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3화 (13/250)

Chapter 13 - 정사의 균열 -2-

모험가 길드의 문을 여는 순간 진한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느껴졌다.

"엑-! 술냄새!"

세리아는 자기도 모르게 코를 부여잡았다.

수도에 있는 모험가 길드는 처음이지만 어딘가 정신없고 혼잡한 느낌이다.

생각했던 자유로움과 동료애가 느껴지는 모험가 길드가 아니라 뒷골목에 있는 도박장 같았다.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고고한 강자도 없었고, 어디에서도 갑옷과 투구를 벗지않는 특정 종족학살자도 보이지 않는다.

첫인상은 이야기에서 본 모험가 길드와는 전혀 달랐다.

계단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있는게 무슨 사고라도 터진건가?

아래에서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울린다.

-이번엔 지지마라!!

-너한테 다 걸었다! 죽여버려!

-머리!! 머리에 쏴!!

-리자드맨 만만세!

막 문을 열고 들어온 둘을 보고있는건 헤어밴드를 하고 있는 여성 하나뿐이었다.

"어서오세요."

"저기···무슨 일이 있나요?"

접수원으로 보이는 그녀는 무표정으로 슬쩍 계단을 보더니 영업용 스마일을 지었다.

"늘 있는 일이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그런가요."

세리아는 해탈한듯한 얼굴의 접수원을 보고 순간 말을 잃었다.

"상담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무심한 얼굴로 상황을 보던 리케가 접수원에게 다가갔다.

"말씀하세요."

"백금에게 의뢰를 맡기려면 얼마가 필요한가요?"

세리아가 입을 떡- 벌리고 접수원은 순간 당황했다.

접수원은 빠르게 영업미소로 돌아왔다.

"죄송하지만 신분을 증명하실 수 있다면 설명드리기가 편합니다. 백금은 저희 길드의 최고 전력이라 쉽게 누설할 수 없는 점을 이해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누군데? 고용할 돈은 있고?' 라는 의미.

-와아아아!!!

-당분간 일은 안해도 되겠구만 흐흐.

-아이고! 저 병신! 또 졌네!!

계단쪽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리케는 신경쓰지 않고 품에 넣어둔 후작가의 증표를 꺼냈다.

"스카디 후작가의 장녀 리케 스카디 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접수원은 독특한 외눈 안경을 꺼내더니 여러가지 금속으로 만들어진 증표를 앞뒤로 확인했다.

확인이 끝난건지 혼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어나서 몇가지 서류를 챙긴다.

"안내해드릴테니 자리를 옮기도록 하죠."

"어···나는 밖에 있을게?"

지명 의뢰라는건 비밀스러운 것이다.

개개인의 치부가 드러날 수도 있고 알리고 싶지 않은 사항도 말해야 할지 모른다.

세리아는 당연히 같이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가격이 궁금하긴 하지만···.

"같이가자. 오늘은 듣기만 할거야."

리케의 작은 목소리가 세리아를 붙잡았다.

-

방음 마법이 설치된 접견실.

접수원은 비밀 누설을 하지않겠다는 자신과 모험가 길드 사이에 맺은 계약서를 보여주고 자리에 앉았다.

"일단 말씀드리지만 현재 백금 등급의 모험가 앞에 의뢰로 들어온건 500건이 넘습니다."

"···그럼 그 이후에 의뢰가 가능한건가요?"

"아닙니다. 의뢰가 들어온 것이지 받는 것은 온전히 모험가 본인의 의지입니다. 특히···모험가는 등급이 높을수록 돈보다는 흥미를 쫓는 분이 많습니다."

"흥미···."

"돈이야 많을수록 좋지만. 정말로 썩어버릴 정도로 돈이 생기다보니 돈 이외의 것을 원하게 되는거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견해라는 의견을 붙이며 접수원은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제일 최근에 돈'만' 받고 일한 백금 등급의 가격입니다."

"헉-!"

세리아는 슬쩍 종이를 보자마자 튀어나온 감탄에 입을 막았다.

리케도 놀랐는지 미세하게 눈썹이 좁아져있다.

"혹시··돈이 아니면 어떤걸 주로 받는건가요?"

아무래도 이 가격은 리케의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지 접수원에게 종이를 밀어서 돌려줬다.

"아이템, 영약, 영지, 저택 등 어떤 것이라고 정의 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치가 일절 없더라도 그저 흥미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겠습니다···."

접수원은 더없을 정도로 어두워져가는 리케를 보며 한마디를 더 얹었다.

"이건 본인이 언급해도 된다고 허락 하였기에 말씀드리는 사항이지만···아주 드문 일로, 술 한번 같이 마시는걸로 의뢰를 들어준 경우도 있습니다."

"백금이요?!"

리케보다 세리아가 더 놀랐는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예. 상식선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분들이니까요. 조금이라도 이해시켜 드리자면 의뢰자가 엄청난 미인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세리아는 듣고도 이해가 안된다는듯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저 금액이 아니라 미녀와 술자리를 고르다니 납득이 안된다.

"혹시 그분이 누군가요?"

