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872화 (8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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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나머지 내 두 여자, 쥬리와 김 비서는 내 여자들답게 눈치가 빨랐다. 나와 타미라 사이에 모종의 일이 있음을 직감한 것. 그래서 둘이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게끔, 타미라의 식사가 끝나가자 알아서들 자기들 방으로 사라졌다.

“좀 피곤하네. 먼저 들어갈게요.”

“나도요.”

그렇게 내 두 여자들이 사라지고 나자, 식사를 끝낸 타미라가 나를 보고 말했다.

“여기서 얘기해도 되겠네. 어때?”

“뭐...상관없겠지.”

내 예민한 귀에 방으로 들어간 두 여자들은 음악을 들으며 서류를 보거나 손톱 손질 중이었다. 즉 여기서 나와 타미라가 나누는 얘기를 그녀들이 엿들을 일은 없었다. 뭐 엿듣는다고 해도 내 여자들인 이상 그녀들이 나에게 해가 될 짓을 할리 없었고.

내가 타미라가 앉아 있던 식탁의 맞은편에 알아서 가서 앉자, 식사를 끝낸 타미라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다음 나를 향해 말했다.

“그 놈 알고 보니 별거 아니더라고.”

딱 봐도 타미라는 녀석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내게 해 줄 거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녀의 정체, 즉 자신이 킬러임을 내게 털어놔야 할지 몰랐으니까. 타미라는 내게 자신이 킬러란 사실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걸 알기에 나도 더 직접적으로 그녀에게 묻지는 않았다. 물론 형식적으로나마 궁금한 건 물었지만.

“그래. 뭐하던 놈인데?”

“아놀드 바르시니라는 자 밑에 조직원 나부랭이더라고.”

“조직원?”

“어. 여기 뉴욕에서 마약과 청부살인 등 온갖 나쁜 범죄를 다 지르는 범죄조직이야.”

“그렇군.”

내가 바로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제 됐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타미라가 그런 나를 보고 물었다.

“그 녀석을 어떻게 했는지는 안 물어 봐?”

“뭐 네가 어지간히 알아서 처리했을까! 왜? 뒤처리가 필요해?”

“아니. 됐어. 뒤처리는 무슨....”

그걸로 나는 타미라와 얘기를 끝냈다. 그녀도 그런 나를 잠깐 쳐다보다 냉장고로 가서 캔 맥주를 하나 꺼내서 다시 식탁으로 갔는데, 맥주 안주 삼아 먹다 남은 음식들을 더 먹을 모양이었다.

“적당히 먹어.”

그런 그녀에게 한소리하고 내가 내 방으로 들어갈 때였다. 타미라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물론 그녀는 그 소리를 내가 들을 수 있단 사실을 알 리 없었다. 하긴 사람이 그 소리를 듣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역시 한국의 재벌답네. 사람 하나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란 거잖아.”

타미라가 한국의 재벌에 대해 뭘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뭔가 단단히 잘못 된 정보, 혹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았다. 뭐 딱히 그 점에 대해 그녀에게 지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려면 내가 그녀 혼잣말을 엿들었다는 건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부터 당장 그녀에게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거기다가 어느 세월에 타미라에게 한국 재벌이 다 그렇지 않다는 걸 일일이 다 설명하고. 또 무엇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나는 타미라가 생각하는 그런 재벌의 일원이 맞았다. 그렇다고 그걸 인정하긴 또 그렇고....

“에이. 뭐 차차 얘기 하지 뭐.”

그렇게 내 방으로 들어 온 나는 그대로 침대로 가서 그 위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침대에 눕자마자 알아서 수마가 나를 찾아왔고 나는 눈을 감자마자 바로 깊은 수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 *

지금처럼 킬러로 활동하기 전, 특수부대와 다국적 용병단에서 활동을 했었던 타미라.

그녀는 여러 죽을 고비를 넘겨왔고 그 중에는 적에게 잡혀 끔찍한 고문과 함께 수치스런 일을 당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여자로 수치스런 짓을 당하는 게 더 힘들었지만, 그건 제대로 된 고문 앞에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 뒤 남자와 섹스를 할 때면 그녀는 당시의 그 고문의 순간을 떠올리게 됐다. 즉 섹스할 때 일종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백준열과 섹스를 할 때면 그 트라우마가 잠잠했다. 그랬기에 타미라는 평소라면 몇 번 섹스 후 헤어졌을 남자와 이렇게 계속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킬러라는 자신의 직업까지 숨기고 백준열이 맡긴 일까지 해가며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뿌려 놓은 악연의 고리가 그리 쉬게 끊어질 리 없었다.

