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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미국의 지원, 아니 후원을 받던 정부, 정확히는 이전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반군인 탈레반에 의해 붕괴가 되면서, 이곳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의 세상이 됐다. 하지만 기득권이 탈레반의 수중에 넘어가자, 그에 대한 반군이 생겨났고 탈레반은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살인전문가들, 즉 다국적 용병단을 자국으로 끌어들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부르가 용병단이었고. 한데 며칠 전부터 그곳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탈레반 정부의 군부 핵심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작전사령관 다한 소장은 그 점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오늘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자신의 부관에게 그걸 걸고 넘어졌다.
“부르가 용병단의 단장과 만나는 거 어떻게 됐어?”
“그게....부단장이라는 작자와 통화는 되는데....자꾸 빼는 느낌입니다.”
“빼?”
“네. 급한 일이 생겨서 시간이 안 난다는 게 그쪽 이유인데....뭐랄까? 급하게 지어낸 느낌이 팍팍 든다고나 할까....좀 전에 전화해 봤는데 또 그런 식으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부르가 용병단의 단장을 내가 오늘 만나 볼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그쪽의 말에 따르면....아무래도 오늘도 보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부르가 용병단의 단장의 이름이 카이클이었지?”
“네.”
“그 카이클이라는 작자가 국외로 빠져 나간 정황 같은 건 못 찾았나?”
“네. 못 찾았습니다. 적어도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는 요.”
“그 자의 신변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소문도 없었고?”
“네. 용병들이 자주 가는 술집과 창녀촌에 심어 둔 자들에게서 그런 얘기는 여태 들어 온 게 없습니다.”
“그렇다는 건....역시 몰래 여길 빠져 나갔을 공산이 크겠군. 다시 한 번 공항과 항만에 그 카이클이라는 자의 사진을 돌려 확인 해 봐. 빠져 나갔으면 분명 위조 신분을 사용했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다고 얼굴까지 위조하진 못했을 거 아냐?”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부관을 사령관 사무실 밖으로 내 보낸 뒤, 다한 중장은 잠깐 창가로 가서 바깥을 쳐다보며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똑똑똑!
빠른 노크 소리와 함께 좀 전에 나갔던 부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님. 파르완의 반군 진영에서 현재 군사적 움직임이 포착 되었습니다.”
그 말에 흠칫하며 다한 중장이 외쳤다.
“들어 와!”
다한 중장의 허락이 있자 곧장 문을 열고 사령관실 안으로 다시 들어 온 부관. 그가 좀 전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내막을 다한 중장에게 보고를 했고, 그 얘기를 다 경청한 뒤 다한 중장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즉시 1군단장에게 연락해서 판지시르와 다르완 사이의 길목에 매복하라고 해. 잘하면 다르완을 재탈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 시간 이후로 작전참모부의 모든 눈은 다르완 쪽에 집중 시킨다.”
사뭇 비장한 어조로 말하는 다한 중장의 두 눈에서 강한 욕망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번에 반군에 의해 빼앗긴 다르완을 되찾을 수 있다면 반군의 기세가 확실히 꺾일 터. 그 공로로 다한 중장은 드디어 대장, 즉 군 참모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몰랐다.
당연히 출세지향적인 성향의 다한 중장에게 있어 다르완의 탈환이 더 중차대한 문제였고, 그 때문에 한낱 용병단장에 불과한 카이클에 대한 생각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없었다.
* * *
사업차 뉴욕에 가 있던 단장인 카이클과의 통화 후, 부르가 용병단의 부 단장인 마르틴은 급하게 정찰 나가 있는 용병단원들부터 부르가 용병단의 아지트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파견 형식으로 나가 있던 소대단위의 용병단원들에게도 부대 보급을 핑계로 아지트에 잠깐 들르라고 지시를 내렸고. 그렇게 마르틴에 의해 부르가의 용병단원들이 속속 아지트로 복귀하기 시작했으며 아지트가 오랜만에 단원들로 북적거릴 때였다.
“어떻게 됐어?”
마르틴의 물음에 부르가 용병단의 중대장을 맡고 있던 도노반이 대답했다.
“한스가 이끄는 제 3소대를 제외하고 다 보였습니다.”
