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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41화 (41/250)

Chapter 41 - 날로 먹기 금지

하룬 제국과 볼라센 연방국이 크고 작은 전쟁을 이어간 평야.

무수한 시체가 회수되지 못하고 썩어버린 장소에서 언데드가 생겨나는건 필연적이다.

과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심히 찾아다녔다.

이 수 많은 해골들 사이에서 묵직한 멋이 철철 흐르는 데스나이트가 어디 있을거라고.

열심히 찾아 다녔는데 그냥 칼 든 해골들이 나를 반겨줬을 때의 허탈함이란.

끔찍했지.

그 비루한 과거를 벗고 허여멀건한 뼈다귀들 사이에서 검은 갑옷을 입은 채 붉은 안광을 뿌리는 데스나이트가 등장했다.

"역시 그 갑옷 주인이 따로 있었구나."

정황상 평범한 스켈레톤이 입학식 전에 생겨난 히든 피스를 장착하게 된게 아닐까?

그렇다면 게임에선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다.

딱. 딱. 딱.

"비켜 새끼들아."

파사삭! 빠직!

손을 휘두를 때마다 턱을 떨며 소음을 만드는 스켈레톤들이 우수수 무너진다.

주먹으로 거치적거리는 뼈다귀들을 박살내고 눈 앞까지 당도하자 데스나이트가 괴성을 지르며 검을 뽑아들었다.

-카아아악!!!

"데스나이트가 오러도 못쓰고···성불해라."

밑바닥 중에서도 제일 아래에 있는 데스나이트였다.

[ 첫번째 형(形) - 나찰(羅刹) ]

가면이 제대로 생기기도 전에 손에 잡히는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나찰의 검이 데스나이트의 갑옷을 종잇장처럼 찢고 백염을 발화시킨다.

-그···아아!! 아아아-!!

분명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언데드가 두개골을 부여잡고 고통스럽다는듯 울부짖는다.

몸에 번져가는 새하얀 불길을 끄려는듯 버둥거리던 데스나이트는 잠시 후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좋아. 확실히 편해졌어."

사아아ㅡ

나찰의 검으로 데스나이트의 사특한 기운이 빨려들어가 손잡이에 있는 샛노란 부적들 중 하나에 붉은 글자를 반쯤 채우다 멈춘다.

두번째 형상의 개방 조건은 부정한 존재를 정화시키거나 갱생시킬 것.

보통 언데드는 기별도 안가고 카운팅은 네임드 이상에만 적용된다.

'혹시···그건 안되려나?'

순간 머리를 지나가는 게임에선 절대 불가능한 방법.

나는 데스나이트가 두고 간 검은색 브로치를 주웠다.

손바닥 보다 작은 브로치에는 장미가 양각으로 새겨져있다.

[ 하겐의 갑주 컬렉션 No.03 ]

▷내장 된 갑주를 착용합니다.

▷마나를 사용하여 수리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아픈 손가락이여··! 마무리가 아쉬운 작품이라 더 애정이 간다.

키이잉-

마나를 흘리니 브로치가 반응한다.

철컥-! 철컥!

순식간에 몸을 감싸는 흑색 갑옷.

확실히 멋은 있지만 풀 플레이트를 입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너무 갑갑했다.

애초에 마나로 강화한 신체가 훨씬 단단하니 입는 의미가 없다.

"불편하네···기사들은 어떻게 입고다니지?"

나는 갑주를 바로 해제했다.

마나를 먹고 수리되는 것 외에는 특별한 능력도 없는 그냥 단단한 갑옷.

게임에서도 컨셉질에나 사용하는 코스튬이나 다름 없는 물건이다.

"음··."

순간 클로에의 스킬이 떠올랐지만 그 생각은 접어뒀다.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리케에게 주면 재미로라도 사용하겠지.

나는 브로치를 들고 남아있는 스켈레톤을 찾기 시작했다.

