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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37화 (37/250)

Chapter 37 - 애매한 시작

아카라이트의 세계관.

그곳에는 흔히 판타지에 존재하는 마탑이라는게 없다.

하지만 마법사들이 만든 길드들이 다수 존재하며 마법사들의 성지라 불리는 귀족의 영지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말로이 백작의 영지는 비전투 분야 마법사들에게 최고의 성지.

말로이 백작 영지에서 실험 재료를 찾지 못한다면 제국 어디에 가도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법사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그 명성만큼이나 매번 유능한 마법사들을 배출해낸 가문으로 전투가 아닌 연구와 실험 분야에서 큰 입지를 가지고 있으며.

현 가주는 게이트의 비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리는 연구를 성공하면서 제국의 역사에 완전히 이름을 새겨넣었다.

그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아들이 로프티 아카데미 마법학부에 입학한다하니.

마법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것도 당연한 절차였다.

-

"어우···."

방을 가득 채우는 퀴퀴한 시약 냄새에 로버트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해가 화창하게 떠있는 시간임에도 암막커튼에 가려져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실내는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우울해진다.

거기에 정리 되지 않은 너저분한 바닥은 주인이 아니면 함부로 움직이기도 힘들다.

발 디딜 틈도 없는 물건들 사이를 지나 겨우 탁자에 도착한 로버트는 설명 한 줄 없이 아이작에게 차원의 파편을 내밀었다.

"···잠시 봐도 될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덩어리를 건내받은 그는 그걸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파편에 빛을 비춰보고 이상한 액체를 살짝 발라보기도 한다.

평상시에는 말도 느리고 행동도 굼뜬 녀석이 이럴때만 잽싸게 움직이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아이작. 이제 뭔지 알겠어?"

"잠시··잠시만."

로버트는 차원의 조각을 보는 순간부터 바빠진 아이작을 기다렸다.

제법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의 입이 열리지를 않자 조금 짜증이 났다.

로버트가 앉아서 다리를 달달 떨고있으니 아이작이 안경을 닦으며 탁자로 돌아와 앉았다.

"···도저히 모르겠는데? 이런 물건은 처음이야. 고유의 마나 파장이 있긴한데···패턴으로 보자면 유사한건 존재하지만 완전 똑같은건···."

중얼중얼거리며 불타오르는 아이작을 보고 로버트는 씨익 웃었다.

예상대로 아이작이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로버트는 자신의 정체 같은 몇가지 사실을 제외하고 아이작에게 정보를 터놓기로 했다.

"여기서만 하는 이야기인데. 사실 이걸 어떻게 얻었냐면 ㅡ···."

*****

밤의 가로등 아래를 한 남자가 질주하고 있다.

탁! 타악! 탁-! 탁!

"헉! 허억··! 헉!"

광나는 구두가 돌바닥을 거칠게 때린다.

그가 입은 코트에는 유리병에 갇힌 까마귀가 그려져 있으며.

가슴팍에 걸린 가죽 끈과 허리띠에서 형형색색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가 찰랑거린다.

-잡아!! 저항하면 죽여도 된다고 하셨다!!

-1조는 뒤로 돌아가서 포위해라!! 이제 독 안에 든 쥐다!!

-무언가 던지려 한다면 즉시 사살하도록!

'씨발··! 씨발! 이제 진짜 마지막 실험인데!'

누구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었다.

대의를 위한 유괴는 이번만 하고 진짜 그만 둘 거라고 속으로 맹세도 했다.

'어쩐지 꼬마가 의심도 안하고 너무 쉽게 따라온다 했어···!'

자경단이 꼬맹이까지 미끼로 두고 자신을 잡으려고 할 줄이야.

'어,어디로 도망가야···.'

저것들에게 잡히는 순간 도시 정문에 국경일 장식품 마냥 목이 걸리겠지.

-저기있다!! 여기야!!

-다리부터 분질러!!

