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874화 (87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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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뭐....그러시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경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용병 계에 잔뼈가 굵은 카이클이 지금 미국 최대범죄 조직의 보스 중 한 명인 아놀드의 조언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린 것이다.

“좋군. 좋아.”

아놀드가 자신의 말을 순순히 받아드리는 눈앞의 카이클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시가를 피우고 브랜디 한 모금을 마신 뒤, 꼬꼬 있던 다리를 풀면서 손에 들고 있던 브랜디 잔을 테이블 위에 올린 뒤 카이클에게 말했다.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소. 아프가니스탄에 있다는 당신 부하들....여기로 다 불러들이시오.”

원래는 닷새의 시간을 주려했다. 그만큼 그쪽이 언제 그들이 원하는 바를 말할지 몰랐으니까. 즉 지금 아놀드는 자신이 져야 할 리스크를 스스로 자처해서 감당하려 하고 있었다. 그 만큼 눈앞의 카이클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러죠.”

그런 아놀드의 호의를 알기라도 한 듯 카이클은 순순히 아놀드의 말을 따랐고. 또 그런 카이클이 마음에 든 아놀드의 호의가 이어졌다.

“당신 부하들이 이곳에서 지낼 곳은 내가 마련해 주지. 그리고 그쪽에 말해서 당신 부하들이 뉴욕으로 오는 동안 편의를 좀 봐 달라고 얘기도 해주고.”

용병단원들이 지낼 곳을 마련해 주는 건 그렇다 쳐도 그들의 이동 과정까지 신경 써 주는 건 확실히 호의 이상의 넘침이 있었다. 왜 호의가 넘치면 그건 목적이 있어서 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그 정도도 모를 카이클이 아니었다.

“혹시....우리 쪽에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소이까?”

카이클이 대 놓고 아놀드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러자 아놀드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역시 눈치가 빠르군. 맞소. 내 개인적으로 그쪽에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말하라며 카이클이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됐다는 듯, 들고 있던 브랜디 잔에 조금 남은 브랜디를 원 샷하고는 빈 유리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걸 보고 아놀드가 웃고 있던 입가의 미소를 싹 지우고는 카이클에게 말했다.

“요즘 뉴욕에 타지인이 들어와서 주인 행세를 하려들고 있소. 그 자를 손 좀 봐 주고 싶은데....”

아놀드의 손 봐 주고 싶다는 말에 카이클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왜냐하면 그런 두루뭉술한 말이 카이클 같은 일선, 그러니까 현장에서 직접 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까다로운 말이었으니까. 그래서 늘 그렇듯 카이클이 물었다.

“죽여 달란 얘깁니까?”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아놀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고사로 위장해서....그 정도는 할 수 있죠?”

“물론입니다.”

사람은 잘 죽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면 사람만큼 또 잘 죽는 존재도 없다. 그 특별한 방법을 카이클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많이, 또 잘 알았다. 그런 그가 사고로 위장해서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람 살리는 게 어렵지. 죽이는 거야....”

카이클이 자신 있게 대답하자 그것마저 마음에 든 듯 아놀드가 껄껄 거리며 웃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자신의 브랜디 잔을 다시 챙겨 들고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브랜디를 단숨에 비웠다. 그리곤 몸을 일으켰고 그런 아놀드의 반응에 카이클도 따라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거 없이 거의 동시에 손을 내밀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 * *

카이클이 며칠 전 미국 동부 최대 범죄조직의 보스 아놀드 바르시니와의 만남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때, 다국적 용병단체인 ‘부르가’의 부 두목인 마르틴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탈레반 쪽에서 어제부터 계속 보스를 찾고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 물음에 상념에서 깨어난 카이클. 그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마르틴에게 말했다.

“원래는 내일 말하려 했는데 안 되겠군. 마르틴. 애들 데리고 이쪽으로 넘어 와.”

-네?

어차피 자신이 없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들이 남은 부르가 용병단원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 줄 리 없었다. 그럴 바에야 하루 빨리 그곳에서 철수하는 게 부르가 용병단에 최선의 선택지였다. 카이클은 용병단의 단장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현장 책임자격인 마르틴은 달랐다. 자세한 사정까지는 잘 모르는 마르틴. 그래서 이번에는 열 받은 듯 마르틴의 목소리 톤이 확 올라갔다. 그 만큼 좀 전 카이클의 말에 마르틴이 많이 놀랐다는 소리였다.

“수송 편은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까, 일단 임무 수행중인 애들부터 다 불러 들여.”

