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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39화 (39/250)

Chapter 39 - 여행지에서 일하는 남자

도바트는 볼라센 연방국에 아주 가까운 최전방에 위치해있다.

최전방이라는 말이 일반 제국민들에게 큰 거부감이 될 텐데도.

도바트는 예술과 여행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지고 항상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지금은 하룬 제국이 지배하고 둥지를 틀고있는 도바트.

이곳은 먼 옛날에 볼라센 연방국의 이종족들이 살았던 도시였다.

제국과의 전쟁이 일어나며 드워프와 수인 등 이종족들은 자신들이 제작한 장비와 귀중품은 들고 떠났지만.

도바트에 살던 명장들이 만든 예술품, 조각상 그리고 건축물들은 남기고 떠났다.

그로인해 제국과는 완전히 다른 이종족의 생활양식이 남아있어 예술가나 학자,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

제국의 수도에서는 보기 힘든 양식의 목재건물과 석조건물들.

게이트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이곳은 도바트라고 광고를 하고있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옛날에 크게 허탕친 이후로는 올 생각도 하지 않았던 곳이다.

도착과 동시에 도바트에 있는 모험가 길드로 갈까 했지만···아직 시간 여유는 있다.

'입학식 유성이 히든 피스랑 연관이 있어야 하는데···.'

과거에는 비어있던 히든 피스를 확인해보고 길드에 가도 문제 될게 없다.

애초에 늦은 시간에 도바트로 넘어온 목적도 그것이니.

내 머릿속을 한가득 차지하는 리케의 모습을 잠시 밀어두고 길을 타고 나아가는 인파에 섞여들었다.

사람은 많아도 수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여행을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행인들의 발걸음과 얼굴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와 이걸 진짜 손으로 만들었다고?

-이런건 처음 봐··.

-제국에도 유명한 조각가는 있잖아.

-여기서 기도하면 효과가 있을것 같은데···.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여인상.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하늘하늘한 옷감과 손에 걸려있는 로사리오까지.

다시 봐도 믿기 힘들지만 모두 단단한 조각상의 일부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이목을 한번은 꼭 사로잡는 도바트의 조각상 중 하나.

대다수가 드워프 명장이 조각했을거라 말하지만 어째서 그가 인간 여성을 조각했는지는 시원하게 답을 내지 못한다.

'곧 새벽인데 이 정도로 사람이 많아?'

보통 도시라면 경비들이 무리를 이루어 돌아다니고 선술집이나 여관을 제외한 대다수의 가게가 문을 닫는 시간이다.

하지만 여행지의 특성 때문인지 밤이 와도 활기가 줄어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전에 도바트에 왔을때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흠···."

나는 공원에 만들어둔 나무벤치에 앉아 사람이 줄어드는걸 기다렸다.

이것조차 과거에 왔을때와 같은 절차였다.

던전에 입장하는 순간은 당연하지만 보는 눈이 없는게 제일 좋다.

타인의 시선.

게임에서야 생각도 하지않는 부분인데 현실에서는 이런 식으로 제동이 걸릴때가 있다.

한참을 앉아 사람들이 없는 시간이 잠시라도 생기길 기다렸다.

-다음은 교단쪽에 가볼까? 거기도 유명한 조각상이 있다던데.

-우리 지금 한끼도 안먹었어···밥은 좀 먹고 움직이자···.

-도바트는 밥이 아니라 초콜릿을 조각상 모양으로 만들어서 파는···.

··

··

단체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무리가 우르르 빠지니 멀리서 오는 사람들을 빼고는 공원에 나 혼자만 남았다.

"으쌰!"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조각상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조각상으로 가까이 오지 말라고 쳐놓은 줄을 넘어 손을 뻗었다.

마나를 두른 손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있는 조각상의 단단한 손을 살포시 잡는다.

"···여신님이 찬가를 원하신다."

지이잉-

-

조각상에서 흘러나온 빛이 나를 태우고 도착한 곳은 뒤가 막혀있고 앞으로만 갈 수 있는 긴 복도였다.

그럴듯한 상징과 시동어를 이용한 이동.

이건 기적처럼 대단해 보여도 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게이트의 열화버전이다.

위치는 내가 있던 공원에서 멀지 않지만 나가는 길이 없다.

던전 끝에있는 동상을 이용해 들어온 것과 같은 방법으로 나가야 한다.

'여기서 고생 좀 했지.'

향수가 느껴지는 던전을 향해 나는 한걸음 한걸음 움직였다.

시선의 끝에는 좌우로 갈라진 T자형 갈림길이 보인다.

창조주인 여신이 자신을 칭송하는 찬가를 듣느라 세상에서 눈을 돌린다며 미신처럼 전해지는 저녁부터 새벽시간.

그때만 입장이 가능한 조건부 던전으로 골렘에 제대로 미친 드워프가 만든 장소이다.

드륵-!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골렘의 부품을 발로 밀었다.

'···아쉽네. 리젠이 되는 곳은 아니었나?'

바닥에 돌가루를 뿌리며 쓰러져있는 골렘들은 내가 옛날에 와서 히든 피스를 찾겠다고 뒤집은 흔적이었다.

골렘들이 워낙 단단하고 칼이 잘 안들어가니 성기사에게 스털링 워해머를 얻은 뒤 처음으로 온 던전이 이곳이다.

터벅- 터벅-

걸을때마다 발소리가 복도를 타고 퍼져나간다.