-저놈은 손이 더 위험한 놈이다!!

"흐익-!!"

산짐승마냥 눈에 불을 킨 자경단이 자신에게 달려온다.

손에 들린 두툼한 몽둥이가 이리 무서울수가 없다.

도망자의 입장인 그는 불길 한점 없는 어두운 골목길을 질주했다.

"카악-··!"

입에서 단내가 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어딘지도 모르겠는 골목을 도는 순간이었다.

쩌저적-!!

허공에 유리가 깨진것 마냥 금이 가더니 기묘한 색채를 뿜어내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뭐,뭐야! 허어··허억··."

이 알 수 없는 것이 급작스레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이제 자경단이 바로 뒤까지 쫓아왔다.

이대로 멈춰서 몽둥이에 찜질을 당하고 목이 걸릴 것이냐.

아니면 저 정체 모를 균열을 지나가 볼 것인가.

물어볼 것도 없이 당연히 후자였다.

-

우당탕ㅡ!

"흐억···헉··헉··."

그가 다시 눈을 뜬 곳은 누군가의 방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광견병 걸린 들개마냥 자신을 쫓던 자경단은 보이지 않았다.

"후우-! 일단···일단은 살았나?"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는 방을 그는 조심스레 탐색했다.

책상에 두꺼운 책들이 몇권 쌓여있어 그게 가장 먼저 관심이 갔다.

'하룬 제국의···역사? 어디야 그게.'

한때 외교관을 꿈꾸며 명문대학을 졸업 한 자신도 처음 들어보는 나라였다.

이 책이 소설이라 하기에는 안쪽 내용이 완전 교과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거참 마녀에게 홀린 것 같군. 왜 읽어지는거지··?'

이 글자는 분명 처음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읽어지는게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감각이다.

살짝 소름이 돋기도 하고.

'혹시 난 이미 죽었다던가···.'

도대체 알 수 없는 상황에 망설이던 그는 문을 열고 이 방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밖에 자경단이 대기하는게 아닐까 싶어 문에 귀를 붙여봤지만 들리는 소리는 없다.

끼이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천히 문을 밀며 밖을 관찰했다.

'복도···?'

고풍스러운 복도가 보인다.

문이 양 옆으로 쭉 달려있는걸 보니 단체 생활이라도 하는 공간 같았다.

다행인건 사람이 없다는 것.

일단 관계자인척 저 계단을 내려가면 나가는 길이 있겠지.

"흐흠-"

기세가 당당하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

옷 매무새를 깔끔하게 다듬고 어깨를 쭉 핀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푹찍-!

"···?!"

등 뒤에서 자신의 심장을 뚫고 나온 검은 칼날을 보고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그,그···쿨럭!"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흘러나오는 피를 막으려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올렸다.

칼을 찔러본 적은 있지만 찔리는건 처음이었다.

'겨우 손바닥 만한 쇳덩이가 몸을 관통한 건데···.'

손이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핏물이 역류하여 목을 치고 올라와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발악하니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방과 후에 오지 그랬어. 그럼 좀 더 살았을텐데."

스각ㅡ!

*****

오늘 밤에는 떠날 생각이었기에 밑져야 본전이라.

아카데미가 한 눈에 들어오는 첨탑에 앉아 도서관 주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수업 받는 리케도 지켜볼겸 방과 후 까지는 경계에 노력하자는 마음으로.

'···저 새끼?'

품에 차원의 파편을 안고 다른 기숙사로 향하는 로버트를 보고 나는 곧바로 기사학부 기숙사로 잠입했다.

아카데미는 한창 수업 중이지만 로버트 같은 경우가 또 있는지 기숙사에 인기척이 아예 없는건 아니었다.

'···!'

잠시 기다리니 내 감각에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기척이 걸린다.

그럼 답은 정해져있다.

'마음먹고 숨으면 내가 찾지 못하는 실력자거나···아니면 지금 어떤 이유로 갑자기 생겨났거나···.'

