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 - 그녀를 위한 모험가의 사교육 -5-
코븐에 있는 보육원 중에서도 제국의 도움없이 파산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보육원이 몇개있다.
그중 하나가 이곳 고르넥 보육원이다.
고르넥 보육원의 원장 고르넥.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딱딱한 원장님이 아니라 편하게 할머니라고 불릴만큼 자상하다.
얼굴에 주름이 지고 나이를 먹고 머리는 백발이 되었지만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지고 있으니 아이들은 의심없이 잘 따른다.
그런 그녀에게도 고민은 불시에 생겨난다.
'노숙자들에게 하수구로 끌려갔다고 하는게 좋겠어···'
며칠 전에 교단의 인물들이 찾아와 헌신과 봉사에 감사한다며 제법 많은 양의 음식을 지원하고 갔다.
몇달전에도 찾아온적이 있었지만 이번에 무시하기 힘든 귀찮은 말이 나온것이다.
-어라? 저번에 봤던 아이가 안보이네요?
어린 수녀의 말이었다.
잠시 놀러나갔다는 말로 둘러댔지만 다음에 왔을때도 보이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다음엔 어설프게 변명하는게 아니라 확실하게 대상을 정해 떠넘겨야한다.
치안이 안좋은 코븐이니 적당한 변명거리는 많다.
이런건 증거보다 일관된 진술이 중요하니 미리 정해두는게 정신이 편하다.
"끄응···허리야··"
나이를 먹으니 아무리 돈을 써도 허리가 쑤셔온다.
노화라는 자연적 현상을 무시하는건 자신에게 아직 먼 길이었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또 잠깬 아이들의 장난이겠지.
자는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상한 이미지를 버리고 혼쭐을 내야한다.
정말로 납치라도 된다면 손해가 막심하다.
"쯧-"
허리를 두들기며 원장실을 나가는 순간 고르넥은 움직임을 멈췄다.
어둠속에 서있는 로브를 쓴 인영이 두개 보였다.
비명을 지를만큼 놀랐지만 그녀는 겨우 정신을 잡았다.
"누,누구 신가요?"
"손님"
앞쪽에 서있는 로브에서 남자 목소리가 나왔다.
한손에는 길쭉한 워해머를 들고 자신을 보고있다.
워해머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신성···.
'···교단인가!'
어떻게 벌써 눈치를? 겨우 고아 하나 안보였다고 그 수녀 말을 듣고 뒤를 캐기라도 한건가?
손에든 병장기는 척봐도 좋은 목적으로 온게 아니었다.
이대로면 원장실에서 이어져있는 하수구도 위험하다.
'겁먹고 제 발 저리는걸 보이면 안된다.'
아직 덤벼들지 않는걸 보면 저 둘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일터.
'생각해라! 생각!'
고르넥은 단지 운만으로 이 시간을 살아온게 아니다.
먹고 사는 기본적 처세술은 갖추고 있다.
"좋은 뜻을 가지고 먼 걸음 해주신건 감사하지만 아이들은 지금 자는 시간이라 만나는게 어렵습니다··· 이런시간에 찾아오시면 저도 곤란하구요."
손님이라 했으니 모른척 보육원에 온 손님처럼 대한다.
남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후드 안으로 손을 넣어 귀찮다는듯 턱을 긁는다.
"잘봐라-"
그는 뒤에 있는 자에게 교육이라도 하듯 말했다.
남자의 낮은 목소리와 동시에 분위기가 반전된다.
남자의 뒤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안광이 거슬린다.
허나 고르넥에게는 그것을 경계할 여유가 없다.
쿠구구구ㅡ
고르넥의 나약한 신체를 찌부러뜨릴 살기가 옥죄어온다.
숨이 껄떡 넘어갈것 같은 살기와 마나의 압박.
'이,이놈!'
어디서 힘 좀 쓴다는 쓰레기들과는 격이 다른 자다.
자신의 힘으로 이 남자를 절대 거스를 수 없다는걸 빠르게 납득한 고르넥은 힘을 쥐어짜 입을 열었다.
"으극····왜,왜이러십니까! 아아악!!!"
소리를 빼액- 질러도 바로 옆방에서 자고있을 아이들의 반응이 없다.
뚜벅- 뚜벅- 뚜벅-
워해머를 어깨에 걸친 그가 한발 한발 다가온다.
날것과 같은 거친 마나에 교단의 인간이 맞나 의심이 들었다.
'흑마법은 쓰면 안된다···.'
여기서 자신이 죽더라도 쓰면 안된다.
하수구가 들키지 않아도 트리스탄의 땅인 코븐에서 증거를 남기면 일이 커진다.
네마 나타스의 번영을 위해.
저벅-
그가 한걸음 한걸음 다가올때마다 존재감이 미친듯이 커진다.
고르넥의 시선 안에서 불청객의 몸집이 점점 불어나더니 태산처럼 커져갔다.
어깨에서 불량스럽게 흔들리던 워해머가 천천히 들렸다.
'주,죽는···!'
-
인간은 죽음 앞에서 숨길 수 없는 본성이 나온다.
고르넥은 마음속으로 죽음을 각오했지만 그게 두렵지 않은건 아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과 흑마법의 진보를 위해 여기서는 반항하지 않고 죽는게 최선이다.
알고있다.
그녀도 알고있기에-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는 그리 간단하게 무시할수있는게 아니다.