한스의 3소대는 현재 파키스탄 국경지대에 파견을 나가 있었다. 마르틴으로서는 곧 그쪽으로 갈 예정인데 이미 거기 있는 그들을 이곳으로 다시 불러들일 이유가 없었다. 즉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부르가 용병단원들이 이곳 아지트에 다 집결했다는 얘기였다.
“좋았어. 가자.”
마르틴은 곧장 아지트에 모여 있는 부르가 용병단원들 앞으로 나아갔고 그들에게 지금부터 그들이 뭘 할지를 간략 적으로 얘기했다.
“허얼....지금 뉴욕으로 간다고?”
“말도 안 돼. 이렇게 갑자기?”
“야! 갑자기는 무슨....용병이 일이 있으면 바로 떠나는 거지.”
당연히 용병단원들은 웅성거렸고 부 단장인 마르틴은 그런 그들까지 진정 시킬 생각은 없는지 중대장인 도노반에게 말했다.
“먼저 단원들 진정시키고....세부적인 지시 사항은 소대장들을 통해 중대장이 전파하도록.”
“네.”
그렇게 마르틴이 사라지자 중대장인 도노반이 즉시 나서서 소대장들을 통해 시끄러운 용병단원들부터 진정시키게 만들었다. 그 뒤 다시 소대장들을 불러서 앞으로 용병단의 이동과 관련한 세부지침을 하달했다.
당연히 도노반의 말에 소대장들은 다들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긴 한 나라의 국경지대를 양쪽 진영의 암묵적인 허락 하에 통과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정확히 30분 뒤에 출발할 테니까 그 전에 단원들에게 잘 얘기하고. 출발에 문제없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네.”
도노반의 말에 큰 소리로 대답한 소대장들이 각자 소대로 갔고, 잠시 후 아지트 곳곳에서 용병단원들의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소대장들이 놀랄 일이니 그 밑에 단원들이야 더 말해 뭐할까?
그렇게 30분의 시간이 흐르고 부르가 용병단의 단원들이 아지트를 빠져 나와서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 부르가 용병단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다한 중장의 지시로 부르가 용병단을 감시하고 있었던 작전참모부 소속의 요원들이었다.
“저것들 뭐야? 왜 갑자기....”
“아니. 언제 다 모인거지?”
문제는 그들은 부르가 용병단이 갑자기 자신의 아지트에 다 모인 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단 점이었다. 부랴부랴 그 사실을 인지한 요원들이 그 사실을 작전참모부에 알리려 할 때였다.
“컥!”
“케액!”
언제 나타났는지 부르가 용병단원들이 그들 뒤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군용 칼로 그들의 목을 그었다.
그들은 바로 마르틴이 부르가 용병단이 아지트를 떠나기 20분 전에, 귀찮은 감시의 눈을 제거하기 위해 보낸 용병단원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부르가 용병단을 감시하던 작전참모부의 요원들이 전원 다 제거 된 상황에서, 부르가 용병단은 목적지인 파키스탄과의 국경지로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움직였다.
* * *
파키스탄 국경지대로 파견 나와 있던 부르가 용병단의 제 3소대. 그 소대장인 한스는 용병단의 부 단장인 마르틴의 지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국경부대에서 이탈해서 탈마르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기다리라니....”
그 말은 파견지와 그곳 군부대의 지시를 무시하고 무단으로 부대를 움직이라는 얘기였다. 용병으로서 이는 명백한 계약 위반이었다. 당연히 해선 안 될 짓이었는데 그걸 부 단장이 하라니 한스로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하지만 부 단장의 지시니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 해서 한스는 일단 휘하 용병단원들과 같이 탈마르로 움직였다.
탈마르는 수도 카불에서 움직였을 때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가장 가까운 지역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만큼 두 나라의 국경 수비대의 감시가 철저한 곳이기도 했다.
때문에 탈마르는 몰래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려는 아프가니스탄의 난민들이 가장 기피하는 지역이었다. 그런 곳에 왜 마르틴이 제 3소대보고 가 있으라고 했는지 한스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지시대로 갔고 거기서 만날 수 있었다.
“뭐, 뭐야?”
“왜....저들이....”
