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 전조 -2-
"이···이런···망할 새끼야!!!"
쾅! 쨍그랑!
검은 액체가 찰랑이는 잉크병이 날아와 벽에 터져나간다.
현재 화를 내며 테이블을 내려치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노인은 천부적인 다혈질로 보이나.
평소에는 냉철하고 말을 아끼기로 유명한 로프티 아카데미의 학장이다.
"그,그게 산적들이 비겁한 수를···."
쫘악! 쫙!
"개자식아!!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해!!"
학장이 테이블을 벌떡 넘어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년에게 손찌검을 시작했다.
노쇠한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힘에 중년의 고개가 휙휙 돌아가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죽어! 죽으라고! 나도 이제 죽은 목숨이니 같이 죽어!!"
"끅-크헉!"
학장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구둣발로 그를 마구 밟았다.
밟히는 입장인 중년은 변명하지 않고 신음을 뱉으며 맞고만 있다.
"하,학장님! 진정하세요! 그러다 교관이 죽습니다!"
옆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행정관이 학장을 말렸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죽으라고 밟는건데 죽어야지! 헉-헉···."
"학장님··일단 진정하시죠. 저희가 같이 머리를 맞대면 분명 돌파구가 있을겁니다!"
"돌파구? 정신머리가 아주 꽃밭에 있구만···허억··그딴게··허억- 있겠냐고··."
반평생을 책상에 앉아 지낸 학장이기에 노쇠한 몸을 급격하게 움직인 반동으로 숨을 헐떡였다.
이름있는 마법사 출신인 학장이 이미 마법을 사용했다면 교관은 수백 조각이 나서 사라졌을터.
거기까지 가지않은건 아직 이성의 편린이 남아있다는 증거다 ㅡ 라고 행정관은 믿었다.
"아아-! 이, 이제 진짜 끝이다. 젠장할··."
이성을 끊어내는 분노에서 정신을 차린 학장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마주하고 손을 덜덜 떨었다.
내일이면 진짜 저승사자가 찾아올것이다.
***
수도에 있는 로프티 아카데미는 하룬 제국 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그렇기에 제국의 법과 테두리 안에 있는 집단에서 한자리 하고싶다면 아카데미를 거치지 않으면 힘들다.
현재는 교단의 개별 교육기관이 있지만, 현 교단의 추기경부터 성기사단장 또한 아카데미 출신이고 황실 기사단장 또한 마찬가지다.
대중의 우상들은 대부분이 아카데미 출신.
재능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개화하고 싶은 젊은 피들은 아카데미라는 경로로 우상의 뒤를 따라간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목적은 유형적인 전투력 증강만이 아니다.
연금술 부터 여러가지 이론과목은 물론이요.
행정학을 포함한 제국에 헌신하기 위한 공무원도 절찬리에 육성중이다.
제국 어디에 가도 위를 보면 아카데미 출신이 있다.
그만큼 학연으로 엮인 자들의 콧대는 더 없이 높다.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니 출신에 의한 진급이 고착화 된 것이다.
선민 사상에 물든 그들의 자존감과 명예는 상처하나 없는 완벽한 구체의 형상이다.
-
평생을 지금과 같이 보낼줄 알았다.
그러나 영원한건 없다고, 결국 일이 터졌다.
명예가 실추하는 발단은 사소했다.
수도 근처에서 이름도 없는 마을들을 털어먹는 질 나쁜 산적무리가 등장했다.
화전민과 농민들을 습격하는 사건은 분기에 몇번이나 있을 정도로 흔하다.
평소처럼 모험가나 사병을 동원하면 충분히 해결될 일이다.
허나 기사학부를 가르치던 교관의 생각은 달랐다.
현 생도들은 좋은건 다 먹고 자라서 마나는 충만하지만 실전 경험은 미천하기 그지없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나약한 산적들을 상대로 가벼운 실전 경험을 해보는게 어떤가.
"교관- 드디어 정신이 나간건가?"
이야기를 들은 학장은 정색을 하며 반대했다.
나사빠진 삼황자가 기사도에 빠져 기사학부에 속해있고, 지체높은 귀족의 자제가 몇명인가.
괜히 나섰다가 누가 상처라도 나면 어떻게 책임질것이냐.
(제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제국의 미래를 위한 일입니다!)
몇번이고 호통쳐도 교관은 학장실을 두들겼다.
"정말···못 이기겠군."
교관의 진심어린 교육열은 남성갱년기 막바지 열차에 타고있던 학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유달리 감성적인 날- 학장은 홀린듯 도장을 찍어줬다.
