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 오리엔테이션 -1-
길 가는 사람을 잡고 '스카디 후작가를 아시오?' 라고 묻는다면.
기사들은 답하기를 거부할 것이고.
마법사들은 그저 흥미롭다 할 것이다.
그리고 교단의 사제들은 스카디 후작가를 규탄하기 바쁠 것이다.
유일한 후계자인 가녀린 소녀가 그날 살아남은것은 누가봐도 우연에 불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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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케 스카디는 멍한 눈으로 어제도 오늘도 늘 행복했던 과거에 잠겨있다.
해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지만 그때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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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망 높은 후작가의 장녀로 태어난 그녀에게 부모는 양면의 거울이었다.
풍족한 생활에 뒤따르는 귀족의 의무를 외면 할 생각은 없었다.
당연히 자리에 책임을 다한다.
그렇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나이에도 약혼을 거부하지 않았고, 공부 또한 게을리 한적이 없다.
날이 시퍼런 무기를 들고 휘두르는건 손이 덜덜 떨리고 무서웠지만 기사출신인 아버지를 생각해 최소한의 교양은 익혔다.
누구보다 라고는 못해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만큼 최선을 다했다.
고단한 나날이 끝나면 언젠가 인정 받을거라 믿었다.
어머니에게서 느끼던 따뜻함을 아버지에게도 한번쯤은 느껴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후작가의 위엄을 지키는데 힘써 언제나 차갑고 무서웠지만.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을만큼 슬프지 않은가.
어머니는 아버지와 반대로 나에게 책을 읽어 주고 간식을 직접 만들어주며 나를 키웠다.
푸른 피를 가졌다는 고위 귀족이라 할 수 없는 '가족애'였다.
어머니가 있으니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낼 수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책더미도 언젠가 넘어설 수 있고- 긴장감에 잠을 이룰 수 없는 귀족의 연회도 몇번이고 참석할 수 있다.
매번 손바닥이 찢어지는 제식 검법도 울지않고 끝까지 할 수 있다.
하기 싫은 일의 끝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봄의 햇살을 닮은 미소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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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구름이 무척이나 어둡고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아버지가 사업을 위해 자리를 길게 비우게 되면서 나는 어머니와 같은 침실을 사용했다.
평소라면 아버지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일이지만 지금이라면 괜찮다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침실로 향했다.
사용인들도 모두 비밀로 해주겠다 약조했으니 복도를 질주하는 나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엄마!"
나는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는 문을 덜컥 당겨서 열었다.
귀족의 예에서 한참이나 벗어나있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웃으며 반겨주신다.
아버지가 보고있지 않으면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라고 부른다.
오늘도 내일도 이 사실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당연하게 여겼다.
"어,엄마···?"
침실에 존재해서는 안될 것들이 보였다.
기사와 같은 갑옷을 입은 자들이 침실에 가득했다.
그것들을 보는 순간 눈동자가 따끔하게 아파왔다.
영문도 모른채 눈물이 또르륵 흘러나왔지만 나는 문을 부여잡은채 소리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누구야 당신들!! 게르-! 보리스-! 아무나 좀 와줘!!"
복도를 향해 소리쳤지만 어떤 인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이 침실만 도려내어 다른 차원에 떠있는 감각이다.
"스카디의 피를 이은 아가씨ㅡ 가만히."
기사 무리로 한명의 남자가 걸어나왔다.
목소리가 철판을 긁는것 처럼 소름이 끼쳤다.
"나는 유르게나 디 벤타. 하룬 제국의 5기사 중 3석이다. 기본적인 상식과 교양이 있다면 내가 누군지 알고있겠지?"
제국의 5기사는 물론 알고있다.
국경행사때 얼굴을 본 기억도 있다.
'그땐 분명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그,그- 예를 갖추지 못한 점은 죄송합니다···그래도 제 상황도 이해해주실거라 믿습니다. 어머니는 어디 계신거죠?"
"호오-"
리케는 아까부터 전에없던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눈이 따끔하게 아픈 뒤로 기사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다.
한번 깜빡이면 마법사처럼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보였다가.
다시 눈을 뜨면 멀쩡한 기사들이 서 있었다.
