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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33화 (33/250)

Chapter 33 - 늪지에 고래가 산다면

그저 충직한 기사들.

충직함 이상의 이름이 없던 드리트나 백작가는 현재 드높은 위상을 얻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명예는 드리트나 백작가의 가주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현재 드리트나 백작가의 힘은 가주가 아니라 장녀인 에클레어 드리트나에게 몰려있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아도 힘의 흐름은 분명했고.

그녀의 위세는 앉아서 숨만 쉬어도 점점 커져갔다.

제국 5기사의 말석.

기사의 최고봉 아센 프리밀러의 종자 출신.

생도 시절에 종자로 발탁되며 아카데미를 조기졸업 한 초신성.

황실의 보검 등.

이제 20대 중반인 그녀에게는 벌써 여느 베테랑 기사들을 추월한 많은 이름과 명예가 따르고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수도에 있는 그녀의 저택만 봐도 5기사의 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덜그럭ㅡ

"식사 중에 식기소리를 내지마라."

"죄,죄송합니다···."

"하아 ㅡ "

에클레어의 한숨에 클로에는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로프티 아카데미에 입학을 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며 조금은 편해질거라 생각했는데!

평소에 대화도 거의 안하던 언니가 연락이 오더니 아깝게 기숙사에 돈 쓰지말고 자신의 저택에서 지내라 한 것이다.

위치도 좋고- 안전하고- 넓고- 누가봐도 반박할 수 없는 장점이 수두룩 했지만.

마음의 안정과 한적함을 원했던 그녀의 입장에서는 정말 미칠 것 같은 일이다.

하나뿐인 언니가 부담스러워 기숙사에서 혼자 지내고 싶다?

숨막혀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거기에 생도의 본분에 충실하라며 어떤 일도 돕지 못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굶고싶어!!!'

아침은 매번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멀쩡한 사용인들을 두고 그 고명한 '에클레어 드리트나'가 직접 준비한 건강식이다.

클로에의 입장에서는 음식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내가 음식을 먹기는 한건지도 모를 식사시간이 되어버렸다.

"이번에 새로운 수업을 시범운영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모험가가 잘 가르치고 있나?"

"아직 수업이 몇번 진행되지 않아서···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황실과 연이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은 모험가다. 일단 배우면 사용 할 기회는 있겠지. 열심히 해라."

"알겠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아카데미에 갈 준비를 하고있으니 언니는 준비를 마치고 이미 저택을 나가고 있었다.

'엄청 빠르다···.'

언니는 자신과 외형은 비슷한데 알맹이가 어찌 저리 완벽할까.

그나마 우세한걸 하나 꼽자면 신장은 자신이 더 크다.

가슴은 커봐야 검을 휘두르는데 방해가 되니 장점이라 볼 수 없겠지.

그 외에 외형에서 다른거라 해봐야 머리와 눈동자 색인데···.

'···그럼 뭐해.'

제일 중요한 검의 재능에 있어서는 종족 자체가 다르다.

자신은 덤벼드는 순간에 반으로 쪼개지겠지.

'여기서 3년 동안 어떻게 살지···.'

*****

'오늘은 진짜 바쁘구나.'

모험가 길드 찍고 정보 길드 찍고 아카데미에서 하루를 마무리 할거라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황실의 호출에 길드로 돌아와 접견실에 박혀있다.

지금 상황에 또 시덥잖은 일을 시키면 황실이라 해도 거절하는걸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한다.

'리케는 일단 기숙사로 가려나?'

챙겨야 할 물건이 몇개 있다했으니 어쩌면 내가 더 빠르게 집에 갈지도 모르겠다.

리케가 있는 이상 지금 집보다 넓고 외곽 보다 안전한 집으로 이사를 가야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골목 부랑자들이라 해봐야 일반 생도들에게도 작살 날 녀석들이지만.

혹여 치근덕거리면 그냥 엉키는것 자체로 기분이 더럽다.

하루가 불행해지는 느낌이랄까.

'나중에 리케랑 이야기 해봐야겠네.'

똑 - 똑 - 똑 -

-들어가겠다.

멍 때리며 물이나 마시고 있었는데 드디어 대단한 분이 행차하셨다.

직급과 짬이 있는데도 귀찮은 일은 자신이 직접 처리하는게 아직도 그대로다.

"오랜만이네."

"음-"

"이제 의뢰 전달 정도는 밑에 종자들이 해도 되는거 아냐?"

"황실의 손길이 닿은 물건이다. 그럴 수 없지."

내 말에 가볍게 반응하며 허리에 착용한 검을 풀며 들어온다.

동여 맨 은발에 나와는 달리 밝은 빛을 내는 붉은색 눈동자.

제국의 5기사 에클레어 드리트나.

본인의 의지가 아닌 황실의 기사로서 일을 한 것 이지만.

도란 에스카로의 팔을 아주 깔끔하게 잘라준 장본인이다.

'오히려 너무 잘 잘라줘서 본인은 고마워하겠지.'

그녀는 당당한 걸음으로 다가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은 그···이름이 뭐더라? 덩치가 안보이네?"

나는 매번 에클레어 옆에 붙어다니던 한명이 안보여 접견실 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접수원에게 추파라도 던지고 있나?

"···그대가 교단 신세를 지게 하지 않았나."

내 말에 에클레어가 눈가를 좁히며 한숨을 쉬었다.

'아! 그랬었지.'

어쩐지 안보이더라니 나도 깜빡 잊고있던 사실이었다.