“....끄아아악....Fuck!....죽여....죽이라고....”

당한만큼 타미라도 고문 하나는 기막히게 잘했다. 그런 그녀 앞에 기죽지 않고 당당했던 그 놈은 타미라가 칼질을 좀 하자 채 10분을 견디지 못하고 죽여 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에게 정체가 뭔지 물었고 녀석은 순순히 자신이 누군지 밝혔다. 그가 누군지 말하는 순간 타미라는 알 수 있었다. 멘시니란 자가 그녀가 2-3년 전에 의뢰를 받아 죽인 미친 개망나니 새끼의 형이란 사실을 말이다.

“허어. 진짜 어이가 없군. 너 지금 그 개새끼 복수 하려고 오늘 내가 탄 차를 들이받은 거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새끼는 정말 죽을 만 한 놈이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여자를 무려 셋이나 죽이고 또 그보다 훨씬 많은 여자의 미래를 망쳐 놓은 놈이었으니 말이다. 인과응보라고 그렇게 죽은 여자의 가족 중 한 명이 타미라에게 살인청부를 했고 그녀는 기꺼이 그 청부를 받아드렸다. 청부료를 50% 깎아주기까지 했다.

“....그 개새끼가....내게는 유일한 핏줄이었다.”

타미라에 의해 팔다리 힘줄이 다 끊긴 터라 꼼짝달싹 못하는 신세의 멘시니.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멘시니의 지독히도 독기 서린 지금 이런 식의 눈빛이라면, 그 눈빛 만으로라도 당장 타미라의 몸을 수십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도 남음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멘시니는 온몸이 난자당해서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었고, 반면 타미라의 손에는 피가 흥건한 칼이 쥐어져 있어 언제든 그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었다.

“하긴....나라도 그런 동생이 죽으면....복수를 하려 들었겠군.”

입장 바꿔 생각해 본 타미라가 멘시니의 말이 이해가 된다는 듯, 그렇게 별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툭하니 말을 내 뱉은 다음 바로 이어서 말했다.

“물론 그 전에 내 손에 죽었겠지만.”

타미라의 그 말에 멘시니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런 그에게 타미라가 싸늘하니 사형선고를 내렸다.

“나를 죽이려 했으니 네가 죽는 데 이의는 없을 거로 본다. 그럼 죽어라.”

푹!

사형선고와 동시에 그 사형을 집행해 버리는 타미라. 그녀의 칼이 가차 없이 녀석의 가슴에 박혔고 심장을 꿰뚫린 멘시니의 동공에서 생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렇게 멘시니를 죽인 뒤 타미라는 그의 시신을 폐공장의 드럼통에 넣었다. 그 다음 의도한 것인지 모르지만 역시 그 폐공장 안에 있던 염산을 멘시니를 넣은 드럼통에 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염산으로 드럼통을 채운 뒤 뚜껑을 씌운 뒤, 폐공장을 빠져 나온 타미라는 핸드폰을 꺼내서 지금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 쪽으로 콜택시를 불렀다.

콜택시가 올 시간까지 고려해서 도로의 위치를 고려한 타미라. 그녀가 그곳 도로에 도착하고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가 부른 콜택시가 나타났고 그 콜택시를 잡아 탄 타미라는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곧바로 향했다.

* * *

호텔에 도착해서 묵고 있는 로얄 스위트 룸으로 들어가자 백준열과 그의 두 여자가 타미라를 반겼다. 타미라는 식사를 하고 준열과 마주했는데 그에게 모든 걸 다 밝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충 둘러댔는데 준열이 그런 그녀의 말을 대충 믿어주는 시늉을 하고는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국 재벌의 정보력이 그렇게 대단하다던데....내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

타미라는 냉장고에서 꺼낸 캔 맥주를 마시며 오늘 하루 일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평소처럼 출근길에 올랐다. 한데 전날 일 때문인지 몰라도 백준열이 쥬리와 타미라, 두 사람에게 각기 경호팀을 붙였지 뭔가.

“누가 돈 많은 재벌 아니랄까....”

타미라가 그런 백준열에게 투덜거렸지만 그런 그녀에게 그가 확실하게 말했다.

“돈이 많으니까 이러지. 그래도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는 게 어디야?”

“....”

그 말에 타미라도 입술을 삐쭉거렸지만 더는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 못했다. 비록 자신이 짐승인 소에 비유 된 건 기분 나빴지만, 그 소라는 게 백준열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기에 나빴던 기분이 눈 녹듯 바로 풀린 것이다.

