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 - 의뢰 그리고 쿠키 -2-
그녀에게 다른건 필요없다.
단순히 모험가에게 의뢰 가능여부를 듣기만 하면 된다.
그때 만난 흑마법사와 엮인 모든걸 죽이는건 자신.
자신이 봐도 욕심이지만 이것만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사항이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건 본신의 무력과 믿을 수 있는 정보였다.
누가 연관되어 있는지 그날의 내막을 조금이라도 들춰봐야 한다.
'····'
길에 지나가는 꼬마도 알만큼 뻔한 이야기지만, 흑마법사에 관련하여 제국도 아니고 일개 개인이 파해치는건 아주 위험하다.
그것을 사주한 자.
의뢰를 받고 행동하는 사람의 위험 그 전부 두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원하는 사람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춤출 수 있는 사람이지만.
냉정하게 나는 어떤가.
남은 돈도 얼마 없고, 내세울 재능 하나 없으며, 신용과 보증을 보이기엔 이미 완전히 기울어진 귀족.
그런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어줄 사람?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원하고 있는 자신이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느껴져 혐오감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제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한 그 남자라면.
호색한이라는 소문이 있어도 그만큼 자기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대가에서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을까.
(내 기준에선 미인이네. 답이 됐을까?)
'또렷한 진실.'
그만큼 선명한 감정은 처음이었다.
마치 자신에게 보라는듯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느낌이었다.
-
리케는 그날 모험가 길드에서 나오자마자 기숙사로 돌아가 검을 들었다.
애초에 졸업할 생각이 없는 아카데미였다.
기숙사에서 지낼수만 있도록 아슬아슬한 출석률을 유지한다.
남은 시간은 방에 틀어박혀 검을 휘둘렀다.
요즘따라 끝도없이 밀고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누르기 위해 머리를 비웠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감정들이 자해와 자학의 길을 유혹해왔지만 육체의 고단함으로 덮어 모른척했다.
그렇게 마음이 어느정도 정리되었을때.
나는 모험가 길드로 가서 그를 만났다.
의뢰에 대한 이야기를 위해 모험가를 따라간 가게는 처음 봤을때 누군가의 연구실이라 생각했다.
갑과 을의 관계가 명확하기에 군말하지 않고 따라갔다.
인테리어가 참혹하다 못해 백번 양보해도 가게라고 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쿠키는 진짜 기가막히거든.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
식욕이 예전보다 더 사라진 지금.
속에 무언가를 넣고싶지가 않았다.
그나마 따뜻한 우유라면 조금 마실 수 있을것 같다.
"저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와서 우유로 괜찮···?"
평소처럼 돌려서 거절하려 했는데.
막 만든 것인지 쿠키의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이 냄새는····.'
리케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듯 그날에 잠겨들었다.
어머니의 취미는 제과였다.
간식을 만드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고소한 냄새에 입맛만 다시는게 전부였던 과거들.
어머니는 수제로 버터를 만들 정도로 솜씨가 좋았고 제과에 진심이었다.
그 수제버터의 냄새는 쿠키에 들어갔을때 시중에 판매하는 쿠키들과는 다른 향을 낸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향을 저 허접한 형태의 쿠키에서 느끼고 있다.
쿠키를 잡으려고 손을 뻗으니 주체못할 정도로 손이 떨려왔다.
손에 잡힌 쿠키를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아주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
나는 우리가 앉은 자리를 완전히 차단시켰다.
저 형제 중에도 마법사 출신이 있으니 내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리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벤트 일러스트에서는 마음이 정리되고 가벼워졌을때라 눈물을 살짝 훔치는 정도에서 끝이난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쿠키를 한입 먹더니 시간이 멈춘듯 그대로 굳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그만큼 절벽까지 몰려있다는 뜻이겠지.'
실전 수업을 할때가 생각난다.
그녀는 손가락이 기괴하게 꺾이고도 어떤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표정으로 티를 내지않으려 해도 생도 수준에서는 참으면 참는 티가 난다.
숨을 크게 삼킨다던가 발끝을 오므리는 등 자신도 조절할 수 없는 생체신호를 통해 티가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 고통을 참은게 아니었다.
-정신이 죽으면 육체도 죽는다.
리케에게는 살아가고있는 하루의 시간 조차도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그녀의 정신이 날개를 잃고 추락할수록 그녀는 감각에 무뎌지고 있다.
'이건 더 이상 두면 위험하다.'
게임에서도 타임어택이라고 서두르긴 했지만···.
실제로 본 감상은, 이 상태로 어떻게 한학기를 버텼는지도 미스테리다.
쿨쩍-
그녀가 정신이 들었는지 급하게 소매로 자신의 얼굴을 닦아냈다.
"죄,죄송합니다. 이런 추한 모습을···."
"힘이 들때는 시원하게 한판 울어버리는게 속이 뚫린다. 참으면 다 병이야."
"····"
"오늘 시간은 많아. 진정 되면 천천히 이야기하자."
나는 전생에 먹었던 과자맛이 나는 기억 쿠키를 하나만 집고 커피를 쭈욱 빨아마셨다.
남은 쿠키는 리케 쪽으로 슬쩍 밀어주었다.
