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 그녀를 위한 모험가의 사교육 -6-
한 칸 위 계단- 부실한 난간에 기댄 채 아래를 슬쩍 본다.
척 봐도 입구부터 이어지는 길은 좁다.
갱도처럼 이어진 길의 끝에는 칙칙한 색의 나무 문이 있는데 그 앞에 사람 하나가 의자를 두고 앉아있다.
'워해머를 휘두르기에는 좁고 마나를 담아 마구잡이로 휘두르면 길이 무너질 것 같은데-'
일단 뒤에서 살금살금 따라오는 리케를 수신호로 멈추게 한다.
나는 무기를 바꾸고 상체를 숙여 숨을 멈춘 상태로 조심히 입구로 향했다.
이 정도면 리케는 내가 무기의 모양을 바꾸는 스킬이나 수납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걸로 생각하지 않을까.
스스슥-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손톱을 관리하는데 여념이 없는 남자에게 미끄러지듯 내달렸다.
"···!"
코앞까지 일순.
멍때리며 입구에 앉아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입을 틀어잡아 벽으로 밀어붙인다.
푹!
한 손에 들린 송곳을 관자놀이에 박아 넣고 동공이 풀리는 걸 확인하고서야 나는 손에 힘을 풀었다.
벽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진 시체를 발로 눕혀두고 나는 리케가 올 때까지 달려온 길을 다시 한번 살폈다.
네마 나타스가 제물과 권력을 추구하는 하나의 집단인 이상 흑마법사만 모이지는 않는다.
지금 거룩한 여신을 만나러 떠난 이녀석도 흑마법사라 하기에는 복장이 가볍고 벨트에 단검이 두개 걸려있다.
나는 주인을 잃은 단검 두 개를 빼들고 송곳을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다 손짓으로 리케를 문의 정면에서 비키게 한 뒤 문고리를 살짝 누른다.
끼이이이이-
고리가 풀린 문을 발로 느릿하게 밀어서 연다.
동시에 시선은 빠르게 움직인다.
마주 보는 탁자에 앉은 5대5 남자 하나.
탁자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술병을 들고 있는 여자가 또 하나.
구석에 턱을 괴고 책을 보는 대머리 놈이 마지막.
이들은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평화로웠다.
문소리에 적의 없이 심드렁한 시선이 집중되는 지금.
[ 불스아이 ]
투척류의 명중률이 상승하는 스킬.
손끝에 감도는 스킬 혹은 괴력난신이 양손의 궤적을 이끈다.
팍! 팍!
탁자에서 단검으로 인한 두 개의 핏물이 튀는 동시에 구석을 향해 몸을 날렸다.
"뭐 하는 새···!"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벌떡 일어서려는 대머리의 목을 발로 걷어찬다.
[ 교룡각(嚙龍脚) ]
콰드득-!
"꺽-!!"
대머리의 목이 사나운 야수에게 물린 것처럼 뭉텅 찢겨나갔다.
교룡각은 용이 물어뜯는 동작과 의식을 마나로 표출하는 각법으로 인간이 발 하나로 만들었다고 믿기 힘든 상처를 만든다.
게임에서도 출혈이라는 쏠쏠한 상태 이상을 높은 확률로 동반하기에 인기가 있는 스킬.
인간형을 상대할 때는 이만한 게 없다.
"들어와"
보이지 않게 바깥에서 대기하던 리케가 주위를 둘러보며 들어온다.
나와 함께 간단하게 방을 뒤져본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내가 먼저 열어보고 그녀는 눈으로 한 번씩 확인을 거친다.
'지부 안에 흑마법사가 없나?'
대머리가 읽던 책은 흑마법이 아닌 승마에 관한 것이었다.
탁자에서 마시던 술도 싸구려에 역시 말단들인가···가치 있는 자료가 없다.
-
거기서 바로 옆방.
문을 여니 커튼으로 한 번 더 막혀있는 기묘한 방이다.
"····"
다 큰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수십이 되는 인원이 좁은 방에 처박혀있다.
호흡도 하고 눈도 깜빡이지만 동공이 풀려있고 열린 입에서 침을 흘리며 천장만 멍하니 보고 있다.
나야 몇 번이고 본 적 있는 상황이지만 리케는 이 영문모를 상황이 공포스러울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은···."
"제물로 쓰려고 준비한 거다. 살아만 있으면 제물로서 가치는 같으니. 이동하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면 정신이 망가진 백치 상태가 좋은 거지."
"····"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근처에 살아있는 흑마법사가 있었다면 내가 다 정리했을거다."
"···모험가님 말이 맞아요."
"우리가 여길 정리하면 교단이 와서 뒤처리를 해줄 거다. 가자"
*****
시작부터 모험가가 아닌 용병으로 굴러먹으면서 네마 나타스의 간부가 된 지금까지 크리벤토가 살아남은 이유는 강해서가 아니다.
물론 자리와 경력만큼의 실력은 있지만 그것보다 큰 그의 무기.
그는 유달리 감이 좋다.
평생을 감 하나로 죽을 위험을 피해왔고 오늘 아침에도 분명 신호는 있었다.
드물게도 악몽을 꾸고 새벽에 여러 번 눈이 떠졌다.
네마 나타스의 간부가 되어 지부 관리자로 편하게 앉아있다 보니 무뎌진 걸까?
그 신호를 무시한 죄는 컸다.
