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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5화 (5/250)

Chapter 5 - 입학식 -1-

"그렇군··모험가 일도 병행해야하지. 이 이상은 민폐라는걸 인지하고 있다네. 확실히 보조교관이 적합하겠어. 그것보다 '보조'라는 말이 격이 떨어지니 그냥 교관으로 하지."

"그리고 실전을 정말 목표로 한다면 교단의 협조를 얻어 사제를 구비한 뒤에 마구잡이로···"

"아니지! 기사는 오히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경우가 많으니···"

"실속으로 따지자면 차라리 개인이 소유한 아이템을···"

각각 다른 분야의 3명이 모여 종이를 몇장씩 다시 꺼내며 글을 적어내려갔다.

최전선에서 수십년을 굴러먹은 노년 기사.

자세히는 몰라도 몸을 쓰는 훈련은 힘들수록 좋은거 아닌가 싶은 마법사.

인간부터 몬스터, 죽일수만 있다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제거해온 모험가.

대척점에 이른 3명이 모여 토론을 하니 무언가···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후우···드디어 교육 초안이 잡혔군."

도란은 적지않은 분량의 글을 써내리느라 지친 왼손을 쥐었다폈다.

그는 왼손으로도 명필이었다.

"너무 간단해보이지만. 이 정도면 요즘 핏덩이들도 정신을 차리겠지. 애초에 이걸 통과 못하면 전선에 설 자격도 없다!!!"

로랜드도 만족했다는듯 몇번이고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온실 속 화초마냥 자란 귀족자제들인데. 정작 부모들이 이런 수업에 가만있겠습니까?"

내 말에 도란이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을 빛내며 끌끌 웃었다.

품고있는 감정이 그다지 순수해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이것 모두 아카데미에 떨어진 황명이다. 거절하는 것들은 황제폐하의 명을 어긴 것과 같지. 그래서 이 훈련이 들어가기 전에 생도와 부모들의 동의서 부터 받을 생각이네."

밤이 지나도록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로랜드만큼은 아니어도 도란과도 말을 적당히 편하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깐깐해 보이지만 규율만 지킨다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로랜드 보다 말이 통했다.

"조금 돈이 들더라도 마나를 통한 계약으로 하는게 좋을겁니다."

"당연하지. 일단 100회 입학생을 시작으로 하여 99회 입학생과 비교 해보는게 좋겠군. 99회는···글렀다. 비교하는건 미안하지만 실적을 보이는데 그만한게 없지."

'보조'라는 명찰이 떨어진 교관으로서 나의 계약 기간은 1년이었다.

(자네가 얼마나 강한지 나는 짐작만 할뿐 정확하게는 모르네. 나는 전장보다 학문에 뜻을 둔 마법사였으니. 선의로 지원해준 자네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강하다고 뛰어난 교육을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생각하네.)

도란은 아주 타당한 말을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고 필연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이 되는건 아니다.

1년 동안 나는 결과로 증명하면 된다.

일년간 자유롭게 아카데미를 드나드는 것만 해도 나에겐 가치가 큰데 3명이 모여서 만든 교육 초안도 마음에 들었다.

교육에 의거하여 합법적으로 주인공과 히로인을 볼 수 있다고?

바로 간다.

****

입학식 바로 전날.

내게는 입학식 보다는 주인공과 히로인을 만나기 바로 전날이 어울린다.

25년전이 아닌 지금 시점에 내가 빙의했다면 흥분감에 가만있지 못했을것이다.

지금은 기대와 흥분이 있지만 오히려 정신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일단 입학식에 대해서는 나는 딱히 참여하지 않아도 되고, 만약 참여한다면 교관들에게 소개해줄 것이라는 도란의 말에 그냥 관람을 택했다.

여유가 생긴 나는 마당에 나와 의자에 앉아 말린 과일을 먹고있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가기 때문이다.

"오 별똥별!"

드문 일이다.

별똥별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다.

소원을 빌 나이는 아니기에 그냥 좋은걸 봤다 생각했다.

"엥?"

그런데 점점 그 수가 불어나더니 장대비처럼 밤하늘에서 유성이 쏟아졌다.

유성은 색은 모두 달랐다.

붉은색 부터 푸른색.

황금처럼 빛나는 유성과 검은 하늘보다 더 까만 빛까지.

수도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이 상황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노래를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이거 설마····."

나는 인벤토리에서 검 하나를 꺼냈다.

다 타버린 목탄 같은 검은 날.

날부터 손잡이까지 칠흑같이 까맣다.

어두운 골목에 던져두면 눈에 보이지 않을것 같았다.

이 검은 내가 쓰는게 아닌 남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챙겨둔 물건이다.

[ 반쪽짜리 어둠 ]

▷어둠이 눈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공포에도 물들지 않습니다.

··

··

영수증처럼 길게 늘어진 장비의 효과가 아닌 제일 밑에 존재하는 설명칸으로 나는 눈을 내렸다.

몇몇 아이템에는 사용자나 제작자가 남긴 말 한마디가 붙어있는 경우가 있다.

[ 어둠이란 생물에게 초월적이며 근원적인 공포다. 내가 시커먼 불길을 머금은 유성에서 이것을 찾았기에 세상에 어둠이 창궐한 것인지도 모른다. ]

당장 이 검.

거기에 내가 사용하는 무협에 나올법한 스킬들과 토납법(吐納法)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물건이다.

주인공만 해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차원을 넘어온 영혼.

