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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음냐냐냐....”
다음날 아침 준열은 꿈속에서 뭘 그리 맛있는 걸 먹는지 엎드려 자면서 계속 입맛을 다셨다.
“안 일어나네?”
“내버려 둬. 어제 무리한 모양인데.”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끝낸 두 사람. 쥬리와 타미라가 열린 준열의 방문 너머 준열이 자고 있는 침대 위를 쳐다보다가 홱 시선을 한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김 비서가 창가의 엔틱한 의자에 앉아서 우아하게 아침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무리? 몇 번이나 했는데?”
“두 번까지 한 건 확실해.”
김 비서는 쥬리와 타미라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면서 자기 얘기를 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시선을 창밖에 두고 커피 향과 그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혹시 세 번한 건 아니겠지?”
그 상황에서 김 비서가 자기보다 더 많은 섹스를 한 게 아닌지 그걸 질투하는 쥬리. 그에 비해서 괄괄한 성격의 타미라는 그깟 자잘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몇 번이 뭐가 중요해? 얼마나 찐하게 했는지, 그게 중요하지.”
“어이구. 그래. 니 팔뚝 굵다.”
“뭐 내가 좀 통뼈이긴 하지.”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아침부터 티격태격 거리는 두 여자들. 그녀들도 이내 시간에 쫓겨 출근 길에 오르고. 그녀들이 다들 호텔 방을 나가고 나자 김 비서가 힐끗 준열의 방을 들여다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뭐 오늘은 농구 경기에 뛸 것도 아니니....”
그 말 후 김 비서는 열려 있던 준열의 방문을 닫아 주었다. 그 덕일까? 준열은 두 시간 정도를 더 자고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잠에서 깼다.
“아하아아암~”
그리고 시간을 확인한 그가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벌써 10시야? 하아....”
한숨과 함께 욕실로 향한 그는 찬물에 샤워를 하고 정신을 차린 뒤 옷을 챙겨 입고 방문을 열고 거실용 공간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이 식탁 쪽으로 향했는데 그곳에 그가 먹을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누가 미리 준열이 먹을 음식을 주문해서 식탁에 차려 둔 모양이었는데 그게 누군지는 바로 알수 있었다.
그 식탁에 메모지에 예쁘장한 한글이 몇자 적혀 있었으니까. 준열은 그 메모지를 보고는 그대로 식탁에 앉아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 * *
메모지에는 김 비서가 휘트니스 센터에 간다고 적혀 있었다. 준열은 식사를 하면서 식사를 끝내고 김 비서가 있는 휘트니스 센터에 갈까하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운동은 지긋지긋해.”
요 며칠 농구하느라 준열의 몸은 지금 최상의 상태였다. 칼로 치자면 잘 벼려 놓아서 뭐든 싹둑 잘라 버릴 자신이 있는 상태랄까? 하지만 어제 이후로 준열은 운동에 흥미를 잃었다. 물론 그게 운동과는 손절을 하겠다는 그런 뜻은 아니었다.
그냥 농구공은 한 동안 보기도 싫다고 할까? 그 덕분에 다른 운동도 하기 싫어졌고. 왜 어린애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질리면 며칠 거덜 더도 보지 않는 그런 수준?
그때였다. 준열의 핸드폰이 울리고 확인하니 JYB엔터의 LA지사장이었다.
“아아. 맞다.”
준열은 그제야 자신이 JYB엔터의 LA지사장에게 무슨 부탁을 했는지 기억이 났다. 그래서 곧장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표님!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으신 겁니까?
제법 화가 난 듯 따지고 드는 JYB엔터의 LA지사장. 하지만 누가 뭐래도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준열이었다.
“뭐요?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준열은 그걸 잘 알고 있었고 상대인 JYB엔터의 LA지사장도 그 점을 바로 눈치 챘다. 준열도 상대가 쭉 미국에서 살아 온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JYB엔터의 LA지사장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파견 나와 있는 사람이었다. 즉 한국의 기업 문화에 충분히 적응이 되어 있는 사람이란 얘기. 그런 자가 감히 회사 대표에게 짜증을 낸다? 그건 한국 기업에 있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아, 아니. 그게....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제 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상대는 바로 사과를 해 왔고 준열은 그거가지고 더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말을 돌렸다.
