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887화 (88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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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원래 하나 남은 테러범을 손보는 건 타미라의 몫이었다. 하지만....

“혹시 피 튀면 어쩌려고?”

“피가 왜 튀어? 아아....”

순간 타미라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 봤다. 킬러라고 볼 수 없는 가늘고 긴, 누가 봐도 잘 손질 된 손톱의 보기 예쁜 하얀 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킬러 타미라는 지금 자신의 손에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살상 무기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물론 킬러라면 맨손으로도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녀도 그렇게 교육받고 훈련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보통 사람일 경우고, 그 상대가 킬러도 상대하기 꺼리는 용병이라면 얘기는 달라졌다.

특히나 남녀의 힘의 격차는 타미라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극복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혹시 총 없어?”

“없는데.”

준열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준열은 자신의 여자가 누굴 죽이는 걸 직접 자기 눈으로 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타미라와 그 짓을 할 때 그녀가 사람을 죽이는 게 생각 날 거 같아서 말이다. 그러니 준열은 속으로 잘 됐다고 생각했다.

“치잇! 별 수 없네. 그럼 내가 녀석의 이목을 끌 테니....네가 죽여.”

“그러자.”

앞서 타미라에게 자신이 그녀를 노리는 테러범 둘을 죽였음을 밝힌 준열이었다. 그래서일까? 타미라는 더는 자신이 킬러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마지막 남은 요 근처에 있는 테러범을 처리하러 움직였고, 그 길에 타미라가 궁금한 듯 준열에게 물었다.

“너....내가 킬러란 거....알고 있었지?”

“....”

준열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걸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타미라도 준열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너처럼 치밀한 녀석이 내 뒤를 캐지 않았을 리 없을 테지.”

“치밀해? 내가?”

그때 준열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타미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타미라가 피식 거리며 하던 말을 마저 이어 나가듯 중얼거렸다.

“당연하지. 미스 김도 그러던데. 네가 한국에서도 그랬다고 말이야. 쥬리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내가 요 며칠 널 살펴봤는데....오늘 보니 확실해. 넌 철저한 완벽주의자란 걸 말이야.”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글쎄다. 그건 네 맘이겠지. 칭찬으로 받든, 욕으로 받든.”

타미라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준열보다 앞서 걸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준열이 말했다.

“야! 그쪽 아냐!”

그 말 후 준열이 갑자기 방향을 옆으로 틀었고 샛길로 들어갔다. 그런 그를 보고 타미라가 홱 몸을 틀어 그를 쫓으며 말했다.

“진작 말했어야지.”

그때 막 샛길을 벗어난 준열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도로가에 세워져 있는 검정 승합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차에 있어.”

그 말에 타미라가 한 손을 턱으로 가져가더니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그리곤 준열에게 말했다.

“내가....”

준열은 타미라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그녀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렇게 하자.”

그렇게 둘은 마지막 남은 테러범이 타고 있는 승합차 쪽으로 움직였고....잠시 후 그 테러범을 제거한 준열이 다급히 외쳤다.

“어디 가?”

“장비 챙기러. 30분 뒤에 거기서 봐.”

여기서 거기란 잔여 테러범들이 있는 곳을 말했다. 준열이 하도 쪼아대는 타미라에게 그들이 현재 있는 곳을 말한 것이다.

“허얼....”

준열은 기어코 큰길로 나가서 택시를 잡아타는 타미라를 보고 헛웃음을 짓다가 승합차 안을 보고 무슨 생각인지 운전석 문을 열었다. 그리곤 운전석에 죽은 테러범의 시신을 인벤토리의 개컨테이너에 던져 넣고 차 안에 피 냄새를 방향제를 뿌려 지운 뒤, 그 승합차의 운전석에 올랐다. 그리곤 차에 시동을 걸고는 그 차를 출발시켰다.

* * *

미래 예지 능력을 통해 타미라를 죽이고 자신을 다치게 만들 자들에 대해 알게 된 후, 준열은 당연히 그들과 그들의 배후에 대해 조사를 했다. 물론 그걸 준열이 직접 하지는 않았다. 그를 대신해서 그 정도 쯤은 알아봐 줄자들이 지금 준열의 주위에 넘쳐났으니까. 그런데....

“뭐라고? 부르가 용병단이....뉴욕에 와 있어?”

