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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40화 (40/250)

Chapter 40 - 첫번째 형상

내가 가진 스킬들은 대부분이 패시브에 몰려있는 기형적인 구조.

직접적인 공격이 가능한 스킬은 교룡각이나 조건부로 발동 가능한 육참골단 같은게 대표적이다.

전투를 지속하면서 점점 상향곡선을 그리는 슬로우 스타터로 신체능력을 이용해 그냥 베고 찌르고 박살 내는 방식.

실전에서 슬로우 스타터라니 지금까지 살아있는게 기적일 정도로 최악 중의 최악이다.

'이제 줄 때도 됐잖아···.'

나라고 훌륭한 공격 스킬을 익히고 싶지 않은게 아니었다.

진짜 원하는건 비어있고 남아있는 히든 피스는 패시브에 몰려있어 어쩔 수 없이 생긴 상황이었다.

그런 식으로 헛걸음 한 경우야 많았지만, 기대가 제일 컸던 도바트는 트라우마로 잊고 살았을 정도.

에클레어가 들고 온 의뢰를 받지 않았다면 과거에 적어둔 메모를 보기 전까지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었겠지.

성공만 하면 얼마나 큰 이득이 있는데!

이걸 잊고 있었다니 내 인간미가 과했다.

리케덕인지 지금은 멘탈도 건강한 느낌이라 히든 피스가 있든 없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것 같다.

탁-!

던전의 끝- 땅을 보고있는 여인상 아래에 놓여있는 상자가 눈에 잡힌다.

과거에 열어두고 그대로 나갔으니 훤히 열려있는건 변함없이 같았다.

과거에는 클리어 보상이랍시고 금화와 보석이나 몇개 들어있는 속 빈 강정이었지만···.

나는 기대감에 숨을 참고 상자 안을 슬쩍 봤다.

"하 ㅡ 하하!!···드디어."

나는 인벤토리 제일 아래 깔려 음식 받침이나 하고있던 책 4권을 꺼냈다.

상자에 들어있는 책 까지 합해 총 5권.

4권까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모았는데 마지막 한권을 얻지 못해 절망했던 내 기분을 누가 알까.

그리고 이 묵은 감정이 해소되는 쾌감을 누가 알겠는가.

[ 스킬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 무신의 형상 - ■ ]

▷현재 사용 가능한 형상은 나찰(羅刹)입니다.

▷[ 습득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

-다섯 가지 세계에서 정점을 이룬 무신의 다섯 가지 모습.

'드디어 왔다···조건이야 차차 채우면 되는거고.'

긴 시간 목을 쩍쩍 갈라지게 했던 갈증이 사라지는 청량감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무기를 가리지 않고 때에 따라 잡히는걸 사용하는 내 입장에서 하나의 검법만 익히는건 애매하다.

그렇다고 창술 하나 검법 하나 암기술 하나 이런 식으로 난잡하게 다 배워봐야, 게임처럼 숫자 하나 누른다고 다 되는게 아니니 내 머리와 손만 엉켜 명을 재촉하겠지.

하여 필요했다.

내가 가진 병장기의 차별과 구별없이 유동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스킬이.

'얻은 김에 바로 써볼까.'

[ 첫 번째 형(形) - 나찰(羅刹) ]

그르르르ㅡ

이때까지 열심히 쌓아 온 내 마나통이 부담이 될 정도로 마나가 울컥 빠져나간다.

발동과 동시에 얼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한 손에는 스킬에 의해 생겨난 검이 순백의 불길을 활활 태우고 있고.

쥐고있는 손잡이에는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요사스러운 느낌이 난다.

텁- 텁-

나는 빈 손으로 얼굴에 생겨난 나찰의 탈을 더듬거렸다.

거대한 어금니가 위 아래로 나와있고 손바닥 감각상 흉신악살 같은 얼굴 견적이 나온다.

'게임이랑 생긴건 아마도 같고··?'

나찰이란 악귀에서 갱생을 한 신이지만, 아카라이트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상의 신.

'갱생'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한 개발자 덕에 나찰의 형상은 언데드와 흑마법 같은 부정함을 잡아먹는 속성이다.

그쪽 부류가 아니라도 충분히 쓸만하지만.

"후우-···"

스킬로 구현 된 나찰의 검을 꽉 잡고 호흡한다.

지금 숙련도에서는 딱 한번 휘두르면 스킬이 끝날거라고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다.

"흡!!"

피잉-!

참격을 따라 벽에 일자로 눌러붙어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백염.

오러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두꺼운 벽을 푸딩처럼 잘라내는 강한 공격력과 원거리 타격이 가능한 점까지.

긴 세월을 지나며 드디어 얻은 제대로 된 액티브 스킬.

나는 감격했다.

"진짜···요즘 인생 살맛 나네."

-

동상에 시동어를 외우는 순간 밖으로 나왔다.

이동한 곳은 도바트의 바깥이고 새벽이라 다행히 사람은 없었다.

나는 도바트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숲 안으로 파고들었다.

다음 히든 피스는 이동시간이 문제지 정작 내용물은 길게 끌 일도 아니었다.

스킬 한번에 훅 빠져버린 마나를 포션으로 천천히 회복시키며 어두운 숲을 지난다.

'로메리우스 효과가 체감이 심하긴 하네. 마나가 차오르는게 확실히 빨라졌어.'

꼴꼴꼴- 나오던 물이 콸콸! 나오며 그릇을 채우는 느낌이다.