"아니 그게 몇달 전 일인데··· 흠흠- 모른다면 알아둬. 남자는 원래 입을 쓰든 몸을 쓰든 싸우면서 친해지는거다."

"말도 안되는 모험가식 궤변이군. 우리 기사단은 다툼없이 돈독하다만."

"믿는건 고귀하신 기사님의 자유고. 나한테 시비 걸길래 배짱이 있는 놈이라 생각했는데···포기 했으면 실망이야."

"···그런 일이 또 생길까봐 애초부터 두고 온 것이다. 억측하지 말도록. 그보다는 의뢰다."

그녀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허리를 쭉 펴서 나를 노려봤다.

"내용을 듣고 판단해도 되는거지?"

"···아무리 백금이라도 장난은 적당히 하지. 황실의 의뢰다."

내 진심을 장난으로 이해 한 그녀는 품에서 붉은색 용이 휘감긴 서신을 꺼냈다.

우는 아이도 뚝 그친다는 황실의 뜻.

저걸 열어보기 전까지는 에클레어도 내 의뢰가 무엇인지 모른다.

매번 대리로 낭독하던 그녀는 서신을 풀지않고 내게 건냈다.

"이번은 조금 예외적인 일이지만···서신은 혼자 보도록."

"불안하게 왜이래?"

"나한테 묻지마라. 그것조차 황실의 뜻이다."

"얼마나 대단한걸 시키려고 ···."

펄럭-

나는 매듭을 대충 잡아뜯고 서신을 펼쳤다.

"음?"

내용은 영역에서 혼자 벗어난 늪고래 한마리를 최대한 깔끔하게 죽여달라는 것.

늪고래가 이대로 연방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해결 해달라는 이야기다.

'굳이 에클레어가 들으면 안될만큼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아닌데?'

늪고래는 제국에서 몬스터가 아니라 영물로 분류되는 생물.

이처럼 터전을 벗어나 민가를 부수거나 이동을 거듭하여 타국에 넘어갈 것 같은 상황이 아니면 사냥하는게 엄격히 금지 되어 있는 종이다.

귀하다고 밀렵꾼들이나 용병들이 제국의 눈을 피해 몰래 잡는 것도 힘든게, 덩치가 워낙 커서 이동을 시작하면 비밀로 하기도 힘들다.

지방층과 가죽이 오러가 없으면 상처도 못낼만큼 견고하기도 하고.

나는 대단할 것 없는 이 서신이 비밀인 이유를 더 내려가서 알 수 있었다.

첫번째 요구사항.

늪고래의 심장은 손상시키지 말 것.

두번째 요구사항.

의뢰 달성 후 늪고래 처리는 황실에서 파견한 인물에게 일임할 것.

··

··

나머지는 매번 적혀있던 비밀협약에 대한 이야기.

'늪고래의 심장···딱히 효과가 없을텐데?'

이건 글로 적지만 않았지 늪고래라는 영물의 심장을 먹겠다는 뜻이다.

제국에서 금지 되는 사항을 황족 분들이 솔선수범 행하고 있다.

'역시 제국은 꼬라지가 예술이야.'

의뢰가 매번 그렇지만 황제는 검증된 건강식품 보다 입소문이 난 미상의 물건에 관심이 지대한 것 같다.

이런 취향은 게임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사항들이었다.

'보수는 역시 화끈하고···위 사항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에클레어와 협의···.'

"빠져나온 늪고래가 지금 어디있는데?"

"역시 그 이야기였나."

에클레어는 내가 서신을 읽고있는 동안 팔짱을 끼고 감고있던 눈을 살짝 뜨며 답했다.

"지금과 같은 속도면 5일 후 도바트에 접근 할 예정이다."

도바트면 옛날에 크게 허탕 친 히든피스가 두개나 있는 곳이다.

이왕 간 김에 다시 확인 해도 괜찮을터.

"이동용 게이트는?"

"지금까지와 다를것 없다. 왕복으로 지원해주지. 식비와 숙박비 포함이다."

나는 서신을 반으로 접어 그녀에게 건냈다.

"의뢰는 받는다고 전해줘. 이건 읽지말고 소각하시란다."

에클레어는 서신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준비한 성냥을 꺼내 불을 붙였다.

툭-투둑-

까맣게 타버린 종이가 에클레어의 마나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이제 용건은 끝?"

"···그래 끝이다."

살짝 꿍해보이는 그녀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던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안그러더니 왜 말끝을 늘리고 그래?"

"별건 아니다만···지금 아카데미에서 교관을 하고있다고 들었다."

"해봐야 주에 한번···? 임시라도 아카데미 교관이 되니 성실하고 착실한 사람이 된 기분이지."

"그런가. 수업은···생도들은 잘 따라오나?"

나는 이 말을 꺼낸 이유를 알고있다.

에클레어 드리트나의 유일한 역린.

클로에 드리트나가 1학년으로 기사학부에 속해 있으니.

"천하의 5기사도 동생은 신경쓰이나 보네. 그냥 편하게 물어봐."

"····그런게 아니다. 백금이나 되는 모험가가 교관을 하고 있다길래 신기했을 뿐."

검을 허리에 차며 급하게 일어나는 에클레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될 걸. 피곤하게 사는구만."

"넘겨짚지 마라···혹시라도 그런 입소문이 나지 않게 조심하도록. 입소문과 편애는 그 아이를 죽일 위협 밖에 되지 않는다."

"입 밖에 내지 않을 테니 걱정마셔. 재능이 있는 아이니 주에 한번이라도 제대로 굴려줄게."

나는 접견실을 나서는 그녀의 등을 보고 말했다.

분명 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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