··

··

딱.딱.딱.

"야! 그러지말고 좀 입어봐라."

나는 남아있는 스켈레톤들의 검을 피하며 브로치를 스켈레톤에게 붙여도 보고 머리 위에 올려도 봤다.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좀전의 데스나이트로 변하는 스켈레톤은 없었다.

'이게 날먹이 안되네··.'

아무래도 두번째 형상은 고생 좀 해야할듯 싶다.

-

평야에서 도바트까지 돌아오니 새벽이 지나서 아침이 되어있었다.

여행객이 아니라 여행객을 맞이할 준비를 서두르는 가게 주인들과 종업원들이 도바트의 활기를 책임지고 있다.

에클레어가 지원해준 돈으로 숙소를 하나 잡아 가벼운 아침을 먹고 두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숙박을 잡아두고 두시간만 자고 나오는 이 사치스러움.

"하아암ㅡ"

거리에 하품을 전염시키며 도바트에 있는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연방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해결하는게 내 역할이지.

늪고래가 굳이 도바트의 지근거리까지 도달하는걸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의뢰에 기재 된 사항도 없었으니 이제와서 다른 말을 하지는 않을터.

"여깁니다!"

모험가 길드 근처에 오니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나를 붙잡았다.

"반갑습니다."

"하하하! 제가 그루버입니다. 자리부터 옮기시죠."

이번에 사용하는 이름은 그루버인가.

이 기운찬 중년은 내가 황실의 의뢰를 할 때마다 나타나 부가적인 설명이나 잡무를 도와주는 남자다.

황실과 직접 엮여있다면 나름이 아니라 진짜 엘리트 일텐데 항상 바깥 업무를 보는 것 같다.

그가 앞장서서 향한 곳은 모험가 길드가 아닌 모험가 길드가 내려다 보이는 여관이었다.

미리 방을 잡아둔 것인지 애초부터 제국이 소유한 곳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따라갈 뿐이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오니 여관방 안은 숙소가 아니라 사무실 같은 분위기였다.

침대도 없고 책상에는 종이와 잉크통이 놓여있으며 벗어둔 안경과 반쯤 먹은 빵에서 생활감이 느껴진다.

"홍차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추레한 복장과는 반대로 홍차를 우리고 따르는 손길에서 숨길 수 없는 귀티가 흐르는 남자.

저 남자의 본명은 모르지만 관리하지 못한 외형에는 사정이 있다는건 짐작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그루버는 내 앞에 홍차를 놔주며 작은 상자도 함께 내밀었다.

"늪고래의 처리가 끝나면 그 상자 안에 들어있는 신호용 아티펙트를 사용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날파리들이 좀 꼬인것 같습니다."

영물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거대한 몬스터에 불과한 늪고래가 그리 가치가 있는지.

잡아서 무얼 하려는지.

대단한 신분과 엮이면 그런 질문은 해서도 안되고 할 필요도 없다.

의뢰를 받았으면 그냥 하면 된다.

늪고래 심장이 늙은 황제의 정력제로 쓰이든 회춘약재로 쓰이든 나는 모르는게 제일 좋다.

"늪고래가 워낙 독특한 행적을 남기니 누군가 따라붙을거라 예상은 했습니다···일단 최대한 조용하게 해결하고 싶습니다. 보는 눈이 없으면 좋겠군요."

"날파리들은 역시 용병입니까?"

"맞습니다. 조사결과 연방국에서 넘어온 간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국의 농민들을 잡아 연방국으로 팔아넘긴 정황은 찾았습니다."

제국에서 미리 털어서 먼지를 찾았으니 마음놓고 죽여도 된다는 뜻이다.

"저는 분명 늪고래만 해결하면 될거라 듣고 왔습니다만···."

그는 내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맞습니다. 이런건 철저하게 계산해야 뒷말 없이 깔끔한 법이지요. 모험가님이 원하시는게 있으십니까?"