“됐고. 내가 부탁한 사람은 이쪽으로 보냈습니까?”
-네. 그제 보냈고 어제 뉴욕에 도착했는데....대표님과 연락이 되지않아서....현재 대표님께서 묵고 계시는 호텔에 있습니다.
“잘 됐네요. 그 사람 연락처 보내주세요. 내가 연락할 테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JYB엔터의 LA지사장은 준열에게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좀 전 자신이 저지른 말실수 때문인지 지금은 준열과 더 통화를 하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그래서 준열도 이쯤에서 통화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와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준열의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한통 날아왔고 준열은 그 문자 메시지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여보세요?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고, 준열은 JYB엔터의 LA지사장이 보내 준 엔터 설립과 법인 사업으로 전환에 경험이 있는 직원의 성별이 여자임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 * *
준열은 당연히 JYB엔터의 LA지사장이 보내 준 직원이 호텔에 있을 거로 봤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사업자 등록 때문에 뉴욕시 조세청에 가 있다고요?”
-네. 상호만 말씀해 주시면 엔터 회사 등록이 바로 가능합니다.
졸지에 자신의 미국 내 연예기획사 사명을 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준열. 하지만 이미 미국에서 자신이 연예기획사를 차리면 그 회사 이름을 뭐로 할지 생각해 뒀던 준열이었다. 그래서 준열은 JYB엔터의 LA지사장이 보내 준 직원에게 말할 수 있었다.
“딜라이트(Delight) 엔터테인먼트로 가죠.”
-딜라이트라면 기쁨이라는 뜻의 그 딜라이트 말씀이시죠?
“네. 맞아요. 한국식으로 치자면 기쁨 엔터테인먼트가 되겠군요.”
준열은 말 그대로 미국인들에게 음악적으로 기쁨을 주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연예기획사 이름을 딜라이드 엔터테인먼트로 짓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상호는 딜라이트 엔터테인먼트로 하고 법인 사업체로 전환을 하려면 보증인과 준비금이 필요한데....
준열은 JYB엔터의 LA지사장이 보내 준 직원과 이곳 뉴욕에서 현지 엔터 설립과 법인 사업으로 전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나눴다. 상대는 JYB엔터의 LA지사장의 호언장담처럼 유능했고 통화를 끝냈을 때 시간은 10분이 좀 넘게 흘러 있었다.
“이런....”
그때 준열은 자신이 상대에게 큰 결례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이름도 묻지 않다니....”
아무리 그 일이 급해도 그렇지. 이건 한 회사의 대표로서 그 직원에게 큰 실수를 저지른 게 맞았다. 해서 준열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그 직원에게 사과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JYB엔터의 LA지사장에게 따로 연락을 취했다.
-그러셨군요. 그 직원은 비앙카 남으로 미국교포 출신입니다. 원래는 미국의 대기업인 월마트 스토어의 기획부에서 일했는데 한국 K팝에 관심이 생겼고 더 알고 싶다며 저희 회사에 들어온 재원입니다. 뭐 좀 말이 많기는 한데....
준열로부터 그가 왜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그 내막을 전해들은 JYB엔터의 LA지사장. 그가 이어서 말했다.
-남 대리는 미국인이라서 저희와 확연히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대표님이 자신에게 왜 사과를 하는지, 아마 그 이유를 지금쯤 궁금해 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요?”
-네. 한국인 직장인들이나 인맥에 신경쓰지 미국 직장인들은 인맥보다는 일을 더 우선시 하거든요. 대표님께서 그 점이 신경 쓰이신다면 제가 대신 남 대리에게 연락해서 대표님께서 남 대리의 일 처리에 칭찬을 많이 하셨다고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뭐....그러세요.”
준열도 생각해보니 JYB엔터의 LA지사장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래서 자신이 괜한 짓을 한 건가 생각하면서 JYB엔터의 LA지사장과 통화를 끝냈다. 그리곤 마저 식사를 하고 나서 식탁을 일어설 때였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JYB엔터의 LA지사장이 말한 그 비앙카 남이라는 직원의 전화였다. 준열은 의아해하며 그 전화를 받았다. 왜냐하면 JYB엔터의 LA지사장의 말대로라면 비앙카 남이 그에게 이렇게 전화해 올 일은 없었으니까.
“여보세요?”
