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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카이클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러다 갑자기 킥킥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크....이래야지. 내 인생에서....언제, 어디 쉬운 적이 있었던가?”
광인처럼 웃던 카이클이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거기 있는 신? 조물주? 뭐가 됐든....끝까지 가보자고. 누가 이기나.”
카이클의 웃던 얼굴이 싹 지워지고 평소처럼 진지한 얼굴로 돌아가면서, 그 여자 킬러가 들어간 뉴욕 시티FC의 구단 사무실을 직시하고 있던 그의 몸이 180도 돌아갔다. 그리곤 빠른 걸음으로 양키 스타디움을 빠져 나온 카이클. 그는 근처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를 타고 자신이 묵고 있던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 동안 자신이 계획해 온 타미라라는 뉴욕 시티FC의 대표 납치 계획을 전부 취소하고, 머리를 싸매고 다시금 새로운 납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으음?”
그렇게 몇 시간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가며 타미라라는 그 여자 킬러의 납치 계획에 집중하던 카이클. 그가 뭔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곤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그의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삐져 나왔다.
“허어....내일이라고?”
오늘 도착하기로 되어 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낸 그를 돕기 위한 용병단원들이, 이동 중 문제가 생겨서 하루 늦어질 거 같다는 메시지가 좀 전 그의 핸드폰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기에....”
화가 단단히 난 카이클. 그가 핸드폰을 챙겨 들고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곤 길게 전화번호를 눌렀고 잠시 후 그의 핸드폰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이 벌써 도착한 모양이로군요?
“뭐?”
안 그래도 마르틴이 보낸 용병단원들 때문에 전화를 했는데, 마르틴이 그 새끼들 얘기를 하니 카이클이 울컥해서 목소리 톤이 확 올라갔다. 그 소리에 역시나 눈치 빠른 용병단의 부 두목인 마르틴.
-이런....혹시 녀석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생겼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연락하는 거고.”
-혹시....녀석들이 내일 도착한다고 해서 이렇게 저한테 연락을 한 겁니까?
“맞아. 잘 아네.”
-쩝....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녀석들 중에 능력은 있는데, 사고를 좀 치는 녀석을 제가 끼워 보낸 바람에 이런 일이 생긴 거 같습니다.
마르틴의 그 말에 뭔가 생각이 난 듯 카이클이 얼굴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
“마르틴. 너 설마....그 새끼를 끼워 보낸 거야?”
-보스의 그 새끼가 폴이라면....맞습니다.
“미친....그 사고뭉치를 거기 끼워 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하지만 폭파전문가로서 녀석 만한 인재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녀석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지금 뉴욕에 가 계시고 말이죠.
“끄응....”
마르틴의 대답에 카이클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르틴의 말처럼 폴이란 녀석은 폭파 쪽으로는 최고의 인재였다. 달리그가 폭파마귀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용병단에서 녀석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는 카이클, 자신뿐이었고.
폴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낸 용병단원 중에 끼어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카이클의 화도 빠르게 식었다. 그들이 하루 늦어진 이유가 그것 하나로 충분히 설명이 된 것이다. 그때였다. 마르틴이 물었다.
-아놀드와의 만남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물음에 카이클은 엊그제 미국 동부 최대 범죄조직의 보스 아놀드 바르시니의 만남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 *
아놀드 바르시니가 괜히 미국 동부 최대 범죄조직의 보스가 된 게 아님을 카이클은 그와의 만남에서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반갑소.”
“저야 말로....”
카이클은 눈에 안대까지 쓴 채 모처로 옮겨지기를 몇 차례 겪고 나서, 여기가 어딘지 모를 장소에서 아놀드와 만날 수 있었다.
아놀드는 금발에 풍채 좋은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카이클이 보기에 아일랜드계 미국인 같아보였다. 그가 먼저 내민 손을 카이클이 잡고 악수를 나눴는데, 까칠한 카이클의 손과 달리 아놀드의 손은 폭신하고 부드러운 것이 딱 봐도 현장에서 손 뗀지 오래 되어 보였다.
검투사의 손에 굳은살이 다 사라졌다는 건 더는 검투 장에 설 수 없게 되었다는 것. 해서 카이클은 눈앞의 남자를 동종업계의 친구가 아닌 철저히 비즈니스 상대로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둘 사이의 분위기는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카이클이 메인 디시를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식탁의 분위기가 급격이 얼어붙었지만 말이다.
