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880화 (87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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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갑자기 누가 말을 걸면 사람은 누구나 경계심을 갖는다. 하물며 그게 경찰이라면 더 더욱....

하지만 준열에게는 상대로 하여금 호감을 가지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을 사용하자 잔뜩 인상을 쓰고 있던 경찰이 일단 그의 말은 들어주었다.

사실 경찰 더글라스는 인종차별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에 대한 자부심, 즉 자존감이 상당히 높은 사람이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예의도 없이 불쑥 나타난 모르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 줄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더글라스가 처음 보는 동양인의 말을 더 듣고 싶었다.

‘뭐지? 이런 느낌은....’

분명히 말하지만 더글라스는 동성애자가 아니다. 그런데 동양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설렜다. 30년을 넘게 살아 온 더글라스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감정에 그의 머릿속에 혼란스러울 때였다. 동양인의 자신의 승진에 대해 말했다.

‘그걸 어떻게....’

자신이 승진 시험을 본 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사람들과 눈앞의 동양인의 접점은 없었다. 즉 저 동양인이 자신이 승진 시험을 본 사실을 아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때 동양인이 더글라스에게 자신에게 확실하게 승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그러며 슬쩍 자신이 누군지 밝혔다.

‘맙소사!’

동양인의 정체는 놀랍게도 삼명그룹의 부회장이었다. 삼명그룹은 한국의 대기업이었지만 더글라스도 아는 글로벌 대기업이었다. 그곳의 후계자인 눈앞의 남자의 제안이다. 이건 무조건 받아 드려야했다. 그때 그 동양인이 덧붙였다.

“내일 모레 여기 올때는 반듯이 동료와 같이 오세요. 지금처럼 혼자 오지 말고.”

이는 준열이 그가 처참하게 헬멧에 맞아 죽는 걸 막기 위해서 더글라스에게 해 준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것까지 알지 못하는 더글라스로서는 준열의 제안을 따르는 것보다 당장 자신의 새 파트너를 구하는 게 더 시급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더글라스는 다친 자신의 동료가 복귀할 때까지 혼자 움직일 생각이었으니까. 준열과 헤어지고 순찰을 마저 돌고 난 뒤 경찰서로 복귀한 더글라스는 당장 팀장을 찾아가서 자신의 파트너를 구해 달라고 했다.

순찰조에서 경찰은 반드시 2인 1조로 움직여야 했다. 때문에 더글라스의 요구는 합당했고 팀장은 그 요청을 받아드려야 했다. 그래서 팀장은 내일 오기로 한 신입 경찰을 급한대로 더글라스에게 붙여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음 날 아침 조회시간에 더글라스에게 얘기했다.

“네? 지금 저보고 신삥을 받으란 말씀이십니까?”

“그럼 어떡하나? 당장 붙여 줄 경찰이 없는데?”

“하아....일단 알겠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찰에게 있어 파트너는 자신의 목숨 줄과 같았다.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시 자신의 등을 맡길 동료였으니까. 그런 동료가 갖 부임한 경찰이라면 그걸 반길 현직 경찰은 없었다. 더글라스도 마찬가지였지만 당장 모레 자신과 같이 순찰을 돌아 줄 경찰이 필요했기에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신삥 경찰을 파트너로 받아드렸다. 그리고 하루를 그 신삥 경찰과 같이 지내보니, 그나마 신참치고는 그럭저럭 쓸 만한 녀석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더글라스 눈에 만족할 정도로 뛰어난 경찰은 아니었다. 그냥 데리고 다니기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니, 더글라스는 내일 오후에 그 동양인이 말한 대로, 그 호텔 옆 공원에 순찰 갈 때 그 새 파트너를 대동하고 가기로 했다.

* * *

점심을 먹고 오후에 순찰을 돌던 중 더글라스는 드디어 그 동양인과 만났던 호텔 근처 공원 입구 주차장에 순찰차를 주차했다.

“가자.”

그리고 자신의 새 파트너 아론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론이 알아서 더글라스의 뒤를 따라왔고 긴장한 얼굴의 더글라스가 그 동양인과 만났던 장소로 움직였다. 그리고 보았다. 아니 보였다.

“하아....진짜 있네.”

동양인이 말한 대로 그곳에 오토바이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그 오토바이 근처에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남자가 보였다. 그 남자에게 곧장 다가간 더글라스가 그 자에게 말을 걸었고, 동양인이 시킨 대로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 오토바이 남자의 헬멧에 맞아 의식을 잃었고 정신을 차린 더글라스는 자신을 때린 그 놈을 쫓았다. 당연히 뉴욕 전역에 퍼져 있는 동료 경찰들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그 결과 뉴욕시의 퀸즈 북동부까지 추격 끝에 그곳에서 더글라스는 드디어 그 놈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허어....”

