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860화 (85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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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축구 경기에서 주심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 시작 전에 대기 주심에서 선수 교체 얘기를 했다 하더라도, 교체 될 선수는 함부로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반드시 주심의 허락이 있고서야 그라운드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데이빗 임시 감독이 손을 써 둔 덕분에 주심은 후반전 경기 시작하기 전에, 터치라인에 서 있는 준열을 향해 손짓을 보냈다. 들어오라고 말이다. 그때였다.

“뭐, 뭐야?”

“저, 저 자식은....”

준열이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가는 걸 본 DC 유나이티드의 벤치, 즉 닉 감독과 토미 수석코치가 기겁을 했다. 그럴 것이 오늘 아예 경기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던 백준열이 후반전에, 그것도 교체 선수로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가는 걸 봤으니 말이다.

“토미. 어떻게 된 거야?”

“그, 그건....제가 감독님께 묻고 싶은 말입니다. 백이 왜....”

백준열은 분명히 토미 수석코치에게 말했었다. 마지막 홈경기에는 뛰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가 뛰고 말고는 순전히 그의 맘이었고, 그가 그런 마음을 먹게 된 이유는....

“헉!”

그라운드로 들어간 백준열. 그가 중앙 미드필더,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자리 잡자마자 상대 팀, 즉 DC 유나이티드 벤치를 쳐다봤다. 그때 하필 토미 수석코치와 눈이 마주쳤고 순간 움찔한 토미 수석코치 입에서 절로 놀람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때 눈치가 빠른 토미 수석코치는 직감했다.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비웃는 백준열의 얼굴을 보고서.

“저, 저 자식 지금....우리 엿 먹이려고 여기 온 거 같습니다.”

창백히 질린 얼굴의 토미 수석 코치의 그 말에 닉 감독이 기겁하며 외쳤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저 자식이 뭔가....저희를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오해?”

“네. 아무래도 저희가 DC 유나이티드에 온 걸 두고 배신감 같은 게 생긴 게 아닌가....”

“그, 그러니까 백이 우리가 DC 유나이티드로 옮긴 걸 두고 배신감을 느껴서, 원래는 뛰지 않을 경기를 뛰려고 일부러 여기로 달려오기라도 한 거란 말인가?”

“네.”

닉 감독의 물음에 대답을 하면서 토미 수석 코치가 힐끗 뉴욕 시티FC의 벤치 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거기에 팔짱을 낀 체 흐뭇한 얼굴로 서 있는 뉴욕 시티FC의 임시 감독인 데이빗이 보였다.

토미 수석코치가 데이빗을 쳐다보자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 닉 감독이 데이빗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오해를 사게 만든 게 바로 저 개 자식....데이빗이고 말이지?”

당연히 데이빗을 쳐다보는 닉 감독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하긴 오늘 경기만 이기면 DC 유나이티드의 강등 탈출이 유력했다. 물론 다른 하위권 팀들의 경기 결과에 따라 DC 유나이티드가 오늘 뉴욕 시티FC와의 경기에서 이기더라도 강등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전이 끝난 지금, 이대로 마지막 라운드 경기들이 끝난다면 DC 유나이티드가 강등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닉 감독은 DC 유나이티드 구단 측에서 주기로 한 보상금 100만 달러를 받아 챙길 수 있을 터였고.

한데 그런 장밋빛 닉 감독의 미래에 누군가가 똥물을 끼어 얹으려 들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바로 얼마 전까지 닉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던 선수 백준열이었고.

두 사람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그라운드를 향하고 있던 데이빗의 시선이 힐끗 옆 원정팀 벤치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세 사람의 시선이 한데 뒤엉켰다. 그때 데이빗이 뭐가 그리 웃긴지 피식거렸다. 그걸 본 닉 감독이 발끈해서 외쳤다.

“데이빗. 너 이 개자식....”

당장이라도 데이빗을 향해 주먹이라도 날릴 거 같은 닉 감독. 하지만....

“감, 감독님. 진정하십시오.”

그런 닉 감독의 허리를 재빨리 끌어안으며 토미 수석코치가 다급히 말했다.

“주위에 보는 눈이 많습니다.”

특히 대기 주심이 닉 감독을 똑바로 쏘아보고 있었다. 여기서 닉 감독이 상대 벤치에 대해 폭력적인 짓을 벌인다면 대기 주심은 가차 없이 그 사실을 주심에게 알릴 준비가 되어 있어 보였다. 그럼 퇴장은 물론 협회 차원에서 중징계가 내려질 게 명확한 상황. 그걸 모를 닉 감독이 아니었다.

“하아....알았어. 이거 놔.”

닉 감독이 진정이 된 듯 목소리 톤을 낮추며 말하자 토미 수석코치가 안고 있던 닉 감독의 허리를 두르고 있던 두 팔을 풀었다. 그러자 닉 감독이 상대 감독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너 이 새끼 어디 두고 봐. 내가 축구판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어 줄 테니까.”