“자아. 이제 저를 부른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 카이클도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아놀드의 접시에 스테이크가 마지막 한 점 남아 있는 걸 확인하고 입을 연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이 아놀들의 입맛을 사라지게 만든 듯, 찌푸린 얼굴의 아놀드가 들고 있던 포크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걸 보고 카이클도 한 점 남은 스테이크를 찍은 포크를 그대로 접시 위에 도로 내려놓았다. 그때 식사를 끝낸 아놀드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뒤 카이클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서 말하긴 좀 그렇고....브랜디 한 잔 어떻소?”
“좋죠.”
술은 이미 식사 중 와인으로 충분히 마신 터였다. 하지만 독한 브랜디와 텁텁한 시가 한 대를 피우는 건, 그 맛을 아는 카이클로서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흔쾌히 승낙하며 아놀드와 같이 그의 서재로 향한 카이클.
“앉으시오.”
주인인 아놀드가 먼저 자리를 권하고 한쪽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거기에 딱 봐도 브랜디가 들어 있는 비싸보이는 게 잘 세공 된 유리병과 그 브랜디를 따라 마실 유리잔이 보였다.
아놀드는 그 테이블로 가서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유리잔에 반잔 정도 브랜디를 따랐다. 그리고 그 브랜디가 든 각진 유리잔을 양손에 들고 카이클이 앉아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여기....”
“고맙습니다.”
그리곤 아놀드가 내민 브랜디 잔을 카이클이 받았다. 그러자 그 옆 소파 상석에 아놀드가 앉으며 바로 앞 테이블에 브랜디 잔을 내려놓았다. 그걸 보고 카이클도 자신의 잔을 테이블 위에 같이 올렸다. 그 사이 아놀드가 자신이 앉은 상석 옆 목재 담배 케이스 안에서 시가 두 개를 꺼내서 양쪽 끝을 커트한 후 그 중 하나의 시가를 카이클에게 건넸다.
카이클은 흡족한 얼굴로 그 시가를 받았고 그런 그에게 아놀드가 재차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아놀드가 내민 손에는 지포라이터가 들려 있었고, 그걸 확인한 카이클은 아놀드에게서 받은 시가를 입에 물고 그 끝을 지포라이터 쪽으로 가져갔다.
칙! 칙! 화륵!
그러자 아놀드가 바로 지포라이터를 켰고 바로 불이 붙었다. 그 불에 아놀드가 내민 시가의 끝이 가 닿았고, 잠시 뒤 시가의 끝과 카이클의 입에서 동시에 연기가 피어나왔다. 그걸 확인한 순간 아놀드가 지포라이터를 쥐고 있던 손을 뺐고, 동시에 시가를 물고 있던 카이클도 자세를 바로 했다. 그 사이 아놀드는 자신의 입에 물고 있던 시가에 불을 붙이고는, 지포라이터의 뚜껑을 닫고 그걸 담배 케이스 옆에 내리고선, 그 손으로 입에 물고 있던 불붙은 시가를 잡아서 입에서 떼어낸 다음 카이클에게 말했다.
“시가 맛이 어떻소?”
카이클의 물음에 폐부 깊게 담배 연기를 담았다가 막 내뱉던 카이클이 흡족한 얼굴로 대답했다.
“좋군요. 요즘 도미니카 공화국과 에콰도르 시가도 괜찮다고들 하지만....역시 원조는 쿠바죠.”
카이클이 자신이 피우고 있는 시가가 쿠바산 최고급 시가임을 알아보자 아놀드의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가더니, 바로 앞의 테이블 위에 놓인 브랜디 잔을 시가를 잡지 않은 손으로 챙겨 들었다. 그걸 보고 카이클 역시 자기 앞의 브랜디 잔을 들었다. 그러자 아놀드가 브랜디 잔을 앞으로 쭉 내밀었고 카이클이 그 잔을 보고서 자신의 잔을 조심스럽게 그 잔에 부딪쳤다.
챙!
그렇게 건배 후 둘은 한 모금씩 브랜드를 마셨고, 거의 동시에 그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나 아놀드가 카이클에게 물었다.
“브랜디 맛은 어떻소?”
브랜디는 과실주를 증류한 알코올분이 강한 술이다. 도수가 높은 만큼 애주가들 사이에 특히 인기가 많은 술로 당연히 카이클이나 아놀드 같은 자들은 이 술을 좋아했다. 그랬기에 카이클은 술을 마시기 전에 이 술이 어떤 술인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됐다.
“혹시 아르마냑의 브랜디가 아닙니까? 강렬한 것이 정말 인상적이로군요.”