막상 찍어주고 불안함에 출발 전날까지 교관을 불러 수십 번은 경고했다.
절대! 절대! 절대로! 누구하나 다쳐서는 안되며 가는 길에 마법사와 사제를 붙여주겠다.
요청을 해뒀으니 가기전에 교단에 들려서 지원부대와 합류하라고.
학장의 간곡한 요청에도 교관은 직진으로 내달렸다.
고작 산적들.
치기어린 기사 시절에 혼자서 산적을 쓸어버린 적도 있다.
'오히려 과도한 인원으로 제압하는게 아카데미의 위상을 깎아먹는거다.'
그 결과ㅡ
삼황자가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
제국을 지탱하는 고위 귀족가문의 금지옥엽 자제들이 크고작은 상처를 입었다.
준남작가의 장남이 녹슨 칼에 찔려 중태에 빠졌다.
누군가는 교관의 운이 없었다고 말할만 했다.
평범한 산적이 아니라 강탈을 즐기는 용병단이 산적으로 변질된 형태였다.
우두머리를 자처하는 남자가 생각외로 고강해 교관과 오랜시간 합을 주고 받았고.
제식과 규율의 테두리에서 대련해온 생도들이 교관이라는 지휘관을 잃고 실전에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용병 출신 산적들은 눈에 흙을 뿌리고 암기와 독을 사용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귀족 영애를 인질로 잡아 협박하고.
다수가 한명을 공격하는 변칙성을 생도들이 쉽게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멀리서 삼황자를 호위하던 기사들이 달려들어 사태를 진압했지만 때는 늦었다.
호위를 죽어도 받지않겠다는 삼황자의 발악 때문에 감시거리가 멀었기에 참전하는게 한발 늦어버렸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모험가들, 정보길드원 그리고 귀족의 실추를 바라는 누군가에 의해 로프티 아카데미의 위상이 단 하루만에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떨어졌다.
산적에게 지는 기사학부 생도? 기사학부를 졸업한 현직 기사들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이 가는 일이다.
상극에 있는 검술학부의 조롱을 그들이 견딜 수 있을까?
-
"허,허으어억··!"
쿵!
소식을 들은 학장은 그 자리에서 졸도해버렸다.
학장은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이 학장실에 들이닥친 황실의 사자에 의해 강제로 눈을떴다.
"이틀 뒤. 황실의 뜻을 전하러 대리인이 찾아올 것이니 준비하시오."
"···며,명을 받들겠습니다."
삼황자의 손가락 치료가 끝나면 자신의 목이 날아갈 것이다.
학장은 그날부터 물 한잔, 밥 한끼 먹지 못했다.
결국 도장을 찍은건 자신이니.
****
'아아- 끝났구나.'
저 멀리서 그녀가 온다.
뒤에 광이나는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들을 대동한 채.
학장은 아카데미 입구에 나와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목을 거두어갈 저승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는 얼굴이 팅팅 부어오른 교관도 함께였다.
교관은 턱을 달달 떨며 공포감을 여과없이 뱉어내고 있다.
달그락- 푸르르릉.
군마가 그들의 앞에 당도했다.
학장과 교관은 거대한 태산이 자신의 앞에 솟아오른 감각에 침을 꿀꺽 삼켰다.
"고개를 들라."
아름다운 미성이지만 서릿발 같은 카리스마가 담겨있다.
그녀를 모르는 미련한 자는 이 자리에 없다.
황실의 수호자이자 황제 폐하의 검인 황실 기사단 소속.
검성 아센 프리밀러의 종자 출신.
제국 5기사 중 말석.
하룬 제국의 초신성 그 자체인 에클레어 드리트나가 아카데미에 등장했다.
-
그녀의 현재 신분은 기사가 아니라 황실의 대리인.
학장이 먼저 고개를 들고 교관이 잠시 후 고개를 든다.
군마에 타고있는 그녀는 제국의 정복을 입고 허리에 칼을 차고있다.
질끈 묶은 은발이 햇살에 찰랑이고 루비처럼 붉은 눈이 둘을 내려본다.
양 옆으로는 풀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황실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있다.
한점 흐트러짐 없는 태도가 그들의 군기를 증명한다.
"대기하도록."
말에서 내려온 그녀의 옆으로 다가온 기사 하나가 서신을 건냈다.
붉은색 용이 휘감고있는 두루마리. 저 안에 황실의 뜻이 담겨있다.
'저, 저···망할 새끼 때문에···.'
학장은 당장 일어나서 교관을 불태우고 찢어버리고 싶었다.