흥미롭다는 얼굴로 서있는 기사의 뒤에 서있는 남자는 흐릿하지만 후드를 쓰지 않았기에 얼굴이 확실하게 보였다.
얼굴의 반절이 화상을 당한 것처럼 피부 색이 다른 노인이었다.
리케의 눈동자에 비친 노인은 갑옷을 입은 젊은 청년이 되었다가 노인이 되기를 반복했다.
그는 뒤에서 3기사에게 무어라 중얼거리며 말을 하고있었다.
"우리는 스카디 후작가에 황실을 능멸하려는 흑마법사가 숨어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확인을 하러 온 것이다."
"절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저희는 평범한···평범한 영지입니다! 누가 그런 말을···."
겨우 익명의 제보 따위로 고명한 기사가 움직이다니 어린 리케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대화와 협상에 능하신 아버지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어머니에게 혹여 무슨 문제가 생길까 리케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판단은 내가 한다."
이 상황을 타개할 힘이 없는 어린 소녀는 그저 눈을 감고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게 최선이었다.
사특한 기운이 침실 안을 울리고 소름끼치는 목소리들이 귀를 괴롭혔다.
자신의 눈이 뭔가 변한것 같았지만 지금 그런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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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읍!! 읍!!"
"자 보거라"
잠시 후 기사 하나가 어머니를 거칠게 데려왔다.
어머니 입에는 굵은 천이 물려있었다. 눈동자는 즉시 나를향했다.
지금 그 눈 안에 담긴게 걱정이라는걸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 기사님 제발ㅡ제발··· 부탁드립니다. 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잠깐이면 됩니다··."
눈이 뽑힐만큼 아려왔지만 감을 수 없었다.
허공에서 보라색 연기 같은 것이 어머니에게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이게 스카디 후작가가 혹은 후작의 처의 가문이 황실을 능멸하려 했다는 증거다. 아가씨가 살고싶다면 지금 상황의 증인이 되어야 할거다."
끄드득ㅡ 까득!
"으으읍!!"
소녀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현실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머리에 뿔이 자라고 손톱이 길어진다.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눈이 붉게 물든다.
"아아ㅡ! 꺄아아악!!!"
인간의 형상을 잃은 생물의 사라진 이성이 비명소리에 반응한다.
길어진 손톱이 내 얼굴로 향했다.
촤악-!
3기사가 박차고 뛰쳐나온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았지만 손톱은 내 얼굴을 가르며 지나갔다.
벽까지 피가 튀었다.
"이제 실감이 나나? 빼도박도 못할 흑마법이다."
그의 검집이 흔들리더니 날붙이가 소름끼치는 궤적을 그리며 어머니를 지나갔다.
****
"하아ㅡ 하아···."
리케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은땀으로 온 몸이 축축했다.
'악몽···.'
처음 자는 익숙하지 않은 침대라 그럴지도 모른다.
이렇게 깨고나니 다시 자기는 힘들것 같다.
밖을 보니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아카데미에서 흑마법사에 관련된 경험담을 들어서 그날의 악몽을 본 걸지도 모른다.
리케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도 집에서 도망치는게 목적이었다.
아버지와는 한 공간에 같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숨이 막혔다.
그날을 기점으로 가족관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아무리 봐도 작위적인 상황인데 아버지는 어떤 대항도 변명도 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가문은 흑마법과 관계됐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스카디 후작가에게 향한 피해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확신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알고싶지 않았던 진실을 이 눈이 알려줬다.
그리고 그날에 있었던 남자들이 어떤 인간들인지도.
'실전 수업을 들어가야겠지···.'
제국 안에서 대놓고 흑마법사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처음봤다.
흑마법사에 대해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다면 보람이 있다.
"···!"
얼굴에 있는 상처가 아려온다.
천천히 호흡을 하며 상처를 천천히 따라가면 눈두덩이가 만져진다.
얼굴에 난 상처도, 그때 얻은 특별한 눈도 모두 어머니의 유품이다.
지옥같은 일상에서 이 흔적을 느끼는 것만이 자신을 살아있게 한다.
"엄마···."
****
로프티 아카데미 제1 실내 체육관.
'실전 1' 첫 수업이 있는 날이다.