브랜디는 17세기 프랑스에서 벌어진 위그노 전쟁 때 코냑 지방의 포도밭이 황폐화 되자, 네덜란드 상인들이 그 와인을 증류 시켜보라고 했고 그 결과 탄생하게 되었다. 그 기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지역, 즉 코냑 지방에서 만들어진 브랜디는 우아한 여성적 풍미를 지녔고, 같은 프랑스의 아르마냑의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는 남성적 풍미를 지닌 것으로 유명했다.
“크하하하하. 역시....맞습니다. 아르마냑의 브랜디.”
아놀드가 인정했고 카이클은 자신의 예측이 맞자 흡족해 하며 거의 동시에 시가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마치 브랜디의 안주 마냥 시가를 입 안으로 빨아들였다. 그렇게 시가와 브랜디의 맛을 한 동안 즐기던 두 사람. 그때 이 자리를 마련한 주인, 즉 아놀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이렇게 카이클씨를 만나자고 한 것은....”
아놀드가 드디어 자신을 부른 이유를 밝히려 하자, 카이클도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빼내서 손에 든 체 물끄러미 아놀드를 쳐다봤다.
“확실히 처리해 줬으면 하는 자가 있어서요.”
그 말에 카이클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피를 보는 일이 아니고서야 다국적 용병단의 보스를 이렇게 부를 리 없었으니까. 그건 당연한 거고 문제는 도대체 누구를 죽여 달란 건가 였다.
당장 카이클의 눈앞에 있는 저 아놀드는 미국 동부 최대 범죄조직의 보스다.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저 자에게 있어서 길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 한 마리 밟아 죽이는 거나 진배없는 일이었다. 그런 자가 굳이 자신을 불러서 죽여 달라고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건 당연히 보통 사람은 아닐 터.
“그 자가 누굽니까?”
카이클이 단도직입적으로 아놀드에게 그 타깃이 누군지 물었다. 그러자 아놀드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더니 말했다.
“그 자가 누군지. 나도 모르오. 단지 그쪽에서 요구할 시 언제든 그 자를 제거해야 하고 실패는....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게 중요한 거지.”
아놀드의 대답에 카이클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아놀드의 말이 무슨 뜻인지 20년 가까이 용병 밥 먹어 온 카이클이 알아들은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들이 존재했다. 초법적이며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
그 자들이 부르면 아놀드와 카이클 같은 자들은 무조건 그 부름에 응해야했고 또 그 말에 따라야했다. 아니면 그 자들에 의해 언제든 지워질 수밖에 없는 존재. 그게 바로 아놀드와 카이클 같은 자들의 운명이었으니까.
“이 일에 끼고 싶지 않소만....그건 안 되겠지요?”
카이클의 물음에 아놀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브랜디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잔에 남은 브랜디를 다 입 안으로 털어 넣고 그걸 목으로 넘긴 다음 대답했다.
“발을 담근 이상....빼는 건 불가능하오.”
카이클은 아놀드에게 자신이 아직 그 일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소용 없다는 걸 누구보다 카이클 자신이 더 잘 알기에 그 말을 도로 입안으로 삼켰다. 대신 지금 처한 자신의 사정을 아놀드에게 말했다.
“하지만 저의 부하들은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러나 카이클의 말은 도중에 아놀드에 의해 끊겼다.
“취소하고 여기로 부르시오.”
“네? 하지만 그럴 경우 위약금을 비롯한 저희 용병단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는....”
하지만 카이클의 말은 이내 혀 차는 아놀드와 이어진 그의 말에 의해 또 끊겼다.
“쯧쯧쯧....그걸 그쪽에서 모르겠소? 그쪽에서 어지간히 알아서 해결해 줄까? 별 걱정을 다하는구려. 아마추어도 아니고.”
살짝 짜증까지 섞인 아놀드의 말에 카이클은, 더 말해 봐야 궁색한 변명 밖에 되지 않을 자신의 말을 더는 자신의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아놀드에게 물었다.
“그쪽이 어딘지 아는 바가 있소?”
“....”
잠시 말이 없던 아놀드.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브랜디 병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빈 자신의 잔에 브랜디를 절반 가까이 따른 뒤 고개를 돌려 카이클을 쳐다보며 물었다.
“더 마시겠소?”
카이클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고 그걸 본 아놀드는 자신의 잔을 챙겨들고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앉았다. 그리고 한 모금 브랜디를 마신 다음 좀 전 카이클이 그에게 물은 질문에 대답했다.
“누군지 알고는 있지만....알려주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소.”
그 말은 아놀드가 봤을 때 카이클이 그쪽을 알아서 좋을 게 없을 거라는 얘기였다. 여기서 카이클이 더 집요하게 요구한다면 그쪽이 누군지 아놀드에게 들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카이클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