'좆됐군.'
오랫동안 공들여 기른 콧수염에 절로 손이 간다.
초조함에 배가 아파온다.
인생의 반 이상을 보낸 용병의 삶은 강약약강이 기본이며 필수.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강인한 무력이 아니라 상대를 가늠하는 눈치다.
그 기본이 안되면 규율이 없는 용병의 세계에선 하루도 버틸수없다.
크리벤토는 누구보다 그게 자신있었다. 그렇기에 문을 열고 들어온 상대를 보고 절망했다.
"맞아! 기억났다. 여기가 마지막이군."
영문모를 소리를 하며 들어오는 로브를 입은 남자를 보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보고 있는 눈동자가 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이게 지금 같은 인간인가 싶을 정도.
"소리도 못들었는데···우리 부하들은 다 죽었나?"
"궁금해? 하늘에서 만나면 물어봐라."
부웅-!
침입자는 손에 들고 있던 워해머를 집어던졌다.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피하려던 크리벤토는 발을 멈췄다. 워해머가 날아가는 궤적이 자신을 향하는 게 아니었다.
'설마···안돼!'
쿵!
우수수수ㅡ
로브를 입은 남자는 크리벤토 뒤에 있는 좁은 출입구를 무너뜨렸다.
크리벤토가 무너진 출입구를 허망하게 보았다가 그를 다시 보니 이미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둘러봤다.
"누굴 찾는지 모르지만 내가 아니라면 살려주면 안되겠나?"
흑마법사가 아닌 자신은 네마 나타스와 의리 따윈 없다.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가진 건 다 팔아도 된다.
배신으로 인한 네마 나타스의 추적은 또 차후의 문제. 일단은 지금이 중요하다.
"하하- 살려달라는 말 치고는 너무 당당해서 고개를 끄덕일 뻔했잖아."
"그럼 무릎이라도···."
"잠깐-"
문밖에 뭐라 말을 하더니 로브를 쓴 인영 하나가 방에 들어왔다.
'힘의 격차가 저렇게 심한데 같이 다닌다니···무슨 사이지?'
로브끼리 맞붙어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칼을 든 자가 앞으로 나왔다.
"지금부터 질문을 할 거다. 거짓말을 해도 좋지만 그렇다면 좋은 꼴은 못 볼 거다."
"질문에 답을 하면 살려주는건가?"
"자 첫 번째 질문."
"···"
살려준다는 말은 거짓말로라도 하지 않는 상황에 크리벤토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휘어진 콧수염마냥 뻔뻔하다 불릴 만큼 포커페이스가 뛰어난 그라도 이런 상황에서 감정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다.
지금 마주한 스타일의 인간을 잘 알기 때문.
"헬 브룸은 이 지부에 있나?"
"그 망할 너구리영감···결국 사고를 쳤나."
"질문에 답부터 해라."
"여기에 없소···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있으니 거래를 하지 않겠나?"
크리벤토는 유일하게 살아나갈 출구를 찾았기에 승부수를 던졌다.
이 두 명과 자신은 무관하고 일면식도 없는 상황.
솔직한 심정으로 사고는 그 노인이 친것 같은데 자신이 보복을 당하는 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구도시로 갔나?"
"틀렸소. 당신들이 절대 알 수 없는 장소요. 그러니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떻소?"
다행히도 둘은 헬 브룸이 어디 갔는지 모른다. 크리벤토는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어떻게든 잡았다.
'제발 좀 답을 하라고!'
사실 정답이 나와도 크리벤토의 입장에서는 틀렸다고 해야 한다.
지금 미치겠는 건 거래를 하자는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있는 남자의 태도였다.
자신을 죽이기로 완전히 마음을 먹은 것이다.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로 배가 쑤셔온다.
이제 인생에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생각했는데!
여유롭게 앉아 흑마법사가 오면 얼빠진 인간들만 넘겨주면 되는 편한 일이다.
부하들이 솔선수범 더러운 일도 다 해주니 그는 나와서 앉아있기만 해도 충분했다.
크리벤토는 칼로 손바닥을 툭툭 치며 고민하는 남자의 입이 열리기를 한창이나 기다렸다.
"항구도시가 아니라면···소각장인가?"
"하아ㅡ틀렸소. 네마 나타스의 은밀함은 간부인 나조차도 두려울 정도요. 내가 아니면 헬 브룸의 경로는 알사람이 없을거라 장담하지."
크리벤토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평소처럼 어조를 지키는데 성공했지만 머리 안에서는 배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다.
헬 브룸이 실제로 소각장에 갔기 때문이다.
'소각장을 어떻게 알았지? 네마 나타스 안에 배신자가 있는건가···.'
이 남자를 어디 지부로 폭탄돌리기 해야할지 고민이었다.
저 괴물을 맞상대하여 죽여줄만한 인물을 빠르게 골라놔야한다.
"응?"
뒤에 가만히 서있던 인영이 남자의 로브를 당겼다. 그리고 다시 둘만의 이야기를 쑥덕거리며 시작한다.
'이대로 그냥 나가줬으면···.'
잠시 지나니 이야기가 끝난 건지 남자가 내 앞에 다가왔다.
"야 ㅡ"
"···말씀하시오."
로브 안에 보이는 남자의 입꼬리가 쭈욱 올라간다.
소름 끼치는 미소였다.
"소각장 맞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