게임의 특성상 히든 피스들 반절 이상이 이 세계의 물건이 아니다.

'아카라이트'는 차원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설정이 되어있다.

그게 이 게임의 요점이자 특징.

원래라면 불가능한 한국으로 가는 차원을 주인공이 열어버리는 것도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게임으로 할 때는 판타지에서 무공을 사용하고 시대양식이 전혀 다른 무기들을 사용하며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었고 독특한 설정이라며 흥미 이상을 가지지 않았지만.

'지금 쏟아지는 유성들이···.'

히든 피스일 가능성이 있다.

분명 누구도 다녀가지 않았음에도 자리를 지키지 않았던 많은 히든 피스들.

그 이유에 규칙성따윈 존재하지 않았으며 어떤건 있고 어떤건 없다.

지금 내 정보를 가지고 누가 저 유성우를 아무 의구심 없이 볼 수 있을까.

"주인공은 주인공이란 말이지···."

쏟아지는 형형색색의 유성우는 편의주의적 인간의 관점으로 해석하자면- 아카데미 100회째를 축하하는 불꽃놀이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이 세계에 큰 변화가 다가온다는걸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이때까지 답이 전혀 잡히지 않았던 문제의 실마리를 잡은 나는 남은 과일을 입에 털어넣었다.

··

··

입학식은 평소보다 늦은 오후 2시부터 진행되지만 새벽부터 아카데미는 분주했다.

로프티 아카데미의 제 100회째 입학식.

100이라는 숫자가 특별한 힘을 가진건 아니지만 기념비적이고 특별한 숫자인건 확실했다.

단순히 우연의 일치겠지만 어릴때부터 두각을 드러낸 인재들이 과할 정도로 많이 모이기도 했고 어제 또 특별한 자연현상이 있지 않았는가.

그 덕에 교단의 무리나 마법사들도 상당히 많이 보였다.

'입학을 하고나서 게임이 시작되니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네'

오늘 하루를 위해 늘어선 가게들을 지나며 나는 아침겸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저 귀족만을 위한 입학식이 아닌 일반 제국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쪽에는 적당한 가격의 요리를 판매하는 천막들이 있었다.

나는 자극적인 소스를 사용한 투박한 음식이 취향이었기에 대낮부터 에일에 고기를 조지고 있다.

"로만씨~ 이런 시간부터 벌써 달리시는건가요?"

"이정도면 평범한거 아닌가. 라크는?"

릴리네는 평소의 모험가 장비가 아닌 깔끔한 정장을 입고있었다.

막내의 보호자라는 역에 충실한 옷차림이다.

"후후- 오늘은 저 혼자만 오기로 했어요. 혹시 자기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질수도 있다나~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그놈이 그런 말을 했다고? 어디서 약이라도 잘못먹었나?"

"어머- 라크씨는 같이 지내다 보면 덩치랑 다르게 세심한 사람이라구요."

"같이··우욱·· 평생 알고싶지 않았어··."

내 표정을 보고 큰소리로 깔깔 웃은 릴리네는 천막에서 과일주스 하나를 사와 자리로 돌아왔다.

술이야 곧 입학식이나 절제하는걸 이해하지만 이 맛있는 음식들에 생각이 없는건가.

"밥을 먹고왔나보네?"

"아뇨. 그건 아니지만···이런 자리에서 배가 나오면 창피하잖아요."

발언을 들은 내 눈이 쏙 들어가있는 릴리네의 배로 향했고.

그녀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양손으로 황급히 배를 가렸다.

"···다른 곳 가서 그런말 하면 여자들이 거품 물고 달려들거다."

"뭐래요···."

"아! 이걸 말 안했네. 나 1년간 아카데미 교관으로 취직했다."

"···?"

릴리네는 음료를 든 채로 굳어버렸다.

아직 내 말을 완전히 이해 못한듯 했다.

"모험가도 같이 할거야."

"····!"

'미쳤나봐! 백금이 도대체 뭐하는 짓이죠!'라며 잔소리를 기관총처럼 쏘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나는 에일을 리필해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 사이에 살짝 지친눈을 하고 있었다.

"하아···아무리 종잡을 수 없어도, 이정도는 아니었던것 같은데··."

"사실 이번엔 내 의지가 아니라. 옛날에 빚진게 있어서 은원을 갚는다 정도?"

"은원에 민감한건 좋긴한데, 로만씨는 정도가 심한것 같아요."

"내가? 나만큼 멀쩡한 인간이 어디있다고."

릴리네는 가끔 오버가 심하다.

나는 어이가 없다는걸 온몸으로 표현했다.

"주위에서 터치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본인이 이상한걸 본인이 모르는게 제일 이상해요."

"하하- 오늘 왜 이렇게 입이 맵지? 아무리 나라도 좀 아픈데."

"제가 이렇게라도 말 안하면···."

ㅡ로프티 아카데미를 방문해주신 귀빈 여러분. 입학식이 곧 제 1대강당에서 시작 될 예정입니다.

마나가 담긴 누군가의 목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길어질뻔했던 릴리네의 잔소리가 어정쩡한 타이밍에 끊어졌다.

'휴-'

"얼른 가봐야 하는거 아냐?"

"···로만씨는요?"

속에 있는 말을 다 못꺼내서 불만이 큰지 나를 보는 그녀의 눈가가 가늘어져 있었다.

"나중에 갈게. 잠시 들를 곳이 있어서."

"그럼···먼저 가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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