바로 어제 낮에 준열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부르가 용병단이라고 다국적 용병단인데 그들 중 일부가 뉴욕에 와서 그런 짓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어제 밤에 부르가 용병단을 고용한 자가 누군지 밝혀졌다.

“아놀드 바르시니?”

준열은 전혀 모르는 자다. 정작 그 자의 정체를 알게 된 준열은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졌다.

아놀드 바르시니란 자는 미국 동부 최대 범죄조직의 보스였다. 하지만 그와 준열은 접점이 없었다. 그 말은 아놀드 바르시니란 자 뒤에 다른 배후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해서 준열은 자신이 고용한 미국의 정보책에 아놀드 바르시니의 뒤를 캐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오늘 준열이 지하철역에서 폭파 테러범을 잡고 막 지하철역을 빠져 나올 때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얘기를 전해 들었다.

“아놀드 바르시니의 뒤에....삼명그룹이 있는 거 같다고?”

이 무슨 개 풀 뜯는 소리란 말인가? 자신이 삼명그룹 부회장이자 후계자다. 한데 자신과 자신의 여자를 해치는 일에 삼명그룹이 배후라고? 준열은 말도 안 된다고 항변을 했다. 그랬더니 그쪽에서 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르가 용병단이 왜 삼명전자 직원 아파트촌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더불어 엊그제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있었던 부르가 용병단이 어떻게 하루 만에 뉴욕으로 옮겨 올 수 있었고 말입니다.

그때 준열은 부르가 용병단이 지금 죄다 뉴욕에 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순간 머리가 복잡해진 준열. 그러나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알았소. 내 다시 연락 하지.”

자신의 여자인 타미라의 목숨을 구하는 일인 만큼 지체할 수 없었던 준열은 곧장 양키 스타디움으로 갔고 타미라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한데 변수가 생겼다. 기껏 구해낸 타미라가 빡 쳐서 부르가 용병단의 잔여 용병들을 자기 손으로 처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어차피 처리할 자들이었기에 준열이 별 생각없이 놈들이 있는 곳을 타미라에게 말했는데 그게 실수였다.

준열은 마지막 테러범이 타고 온 승합차를 몰고 타미라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삼명그룹이....부르가 용병단을....아프가니스탄에서 뉴욕으로 옮겨주었다는 건데....왜?”

무엇보다 삼명그룹에서 그 정도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몇 없었다. 특히 삼명전자까지 움직이려면 회장이나 부회장이 아니면....

“설마?”

준열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다행히 입술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안 그래도 심각한 그의 얼굴이 더 딱딱하게 굳었다. 준열은 잠시 생각하다가 운전 중 꺼내 놓은 자신의 핸드폰의 전화번호부에서 제일 위에 저장해 놓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부회장님.

그러자 삼명그룹 비서실장인 이동훈의 중후한 목소리가 준열이 운전 중인 승합차 안에 울려왔다.

* * *

부회장 준열의 후계구도를 견고히 하는 일에 열중인 이동훈 실장.

백승렬 회장의 침묵 속에 이동훈은 삼명전자를 시작으로 계열사들에 대한 그룹 내 지배구조 개편 때문에 요즘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그런 가운데 미국으로 출장 가 있는 준열의 그곳 체류 기간도 한 달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미국에서 준열이 잘 해주고 있어서 이동훈으로서는 상당히 흡족했다.

한국에 있을 때 준열이 쳐댔던 사건, 사고들의 뒤처리에 그가 들인 공이 얼마든가? 그 짓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동훈은 요즘 살이 3Kg이나 찌고 얼굴 혈색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한데 최근 3주 가까이 자신을 찾지 않던 백준열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것도 새벽 3시 무렵에. 이 시간에 전화는 분명 예의에 어긋난 짓이었지만, 이동훈은 반갑게 그 전화를 받았다.

자다가 잠깐 화장실에 볼일을 보다가 생각이 났다. 급한 일인데 그가 빼 먹은 게 말이다. 계열사 대표에게 보낼 답 메일인데 어제까지는 보냈어야 했다. 뭐 어차피 그 대표도 오늘 출근해서 확인만 하면 될 일이기에 지금 보내도 상관은 없었다. 해서 서재에서 그 답 메일을 작성해서 막 보냈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오랜 만에 듣는 백준열의 목소리가 이동훈에게는 반갑게 들렸던 것이다. 그런데....

“네?”

준열이 그 동안 치지 않았던 사건, 사고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이동훈에게 토스를 해 왔다.

