!"

망원경을 들고있던 부하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또 뭐냐."

"뛰더니 고래 이,입으로 들어갔는데요?"

"이 새끼 경계를 하라 했더니···술 처먹었지?"

릴조의 짜증이 극에 달해 칼집에 손이 올라갔다.

"단장님. 저도 봤습니다."

뒤에 있던 마법사가 망원경을 집어넣으며 다가왔다.

"···진짜 늪고래의 입으로 들어갔다고?"

"믿기 힘들지만 저도 봤습니다. 혹시 저런 일에 전문가 아닐까요? 자살을 하려는 인간은 아닌것 같았습니다."

"전문가랑 입에 들어가는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부오오오!!!

지금까지와는 다른 늪고래의 울음에 용병단의 이목이 쏠렸다.

"혹시 입 안에 늪고래의 약점이 있다던가···아니면 들어가서 직접 장기를 건드렸다?"

마법사의 혼잣말에 릴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바로 따라붙는다. 주위에 덫하고 함정 설치부터 시작해."

상대는 맨 손에 있어봐야 단검?

강인해 보이는 신체라도 준비를 철저히 하면 이름 난 녀석들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

이때까지의 경험과 삶이 그걸 증명한다.

'근육? 그래봐야 칼 맞으면 죽는건 피차일반이지. 겉멋에 빠진 혈기만 왕성한 어린놈이···.'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마나의 순도와 연공법은 결국 시간싸움.

근육이라는 껍데기가 아무리 대단해도 속은 자신보다 비어있을 확률이 지대하다.

이때까지 근육빵빵한 놈들 치고 자신을 이길만큼 속이 알찬 녀석은 없었다.

모두 겉만 요란하지.

'남자는 잘먹고 나온 뱃심 하나면 충분하고 말고.'

릴조에게 대박의 기회인 늪고래를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

냄새나는 늪고래의 아가리에서 나왔다.

죽으면서 옆으로 벌러덩 누워준 덕에 탈출하기 용이했다.

나오면서 상자를 열어 신호용 아티펙트를 발동시켜 땅에 던져두었다.

"후우-"

지금은 주위에 둘러싸고 있는 용병들은 어찌되도 좋았다.

나는 내 손에 들린 시꺼먼 날붙이를 보았다.

'로메리우스 때도 그렇고···.'

꺼림칙하다 할 무기를 거침없이 뽑아 의존 할 정도로 감각에 녹이 슬었나?

아니면 이제 그런게 아예 상관이 없어졌나?

마음가짐의 변화라면 이게 긍정적인 사항일까.

"거기- 무기 버려!! 딱 한번만 말한다!!"

상념을 깨는 걸걸한 목소리에 로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쯧··하나··둘··."

눈으로 숫자를 세어보니 빠진 녀석은 없어 보였다.

마법을 보란듯이 캐스팅하고 있는 놈들과 활에 화살을 먹이고 나무에 숨어있는 놈.

그리고 귀 한쪽 없이 빛나는 이를 보이고 있는 덩치까지.

로메리우스의 물약 덕인지 숲에 퍼져있는 함정이 마치 발광하는 것처럼···예전보다 선명하게 느껴진다.

"늪고래는 그대로 두고 가면 우리도 모른척 해주마."

릴조의 우렁찬 목소리가 늪지를 울렸다.

'···리케 보고싶네. 밥은 먹었으려나.'

가늠없이 바로 끝내기로 마음을 먹으니 무엇을 해야할지 명확하게 보인다.

촤르르륵-

인벤토리에서 워해머와 쇠사슬을 뽑아낸다.

용병들에게는 허공에서 무기와 사슬을 뽑아내는 것처럼 보일것이다.

"마,마법인가?!"

아직 캐스팅이 끝나지 않은 마법사들을 본 릴조가 로만의 눈치를 살폈다.

철컥-!

워해머의 끝에 사슬을 달아 전완에 칭칭 감는다.

"너희들 집에서 기다리는 여자는 없지? 요즘 그런거에 마음이 약해질것 같거든."

그래도 죽일거지만.

마법사들의 캐스팅이 모두 끝났다.

기세등등하게 웃으며 번쩍이는 이를 보이고 있던 릴조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몇몇 용병들의 무기에서 푸른 오러가 넘실거린다.

"죽여!!!"

*****

"세리아가 요즘 로만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할 때마다 놀라서 심장이 아파요···."