-

그렇게 지금.

한 건을 하고도 기분이 이상하다.

'···역시 책은 로버트가 빌려갔었나.'

큰 물줄기는 거스를 수 없다는 강제성이 느껴진다.

그것보다···내가 로버트의 뒤처리나 하게 되다니.

얻는게 있는데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마치 화장실 청소를 한 기분?

"후···."

나는 한숨을 쉬며 눈을 내렸다.

피를 꼴꼴 쏟으며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남자가 보인다.

'···정사대로 처음에는 로메리우스가 나왔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신기한건 신기하다.

로메리우스의 독특한 옷과 주렁주렁 달린 물약 세트가 아니었다면 애먼 사람 잡았을지도 모른다.

'에피소드1은 말그대로 게이머가 마주하는 첫번째 메인 에피소드··.'

시작점에 서 있는 지금의 로버트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적이다.

원래 로버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차원을 뚫고 도망 온 로메리우스가 자신이 가진 물약들을 사용하며 로프티 아카데미에 혼란을 주고 도주해야한다.

'로버트가 로메리우스를 처단해야 스토리가 깔끔하게 이어질텐데···.'

자기 방에 남은 누군가의 흔적을 보고 로메리우스가 차원의 틈에서 건너온건 아닌지 추론과 의심을 해야한다.

···게이머의 시점이 없는 지금 로버트라면 도둑이 들었다고 그냥 난리나 치지 않을까?

"끄응··."

생각할게 많아지니 머리가 가렵다.

로메리우스의 등장은 앞으로도 돌아가기 위해 차원을 함부로 열면 넘어오는 유랑자들이 존재 할 거라는 경고이자.

게이머에게 주는 메인 에피소드 신호탄이다.

'내가 로버트한테 귀띔을 줄 수도 없고···일단 생각 좀 해보자.'

아이작에게 파편을 들고 가도 그걸 분석하고 다음 시도를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시작이 내 생각보다 늦었으니 이번 학기가 지나야 할지도?

'막상 이렇게 되니 진짜 꼴통이네. 아예 더 빨리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하나···.'

"···꺽!"

고민하는 사이 바닥에서 피를 폭포처럼 쏟던 로메리우스의 숨이 완전히 끊어졌다.

파삭- 파스스-

로메리우스의 몸에서 쏟아졌던 피와 시체가 디지털 풍화를 맞은것 마냥 조각조각 깨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적법하지 않게 차원을 넘은 유랑자는 죽고나서 육신과 영혼이 있을 자리 조차 허락 받지 못한다.

그렇기에 탐나는 물건이 있다고 죽여서 다 뺏을수도 없는 것이다.

'···유랑자를 납치해두고 쓰는건 안되겠지?'

순간 좀 아찔한 상상을 해버렸다.

떨그럭-

[ 로메리우스의 포션 ]

▷회복 포션의 효율이 상승합니다.

▷신체능력이 상승합니다.

▷감각이 발달합니다.

-로메리우스의 인체실험이 만든 반쪽짜리 결과물.

-로메리우스의 비전이 담긴 포션이다.

게임에서는 이렇게 유랑자들이 죽어서 남기고 가는 물건이 정해져있다.

퐁-!

그 자리에서 뚜껑을 열어 액체를 들이켰다.

[ 신체능력이 상승합니다. ]

[ 감각이 발달합니다. ]

··

··

'이게 효율이 30프로 올라갔나? 확실하게 기억이 안나네···.'

내 기억이 맞다면 체력 100이 회복 될 물건이 130이 회복되게 하는 것이다.

회복계라 하면 체력 마나 지구력 등의 포션들.

이 정도면 플레이어블의 첫 시작으로는 이상적인 물건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포션을 떠나 혹시 모를 위험 하나를 제거했다는게 크다.

'···이제 조금은 안심하고 다녀와도 되겠네.'

가야지.

도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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