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 - 의뢰 그리고 쿠키 -1-
접견실에 안내와 조율을 담당하는 접수원이 없는 상태로 3명이 앉아있다.
어색한 분위기에 나는 최대한 가볍고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제스처를 섞어 입을 열었다.
"자 여기 음료 하나씩 마셔. 접수원한테만 주면 섭섭하잖아. 먹는걸로 차별하는게 진짜 나쁜짓이지."
나는 소지품을 꺼내는 척 하며 인벤토리를 연결해 물약 두개를 꺼냈다.
그 물약의 색은 어두운 초록색으로 그리 입맛이 당기는 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액체를 담고있는 유리병은 고명한 조각에 비견할만큼 정교한 형태라 눈이 절로갔다.
[ 아니무스의 정수 ]
▷복용시 1회에 한하여 정신내성이 상승합니다.
▷불순물이 섞이면 효과가 사라집니다.
"잠깐만요! 이거 엄청 비싼거잖아요!"
감정이 끝난 물품이라 세리아와 리케의 눈에도 상태창이 보일것이다.
세리아는 이 물건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이해한 것이다.
재생물약을 '따위'로 만드는 가치.
자신이 평생 돈을 모아도 어쩌면 만질 수 없는 물건.
"안먹을거야?"
""····""
둘은 얼떨떨한 상황에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기회가 왔을때 잡는 것도 실력인데···싫으면 말고."
"자,잠깐!! 마실게요! 교관님- 나중에 다른말 하지마세요! 리케 너도 빨리 마셔!"
세리아는 유리병 하나를 열어 리케에게 먼저 건내고 나를 힐끔힐끔 보며 정수를 한번에 삼켰다.
좋게 말해도 맛있다고는 못할 물건이지만 병을 비운 그녀들은 자신의 몸에 생긴 긍정적 변화를 알아챘다.
그녀들이 부담스러운 말을 꺼내기 전에 나는 그것을 원천차단했다.
"고맙다는 말은 절대 하지마. 이런건 다 내 기분따라 하는 짓이라. 놀란 표정을 보는게 내 취미라고 생각하면 될거다."
"역시···한 분야의 정점에 이른 사람은 범인이 이해할 수 없다더니···."
세리아는 오히려 감동한 눈으로 나를 이해한다는 것처럼 보여 내가 당황스러웠다.
'뭐라는거야?'
내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로버트를 견제하는 행위다.
정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이상 제일 먼저 해야할 작업이다.
주인공이 아무리 잘생겼어도 하는 짓에서 이게 인간이 아니라 원숭이가 아닌지 지능이 의심되고.
도둑놈 새끼마냥 이기적이라고 느끼면 애초에 히로인들이 붙을까?
얼굴을 때먹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는 그걸 가능하게 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걸까?
[ 옴므 파탈 - D ]
▷당신의 행동에 여성들은 쉽게 호감을 느낍니다.
▷당신의 행동에 여성들은 쉽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이것 때문이다.
개연성을 초월한다.
남이 볼 땐 만악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패시브 스킬.
이것때문에 생도 수준인 주위 여자들이 헤롱헤롱 빔을 처맞고 정신을 못차리는 것이다.
초반 게임 난이도를 대폭 낮춰주는 스킬이지만 치명적인 점은 스킬이 D라는 점.
정신에 영향을 주는 스킬이다 보니 히로인들의 정신내성을 올리면 이 스킬이 통하지 않게되면서.
갑자기 주인공의 호감도 작업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럴 확률은 적을거라 생각하지만 리케가 혹시나 로버트에게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며 제공한 물건이다.
세리아는 그냥 같이 왔으니 덤.
"···그래도 이런 일을 그냥 넘어가는건···."
둘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연에 당황스러움만 보이고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업무 쪽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이 이야기는 이제 끝! 없었던 일이라 생각해라. 더 이상 이야기하면 의뢰고 상담이고 없다?"
다소 억지스러운 내 말에 그녀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아카데미 학장과도 이야기가 되어있는 사항이지만, 난 아카데미를 벗어나는 순간부터는 모험가다. 교관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어."