던전의 안쪽으로 향하는 길에는 옛날에 내가 골렘들과 엉키며 애쓴 자국이 여실히 남아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조잡하기 그지없는 타격의 흔적들.

지금은 절대로 하지 않을 비효율적인 행동들이 한 눈에 보인다.

"크흠!"

오러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부끄러운 흑역사를 지나니 점점 거대한 골렘의 흔적들이 보인다.

마지막에 머리통과 팔이 쪼개져 누워있는 골렘은 보통 골렘보다 두배는 크고 색도 달랐다.

'허전하네···지금은 한번이면 박살낼 것 같은데.'

성장을 시험 해볼만한 골렘도 없다.

이미 골렘이 다 부서진 뒤라 그냥 걸어서 던전 끝까지 온게 끝이었다.

허전하더라도 결국 정당한 보상만 있으면 되는 법.

풋내기 시절 개고생하고 보상이 없어서 멘탈이 나갔었으니 그날의 정신적 위로금은 받아야지.

*****

리케는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주위를 둘러봐도 로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빠 배웅도 못해줬어···!!'

연인이 되고 처음으로 의뢰를 나가는데 혼자 지쳐서 잠들었다니.

로만은 그럴 수 있다며 납득 할지라도 자신은 절대 납득하지 못할 일이었다.

"아아-! 진짜···!!"

누워서 버둥거리던 리케의 눈에 로만이 벗어둔 옷이 보였다.

'그래도···좋았지···오빠도 기뻐했고.'

생각만 해도 입꼬리가 마음대로 올라간다.

거칠게 다루면서도 소중하게.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두가지를 동시에 보여주며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다.

'가끔은 그런것도 좋네···.'

어제를 생각만 해도 아랫배가 저려온다.

상상만으로 몸이 조금씩 달아오르지만 오빠가 없는데 혼자 하기는 싫다.

혼자서 해본적도 없지만 분명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침대에서 일어난 리케는 의자에 걸려있는 로만의 셔츠를 안고 코를 박았다.

"스읍- 하아-"

옅게 남아있는 로만의 냄새.

그것만으로 마음이 안정된다.

"후으으으···오빠···."

옷을 안고 침대를 굴러다니니 아카데미에 가야 할 시간이 오고 있었다.

'가야지···.'

오빠가 없는 집에 있는 것보다 아카데미에서 무언가라도 하며 시간을 빨리 보내는게 탁월하다.

며칠을 혼자 있어야 한다는게 벌써 가슴을 누르는 묵직한 외로움으로 다가오지만 적응해야한다.

이 상황도 앞으로 몇번이고 있을 일.

질식할것 같은 행복에 절어있더라도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

단련도 마찬가지.

리케는 정신을 차리고 아카데미 정복을 입었다.

일단 하루의 시작, 간단하게라도 식사를 하기 위해 침실에서 나왔다.

'오빠 저녁도 먹이고 보내려했는데···.'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응?"

침실 구석에 있었던 궤짝이 거실 중앙에 꺼내져있다.

위에 마음대로 쓰라고 악필로 적힌 오빠의 메모까지.

딸깍-

"···!!"

기다리는 며칠이 아니라 정리하면 평생을 놀고먹을 물건들이었다.

주머니에 가득한 금화부터 귀한 물약들 까지.

용도를 모르겠는 물건들도 가득하다.

'걱정이 진짜 과하다니까···.'

리케는 피식 웃으며 금화 하나를 꺼내 주머니에 넣고 궤짝을 다시 침실에 넣어뒀다.

이거면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도 한참이나 남는다.

로만의 메모를 보고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리케는 아카데미로 향했다.

*****

- ···하여 폼멜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제조된 검은 주로 이런 형태를···.

'···물어봐?'

세리아는 옆에서 수업을 듣고있는 리케를 슬쩍 봤다.

최근에 상태가 좋았는데 오늘 다시 멍한 눈을 하고있다.

일단 세리아도 귀족이니 스카디 후작가를 모를리가 없다.

흉흉한 소문과 과거에 일어났던 참사는 워낙 유명해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있다.

그래서 처음엔 또 무슨 일이 있는가 걱정스러웠는데.

리케의 얼굴에 홍조가 생기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게 아닌가.

'내가 잘못봤나? 웃었다고···?'

세리아는 리케가 저렇게 웃는걸 지금 처음봤다.

민감한 사정을 가지고 있을 리케에게 사생활이 엮인 질문을 한 적이 없지만.

지금 세리아는 궁금해서 미쳐버릴것 같았다.

이럴때는 자신이 물어보는 것 보다 리케 본인이 말해주는게 제일 이상적.

정말 기쁜 일이라면 지인과 말하며 행복을 자랑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고.

"리케-"

"응?"

세리아가 작은 목소리로 부르자 리케가 고개를 슬쩍 돌려 세리아를 봤다.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둘이서 같이 밥을 먹은건 모험가 길드를 가기 전이 끝이었다.

리케는 점심때 거의 우유나 간편식으로 식사를 대신하곤 해서 같이 아카데미 식당에 갈 일도 없었다.

그 이후로는 리케가 출석을 길게 빼먹었지, 최근에는 아카데미가 끝나면 리케가 바람처럼 사라져 권유할 타이밍도 없었고.

자신도 언니가 있는 날은 뒤도 안보고 돌아가곤 했으니.

리케는 내 말에 조금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괜찮을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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