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7화 (7/250)

Chapter 7 - 개학 당일

모험가 길드에 파릇파릇한 젊은 피가 수혈되는 건 대체적으로 흉년이 길어지거나 먹을게 없어지는 겨울이다.

배는 고픈데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나마 움직일 체력은 남아있는 어린 녀석들이 대거로 유입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옛날에 나도 그중 하나였지만, 지금 봐도 그건 자살 지망생들이 모이는 광기의 소용돌이다.

그것에 비견해 아카데미에서 마주하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녀석들은 태양처럼 밝은 활기가 넘치고 얼굴색이 좋다.

평균 신장도 길쭐길쭉하고 피부도 매끈하다.

잘 먹고 잘 잤다는 게 느껴진다.

이 빈부격차가 나쁘다는건 아니다.

모두 당연한 세상의 이치일 뿐이다.

····

애초에 나는 집에서 출퇴근 하기로 했기에 생도들 틈바구니에 섞여 아카데미로 향했다.

복장이 교관도 아니고 생도도 아니기에 부담스러운 시선이 모였지만 나는 모른 척 앞만 보고 걸었다.

장기근속이 되는 정식 교관이 아니라 교관복을 입기도 애매하고.

명칭상 보조 교관도 아니니 '모험가'라는 자유로움을 존중해 주겠다며 도란은 내 복장에 관여하지 않겠다 알렸다.

아무리 밑바닥의 대표라 불리는 모험가라 해도 적당히 예의는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구두를 꺼내신고.

전생의 정장에 가까운 깔끔한 복장을 입었다.

매일 편한 옷만 입고 돌아다니다 차려입으니 목 부분이 갑갑했다.

'상황 보고 인벤토리에 넣어둔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야지.'

몸을 움직이는 수업을 전담하게 되었으니 이런 복장을 고수하는 건 오늘뿐일지도 모른다.

당장 오늘을 넘어가지 않을지도 모르고?

"학부의 선택과목을 담당하는 교관들은 대체적으로 첫날에는 수업의 개요를 설명하고 자신의 수업을 들었을 때 이점을 설명하지."

"전 그럼 기사 학부 검술 학부가 모인 자리에서 설명하면 되는 거군요."

학장실에 찾아가 도란에게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는 생도들이 과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독자적인 자신의 시간표를 만든다고 한다.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의 커리큘럼을 각 교관에게 듣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채우는 것이다.

기사 학부라도 본인이 원한다면 선택과목을 아예 행정이나 연금술을 들어도 큰 문제가 없다.

점심 바로 전에 내 시간이 잡혀있었기에, 그전까지 붕 떠버린 나는 도란과 아카데미 행정관이라는 남자와 앉아 아카데미가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둘은 내부에서 쌓인 게 많았는지 미주알고주알 아카데미의 문제점들을 토해냈다.

나는 입을 뻥긋하지도 않고 듣기만 했는데 벌써 시간이 한참 지나가있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생 좀 해주게나."

점심 시간 40분 전.

길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애초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으니.

계단을 타고 미리 봐두었던 강의실로 향한다.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질수록 웅성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 제 7강의실]

드륵-

릴리네의 동생부터 주인공. 리케와 기타 등등 히로인들.

나 혼자 반가운 얼굴들이 모두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내부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있었는데도.

강의실이 워낙 넓다 보니 모든 책상이 채워지지는 않았다.

재밌는 건 중간 테이블은 의도적으로 비워두기라도 한 건지 선을 그은 듯 한 줄이 깔끔하게 비어있다.

한쪽은 기사 학부 한쪽은 검술 학부로 벌써부터 신경전을 벌이는듯하다.

"반갑다. 기사 학부에게는 필수과목 검술 학부에게는 선택과목이 될 '실전 1'을 담당할 로만이다."

'제식검술의 역사'니 '대기 마나연구론'이니 하는 다른 과목들에 비하면 심플하기 그지없는 이름이지만.

이 수업이 어째서 생겨난건지 아는 생도들로서는 이목이 모일 수 밖에 없다.

-로만?

-난 처음 들어.

-성이 없어?

-우리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것 같은데.

인사 한 번 했을 뿐인데 생각보다 웅성임이 컸다.

"정식 교관이라기보다는 초청받아서 수업을 하는 모험가라 생각해도 된다."

기사 학부 무리에서 남자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턱짓을 하자 생도가 입을 열었다.

"어···기사가 아니라 모험가인데, 기사 학부 필수과목을 가르치는 교관이라는 그런 말인가···요?"

눈치를 보다 어설픈 존대로 마무리 짓는다.

내가 귀족이 아닌 것 같지만 교관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으니 갈피를 못 잡는 것이다.

"그래. 이해한 그대로다."

이번엔 검술 학부에서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릴리네 집안의 막내였다.

"교관님~! 교관님이 모험가 시라면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학장의 말에 의하면 검술 학부는 기사 학부에 비해 모험가에 대한 편견이 없을 거라 했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기사로 성공하기에는 낮은 신분들.

검술 학부는 준남작이나 남작가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모험가로 전향하는 비율도 생각보다 높다고 한다.

릴리네 덕일 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눈은 딱히 모험가를 기피하는 것 같지 않았다.

"백금이다."

"배,백금이요?!"

-백금이 얼마나 높은 건데?

-멍청아! 우루스랑 등급이 같잖아!

-혹시 그 소문의···

-진짜 백금이라고?! 백금이 여기 왜 있는데?

-그럼 사실은 나이가 엄청 많다거나···

"조용"

마나가 담긴 목소리에 생도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제 들어와서 그런지 기본적인 규율이 하나도 안 잡혀있군. 잡담은 이야기가 끝나고다."

