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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889화 (88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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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선대로부터 물려받았다고는 하지만 누가 뭐래도 지금의 삼명그룹이 있게 만든 사람은, 바로 현 삼명그룹 회장인 백승렬이었다.

그런 그가 비록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말 한마디와 한 걸음의 족적이 가지는 영향력은 여전히 거대했다. 비록 현 삼명그룹 부회장의 세력, 그러니까 이동훈 비서실장의 눈치는 봐야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얼마든지 책임을 질 수 있는 백승렬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동훈 실장에게 권력을 준 것도 바로 자신이고 말이다.

“쯧....노성식이랑 윤대호를 이용해 먹는 것도 오늘로 끝이겠군.”

좀 전 삼명 미래재단 산하에 백승렬이 만든 컨설팅 사업부의 박성식 이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백승렬. 그가 아쉽다는 얼굴로 가볍게 혀를 차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백 회장은 자신의 장 손자들을 잃고 나서 은퇴 결심을 번복했다. 그리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 했는데 막상 그의 자리가 없었다. 삼명그룹에는 백승렬 회장의 회장실이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 자리에 가서 앉기에 명분이 없었다.

그 말은 그 스스로가 그 자리를 내 놓았고 그 자리의 주인이 누군지 지목을 해 버린 터라, 그것을 아는 자들이 순순히 그가 제자리를 찾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앉기로 되어 있는 자신의 아들 녀석이 순순히 그 자리를 포기할 리 없었고.

하여 백 회장은 자신의 아들 녀석의 오른팔부터 잘라버리기 위해서 칼을 준비하고 그 칼을 휘두를 자들을 준비시켰다. 그게 바로 좀 전 백 회장이 연락을 받은 컨설팅 사업부와 박성식 이사였다. 그러니까 컨설팅사업부 자체가 칼이고 그 칼을 휘두를 장수가 바로 박성식 이사란 소리다.

박성식 이사는 삼명 케미컬의 상무로, 삼명 장학재단의 도움을 받고 삼명그룹에 인사한 초특급 인재였다. 그런 만큼 백승렬 회장이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원래 그는 이동훈 비서실장에게 혹시 문제가 생기면, 대신 쓰려고 준비시켜 놓은 패였다.

한데 그 숨겨 놓은, 아니 아껴 놓은 패를 이동훈을 제거하는 데 이렇게 쓰고 있으니, 백 회장의 입장에서 아깝고도 씁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어차피 알려질 일이었지만....이 실장과 준열이 녀석이 많이 놀랐겠군.”

뭐 그렇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국내는 물론 국외로도 백 회장의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이제는 백 회장이 하고자 하면 뭐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뒷방 늙은이 신세를 면한 셈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예전의 삼명그룹 백 회장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회장이자 후계자인 손자 녀석이 감히 그를 어쩔 수 없는 만큼의 위치에는 올라섰다고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삼명그룹의 힘을 직간접적으로 쓸 수 있게 된 게 컸다. 그로인해 백 회장은 국외, 특히 미국에서 자신이 알고 싶은 걸 알아내고, 또 정리할 것을 정리하는 게 가능해졌다.

“사실 좀 많이 놀랐지. 녀석이 설마 록펠러 가문을 건드릴 줄은 몰랐으니....뭐 덕분에 외국에서 녀석에게 손쓰기가 훨씬 수월해졌지만....”

그 말 후 백승렬은 바로 어제 자신에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생각났다.

“살다보니 그쪽에서 먼저 내게 연락을 다 해오고....”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할 비밀이 세상에는 참 많다. 그 중 떠도는 소문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바로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유대인들의 금융 카르텔이다.

백승렬 회장 정도 되면 그들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는데 실질적으로 그들 수뇌부와 만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쪽에서 원했다기보다도 삼명그룹에서 필요해서 만들어진 만남이었다. 그 말은 여태 삼명그룹에서 유대인 금융 카르텔에 저자세로 숙이고 들어갔다는 얘기. 또 그 덕분에 미국과 유럽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고.

한데 무슨 이유에선지 미국의 대표적인 유대인 금융 카르텔로 알려진 골드만 삭스의 회장이면서 CEO로 잘 알려진 데이비트 솔트가 먼저 백 회장에게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어투는 시종일관 정중했다. 하지만 그 속에 숨은 뜻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지금 미국이라는 개울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단 얘기였다. 그 미꾸라지 한 마리는 바로 자신의 손자인 백준열이었고.