놈을 잡기 위해 뉴욕 경찰들의 장장 2시간의 추격전이 이뤄졌다. 분명 놈을 올가미 쪽으로 몰았건만 놈은 잘도 그 올가미를 피했고 결국 경찰의 힘만으로 놈을 잡는 데 실패했다.

결국 오토바이에 기름이 떨어지자 더는 달아날 수 없게 된 녀석이, 뉴욕시립대(CUNY) 퀸즈칼리지 근방 키세나불러바드와 멜버른애비뉴 교차로에서, 타고 있던 오토바이를 버리고 거기 횡단보도에 서 있던 남자를 인질로 삼아서, 근처 옷가게로 들어갔고 그 옷가게의 직원과 손님들까지 인질로 삼으면서 현재 경찰과 대치 상태에 있었다.

“보통 놈이 아닌 건 알았지만....”

혼자서 뉴욕 경찰을 상대로 이 정도 버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저 놈은 독안에 든 쥐였다. 혼자 힘으로는 절대 저 옷가게를 벗어 날 수 없었다. 그걸 알기에 뉴욕 경찰에서는 옷가게 주위를 경찰차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녀석이 자발적으로 총을 버리고 가게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말빨 좋은 경찰이 녀석과 대화를 시도했고 동시에 녀석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 경찰청의 정보국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진짜 정체가 드러나자 상황이 급변했다. 경찰청에서 특수부대를 보냈고 CIA에서 나온 요원이 현장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일개 경찰인 더글라스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CIA요원이 직접 특수부대를 지휘해서 옷가게 안의 그 놈을 상대하는 것을 말이다. 처음 CIA요원은 그 놈과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그 대화가 잘 되지 않은 듯 굳은 얼굴로 돌아 온 CIA요원이 특수부대장에게 뭔가 지시를 내렸고....

쿠콰콰쾅! 타타타타타타!

얼마 후 특수부대원들이 옷가게를 폭탄과 총알로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 안에 인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안으로 진입해 들어간 특수부대원들.

탕! 탕! 탕!....투타타타타타!

그리고 가게 안에서 총성이 일었고 그 시간이 5분쯤 지나서 가게 안이 조용해진 가운데 대기 중인 911구급대원들이 무전을 받고 황급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것에 실려 나오는 자들이 무려 일곱이나 되었는데 다들 특수부대원들이었다.

그렇게 화기로 가게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들어갔건만 특수부대원이 일곱이나 다친 것이다. 그리고....마지막 들것이 가게 밖으로 나왔는데, 그 들것에 실려 있는 사람은 흰 천에 덮여있어 그게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알 거 같았다. 저 들것에 실려 있는 자가 바로 그놈이란 걸 말이다. 더글라스의 입에서 절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허어....”

동양인이 붙잡고 시간만 끌어라고 한 이유를 더글라스는 그제야 알 거 같았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저 초토화 된 옷가게 안에서 특수부대원 여럿을 해치우고 결국 자기도 죽고 만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관계로 이곳 현장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현장 책임자인 CIA요원도 한쪽에서 굳은 얼굴로 어딘가 통화 중이었고.

그때 특수부대장이 살아남은 특수부대원들을 이끌고 자신들이 타고 온 차로 이동 중인 것이 더글라스의 눈에 보였다. 특수부대원들은 온통 까만 승합차에 말없이 탑승했고 올 때처럼 빠르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기자들이 개떼처럼 현장에 나타나서 촬영과 함께 인터뷰를 시도해 왔다.

“막아!”

그런 기자들이 현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건 경찰의 몫이었다. 더글라스도 그 경찰인지라 인간 울타리 노릇을 해야만 했고. 그 사이 언제 사라졌는지 좀 전까지 현장을 지휘했던 CIA요원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대신 뉴욕 경찰청의 고위 간부가 나타나서 현장을 수습했고 기자들을 상대했다.

* * *

더글라스는 지원 온 경찰과 교대를 하고 경찰서로 복귀한 뒤 좀 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었다.

“그, 그러니까 그놈이 다국적 용병단인 부르가 용병단의 단장이었단 겁니까?”“그렇다니까. 그 부르가 용병 단이란 데가 알고 보니 진짜 무시무시한 곳이더라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악명이 대단한....”

팀장의 말이 한 순간 귀에 들려오지 않는 더글라스. 하긴 그런 대단한 자에게서 죽지 않고 여태 살아 있는 자신이 신기했으니까. 실제 더글라스는 자신이 살아 있는지 손으로 자신의 뺨을 꼬집어봤다. 그런 더글라스를 보고 팀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글라스. 뭐야 너....왜 네 볼을 꼬집고 난리야?”

“아, 아닙니다.”