"···이해했습니다."
세리아는 감사를 금지당하니 봉인이라도 당한듯 입을 닫고있었고 리케가 대신 답을 했다.
"이제 그럼 의뢰 내용을 들어보자. 접견실에서 들은 내용은 허락없이 발설하지 않는게 모험가 기본계약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사항입니다만···전투 이외에도 의뢰를 받아주시나요?"
어떤 말을 할지 예측은 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확신은 불가능한 단계다.
나는 미약하게 올라오는 두통과 갑갑함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확신은 못해. 들어보고."
"···그렇군요. 의뢰비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되나요?"
"정해진건 없어. 비용을 결정하는건 의뢰에 대해 알고나서다."
리케는 바닥까지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의 얼굴에 있는 상처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내용을 정리해서 따로 한번 찾아뵈도 될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리아도 그녀가 일어나자 허둥지둥 몸을 일으킨다.
느릿한 속도로 인사를 끝낸 리케는 한박자 쉬었다 입을 열었다.
"그럼···돌아가겠습니다."
"어~ 조심히 가고."
접견실 문고리를 잡은 리케는 한창이나 문을 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왜? 또 궁금한게 있어?"
"교관···님이 아니라 모험가님. 저는 모험가님 관점에서 미인인가요?"
"···!"
왜 질문 받은 내가 아니라 옆에 있는 세리아가 놀라냐고.
나는 게임에서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녀의 행보에 흥미를 느꼈다.
그것 하나만으로 접수원을 물린 값은 했다.
"내 취향을 물어보는건가?"
"맞습니다."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미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리케 본인이 의도한건지 모르겠지만 접견실에 들어와 처음으로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저 질문의 골자만 보면 내게 호감을 표하는 행위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녀에게 있어서 그럴 일은 절대 없다.
"내 기준에선 미인이네. 답이 됐을까?"
"···감사합니다. 다른 것도 포함해서···."
*****
리케가 모험가 길드에 다시 찾아온건 '실전 1' 두번째 수업 바로 전날이었다.
오늘은 세리아가 동행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접견실에 가지않고 길드 입구로 나와 그녀와 서있었다.
"여기라도 외부로 누설될 가능성은 없지만, 의뢰할 내용에 대해서 듣는 사람이 늘어나는게 싫다면 길드가 아니라 다른 장소여도 상관없어."
흘러나갈 걱정은 없지만 접수원이 듣는것 조차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설명상 개인적인 트라우마나 자신의 잘못을 털어놔야 하는 상황도 있기에 흔히 있는 일이다.
따로 의뢰를 받고 내가 의뢰자를 익명으로 처리하여 길드에 보고해도 내가 길드와 맺은 계약상 문제없다.
"···그럼 어디로 가야할까요."
나는 머리에서 순간 떠오른 가게를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 중이다.
'지금 거길 가도 되려나?'
내가 언제 그렇게 깊게 생각이나 했던가.
당장에 가기로 결정한 나는 앞장서서 걸었고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내 뒤를 따라왔다.
"여기다. 들어가자."
"···?"
카페라 하기엔 간판이 없다.
연금술 용품과 시약 재료들이 테이블을 어지럽힌 상태로 앉을만한 자리도 없었다.
카운터에는 똑같이 생긴 남자 둘이 앉아있는데.
감각을 공유라도 하는건지 둘다 앉은채로 꾸벅꾸벅 졸고있다.
"장사 하시나요?"
-우당탕탕!
내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남자들이 아슬아슬하게 쌓아둔 책을 넘어뜨렸다.
"쓰,쓰읍- 어서왑샤!"
침을 닦아내고 잠이 덜 깬 멍한 눈으로 인사를 뱉는 모습이 장사에는 영 맞지않아 보인다.
어쩔 수 없다.
여긴 개발자 피셜, 리케의 호감도와 이벤트를 위해 만들어진 가게다.
당장에 이렇다 할 관계도 없는 내가 이걸로 호감도가 쌓일 일은 없겠지만.
막상 이렇게 축 처진채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보고있으면 뭐라도 해주고 싶은게 내 마음이다.