그 근거로 솔트 회장은 최근 록펠러 가문이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 짧게나마 백승렬 회장에게 설명을 해주어야만 했다. 그 얘기를 다 듣고 난 백 회장은 솔트 회장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자신은 이미 은퇴를 했고 뒷방 늙은이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솔트 회장에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백 회장이 재기를 위해서 지금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다 안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백 회장은 솔트 회장과 손을 잡았다.

솔트 회장은 백준열이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되어 미국을 떠나기를 바랐고, 백 회장은 원래 자기 자리를 되찾기를 원했기에 서로 일시적인 윈윈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게 되면 자연스럽게 깨지는 협력 관계 말이다.

* * *

백승렬 회장의 예상대로 준열은 자신의 여자인 타미라를 제거하고 자신을 다치게 만들, 다국적 용병단의 배후에 삼명그룹이 있단 사실을 알고 꽤 놀랐다. 하지만 그 삼명그룹을 움직인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의 부친인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이란 사실에 진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백 회장이 그에게 삼명그룹을 넘겨주기로 했을 때, 그 당시만 해도 그는 삼명그룹에 더는 미련이 없어보였으니까. 실제로도 그는 장남에게 삼명그룹을 뺏기고 나서도 유유자적하며 편하게 여생을 살다가 죽기도 했고. 단지 그 여생을 장남 때문에 그리 오래 누리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랬던 백 회장이 갑자기 자신에게 넘긴 삼명그룹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겠나? 자신에게 줬던 삼명그룹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준열에게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씨발....줄 땐 언제고....이제 와서....하긴....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했으니....”

준열은 적어도 삼명그룹에서 만큼은 자신의 오른팔이라고 볼 수 있는 이동훈 실장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 사실을 이 실장이 알면서 자신에게 여태 알리지 않았을 리 없으니 그도 여태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 그리고 그런 준열의 생각은 맞았다. 이동훈 실장은 백 회장이 자신의 자리를 되찾으려 한다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준열 만큼 충격을 받은 듯 했다.

하긴 후계 작업 때문에 이 실장은 준열에게 붙여 준 당사자가 바로 백 회장이었으니 이 실장도 충분히 놀랄 만 했다. 하지만 왕좌는 하나고 그 자리에 앉을 왕도 한 명이었다. 그 말은 백준열을 왕좌에 앉히지 못하면, 이동훈 실장도 끝장이라는 얘기. 즉 이동훈 실장 입장에서는 백 회장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쳐내고 어떡하든 준열을 왕좌에 앉혀야만 했다. 그러니까 삼명그룹 내에 전쟁이 시작 된 것이다.

삼명그룹의 실세인 이동훈 실장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백승렬 회장을 따르는 사람들 간에, 하나뿐인 회장 자리를 두고서 말이다.

“이 실장이 알아서 하겠지.”

미국의 준열은 그 싸움을 당분간 수수방관키로 했다. 왜냐하면 그가 전면에 나서면 이는 자칫 경영권을 두고 아버지와 아들간의 추악한 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었으니까. 일단 이동훈 실장이 나서보고, 그로서는 힘들다 싶으면 그때 후계자인 준열이 나서도 충분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이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는 딴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저쯤이 좋겠군.”

삼명전자 직원 아파트촌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간 준열. 그는 아파트촌에서 나오는 유일한 통로 근처에 차를 대고 상태창의 인벤토리에서 개컨테이너 속에서 아까 타미라에게 받은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그 권총의 탄창을 빼내서 총알이 몇 발이나 있는지 확인할 때였다.

탕! 타탕! 탕! 탕! 탕!

타미라가 들어간 아파트촌 안에서 갑자기 총성이 일었다. 순간 준열은 타미라가 부르가 용병단의 잔여 용병들의 제거에 나섰음을 알 수 있었다. 총성은 10여 분 간 계속 일었는데 어느 순간 뚝 그쳤다. 그리고 준열의 예민한 귀에 이쪽으로 뛰어오는 자들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움직여 볼까?”

준열은 아예 권총을 손에 쥔 채 차에서 내렸고 아파트촌에서 유일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 즉 도로와 길이 있는 이쪽으로 뛰어오는 자들을 향해 가볍게 발걸음을 내 디뎠다.

* * *

자신들이 묵고 있는 곳이 안전가옥임을 알기 때문일까? 부르가 용병단의 용병들은 경계나 불침번 같은 건 세우지도 않고 술을 퍼마셨다. 그리고 문명의 혜택, 그 중에 게임은 단연 인기가 있었다.

대기업 직원들이 지내는 데 있어 불편함이 없는 숙소답게 그 안에는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당연히 초고속 인터넷 망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한잔들 씩 마신 용병단원들은 다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즐겼다. 그 중에서 단연 인기 있는 게임은....도박 게임이었고.