그렇기에 희생과 순교라는건 숭고하다 하는 것이며 만인에게 칭송되는 것이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그녀는 번쩍 들린 워해머를 응시했다.
저 가증스러운 쇳덩이가 자신의 머리통을 쪼개고 자신이 이때까지 힘들게 쌓아온 모든 것은 덧없어 질것이다.
자신을 확실하게 죽이겠다는 살기가 몸을 파고들며 뇌를 찢어버리는것 같다.
딱딱딱.
공포에 잠식된 고르넥의 턱이 덜덜 떨려온다.
네마 나타스를 위해 장렬히 죽겠다는 이성을 본능이 짖누르고 살기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을 보인다.
"그아아아!!!"
마나로 움직임을 되찾은 고르넥이 괴성을 지르며 쭈글쭈글한 손을 뻗었다.
손 안에서 검은 불꽃이 모여 구체를 그린다.
쩍!
고르넥의 시야가 암전한다.
*****
내가 보육원 입구에서 사용한것은 수면향.
뒷골목에서 판매하는 것으로 제국에서는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물건이다.
마나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건장한 성인에게는 통하지 않는 물건이지만 어린이나 노인은 저항하기 힘들다.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는 늙은 흑마법사는 그것을 인지도 못하고 당당하게 나와 웃기지도 않는 연기를 시작했다.
나는 이 노인의 본성을 알고있다.
내가 한발한발 다가갈수록 죽기싫다는 증거들이 전신에서 쏟아져 나온다.
공포라는 상태이상에 몰리니 초점이 흐트러지며 듣기힘든 비명과 함께 흑마법을 캐스팅한다.
"그아아아!!!"
쩍!
워해머가 고르넥의 골통을 깨부순다.
뭉쳐있던 흑마법이 시전자를 잃고 허공에 흩어진다.
나는 워해머를 허공에 한번 휘둘러 끈적하게 붙은 핏물을 바닥에 뿌렸다.
촤아악-
[ 스털링 워해머 ]
▷언데드에게 추가 데미지를 가합니다.
▷신성을 품고있습니다.
-신실한 수녀들의 로사리오를 녹여 만들어낸 워해머다.
은퇴한 성기사와 술대결을 해서 뜯은 물건으로 오랜만에 써도 손맛이 죽이는 명품이다.
"어때?"
"확실해요. 그날과 똑같은···."
리케는 자신의 눈으로 고르넥의 마나와 흑마법을 봤다.
몸이 떨리는 분노를 넘으니 반대로 침착해진 리케는 머리가 부서져 처참하게 죽은 노인을 응시했다.
잔인하다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은 리케에게 한편의 명화.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 그림을 보게 되었다.
얼룩진 인생에 이 순간을 고대해왔다.
이제 헬 브룸을 찾아 진상을 캐내고 똑같이 만들어 주면 된다.
"····"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생은 나 혼자서는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가시밭길이었다.
삶이란 하늘에 태양이 있는걸 알면서도.
빛이 내려와 바닥을 비추어 하늘에는 따스함이 있다는걸 알면서도.
도저히 고개를 들고 위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랬지만···
리케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남자의 등을 보았다.
-
나는 머리가 반만 남은 노인의 시체를 원장실에 던져두고 구석에 있는 옷장을 빼냈다.
바로 뒤에 있는 작은 문.
그 문은 성인도 허리를 숙이고 지나야할만큼 낮다.
문을 열면 지하로 이어진 허름한 목재계단이 우리를 반겨준다.
물이 찌든 습한 냄새와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려던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아무리 백금이라도 이런걸 어떻게 다 아는지 궁금하지 않아?"
워해머라는 길쭉한 물건을 품에서 꺼내도 리케는 어떤 말도 하지않았다.
"···궁금 하지만 모험가님을 그냥 믿어요."
"그래? 좀 감동인데."
"···이만큼 받았으면 당연히 믿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내가 좋아하는 히로인이 나를 의지한다는 감동이지만 그녀는 다른쪽으로 이해한것 같다.
나는 그녀의 순진한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주는만큼 신용을 얻고 그만큼 되돌려준다··· 이상적이지만 세상사와 인간관계라는건 그리 단순하지 않지."
"···"
"이러다 이야기가 길어지겠네. 여기까지 하고 이제 가자 들어가면 내가 말한거 잊지말고."
"네"
*****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갈수록 물냄새와 악취가 진해진다.
하수구가 가까워지니 귀에 물소리가 미약하게 잡힌다.
나 혼자라면 발소리를 최대로 줄여 하나하나 잘라나가는게 이상적이지만 리케가 있는 이상 그건 힘들다.
원래는 리케를 숙소에 두고 혼자 정리한 다음 데려오려 했다.
( 저와 관련된 자들···헬 브룸이나 그 기사는 제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어요. )
강직하면서도 애절한 눈빛을 뿌리니 나는 어쩔수없이 그걸 허락했다.
리케가 스토리 중간쯤 가면 주인공에게도 똑같이 하는 말이다.
주인공도 하는데 내가 못할리가? 이왕 돕기로 했으면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내려가자마자 하나? 둘이었나?'
위치 자체는 알아도 적의 배치같은 세부적인 사항은 기억날리 만무하다.
믿을건 마나를 이용한 색적과 발달된 감각.
나는 손에 들린 무기를 강하게 쥐었다.
저 아래 계단의 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