그녀는 물기가 가득한 눈으로 쿠키를 착실히 비워나갔다.
지금 먹을수있게 준비한건 정말 몇개 안되는 양이지만 그녀는 하나하나를 천천히 맛보며 눈에 아주 약한 생기를 품었다.
그녀에게서 피어나는 당장이라도 꺼질듯한 불길.
하지만 그 초라한 불은 꺼질듯 하면서도 꺼지지 않는 끈질김이 있다.
이 불길에 정해진 형태는 없으며, 누구하나 이것의 생김새를 규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와 세상의 모두 이 무형의 존재를 인식하고 알고있다.
우리는 이걸 '의지'라고 부르고 있다.
-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있고 눈은 부었지만 그 자체만으로 나에게는 귀중한 그림이었다.
그녀는 예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딱히 외모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지 얼굴을 가리는 일은 없었다.
잠시 후, 진정이 됐는지 차단된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모험가님은 스카디 후작가문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남들이 아는만큼··· 보다는 더 알고있지."
내가 '아카라이트'의 지식을 알고있지 않아도.
백금에게는 정말 많은 정보가 흘러들어온다.
모험가 길드에서 공짜나 다름없이 정보를 공유해주기도 하며.
그냥 잘보이기 위해 무상으로 가십거리를 보내는 귀족이나 하위 모험가들도 있다.
귀족들이 제공하는 가십거리에는 스카디 후작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것도 아주 높은 지분으로.
어쩌면 제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 된 스카디 후작의 배우자 가문만이 아니라 스카디 후작도 흑마법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런 내용은 다루는 것조차 위험하다 보니 항상 익명이었다.
"저희 가문이 무너진 날-·· 정정하겠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날 부터 저는 줄곧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몇가지 안고 살아왔습니다."
"어떤 의문?"
"어째서 가주님은 억울한 상황에 입장표명을 하지않고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고작 익명의 제보따위로 제국의 3기사가 집행을 하러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리고?"
그녀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눈가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모든걸 알리기 위해서는 눈에 대한 설명부터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까지 들어가야하니 설명에 고민이 될 것이다.
"모험가님. 제 말이 믿어지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가끔 의도치않게 이상한걸 볼때가 있습니다."
나는 당연히 알고있기에 몸을 앞으로 기울여 듣고만 있었다.
"이건 저 혼자만 품고있던 이야기지만···."
그녀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입술이 찢어질 정도로 강하게 씹고있다.
느릿하게 심호흡을 몇번 하더니 가슴팍에서 작은 메모장을 꺼냈다.
"후우ㅡ·· 제가 말주변이 없어 전해야할 사항들을 글로 적어왔습니다."
나는 네모난 메모장을 받아 한장 한장 넘겼다.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꾹꾹 눌러서 메모장을 가득 채워놨다.
[··· 저는 후작가에 집행을 하러왔던 기사들에게 그리고 저항도 하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사용된 무언가에게서 동일한 것을 보았습니다. ···]
[··· 당시는 지식이 일천하여 그게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흑마법사 하나를 공개처형한 장소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왔었던 인물들이 무엇인지··· ]
이야기에 구멍이 너무 많았지만 나는 내막을 다 알고있다.
그녀는 최대한 덤덤하게 기다리면서도 주체못한 눈동자가 흔들리고 전신이 덜덜 떨려온다.
얼핏보면 그 행동에 어울리는게 두려움이라 하겠지만 그녀는 넘치는 분노에 몸을 떨고있는 것이다.
나는 몇장에 걸친 메모장을 다 읽고 리케에게 돌려주었다.
"잘 읽었다. 내용만 이야기 해보자면··· 그때 대표로 간 3기사가 흑마법사와 관계가 있거나 흑마법사고."
"맞습니다."
"그때 집행을 위해 스카디 후작가로 간 기사들도 멀쩡한 것들이 아니고 흑마법사와 유착이 의심된다?"
"정확합니다···."
내 입에서 다시 듣고나서야 자신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망상과 같다는걸 알아챘는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외부로 공개되는 순간 절대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니.
"그럼 의뢰하고 싶은 내용은?"
"···믿어주시는건가요?"
뜬금없이 믿는다 해도 이상한 그림이기에 나는 그것에 대답 하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있을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흑마법사 중에 속이는 재주가 좋은 놈이 있거든. 이렇게- 얼굴이 반쯤 누더기 같은 할아범인데."
"····!!"
리케는 입을 뻐끔거리며 양손을 뻗더니 내 소매를 꽉 잡았다.
혼자서 아무리 찾아도 흔적조차 찾지 못했던 것이 내 손안에 있다는걸 알아차렸다.
'내일은 바로 도서관에 가서 물건을 빼내고···수업을 끝낸 뒤···.'
"그놈들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의심가는 곳이 있다. 내일 아카데미가 끝나면 모험가 길드로 와. 그리고 이건ㅡ 내가 먹으려다 갑자기 고기가 땡겨서 주는거다."
나는 내 할 말만 하고 쿠키상자를 리케의 품에 떠넘기고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나는 떠올렸다.
"어? 의뢰비 이야기를 안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