“으아아아....거기서 아카 플러시(A-K를 포함한 플러시)가 나오다니....”

“쯧쯧쯧....돈 다 날리고 있군.”

그걸 보고 부단장인 마르틴이 한심하다는 듯 도박 게임에 빠진 수하 용병을 쳐다보다가 이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현재 여기 있는 부르가 용병단의 우두머리라고 자기 전에 녀석들의 상태를 확인한 마르틴.

“휴우....이제 씻고 자자.”

술은 좀 많이 마셨지만 용병들의 상태는 다들 괜찮았다. 단지 걸리는 게 있다면 아직 단장인 카이클에게서 연락이 없다는 건데....

“일이 좀 꼬인 모양이로군.”

마르틴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장이 직접 나선 이상, 이번 일에 대해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문제가 생겨도 단장이 알아서 잘 헤쳐 나올 거라고 봤고. 하여 마르틴은 자신의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던져 놓고 그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갔다. 물론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 왔을 때 그 전화를 받을 생각으로 욕실 문은 살짝 열어뒀다.

쏴아아아아!

그렇게 마르틴이 오랜 만에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을 때였다.

스스륵!

마르틴의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누군가 그의 방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그리고 그자는 다른 건 관심도 없는 듯 샤워 중인 마르틴이 있는 욕실 쪽으로 바로 움직였고, 거침없이 열려 있는 욕실 문을 열고는 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헉!”

욕실에서 샤워 중이던 마르틴은 기겁하며 갑자기 자신을 덮쳐 온 자를 반사적으로 밀쳐내고 주먹으로 반격까지 가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그의 온몸에 힘이 쑤욱 빠졌다. 마치 전신 마취제라도 맞은 듯, 그리고 동시에 숨이 턱 막혀왔고, 겨드랑이 아래에 끔찍한 격통이 느껴졌다.

“....그르르르....”

마르틴은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의 입에서는 목에서 막 넘어 온 피거품 때문에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마르틴의 시선이 자신의 왼쪽 겨드랑이로 향했고 거기 깊숙이 꽂혀 있는 군용칼을 봤다. 순간 마르틴은 자신이 당했음을 깨달았다. 겨드랑이 아래에 박힌 칼날이 그의 폐를 꿰뚫은 것이다.

털썩!

마르틴의 몸이 그대로 욕실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마르틴의 몸 위에 여전히 올라타 있던 자가 그에게서 떨어져 나오면서 그의 겨드랑이에 꽂혀 있던 군용칼을 뽑았다. 그 사이 두 눈에서 생기가 다 빠져 나간 마르틴은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몸을 축 늘어트렸다.

마르틴의 죽음을 확인한 침입자는 여전히 마르틴의 몸에 뿌려지고 있던 샤워기 물줄기에 군용칼을 가져다 댔다. 그렇게 군용칼에 묻은 마르틴의 피를 샤워 물로 씻어낸 침입자는 벽걸이에 수건에 군용칼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곤 몸을 돌려서 마르틴의 방을 들어 올 때처럼 기척도 없이 조용히 빠져 나갔다.

* * *

사실 타미라는 자신이 제일 먼저 제거한 용병단원이, 지금 여기 있는 부르가 용병단의 부단장이자 우두머리란 건 알지 못했다. 그저 놈들이 묵고 있는 숙소에서 제일 끄트머리 방에 있는 자라 제일 먼저 처리한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옆방에 있는 용병이 그 다음 그녀의 타깃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타미라가 조용히 군용칼로 용병단원을 쥐도 새도 모르게 다섯까지 죽였을 때였다.

“어헉! 너 뭐야?”

은밀하게 움직이던 타미라가 들키고 말았다. 하필 타미라가 막 침대 위에 자고 있던 용병의 목을 칼로 그어 죽였는데, 그 방에 다른 용병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침대에서 죽은 용병처럼 헐벗고 있는 게, 딱 봐도 둘이 좀 전까지 동성애를 즐긴 거 같았다. 그러다 하나가 화장실에 갔고....

휘리릭! 푸욱!

“크아아악!”

타미라가 다급히 군용칼을 던져서 그 화장실에서 막 나온 용병의 앞가슴에 꽂았지만, 그 용병이 죽어가면서 비명소리를 너무 크게 내 버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쳇!”

별수 없어진 타미라.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리모컨의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아파트촌에 용병들이 묵고 있던 숙소를 밝히던 불빛이 일제히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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