팀장은 더글라스가 그 용병단장의 휘두른 헬멧에 맞아 죽을 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아니었다. 만약 그 동양인이 시킨대로 새 파트너를 데리고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면....더글라스는 그 용병단장 손에 죽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제야 더글라스는 그 동양인이 왜 그 제안을 하고 나서 끝에 가 자신에게 동료를 데리고 그 자리에 가라고 했는지 알 거 같았다. 그러니까 그 동양인이 더글라스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더글라스는 겁도 없이 그 용병단장을 잡겠다고 설친 것이고. 다행히 그 용병단장을 처치했기 망정이지....

“근데 더글라스....저번 주에 친 승진 시험 말이야. 결과가 영 시원찮더라고. 그래서 이번 승진도 어려울 거 같아.”

팀장이 힐끗 더글라스 눈치를 보며 말했다. 사실 더글라스도 알았다. 팀장이 자신이 아닌 자신보다 몇 달 늦게 경찰에 임관한 사이몬을 밀어주고 있단 걸 말이다. 그리고 사이몬도 저번 주에 승진 시험을 봤었다. 아마도 그 시험 결과가 더글라스보다 사이몬이 좋았던 거 같았다. 그러니 팀장이 이렇게 대 놓고 더글라스에게 승진 운운하는 것일 테고.

평소의 더글라스라면 이런 식으로 노골적이게 승진이 어려울 거 같다고 말하는 팀장에게 대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승진이야 어떻게든 되겠죠.”

“뭐?”

마치 초탈이라도 한 듯 자신의 승진에 대해 별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더글라스. 그런 그를 보고 오히려 팀장이 당황해 할 때였다. 갑자기 나타난 경찰서 선임 팀장이 말했다.

“마이어스 팀장. 서장님께서 찾으시니까 빨리 서장실로 가 봐.”

“서장님께서요?”

팀장은 어리둥절해 하며 서장실로 갔고 그 사이 더글라스는 퇴근 준비를 했다. 그리고 팀장이 서장실에서 나오자 더글라스가 팀장에게 퇴근 보고를 하려 할 때였다.

“더, 더글라스. 너....위에....하아....아니다. 아무튼 축하해.”

“네?”

뜬금없는 팀장의 축하 말에 더글라스가 의아해 할 때였다. 팀장이 이어서 말을 했다.

“특진대상으로 정해졌고 청장님 재가가 있으면 바로 팀장으로 승진 될 거야.”

“아아....”

팀장의 승진이란 말을 들으며 더글라스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 오른 것은 바로 그 동양인, 삼명그룹 부회장인 준열, 백이었다.

* * *

내 여자인 타미라가 죽고 내가 크게 다치는 사태가 벌어질, 악몽이 현실이 될 바로 그날이 밝았다.

그 사이 내게 주어진 이틀의 시간 동안 나는 적절하게 미리 조치를 취해 두었다. 하지만 막상 그날이 되자 긴장감이 고조 되었다.

“쪼옥~ 다녀올게요.”

나와 같이 식사를 한 두 여자 중 한 명인 쥬리가 내 볼에 뽀뽀를 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그때 나처럼 커피를 한잔 더 마시고 있던 김 비서가 내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어?”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네요. 얼굴이 어두운 게....”

누가 김 비서 아니랄까? 내 지금 불안한 심리 상태를 귀신 같이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내 이 걱정을 대신 가져가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내가 해결해야 했다. 무엇보다 내 여자인 타미라의 목숨이 걸렸다. 그러니 좀 더 신경을 써서 대책을 마련하다보니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또 지금도 받고 있었다.

“뭐 때문에 그런지 모르지만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괜히 시간 끌어 봐야 시간만 축내고 더 나쁜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까, 대표님의 능력을 믿고 빠르게 결정 내리시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기세요.”

김 비서의 뼈 있는 조언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오늘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했고 내게는 시스템의 능력이 있었다. 그러니 내가 꾼 악몽대로 타미라가 죽고 내가 크게 다치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 김 비서의 말이 맞아. 괜한 걱정을 한 거 같군. 그런 의미에서 내 긴장도 좀 풀 겸 사우나나 같이 할까?”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우나의 의미를 모를 김 비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먼저 사우나실에 들어가 계세요. 준비해서 따라 들어갈 테니까.”

그 말 후 김 비서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마시던 커피를 다 마신 뒤 빈 잔을 내려 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방으로 가면서 힐끗 타미라가 아직 자고 있는 그녀 방을 쳐다보았다. 오늘 뉴욕 시티FC의 창립기념일이라서 오전 업무를 건너 뛰게 된 타미라. 그녀는 그 오전 시간을 그 동안 부족했던 수면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아침 식사 때 일부러 그녀를 깨우지 않은 나는 혹시 그녀가 인기척에 깰까 싶어 조용히 까치발로 내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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