살벌하기 그지없는 닉 감독의 독설. 하지만 데이빗은 피식거리기만 할 뿐 닉 감독에게 뭐라 말도 없이 몸을 홱 돌려 벤치로 가서 비어 있는 감독 자리에 앉았다.

“저, 저 새끼가....”

그런 데이빗의 모습에 그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닉 감독이 다시 발끈했지만, 그라운드에서 울리는 주심의 날카로운 휘슬소리에 닉 감독과 토미 수석코치의 시선이 빠르게 그라운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보았다. 킥오프 된 공이 뉴욕 시티FC의 중앙미드필더 백준열에게 패스 되는 걸 말이다.

* * *

전반전에 무려 세 골을 내어주자 뉴욕 시티FC의 홈구장 양키 스타디움에에 응원 나온 홈팬들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끝판 왕으로 불리며 강등 권을 탈출한 뉴욕 시티FC의 전력을 믿는지, 홈팬들 중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에 경기장을 떠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홈팬들의 뇌리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선수가 있다면 단연코 백준열이었다. 그런데 전반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 백준열이 후반에 교체 되어 들어오자 경기장의 분위기가 싹 돌변했다.

“백! 백! 백! 백!”

“뉴욕 시티FC! 뉴욕 시티FC! 뉴욕 시티FC!”

갑자기 백준열과 자기 팀을 연호하는 홈팬들. 그런 홈팬들의 반응에 준열이 흐뭇하게 웃으며 자신의 포지션인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가서 서 있는 가운데, 같은 팀의 스트라이커 마이클이 킥오프를 위해 공 앞에 섰다. 그의 바로 맞은편에는 마이클에 밀려 늘 찬밥 신세였던 팀의 세컨 스트라이커가 대기 중이었고. 준열은 그 세컨 스트라이커의 이름도 몰랐다. 뭐 어째든 경기를 시작해야겠는지 주심이 곧장 손목시계에 스타트 버튼을 누르더니 길게 휘슬을 불었다.

“삐이이이익!”

주심의 그 휘슬 소리에 뉴욕 시티FC 진영에서 킥오프를 했다. 마이클이 앞에 있는 세컨 스트라이커에게 공을 밀고 하프 라인을 넘어가자, 그 공을 받은 세컨 스트라이커가 곧장 공을 뒤쪽 중앙미드필더인 백준열에게 패스하고는, 마이클과 같이 좌우로 간격을 벌리며 DC 유나이티드 진영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자 준열이 팀의 두 공격수가 상대 진영으로 들어가다 바로 마크를 당하는 걸 보고 공을 옆으로 돌렸다.

강등 탈출을 위해 상대 팀, DC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오늘 정말 악착같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열심히만 뛴다고 이길 수 없는 게 축구라는 스포츠. 중요한 건 골이었는데 지금 뉴욕 시티FC는 전반에만 세 골을 내어 주고 패색이 짙어진 상태. 그 세 골을 다 만회하고 경기 결과를 뒤집어 놓기 위해서 이쪽이 필요한 건 무려 네 골이었다.

준열은 그 골들을 몰아넣기 위해서 상대 진영을 흔들어 놓을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그걸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 준열은 뉴욕 시티FC의 양 측면 미드필더에게 패스를 넣으면서, 그들을 일단 좌우 윙어로 써 먹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손짓과 말로 빠르게 자신의 생각을 좌우 윙어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막아!”

“빨리 뛰어!”

뉴욕 시티FC의 좌측 미드필더가 터치라인을 따라 과감하게 돌파를 시도하자 역시나 상대진영이 크게 흔들렸다.

DC 유나이티드의 좌측 풀백과 함께 센터백이 같이 따라 움직이면서 중앙이 빈 것이다.

“지금이다.”

준열은 DC 유나이티드의 시선이 좌측 미드필더에게 쏠려 있을 때, 훌쩍 하프 라인을 넘어서 곧장 페널티에어리어까지 올라갔다.

그때 좌측 미드필더가 용케 공을 뺏기지 않고 페널티에어리어 근처까지 돌파해 와서는 스트라이커 마이클에게 땅볼 패스를 넣었다.

“마이클 잡아!”

“야! 붙으라고. 더 밀착해서!”

그걸 보고 DC 유나이티드 수비수 둘이 바로 마이클을 밀착 마크를 했는데 정작 마이클이 그 공을 받지 않고 흘렸다. 왠지 그래도 될 거 같아서 말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한 건 뉴욕 시티FC의 중앙 미드필더 준열이 하프라인을 넘어서 DC 유나이티드 진영으로 들어오는 걸 마이클이 봤기 때문이었다.

준열이라면 그가 흘린 공을 잡지 않을 까 싶었는데, 과연 그의 예상대로 준열이 그 옆에 나타나서는 그 공을 전면을 향해 강하게 걷어찼다.

펑!

풍성 터지는 소리와 함께 준열이 찬 공은 빠르게 날아가서 순식간에 골대에 다다랐다.