-진, 진심입니까?

“뭐가?”

-여기서 철수하시려는 거 말입니다.

“내가 지금 너랑 농담 할 상황은 아니지 않나?”

-미쳤습니까? 이렇게 철수 해 버리면....

“탈레반 놈들이 가만 안 있겠지. 우리 용병단의 신용도 떨어질 거고.”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죠. 앞으로 중동에서 저희가 발붙일 곳은 없을 겁니다.

“괜찮아. 다 잘 될 테니까.”

-뭡, 뭡니까?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이거 뭔가 있죠? 제가 모르는....

“얘기가 길어. 뉴욕에 오면 다 얘기해 줄 테니까 빨리 챙겨 넘어와.”

이유 없이 이런 짓을 저지를 단장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마르틴은 일단 수긍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시키신 대로 하죠.

그렇게 마르틴과 통화를 끝낸 카이클. 잠시 골똘히 생각에 빠졌던 그가 손에 들린 핸드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상대가 바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며칠 연락이 없기에 내 도움은 필요 없을 줄 알았소만?

“그럴 리가요. 편한 길 두고 고생길 자처할 정도로 제가 그리 융통성이 없진 않습니다.”

-그래. 뭘 도와주면 되겠소?

“아프가니스탄의 제 부하들이 탈레반 몰래 거기를 빠져 나올 수 있게 그쪽에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그쪽에 미리 귀띔은 해 뒀소. 지금 내가 그쪽에 말하면....아마 오늘 중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거요.

“고맙습니다.”

-그쪽에서 연락 오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소.

그 말 후 상대, 즉 아놀드가 먼저 전화를 끊었고 카이클은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을 근처 협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책상 쪽으로 가서 자신이 짜고 있었던 타미라라는 그 여자 킬러 납치 계획을 마저 짜려 할 때였다.

꼬르르르~

갑자기 배에서 아우성을 쳤고 생각해 보니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물과 커피만 주구장창 마셔 온 게 생각났다. 사람의 머리는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더 팍팍 잘 돌아갔다. 그걸 아는 카이클은 책상 위의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한 서류들을 잘 챙겨 놓고 외출을 준비했다.

아쉽지만 지금 카이클이 묵고 있는 숙소는 호텔이 아니었다. 아놀드와의 만남 직후 카이클이 묵고 있던 숙소를 눈치껏 옮겼던 것.

모텔 개념인 지금의 숙소에는 룸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았다. 해서 카이클은 귀찮지만 이곳 모텔의 건물 맞은편에 있는 브런치 카페까지 직접 걸어가야만 했다. 다행인 것은 그곳 카페의 커피와 팬케이크가 카이클의 입맛에 딱 맞다는 점.

“오늘은 호두 팬케이크를 먹어봐야겠군.”

브런치 카페는 다양한 샐러드와 함께 팬케이크도 제법 종류가 많았다. 고소한 호두 팬케이크를 생각하니 벌써 입안에 군침이 가득 도는 카이클. 그는 대충 겉옷을 걸치자 바로 모텔 방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카이클의 예상대로 브런치 카페의 호두 팬케이크는 맛이 있었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닭 가슴살 샐러드도 같이 시켜 먹은 카이클은 다시 모텔 방으로 돌아와서 마저 생각 중이던 타미라라는 여자 킬러의 납치 계획을 짰다. 그렇게 그가 뭔가에 한껏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아까 그가 올려 놓은 협탁 위에 핸드폰이 울렸다. 그 소리에 흠칫 놀란 카이클이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고 협탁 쪽으로 걸어가서 그 위에 핸드폰을 챙겨들어다. 곧장 누구 전화인지 확인한 카이클은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그쪽과 잘 얘기가 됐소. 공항을 통해 빠져 나올 수 있으면 좋겠는데, 최근 아프가니스탄 정부 권력에 변동이 생겨서 그쪽에서도 새로운 권력자와 소통이 아직까지 안 되고 있다나? 해서 파키스탄 국경을 넘으라는 군요.

“파키스탄이요?”

-두 곳 국경지대를 책임지고 있는 군 사령관들은 그쪽에서 확실히 선을 대고 있는 거 같더군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무려 2,000km에 걸쳐 긴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때문에 용병단원들이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건 쉬웠다. 단지 양쪽 국경지대를 지키는 군인들의 눈에 띠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몰래 국경을 넘다가 걸리면 양쪽 군인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 군인들의 최고 명령권자인 사령관들이, 이를 묵인한다면 용병단원들이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가면 곧장 카라치(파키스탄의 옛 수도)로 가서 거기 진나 국제공항에 대기 중인 그쪽이 준비한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바로 갈 수 있을 거요.