"으음···고민이 되는군요."

막상 시원하게 준다하니 고민이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생각이나 해둘걸.

"사실 황실에서 길드에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습니다만···원하신다면 사이가 틀어진 음유시인 길드에 입김을 넣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모험가님의 업적에 대한 물꼬가 트인다면 우루스의 파티처럼 제국민들이 찬양하고 만인이 우러러 볼 것입니다."

제국이 직접 나서서 쪼잔한 짓을 하고있는 음유시인들을 족치고 백금에 맞는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는 말이지만 나는 얼굴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지금이 좋았다.

음유시인 길드를 한번 박살낸걸 오히려 잘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 할 것이다.

"아닙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제가 원하는건···."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고민을 시작하니 손가락이 절로 턱으로 향한다.

돈? 물론 많을수록 좋지만 이건 특별한 기회였다.

'아티펙트···영약···황실에서 구해준다 하면 분명 상등품이겠지.'

나는 고민을 끝내고 천장에 향해있던 시선을 내렸다.

"정하셨습니까?"

"···물질 보다는 그냥 황실의 신임을 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결국 내 머리에 떠오르는건 복잡하게 묶여있는 리케였다.

"허허허···탁월하신 선택입니다. 제가 꼭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루버는 너털웃음을 보이며 깃펜을 들어 종이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종이가 아닌 내 쪽을 보면서도 그는 마도구로 찍어낸듯 수려한 글씨체로 공간을 채워나갔다.

"모험가님도 바쁘실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일단 용병단의 규모와 특이사항이 있다면 더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종이 뭉치 사이에서 필요한 서류를 골라낸 그는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흐음- 지금 늪고래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용병단은 17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목은 릴조 라는 인물입니다. 왼쪽 귀가 없고 시술을 받아 이를 모두 도금한 강철로 교체했습니다."

종이가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어디···한때 도바트 소속의 모험가로 금등급까지 활동한 이력이 있고 용병단에 마법사도 최소 3명은 보유하고 있습니다. 실력은 백금에 비견하지 못해도 덫과 함정설치에 능통하다 하니 조심하는게 좋겠습니다."

"릴조··릴조··기억했습니다."

멀쩡한 이를 금색으로 바꾸다니 독특한 취향이다.

눈에 보이는 독특한 외형이니 마주하는 순간 알 수 있을것 같다.

"결국 이들의 목적은 누군가가 늪고래를 처리하면 찌꺼기를 털어먹거나 견적이 나온다면 가로챌 생각이겠죠. 황실이 뒤에 있는걸 모르니 하는 짓이겠지만···늪고래의 살점만 해도 뒷골목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니 이해는 갑니다."

"···그게 맛있습니까?"

고래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바다도 아니고 축축한 늪에 사는데 먹기 찜찜하지 않은건가?

"영물이라 하니 그 살점을 취함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얻으려는 것이지요. 미신이지만 영물을 먹으면 불치병도 낫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라면 믿고싶을 이야기군요."

죽음이 코 앞에 있거나 낭떠러지에 서있는 자들은 아닐거라 말하면서도 믿고싶을 것이다.

확실히 돈이 될만한 소문이었다.

"이건 늪고래의 해부도와 현재 이동경로를 기록한 것입니다. 용병단 정보도···재차 말씀드려 죄송하지만 심장은 보존해주시길 바랍니다."

"해부도를 한번 보고 신경쓰도록 하죠."

"그리고 이번 일은 저번과 같이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용병들만 깔끔히 정리 된다면···저희가 인원을 보내 뒤처리까지 끝내겠습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는 이제 이야기가 끝났다는듯 몸을 뒤로 기울여 의자에 기댔다.

밖에서는 기운이 넘치더니 지금은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다.

"후우ㅡ 혹시 더 필요하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십니까?"

나는 그대로 일어나 정보가 적힌 서류들을 챙겼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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