리케는 옛날에 어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볼때 대륙 최고의 미인이었다.

자신은 어머니에 비해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하고 이미 상처로 얼굴이 망가졌지만, 리케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게ㅡ 지금 지하 선술집에 있을겁니다."

****

"보아라! 슬픔에 젖은 미망인을 탐하는 쓰레기는 내 정의로운 철권 앞에 무너졌다!"

-와아아!!!

-로만! 로만! 로만!

-처녀충! 처녀충! 처녀충!

-모험가 길드의 유니콘!!

노팅엄은 한쪽 벽면에 처박혀 기절해있다.

나는 팔뚝과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고 노팅엄의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 팔에 부었다.

"지금부터 승자의 권리를 행사하겠다!"

정신을 잃은 노팅엄을 한손으로 번쩍 들어올리니 주위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선술집 수리비 부터 오늘 술값까지 모두 노팅엄에게 청구될 것이다.

본인에게 푼돈이라도 기분은 더럽겠지.

-와아아아-!!!

옷을 싹 벗겨서 길드 밖에 던져둘까?

달려가서 창관에 두창 일일알바로 넘겨버려?

어떤 선택지가 모욕적일지 고민이 된다.

짝.짝.

"네 ㅡ 로만씨 여기까지만 해주세요."

위에서 자리만 지키던 접수원짱이 계단을 내려오며 박수로 시선을 모았다.

"아무리 우리 접수원이 모험가 길드의 인기인이라도···"

"미인에다가 어린 여성 두분이 로만씨를 찾습니다."

쾅-!

바닥에 노팅엄을 집어던지고 나는 테이블에서 내려왔다.

"니들 알아서 가지고 놀아라! 난 간다!"

노팅엄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 주머니는 챙겼다.

나는 바람처럼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냄새나는 남자를 괴롭히는 것과 풋풋한 미인과 이야기하는 것.

흥미와 재미로 점수를 주자면 이게 가치로 비교가 되긴할까?

****

오늘은 누구일까.

나는 기대되는 마음으로 접견실의 문을 열었다.

끼익-

"어?"

""아""

서로가 얼굴을 보고 얼빠진 소리를 냈다.

"···아시는 분들 인가요?"

접수원이 접견실에 들어가지 않고 있는 내 뒤에서 분위기를 읽고 물었다.

"···와! 너무 미인들이라 놀랐네. 오늘은 이리저리 행운이 따르는걸."

"하아 ㅡ 얼른 들어가주세요."

등을 꾹꾹 미는 힘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접견실에 들어가서 앉았다.

세리아는 내 눈을 슬쩍 피하고있고 리케는 당황하지 않았는지 그냥 날 뚫어져라 보고있다.

'어디서부터 틀어진거지?'

리케가 다른 여자 캐릭터와 엮이는건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든 마무리 되고나서 부터.

로버트의 곁에 있는 히로인들과 이리저리 관계가 생기며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일러스트를 보여준다.

당장 모험가 길드를 찾아온 것도 이상한데 둘이 같이 다니고 있으니 혼란이 증폭된다.

'내가 교관이 된거? 수업이라고 두들겨 패서? 아니면 역시···'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부분적인 미래를 알고있는 내가 첫번째로 경계한 사항.

하지만 긴 시간 삶을 이어가며 유야무야 잊고있던 한가지.

자신의 자리만을 지키고 고정된 말만 출력하는 NPC가 아닌 하나하나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이라는 점.

이때까지는 히든 피스들에 집중하여 그것에 대해 정사가 틀어지는 감각이 없었다.

애초에 내가 알고있는 정사가 시작하지도 않았었고.

이번 입학식에서 만난 등장인물들?

나는 당연하게 그들의 행보를 알고있다고 생각했다.

모든게 내 손바닥 안이라.

마치 부처라도 된듯 나 따위가 전능감에 빠져있었다.

1로 가면 다음은 2로 갈 것이고 그 다음은 무조건 3으로 향할거라고.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어···. 전면 수정이다.'

다르다.

오랜시간 이 세계에 감화되어 너무 당연한걸 잊고 안심하고 있었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에.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로버트에 관련된 사항들도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살았을때 게이머의 간섭이 없다면 어떻게 성장했을지.

"혹시 나 혼자 이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

"당연히 안됩니다. 말도 안되는 말씀을···."

"어때?"

노팅엄의 소지품 주머니에 있던 중급 재생 물약을 그녀의 눈 앞에 보였다.

중급이면 실력 좋은 연금술사가 만든 물건이다.

교단에서 판매하는 활력포션과 비슷하면서도 방법에 따라 다른 쪽으로도 효과를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재생 물약이기에 이걸 마시지 않고 피부에 바르면 뛰어난 미용 효과를 자랑한다.

일반인 관점으로 보기에는, 미용을 목적으로 쓰려하면 가격이 정말 말도 안되게 비싼 물건이지만.

귀족들과 급이 높은 모험가들을 상대하며 눈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그녀다.

벌이에 비해 큰 그녀의 씀씀이도 알고있기에 절대 거절하지 않을거라 믿었다.

"···안에 계신 두분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