-대표님. 남 대리입니다. 지금 여기로 와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갑작스런 비앙카 남의 요청에 준열이 어리둥절해 할 때 그녀가 왜 그를 뉴욕시 조세청으로 부르고 있는지 그 이유를 얘기했다.
-여기 조세청장님이 대표님 팬이라네요. 오셔서 얼굴 한번 비치시고 사인에 같이 사진 한 장 찍어주시면 지금 제가하고 있는 일이 훨씬 편해 질 거 같아서요.
* * *
“뭐, 뭐라고요?”
비앙카 남의 뜬금없는 소리에 준열이 기가 차 할 때였다.
-저도 어제 그 경기 봤어요. 정말 크레이지 한 경기력이었요. 저도 고등학교 다닐 때 농구를 했지만....
비앙카 남이 속사포처럼 떠들었다. 그러고 보니 JYB엔터의 LA지사장이 그녀가 말이 좀 많다고 한 거 같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엄청난 수다쟁이 일 줄이야....
한 동안 그녀의 말에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하던 준열. 그런 그가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에게 궁금한 게 있다며 질문을 던져 왔기 때문에.
-....데 그러고 보니 진짜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뭐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네. 뭐....”
비앙카 남은 교포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것이 한국말을 예전의 준열보다 더 잘하는 거 같았다. 따지고 들자면....사실 지금의 준열 자신보다도 더 한국말을 잘하는 거 같기도 하고.
-프로 선수들에 비하면 대표님은 키가 큰 편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점프를 하실 수 있는 걸까요? 혹시 높이뛰기 선수나 체조 선수 같은....
딱 봐도 비앙카 남 역시 어제 준열이 3점 라인 밖에서 슬램덩크를 성공한 게 제일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 자신의 시스템이 준 능력 때문이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준열의 입장에서는, 어떡하든 지어내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비앙카 남이 알아서 그럴싸하게 핑계 댈 수 있는 선택지를 제시해 주니 준열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노릇이었다.
“뭐 선수까지는 아니고....원래부터 몸이 가벼워서 높이뛰기를 잘하긴 했습니다. 농구 선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키가 커서 체조는 못 배웠고요.”
-역시....제 생각대로 높이뛰기를 하셨군요.
“근데 조세청으로 오라면서요?”
-아아. 맞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언제까지 여기 오실 수 있으세요? 가급적이면 조세청장님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하시면 좋을 거 같은데?
준열도 사업하는 사람이다. 비앙카 남이 말하는 조세청장과 만남이 무슨 의도인지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런 만남의 자리에 나간다는 건....
-잘하면 오늘 중으로 사업 등록과 법인 사업 등록을 끝낼 수도 있어요. 물론 그러러면 조세청장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요.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두 가지 현안을 오늘 중으로 처리가 가능하다면 얘기는 또 다르지. 준열은 비앙카 남과 통화를 끝냄과 옷을 챙겨 입고 서둘러 호텔 방을 나섰다.
“어디 가십니까?”
그런 준열의 옆을 문 팀장이 따라붙으며 물어왔고 그런 그에게 준열이 대답했다.
“뉴욕시 조세청으로 갈 거니까 차 빨리 밑에 대기 시켜.”
“하아. 그걸 지금 말하면....아닙니다.”
문 팀장은 준열에게 뭐라 불만을 토로하려다 그만뒀다. 하긴 준열이 이러는게 어디 하루 이틀일도 아니고 말이다. 다행이라면 지하주차장에 미리 경호팀원들이 내려가 있다는 점이었다. 문 팀장은 준열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지하주차장의 경호팀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 준열은 핸드폰을 꺼내서 김종훈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준열의 전화를 즉각 받는 김 부장. 그는 오늘 오후에 워싱턴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준열이 시킨 모종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뉴욕시 월가 200번지에 있는 골드만 삭스의 본사에 있었다.
“거긴 어때?”
-어떻긴요.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준열은 김 부장의 목소리에서 떨림을 감지했다. 하긴 골드만 삭스가 어떤 곳이던가? 전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이 아니던가? 더불어 온갖 금융사건에 연루되어서 있어서 그런지 온갖 음모가 판을 쳤고. 또 미국 재무 장관 사관학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이곳 출신 인재들이 미국 재무 장관을 많이 꿰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