이런 식이라면 이틀 만에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부르가 용병단원들을 이곳 뉴욕에서 볼 수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카이클이 놀란 건 진나 국제공항에서 바로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가 준비 되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는 그쪽에서 전세기를 준비했다는 얘기고 공항 쪽에도 손을 썼다는 건데 그를 위해서 들어간 돈은 엄청났을 터였다. 새삼 그쪽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알 수 있었고, 또 아놀드가 설마 이 정도까지 자신을 챙겨 줄지 몰랐던 카이클로서는 감동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신경 써 주어 고맙습니다.”

그 마음을 그대로 아놀드에게 전하니 아놀드가 기뻐하며 말했다.

-뭘 우리 사이에....아아....그리고 전에 말한 내 개인적인 부탁 말인데....

“네. 그 타지인 말씀이시군요?”

-맞소. 그자에 대한 정보가 곧 당신에게 전해질 거요.

아놀드가 그 말을 막 했을 때였다. 그의 모텔 방 전화기가 울렸다. 그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아놀드가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하오.

그렇게 아놀드가 먼저 전화를 끊었고 카이클은 걸려 온 모텔 방의 전화를 받았다.

-여기 안내 데스큰데요. 찰튼씨 앞으로 택배가 왔는데 찾아가세요.

당연히 자신의 위조된 신분으로 모텔 방을 체크인 한 카이클. 호텔 같으면 서비스 차원에서 직원이 갖다 줬을 텐데. 카이클은 귀찮지만 모텔 방을 나와서 안내 데스크로 가서 그 앞으로 온 택배, 서류 봉투를 챙겨서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서류 봉투를 개봉하자....

“이 자로군.”

아놀드가 개인적으로 처리해 주길 바라는 자는 역시나 보통이 아니었다.

“와우! 현직 상원의원에다가 차기 뉴욕시장이 유력한 자라....”

환하게 웃고 있는 안소니 브룩스 공화당 상원의원의 사진을 보면서 카이클의 입가로 비릿하니 조소가 지어졌다. 그때 뭔가 생각이 난 듯 카이클이 말했다.

“아아! 맞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카이클은 들고 있는 핸드폰에 길게 번호를 눌렀고 잠시 후 부르가 용병단의 부 두목인 마르틴의 목소리가 그의 핸드폰 스피커에서 울려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아마도 카이클의 전화를 목 빼고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그런 마르틴에게 카이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 됐어. 그 보다 애들은?”

-탈레반 놈들 모르게 전부 불러들였습니다.

“잘했어. 그럼....”

카이클은 아놀드가 말한 대로 부르가 용병단원들이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와서 뉴욕으로 올지에 대해 설명을 쭉 했다. 그 말을 다 경청하고 난 마르틴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단장님.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이 정도면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정부가 움직여야 가능한 수준 아닙니까?

마르틴은 지금 카이클이 미국과 중국, 러시아 정부와 손을 잡은 게 아닌지 묻고 있었다. 다국적 용병단의 경우 한 국가에 고용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천조국의 미국과 그런 미국과 각을 세울 수 있는 두 곳의 초강대국. 바로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 다국적 용병단은 딱 거슬리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국익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적들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카이클도 위조 신분으로 이렇게 몰래 미국에 들어와 있었고. 그렇기에 그들 나라에서 다국적 용병단을 고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있어도 이용하고 조용히 폐기 처분하기 일쑤였고. 그걸 알기에 다국적 용병단은 스스로 알아서 그들 나라에 고용되는 걸 피했다. 그건 부르가 용병단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건 아니야. 그러니 걱정 말고 편하게 넘어 와.”

-뭐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자세한 건 뉴욕에 가서 단장한테 직접 듣도록 하죠.

“그래. 잘 생각했어. 애들 데리고 오면 그때 얘기하도록 하자.”

카이클도 마르틴도 알았다. 여기서 그들의 통화가 길어져 봐야 좋을 게 없단 걸 말이다. 그렇게 마르틴과 통화를 끝낸 카이클은 다시 책상으로 갔고, 마저 하던 타미라라는 여자 킬러를 납치하는 계획을 매듭짓고 바로 안토니 상원의원을 어떻게 사고사로 위장해서 죽일지 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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