반면 쥬리는 백준열이 고용한 경호팀과 벌써 친해 진 듯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먼저 출근을 했다. 뒤이어 타미라가 경호팀과 같이 출근길에 올랐고 그 경호팀 때문인지 안전하게 출근한 타미라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전에 뉴욕 시티FC의 구단 사무실에서, 오후에는 뉴욕 닉스의 구단 사무실에서 열심히 자기 일을 했다. 그리고 퇴근 길 역시 경호팀에 의해 무사히 호텔로 돌아와서 백준열과 마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준열이 물었다.

“쥬리는 괜찮았다던데. 너는 어때?”

“나? 뭐....괜찮았어.”

누가 재벌 아닐랄까?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경호업체, 그 경호업체에서도 VIP고객만을 상대한다는 팀을 붙여준 준열이었다. 그러니 킬러인 타미라가 봐도 완벽한 경호를 선보이는 그들에게서 그 어떤 불만꺼리도 찾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틀의 시간이 더 흐르고 사흘 째 주말을 앞두고 쥬리와 타미라에게 준열이 말했다.

“내일과 모레 캠핑 갈까 하는데....두 사람은 어때?”

준열의 캠핑이라는 말에 캠핑 가는 게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고, 쥬리가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나는 좋아요.”

그러며 시선을 바로 옆에 타미라에게 돌리는 쥬리. 이미 김 비서도 좋다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 터라 이제 남은 건 타미라만 찬성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 쥬리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린 타미라가 말했다.

“주말에 약속이 있기는 한데....뭐 다 간다는 데 나만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가지 뭐.”

“진짜? 와아! 잘 됐다.”

못이기는 척 말하는 타미라의 목을 꽉 끌어안는 쥬리. 그런 쥬리를 억지로 떼어 낸 타미라가 먼저 출근길에 올랐고 뒤이어 쥬리가 나가고 나자 준열이 옆에 김 비서에게 말했다.

“역시 캠핑카를 준비하는 게 좋겠지?”

그러자 김 비서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까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가는 게 좋을 거 같네요.”

김 비서의 대답에 수긍하며 준열은 캠핑카 두 대를 렌트하고 캠핑 장비도 빠짐없이 대여를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주에 캠핑을 가기 어려울 듯싶었다. 왜냐하면....

“쳇! 캠핑 가기 다 틀렸네.”

오후에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난 준열이 투덜대며 서둘러 외출 준비 후 호텔 로얄 스위트 룸을 나서며 김 비서에게 지시했다. 캠핑카며 캠핑 장비 대여하기로 한 거 다 취소시키라고 말이다.

* * *

“빌어먹을....”

내일이면 아프카니스탄에서 그의 수하들이 뉴욕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한데 오늘 아침에 웬 미친 놈이 카이클이 노리고 있던 타깃, 여자 킬러를 차로 들이 받았다지 뭔가?

그 놈의 행방을 지금 뉴욕 경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니 잡히는 거야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로인해서 그 여자 킬러가 주위에 경각심을 가질 게 뻔해졌다. 그 말은 곧 카이클이 그녀를 사로잡으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단 소리였다. 그걸 증명하듯이 다음 날 아침에 카이클이 살펴보니 그 여자 킬러 주위로 경호팀이 하나 붙어 있었다. 한데 그 경호팀이 보통 경호팀이 아니었다.

“허얼....시큐리티 매니지먼트에 VIP전담팀이라고?”

미국의 전문 경호업체 중에서 Top3에 들어간다는 시큐리티 매니지먼트다. 그곳에서 최고의 경호원들로 구성 된 팀이 바로 VIP전담팀이었고. 한데 그 VIP전담팀이 떡하니 여자 킬러 곁에 붙은 것이다.

“하루 경호비가 10만 달러라고 한 거 같은데....”

한 달이면 무려 300만 달러나 되는 경호비를 지급해야 했다. 한데 카이클이 알기로 시큐리티 매니지먼트의 VIP전담팀은 6개월 밑으로 단기 계약을 하지 않았다. 즉 VIP전담팀을 경호팀으로 쓰려면 최소 1800만 달러는 써야 한다는 얘기. 한데 스포츠 구단의 대표이기는 하지만 여자 킬러 하나 경호하는데 그 정도 돈을 쓴다? 이건 카이클의 상식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카이클은 허겁지겁 뒤늦게 여자 킬러 주위를 살폈고, 지금 그 여자 킬러와 같이 호텔 방을 쓰고 있는 의문의 동양인 남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남자의 정체를 뒤늦게 알고 난 뒤 카이클은 그 여자 킬러 곁에 VIP전담팀이 붙은 게 바로 이해가 되었다.

“하긴....한국의 재벌, 삼명그룹의 후계자라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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