그만큼 그게 사실이면 진짜 골치 아픈 일이 지금 삼명그룹 내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 된다. 현 삼명그룹의 실세인 이동훈의 눈을 속이고 말이다. 이동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아니기를....’

이건 백준열의 망상이어야 했다. 하지만 통화 중 백준열의 말이 길어질수록 그걸 듣는 이동훈의 동공도 덩달아 흔들림이 커지고 있었다.

“하아....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연락드리도록 하죠.”

백준열이 말하는 핵심이 뭔지 간파를 한 이동훈. 어차피 중요한 건 하나였다. 그 일에 그분이 개입 되었는지의 여부. 그것만 확인하면 됐으니까. 준열과 통화를 끝마친 이동훈. 그는 자신의 집 서재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담배 한 대 피울 동안 생각을 끝낸 이동훈이 여전히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자고 있었을 텐데 미안. 다른 게 아니라....”

말하는 이동훈의 목소리가 점점 더 격앙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이동훈이 답답한 듯 서재 창문을 열었고 다시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 뒤 계속 서재에 머물며 줄 담배를 피워대던 이동훈.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았고 이제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동훈이 서재를 나서려 할 때였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누구 전화인지 확인하자마자 이동훈은 그 전화를 받았다.

“그래. 알아봤어? 어. 어. 뭐? 회장님이? 확실해? 휴우....알았어. 자세한 건 출근해서 듣도록 하지.”

잔뜩 굳은 얼굴로 통화를 끝낸 이동훈. 그가 자신의 핸드폰을 보고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실장님.

그 전화를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누군가 받았고, 그에게 이동훈이 짧은 한숨 후 다소 맥 빠진 어투로 말했다.

“하아!....이거 아무래도....부회장님 말씀이 맞는 거 같습니다.”

* * *

준열과 통화 후 씻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이동훈. 그가 삼명그룹 본사로 출근길에 올랐다. 현 삼명그룹 회장인 백승렬과 부회장 백준열이 출근하지 않는 삼명그룹 본사. 호가호위라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이동훈의 위세는 대단했다.

비서실의 2인자인 비서차장을 비롯해서 다수의 본사 임원들이 본사 정문 앞에서 대기 중에 있다가, 출근해서 막 차에서 내리는 이동훈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동훈은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움직였는데 엘리베이터에서는 이동훈과 비서차장만이 탑승을 했다.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비서실로 움직였다. 그때 비서차장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비서실이 있는 27층으로 올라가고 있던 이동훈. 그가 비서차장에게 물었다.

“홍 차장.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나?”

그러자 비서차장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노성식 실장님께서는 전혀 모르는 눈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속이고 연기하고 있을 가능성은?”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분의 하루 일상을 저희 쪽에서 감시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비서차장의 대답에 이동훈은 수긍이 됐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 노성식 실장은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었다. 이는 그가 이쪽으로 넘어오면서 자처한 바였다. 그 때문에 이동훈도 노성식 실장을 색안경 끼고 보지 않고 있었고.

“그렇다면....그분이 노 실장을....가림 막으로 쓰고 있다고 봐야겠군.”

여기서 이동훈이 말한 가림 막이라 함은 자신의 편이지만 믿지 못할 자를 이용해서 상대를 속이는 패로 써 먹는 걸 일컬었다. 즉 백승렬 회장이 노성식 실장이 자신을 배신할 걸 알면서 그를 자기 곁에 두고는, 그를 이용해서 그 동안 이쪽의 방심을 유도한 거란 얘기였다.

“아,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다.”

그때 비서차장의 대답과 동시에 27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동훈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곧장 자기 옆에 따라 붙는 비서차장에게 말했다.

“정말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군. 노 실장 말이야.”

“어떻게....정리 할까요?”

“회장님 때문에 불러들였는데 그분이 쓸모 없다니 어쩌겠어? 정리해야지.”

“알겠습니다.”

그 사이 비서실장실 앞에 도착한 이동훈. 그가 실장실 문을 열면서 목소리 톤을 살짝 낮춘 채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회장님 주위에....있는 자들....한 명도 빠짐없이 파악해서 보고해.”

“네. 안 그래도 아침에 연락 받고 파악에 나섰습니다.”

“그쪽에서도 가만있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그때였다. 이동훈 비서실장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핸드폰이 울렸고 바로 핸드폰을 꺼낸 이동훈의 핸드폰 액정에 ‘회장님’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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