무사히 의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릴리네가 한탄했다.

파티원인 라크와 챔버스는 이해가 된다며 웃을 뿐.

"조금 더 편하게 마음을 가져. 로만한테 직접 배운다며? 그럼 궁금할만 하지."

"그건 맞는데···."

릴리네가 로만이 직접 싸우는걸 본 날은 시간이 제법 지난 옛날 일이었다.

그날 전신이 피로 절여진 로만을 보고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지.

쇠사슬을 들고 거대한 몬스터의 목을 졸라 죽인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알아서 하라 했지만. 릴리네는 결국 세리아가 모험가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겠지. 나라도 세리아 같은 동생이 있다면 그럴거다."

챔버스는 릴리네의 마음을 다 안다는듯 말했다.

"····"

-

예전에 로만이 혼자 술을 미친듯이 마시더니 완전히 취해버린 날이었다.

집도 못찾아갈 정도로 취하더니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혼자 뱉어내기 시작했다.

절반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때 로만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아주 귀찮은 체계를 가지고 있다 했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달아올라야 제대로 싸울 수 있으며 가끔 상대가 자신을 죽일 수 있을지 가늠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실전에서 치명적이며 목숨을 허망하게 잃을 수 있는 행동이다.

그걸 알면서도 그는 정신을 바로 잡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절대 상대를 우습게 본 것도 아니고 자만한 것도 아니라고.

그냥 감정 조절이 안된다고 했다.

라크와 챔버스도 같이 들었던 이야기다.

"파티도 안만들고 계속 혼자였으니 그렇겠지. 피를 매일 뒤집어 쓰는데 술 말고는 위로해줄 사람도 없고 고생한걸 봐주고 인정해줄 사람도 없었으니···가끔 그놈 정신이 위험해 보일때가 있었잖아?"

릴리네의 걱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말이 안되는 욕심일지라도 릴리네는 세리아가 로만의 밑에서 다른건 다 배워도 살아가는 '처절함'은 배우지 않고 아예 몰랐으면 했다.

무리하지 않고, 과하지 않게 적당히 벌어 적당히 사는 것도 충분히 행복하다.

혼자서 묵묵히 긴 시간 살생을 거듭하는 일은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병들게 하는 법.

릴리네의 눈에 로만은 옛날부터 깊게 병들어 있었다.

"가끔 아무렇지 않은척 하거나 가벼운척 하느라 이상한 말을 하려고 애쓰는것 같아서 불쌍할 때가 있지."

챔버스의 말에 릴리네는 격하게 공감했다.

"로만씨가 빨리 좋은 여자라도 찾아서 정착하면 좋을텐데···."

"그건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정신을 차린 로만···? 전혀 상상이 안가는데."

"설마 거기서 더 강해지는건 아니겠지?"

"그땐···농담도 함부로 못하겠군."

*****

분명 악몽이다.

'이건 꿈이다···분명 눈을 감았다 뜨면 방에서··.'

차르르륵ㅡ

파삭-!!

사슬에 달린 워해머가 마지막 마법사의 머리통을 부수고 지나갔다.

생명의 불길이 꺼짐에 비명소리 한점 없었다.

릴조는 처음으로 몸이 굳는다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전투를 시작함과 동시에 저 미치광이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칼날로 만들어진 폭풍이 불었다.

눈 앞에서 반응도 못할 속도로 용병들이 조각나며 쓸려나갔다.

바로 앞에서 사람의 머리통이 터져나가며 릴조의 얼굴이 피로 흠뻑 젖었다.

'방금 무슨일이···?'

공포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오러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뱀을 눈 앞에 둔 개구리처럼.

끔찍한 폭력성을 내재한 주인을 둔 노예처럼.

"아아악-!!!"

당장 눈 앞에서 술을 같이 마시고 함께 강간을 즐기던 톤즈가 토막이 나고.

촤아악-!

마지막으로 단검을 들고있던 게루타가 버터마냥 숭덩 썰려나간다.

게루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놀란 얼굴로 절명했다.

"이··이이··!!! 괴,괴물···!!"

릴조는 이제 알고있다.

이때까지 다른 녀석들을 죽이면서 저 자의 흉흉한 시선이 자신에게 떨어지지를 않으니.

저 괴물이 노리는건 자신이라는걸.

이제 나 하나 남았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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