이 쌍둥이 형제 중 하나는 연금술사 하나는 이론에 충실한 마법사.
둘은 각자 업무분야에서 마음껏 갈리다가 지쳐서 퇴직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지식으로 크게 벌어서 늙으면 편하게 살자며 힘을 합쳐 사업을 시작한다.
그 결과물이.
[ 기억 쿠키 ]
▷특수 공정으로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그때 그 맛'을 재현합니다.
-아는 맛이 가장 무섭다!
제조법은 나도 알 수 없지만 먹는 사람이 가장 먹고 싶어하는 맛을 구현하는 쿠키다.
재료로 뭘 사용하는지 가격도 더럽게 비싸고 기본적인 인테리어 센스도 없어 손님이 없는 가게다.
지금도 간판이 도둑맞아 없어졌다는걸 모르는게 최고 미스테리다.
간판을 찾아주는 사이드 퀘스트도 있지만 지금 그걸 하고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카운터에서 가득 차있는 쿠키통을 확인했다.
"뭐 마실래? 있을건 다 있을거다."
아마도.
"저는 우유··."
"따뜻한거?"
"네"
"그 돈은 넣어두고 일단 자리에 앉아있어. 저기요! 테이블 하나만 치워주세요."
수건의 물기를 쭉 짜며 남자 하나가 우다다 튀어나왔다.
아마도 며칠동안 손님이 없었겠지.
있어도 쿠키 값을 보고 그냥 지나갔을테고.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연금술 용품과 시약재료를 한번에 들어 구석에 몰아둔 그는 테이블을 빡빡 닦기시작했다.
"여기 따뜻한 우유 하나랑 아이스 커피 그리고···기억 쿠키 있는거 다 주세요."
"다,다요?!"
"안파시나요?"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남자는 기회라 생각했는지 얼빠진 표정을 풀고 푸른 양철에 담아둔 기억 쿠키를 전부 꺼냈다.
"가격은 말하지 마시고 이걸로 계산해주세요. 몇개만 지금 먹을 수 있게 준비 해주시고 나머지는 포장 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품에서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를 꺼내 카운터에 올렸다.
등 뒤에서 보면 보이지 않을 각도다.
카운터의 남자는 뒤에 있는 리케를 보더니 이해의 표시로 나에게 윙크를 날리며 엄지를 척! 들었다.
'드럽게···.'
수염이 거뭇거뭇한 아재의 윙크라니 미친거 아닌가.
"마실건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테이블 정리가 끝난건지 리케는 의자에 앉은채로 허공을 보고있다.
보통은 이런 가게에 오면 신기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딱히 무엇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미안. 주문이 좀 걸렸네."
"죄송해요. 의뢰자인 제가 사야하는데···."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그때 사~"
카운터에서 쟁반을 들고 흔들흔들 불안한 발걸음으로 다가온 남자가 음료와 쿠키를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마,맛있게 드십쇼!"
그리고 다시 와서 어설프게 장식한 상자가 든 종이가방을 내 옆에 두고간다.
"여기가 인테리어는 센스가 없어."
"네··."
일체의 망설임이 없는 그녀의 대답에 알수있다.
느끼고는 있구나.
"그래도 쿠키는 진짜 기가막히거든.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
기억 쿠키의 형태는 이게 쿠키라 하기 미안할 정도다.
초코나 견과류도 안박혀있고 점토를 잘라내서 손바닥으로 꾹 누른것 처럼 생겼다.
하지만 이 쿠키의 진가는 효과에 있으니!
외형만을 제외하고- 냄새부터 맛까지.
기억속에 있는 모든것을 구현하는 마법의 쿠키다.
이 능력으로 하필이면 쿠키? 라는 의문이 들지만.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리케를 정조준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저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와서 우유로 괜찮···?"
말을하던 그녀의 코가 움찔거린다.
무표정했던 리케의 표정이 부서질듯 말듯 울렁인다.
"단게 좀 들어가야 머리도 돌아가서 이야기가 잘 된다더라."
츄라이! 츄라이!
나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지켜봤다.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쿠키를 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