교단의 사제와 마법사들만 동행했어도 이런일은 없었을텐데.
교관을 찢어죽일듯 노려보던 학장이 서신을 풀어내는 소리에 시선을 다시 바닥으로 원위치 시켰다.
"도란 에스카로는 들으라!"
서신에는 백작이라는 작위도 학장이라는 직위도 적히지 않았다.
교관은 언급조차 없이 책임자인 자신의 이름만 적혀있다.
아카데미 학장 도란 에스카로는 입으로 답하지 않고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그것을 본 에클레어는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서신을 대독했다.
"로프티 아카데미의 학장으로서 오랜 시간 제국에 헌신하고 유망한 인재들을 이끌어 온 그대의 공을 치하하고 싶으나. 이번 사건의 안일한 대처는 쉬이 넘어갈 수 없다."
학장은 당장 일어나 자신이 준비했던 것과 교관의 미친 짓을 설명하며 울부짖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노와 두려움에 몸을 떨어야 할 뿐이다.
"당장 그대를 효수하고 혈족을 멸해도 짐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을것이고 실추 된 제국의 면도 서지 않는다. 황자의 결손은 회복하였으나 현 사건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죽인다는건지 살린다는건지 애매한 문장에 학장은 숨도 멈춘채 귀를 기울였다.
"그대를 마땅히 신상필벌의 이치에 따라 다스리려 했으나! 당사자인 황자의 간곡한 요청에 가벼운 벌을 얹어 이번 일을 만회할 기회를 주고자 한다."
챙!
'기회 준다며?!'
칼을 뽑는 살기어린 소리에 학장과 교관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짐은 최근 들어 제국민들의 안일함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녀의 마나가 분위기를 무겁게 바꾸었다.
"연방국이 존재하는 이상 평화가 언제까지고 지속 될거라 생각하지 말라. 강성한 제국의 번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아카데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하다. 도란 에스카로는 이번 사건을 복거지계(覆車之戒)삼아 차후에 이와 같은 불상사를 방지하기위해 실전에 강한 기사를 육성할 수 있는 교육과 대책을 마련하라."
핑-!
한계까지 당긴 실을 끊어내는 소리.
서신이 끝남과 동시에 에클레어의 검이 휘둘렸고, 교관의 목이 떨어지고 학장의 오른팔이 잘려나갔다.
데구르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학장의 눈에 잘려나간 교관의 목과 자신의 팔이 보였다.
처벌의 경우 잘려나간 오른팔을 재생하거나 붙이는건 허락되지 않는다.
목을 자르고 혈족을 멸하는 것에 비하면 확실히 가벼운 처벌이었다.
학장은 고통에 이를 악물었지만 자세를 풀지 않았다.
10초 정도 지나 정신이 아득해질때, 그제서야 저승사자가 입을 열었다.
"이상."
"···지고하신 황제 폐하의 성은에 사력을 다해 보답하겠나이다."
예법을 끝마친 학장은 그제서야 일어나 마법으로 지혈을 시작했다.
'사,살았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안도감도 잠시.
그는 앞으로를 생각하면 차라리 죽는게 좋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했다.
***
-생도들은 보여주기 위한 제식이 아닌 실전을 기반으로 훈련하라.
-예상치 못한 변수에도 대응할 수 있는 훈련을 하라.
실전에 강한 기사를 만들기 위한 훈련과 교육 개설.
마법사 출신인 학장에게 떨어진 과제다.
사라진 오른팔의 공허함을 느낄 틈도 없었다.
"어찌하면 좋겠소···."
학장의 서글픈 목소리에 행정관이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실전 경험이 뛰어난 새로운 교관을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우·· 그건 당연히 알고있소. 그러나 새로운 기사를 교관으로 임명하여도. 실속없는 기사도를 숭배하는 그들이 전 교관과 다르다고 어찌 자부할 수 있겠소."
잠깐의 침묵이 학장실을 덮었지만 행정관은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학장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굳이 기사를 고집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기사학부 교관이라 하면 검만 잘 다루면 되는것 아닌지요."
지나가는 기사가 들었다면 냅다 칼을 휘둘렀을 발언을 행정관은 서슴없이 내뱉었다.
"···더 말해보시오."
"이참에 검술학부와 기사학부를 통합시키거나 공통과목을 개설한다면ㅡ."
과연 전장을 구경조차 한적 없는 탁상공론 전문가다운 제안이었다.
기사를 꿈꾸는 생도들이 들었다면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말이지만 학장은 실속을 중시하는 마법사다.
그래서 이 미친 의견이 새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