사락- 파삭-

종아리까지 자란 풀을 밟으며 앞으로 쭉쭉 나아간다.

-게륵!!게락!

-아게긱!!

오랜만에 듣는 고블린들의 소리도 멀리서 울리지만 덤벼오지는 않는다.

머리통과 뇌는 작은 놈들이지만 승산 없는 싸움은 되도록 하지 않는 영악한 놈들이다.

'시간 참 잘간다~'

집에서 도망치고 산에서 고블린과 싸우며 영역싸움을 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아찔했던 과거를 되돌아보며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두번째 히든 피스는 첫번째에 비하면 의미가 크지 않았다.

하나의 장난감 용품이니 사실 없어도 상관 없다.

예전에는 '그것'의 용도가 이리저리 떠올랐는데···들고 가서 리케도 쓰지 않는다 하면 나에게도 애물단지가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시간을 투자해 먼 길을 가는 이유는 장난감이 중요한게 아니라 스킬의 두번째 형상을 위해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 개발자들도 그걸 노리고 만든 곳이 아닐까.

*****

저번에 세리아에게 얻어먹은 적이 있으니 오늘은 리케가 계산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세리아는 자신이 산다며 말도 안하고 미리 계산을 끝내버렸다.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마음은 고마운데 부담스럽잖아."

리케의 시선에 세리아가 눈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헤헤-·· 미안해. 그냥~ 요즘 리케한테 좋은 일이 있는것 같아서."

"나한테··?"

"응.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로 얼굴에 티가 났나?

세리아의 기대감이 꽉 찬 시선을 외면하고 리케는 고민에 빠졌다.

사랑과 연애를 해보는게 처음이라 조심스러운 리케라도 자신의 연인에 대해 입 밖으로 내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다.

오히려 책이라도 만들어 로만에 대해 제국 전체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가능하다면 저 멀리있는 연방국에도 알리고 싶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아카데미 생도와 같은 아카데미 교관이라는 입장.

'같이 있는게 들키거나 하면 정말 정말 정말 어쩔 수 없겠지만···.'

머리가 고장난게 확실한 자신은 마음 한켠에 그걸 이미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로만은 내 뜻에 따르겠다 했지만 리케는 아직 걱정과 생각이 많다.

아카데미 생도들은 벌써 실감이 사라진것 같지만, 백금의 모험가인 로만이 아카데미 교관을 하고 있는건 절대 평범한 일이 아니다.

리케가 들은 바로는, 로만이 아카데미에 오게 된 이유는 누군가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이유라 했다.

어떻게 보면 그 덕에 로만과 만난 것이니 자신도 은덕을 입은게 아닐까.

'오빠는 주위에 말해도 아무 상관 없다고 말은 해도···.'

교관이라는 직책으로 연인인 생도의 편의를 봐준다는 시선이 아예 없을 수 있을까?

그게 소문이 나서 모험가 일에 지장이 갈 가능성은?

누군가에게 은혜를 갚으려는 로만의 숭고한 마음에 불순물이 될지도 모른다.

'거기에 내 만족감 따위는 비교 대상이 아니야.'

로만을 자랑하고 자신이 그의 연인이라는걸 알리면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는 기쁜 일이겠지만.

공공연하게 알리는건 아직 시기상조.

그나마 주위에 믿고 말해줄만한 사람은···세리아라면 딱히 소문 낼 일은 없어 보이지만 그녀를 알게 된 건 아직 짧은 시간이다.

지금은 완전하게 확신이 서지 않는다.

세리아에게 다 말해주고 비밀을 지킬꺼냐고 이 눈을 사용하기도 그림이 기이하지 않은가.

뱉는 말과 달리 속마음으로 지킬 생각이 없으면?

여기서 바니타스를 꺼내서 휘둘러? 그것도 역시 아니다.

"그냥···특별한 일은 없어."

"흐음- 그렇구나."

세리아는 아쉬운 얼굴을 했지만 더 캐물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말은 많아도 눈치가 빠른 아이니 이 이상 선을 넘을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세리아의 앳된 외형 때문인지 그게 장하면서도 찜찜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리케는 짧은 고민 끝에 세리아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같이 저녁 먹을까?"

리케의 말에 세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과묵했던 소녀와 한발 더 가까워진 느낌에 세리아가 밝게 웃었다.

"좋아! 나도 저녁이 고민이었는데."

"언니분은 또 의뢰 나가셨어?"

"응. 오히려 나 때문에 적게 나가는건 아닌가 걱정이야."

"역시 모험가는 바쁘구나···."

로만도 아카데미 교관이 끝나면 저렇게 바빠지지 않을까.

혹여나 몇달을 떠나있으면 집에서 내가 가만히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가 있으면 괜찮을지도···.'

나와 오빠를 닮은 아이라···생각만으로 외로움과 우울함이 사라진다.

혼자 망상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있는 리케를 두고 세리아가 메뉴를 하나 추가했다.

"여기 오면 항상 이것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거든. 같이 먹자!"

"나는 괜찮은데··."

세리아는 이미 생선용 나이프로 거침없이 육고기를 썰고 있었다.

예법을 중요하게 따지는 귀족이 보면 거품을 물고 넘어갈 장면이다.

"한입만 먹어봐! 맛있는건 같이 먹으면 더 맛있잖아."

"···그··런가?"

맛 좋은건 혼자 먹는게 최고 아닌가?

오늘 대화 중에 리케가 유일하게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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