저번과 달리 편한 옷을 입고 출근한 나는 수업 전부터 체육관에 있었다.
"생각보다 지원을 많이 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기사학부는 그날 마지막 발언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는건지 찝찝한 눈빛을 내게 보내왔지만.
검술학부는 반대로 내 스타일이 마음에 든건지 반 이상이 지원해줬다.
"일단 한분을 소개하겠다. 교단에서 지원을 나와주신 사제님이시다. 박수!"
"교단에서 여신님을 모시는 미천한 종. 상급 사제 막심입니다. 장차 제국을 이끌어갈 형제님들을 만나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상급 사제면 고급인력이다.
팔이 잘리면 즉석에서 붙일 정도는 된다.
로랜드와 도란의 인맥이 아니었다면 돈이 있어도 택도 없었을 것이다.
원래 나한테 나가야 할 돈이 저기로 흐르고 있겠지.
"수업의 개요를 알려주겠다."
눈에 들어오는 인원의 대부분은 검을 들고있지만 그것도 각각 형태가 다르다.
수업에 교관의 허락이 없다면 개인 소유 무기는 지참을 금하고, 아카데미에 있는 보급형 무기만 사용하는게 기본이다.
아카데미에 있는 보급형 숏소드부터 롱소드.
폭이 아주 넓은 대검에 짧은 단검도 있다.
드문드문 창이나 둔기를 든 생도도 보인다.
검을 사용하지 않아도 검술학부에 있는건 어쩔수없다.
창술학부나 둔기학부 같이 세세하게 학부가 존재하지 않으니.
"오늘은 교관과 맨투맨으로 한명한명 빠르게 실력을 체크한다. 눈에 보이는 부족한 부분은 구두로 간단하게 조언을 할 거다."
"순수한 실력을 보기 위해 스킬 사용은 금하지만, 마나를 이용한 신체강화는 허락한다."
정식 수업에 들어가기 앞서 오늘은 수업 첫날이다.
흥미위주의 오리엔테이션 느낌으로 진행하는게 좋겠지.
"다음 수업부터는 두명이 짝을 지어보기도 하고 혼자서 다수를 상대해보는 경험도 할거다. 순서는 기사학부 한명이 끝나면 다음은 검술학부에서 한명. 이해했겠지."
나는 손가락으로 제일 앞줄에 서 있는 생도를 가리켰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명씩 나오고 한줄이 끝나면 뒤에서 다시 왼쪽부터 나온다. 알겠나?"
"""예!"""
"거기- 나와라."
기사학부에서 한명이 나온다.
롱소드를 든 짧은 머리였다. 덩치가 크고 피부가 구리색이다.
눈두덩이가 두꺼워 얼굴만 보면 베테랑 용병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와서 자세를 잡고 나를 노려본다.
"기사학부 브롬 바스티 입니다."
"그래."
"교관님은 무기 안드십니까?"
내가 맨손인게 걸리는지 생도는 노려보면서도 덤비지는 않았다.
"생도 수준에서 교관을 가늠하려 하지마라."
"····크흠!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불쾌하다는 얼굴로 날카로운 검을 세운다.
발에 마나를 불어넣어 바닥을 부술듯이 박차고 달려든다.
체격을 베이스로 한 육탄돌격이 자랑거리인지 변화를 한번도 주지않고 직진으로 달려온다.
"흡!"
번쩍 든 롱소드가 일자로 내려온다.
어깨를 내려치던 날붙이가 갑자기 멈춰섰다.
"뭐지? 검을 멈추다니 제정신인가?"
"···왜 안피하는ㅡ"
빡-!
파공음과 함께 말을하던 브롬의 얼굴에서 피가 터지며 고개가 번쩍 들렸다.
몇걸음이고 물러나 겨우 고개를 숙인 브롬에게서 피가 줄줄 흘러 나온다.
턱이 완전히 찢어지고 아랫잇몸이 부서졌다.
툭. 투둑.
공중에 비상한 치아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쿠읍···."
입가를 막은 손에서 피거품을 만들며 부글부글 넘친다.
대기하고 있던 생도들의 눈이 더없을 정도로 커졌다.
"교관을 가늠하지 말라했을텐데. 제대로 할 생각이 없으면 자퇴를 하도록.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