터엉!

빨랫줄처럼 뻗어 나간 그 공은 골포스트를 때리고는 굴절되어 골대 안에 떨어지면서 골망을 갈랐다.

출렁!

후반전 경기가 시작 되고 불과 1분이나 지났을까? 그것도 골대를 때린 공이 운 좋게 네트를 갈라버리니 DC 유나이티드 골키퍼인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DC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전부 황당한 눈으로 준열을 쳐다보았다. 좀 전 보여준 슈팅 하나로 DC 유나이티드 선수들에게 준열이란 존재감이 강하게 각인 된 것이다.

* * *

“와아아아아!”

준열의 골로 양키 스타디움이 난리가 났다. 홈팬들이 구장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내질렀고, 뉴욕 시티FC 벤치 역시 난리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임시 감독인 데이빗은 경박스럽게 폴짝폴짝 뛰면서 누가 봐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미쳐 날 뛰었다. 그런 데이빗을 DC 유나이티드에 새롭게 부임한 닉 감독이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봤다.

한데 축구장에서 직접 경기를 뛰고 있는 뉴욕 시티FC 선수들은 준열이 터트린 첫 번째 골에 대해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준열 이니까 저 정도 플레이는 당연한 거란 인식이 있다 보니, 첫 골이 터져도 그 골을 준열이 터트리니까 감동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첫 골을 공격수인 마이클과 세컨 스트라이커가 터트렸다면 이런 시큰둥한 반응들을 보이지는 않았을 터였다.

“어쭈?”

준열은 그런 뉴욕 시티FC 선수들의 반응이 살짝 기분 상하긴 했지만, 어차피 오늘 이후 자신이 여기서 뛸 일은 없을 테니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다.

스코어 1대 3. 한 골을 따라 잡힌 DC 유나이티드에서 하프 라인으로 빠르게 공을 보내면서 경기가 바로 재개 되었다.

킥 오프 된 공은 즉시 DC 유나이티드 허리진에 연결 되었고 그들은 전반처럼 뉴욕 시티FC의 약점을 파고들면서 반격에 나섰다.

DC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들이 빠르게 패스를 주고받다가 뉴욕 시티FC의 빈틈이 드러나자 곧장 그쪽으로 패스를 찔러 넣었다. 그렇게 뉴욕 시티FC의 빈 왼쪽 측면으로 날아간 공을 DC 유나이티드의 윙어가 잡고 빠르게 뉴욕 시티FC 진영으로 치고 올라갔다.

그때 DC 유나이티드의 공격수가 빠르게 페널티에어리어로 쇄도해 들어갔는데....

툭!

언제 나타났는지 그 공격수 옆에 나타난 준열이 뻗은 발에 공이 맞고 옆으로 흘렀고, 거기 뉴욕 시티FC의 풀백이 앞쪽 자기 동료 공격수에게 패스를 찔러 넣어 주었다.

“나이스 패스!”

그 공을 받은 뉴욕 시티FC의 세컨 스트라이커가 공을 치고 하프 라인을 넘었고, 더 앞쪽에서 상대 진영으로 파고 들어가는 스트라이커 마이클을 향해 강하게 땅볼 패스를 찔러 넣었다. 하지만....

“아아....”

그 패스의 길목을 지키고 있던 DC 유나이티드의 풀백에 의해 그 공이 차단되고 말았다.

“좋았어. 역습 찬스다.”

DC 유나이티드에서 뺏은 그 공으로 역습에 나서는 순간, 또 언제 움직였는지 준열이 거기 나타나서 세컨 스트라이커와 같이 DC 유나이티드 풀백을 강하게 압박했다.

“뭐, 뭐야! 크윽!”

신음성과 함께 DC 유나이티드 풀백이 소유하고 있던 공이 옆으로 흘렀고, 그 공을 준열이 발을 뻗어 건져낸 다음 상대 진영 골대를 쳐다봤다.

‘얼추 35미터는 되겠는 걸.’

이어서 DC 유나이티드 수비수들이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서둘러 이동하는 게 준열의 눈에 보였다. 순간 준열이 벼락 같이 슈팅을 때렸다.

퍼엉!

공을 잡아 놓고 마음 껏 때린 슈팅이기에 위력은 상당했다.

“헉!”

DC 유나이티드 골키퍼의 입에서 다급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때 DC 유나이티드 골키퍼는 공을 보고 감각적으로 몸을 날렸지만 공이 그의 움직임 보다 좀 더 빨랐다.

철썩!

준열의 장거리 슈팅이 그대로 골망을 갈라버리자....

“우오오오! 바로 이거지. 이게 끝판 왕 뉴욕 시티FC지! 크하하하하!”

“백! 백! 백! 백!”

“뉴욕 시티FC! 뉴욕 시티FC! 뉴욕 시티FC!”

홈팬들이 또 다시 난리가 났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준열을 연호하며 그가 넣은 두 번째 골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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