그들과 같은 소속의 부르가 용병단원들을 말이다. 한스가 보기에 마르틴은 부르가 용병단원 전부를 이끌고 탈마르로 왔다. 그 말은....
“설, 설마....이대로 파키스탄으로 가시려는 건 아니죠?”
“....”
기겁한 한스가 마르틴에게 물었고 그런 그에게 마르틴은 대답대신 피식 거리고는 그대로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버렸다. 그런 마르틴을 한스는 감히 잡지 못했다. 왜냐하면 마르틴은 부단장이었고 한스는 한낱 소대장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 대답을 마르틴을 수행하던 중대장 도노반이 대신 해주었다.
“맞다. 우리는 이대로 파키스탄으로 넘어간다. 하지만....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염려할 거 없다.”
그 말 후 툭툭 한스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도노반이 부단장 마르틴을 쫓아갔고, 그런 그들을 넋놓고 쳐다보던 한스. 그가 어리둥절해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도노반 중대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소대장으로 자신의 상관인 중대장에 대한 신뢰가 확실했던 한스. 그는 한 시간 뒤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바로 탈마르의 국경 지대가 부르가 용병단을 위해 활짝 열린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군부대는 물론, 파키스탄의 군부대 역시 국경지대를 통과하는 부르가 용병단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그렇게 양국의 국경지대를 통과한 부르가 용병단. 그들은 파키스탄의 국경지인 라커니에 대기 중인 다섯 대의 트럭에 올라탔고, 두 시간을 쉼 없이 내달린 그 트럭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옛 수도 카라치에 있는 진나 국제공항이었다.
“맙소사!”
그곳에서 한스는 자신들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인 전세기를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단장인 카이클의 말이 있었지만 부단장인 마르틴은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자신들을 태우기 위해서 대기 중인 보잉 747 전세기를 보고 단장의 말이 전부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1소대부터 차례로 탑승시켜.”
“넵!”
마르틴의 지시에 중대장인 도노반이 칼 같이 대답하고는 용병단원들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런 도노반을 마르틴이 잠깐 직시하고 있을 때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마르틴은 바로 호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고 누구 전화인지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단장님.”
-어떻게 됐어?
“지금 공항입니다.”
-비행기는?
“말씀하신대로 대기 중이고....지금 애들 탑승을 시작했습니다.”
마르틴이 막 비행기의 타기 시작한 부르가 용병단 1소대를 보고 말했다.
-그쪽에서 확실히 약속을 지켰군.
“그런 거 같습니다. 확실한 건 거기 공항에 도착해 봐야죠.”
-그렇군. 애들 잘 챙겨서 내일 보도록 하지.
“네. 단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두 사람의 통화는 길어서 좋을 게 없었다. 그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초강대국의 정보부라면 지금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얼마든지 도청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그런 그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단 걸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미국의 정보부, 즉 CIA에서 NSA(미국 국방부 소속 정보기관으로 통신 감청을 통한 정보 수집, 암호 해독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조직)의 도움을 받아서 파키스탄에 새로 개설한 도청과 감청을 위한 부서. 그 부서가 진나 국제공항에서 다국적 용병단으로 파악된 자들의 국제 통화를 도청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도청 결과와는 무관하게 그들이 미국에 적대적인 다국적 용병단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그들은 준비해 둔 전세기를 타고 진나 국제공항을 떠나버렸다.
“놈들이 맞아. 빨리 파키스탄 정부에 얘기해서 그들을 억류해야....”
파키스탄 CIA 지부에서 그 다국적 용병단이 미국에 적대적인 부르가 용병단임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그들을 태운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가고 없었다.
“그놈의 행선지가 어딘지 빨리 파악해 봐.”
하지만 부르가 용병단을 태우고 하늘을 날아오른 그 전세기의 행선지가 어딘지를 파키스탄 CIA지부에서 알아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륙하고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그 전세기와 무전 교신이 끊겼으니 말이다. 그리도 뒤늦게 파악에 들어간 도청한 내용 속에서도 그들이 어디 공항으로 간다는 얘기는 찾을 수 없었다.
파키스탄 CIA지부는 그 사실을 전부 미국 버지니아 주 랭글리의 CIA본부로 이첩했고, 이를 접한 CIA본부에서는 부국장이 주관하는 긴급회의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