나는 품 안에 접어둔 종이를 꺼내서 펼쳤다.

도란이 '능력도 없는 것들이 꼴값 떤다'고 기가 찬 얼굴로 나에게 챙겨준 것이다.

"이건 너희들의 1년 선배인 기사 학부 생도가 들고 다니던 메모다. 들어봐라."

하나. 자신이 태어난 제국을 사랑하라.

하나. 원수 앞에서 물러서지 마라.

하나. 불신자들과의 전쟁에는 자비가 없어야 한다.

하나. 거짓말을 하지 말고 서약에 충실하라.

하나. 모두에게 너그럽게 베풀어라.

하나. 불의와 악에 대항하여 옳고 그름을 증명하라.

하나. 모든 약점을 존중하고 방어하는 사람이 되어라.

기사의 정점이라 불리는 1기사 아센 프리밀러가 퍼트린 기사도.

기사 학부의 생도들은 들으며 '이게 맞지'라는 뽕 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술 학부는 아무 생각도 없는 듯 그냥 뚱한 표정으로 보기만 할 뿐이다.

손에 잡혀있는 종이를 마나로 터트렸다.

펑-!

"무,무슨 짓을!!"

"이건 너희들에게 있어 쓰레기나 다름없다. 머리에서 싹 다 비워라."

종이 쪼가리들이 강의실에 날리며 기사 학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진 게 보였다.

깜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몇몇도 있었다.

"기사도를 신봉할 거라면 진짜 기사가 되고 난 다음에나 하도록.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 실력으로 강자가 만든 신념을 가지고 있어봐야 목숨줄을 잘라내는 용도로 밖에 안보일거다."

"크억···!"

뻗어나간 마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생도들을 짓눌러 강제로 자리에 앉혔다.

"진정이 됐다면 내 수업을 간단히 이야기해 보자고. 흐음~ 예시를 하나 들어주는 게 편하겠지."

나는 말할 때마다 느껴지는 갑갑함에 셔츠의 단추 하나를 풀었다.

"몇 년 전이더라···대략 3년 전. 황실의 의뢰를 받고 흑마법사를 추적한 적이 있다. 그놈을 잡으려고 제국에서도 혈안이 되어있었지. 이름난 기사 수십 명과 모험가들이 떼를 지어 흑마법사 한 명을 추적했다."

흑마법사라는 말에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던 리케가 나를 응시했다. 썩은 생선 같은 눈동자에 살짝이지만 이채가 돌았다.

"작전은 단순하면서 쉽지는 않았다. 놈은 여자의 살가죽을 뒤집어써서 모습을 변장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저주를 내려 두꺼비로 변신시키는 등. 사이 한 마법을 사용해 어떻게든 포위망을 벗어났거든."

나는 테이블에 있는 물을 꺼내 말라가는 입을 축였다.

"나는 여러 가지 노하우를 사용해 기사들보다 빠르게 추적하는 것에 성공했고, 인신공양과 제물을 사용하는 까다로운 흑마법을 사용하는 녀석과 혼자 대치하게 되었지."

"그 흑마법사는 흑마법의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 제물함에 납치한 사람들을 50명은 넘게 데리고 있었다. 추적이 좁혀지니 바로 옆에 있는 마을을 쓸어버린 거야."

흑마법사라는 민감한 주제는 흔히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서 끊고 잠시 강의실을 둘러보니 모두 내 입이 열리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자ㅡ 여기서 우리 생도들의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고 싶은데. 이 상황에 자신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건지. 좋은 생각이 있는 생도 있나?"

검술 학부에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남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흑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빠르게 제압합니다."

"나쁘지 않아. 주제에 맞는 근원적인 답변이다. 가능하다면 그게 최고겠지."

나는 생도에게 따봉 하나를 날려주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중요한 걸 설명하지 않았군. 흑마법사가 제물을 사용하면 자신보다 마나가 농후하고 제어력이 뛰어난 상대를 압도하는 것도 가능하지. 이때 흑마법사는 나와 실력이 비슷하지만 제물까지 보유하고 있다. 어쩔 거지?"

강의실에 잠시 침묵이 감돌다 기사 학부에서 하나가 질 수 없다는 듯 손을 들었다.

"제물로 잡혀있는 사람들을 먼저 구출합니다."

"기사를 꿈꾸는 생도 다운 답변이야. 10점."

기사 학부 생도들 얼굴에 웃음이 폈다. 해냈다는 얼굴로 비웃음을 머금고 검술 학부를 본다.

"물론 100점 만점이다."

"·····"

당당하게 웃고 있던 표정이 죽었다. 한 명이 내게 씹힌 뒤로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내가 '실전 1'에서 강의할 내용들이 그런 것이다. 실전 수업을 하며 내가 이때까지 쌓아온 노하우를 전수하고 너희들이 길가에서 눈먼 칼을 맞고 객사하는걸 방지하는거다. 검술학부 생도들에게도 조금은 흥미가 생겼으면 좋겠군."

"일단 여기까지만 할까? 곧 점심시간이니."

내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으니 릴리네의 동생 세리아가 손을 들었다.

"교관님···아까 흑마법사에 대한 해답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아! 그걸 말 안 했나. 무조건 정답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 방법을 이용해 나는 그 흑마법사를 죽이고 살아남았다. 그러니 참고할 정도는 될 거다. 그 방법은···"

세리아가 녹안을 빛내며 내 해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케 또한 유심히 나를 보고 있으니 꽤나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제물로 잡힌 인질들을 내가 먼저 죽여서 흑마법을 못쓰게 하는 거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