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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심판도 심판 나름이었다. 선수가 말을 걸어주면 그걸 좋아하는 심판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심판이 있었다. 문제는 오늘 심판이 후자란 거고.
“쳇....”
마이클은 예전 자신이 말을 걸어주면 좋아했던 심판이, 오늘 싹 돌변해서 자신을 타박하자 적잖이 곤욕스러웠다.
뭐 심판도 인간이니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정색해서 말해버리면 자신의 입장은 도대체 뭐가 되냔 말이다. 당장 그를 쳐다보는 팀 동료 선수들의 눈빛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뉴욕 시티FC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준열은 아주 대 놓고 격멸어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준열은 자신과 같이 뉴욕 시티FC에 없어선 안 될 선수로, 마이클도 준열과 비록 친하진 않지만 친한 척하며 지내려고 노력 중이었다. 근데 아무래도 오늘 초장부터 녀석의 눈 밖에 난 모양이었다.
“아아....”
준열이 원톱 공격수인 자신에게 패스를 넣어 주지 않고 엉뚱한 측면으로 패스를 넣어주고 있었다. 물론 그 패스를 받은 팀 동료 뉴욕 시티FC의 윙어가 상대진영으로 빠르게 드리블 해 들어가다가 땅볼 크로스를 넣었고, 그걸 준열이 달려 든 기세 그대로 슈팅을 때려서 골로 연결시키긴 했지만 말이다.
“우와아아아....”
“좋았어. 크하하하하.”
당연히 관중석의 팬들과 벤치의 닉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들이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골을 넣고 하프 라인으로 돌아갈 때 마이클이 슬쩍 준열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말했다. 자기에게도 패스를 넣어달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
준열이 그런 마이클의 말을 개 무시해 버렸다.
“저, 저....”
그 순간 마이클의 이성의 끈이 풀려버렸다. 그때 준열의 본 실력을 직접 경험하게 된 상대 측 진영에서는....
“말도 안 돼!”
몽레알의 감독은 전반10분에 뉴욕 시티FC에 너무도 맥없이 한 골을 내어 주고는 황당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FC 몽레알이 어떤 팀이던가? 비록 너무 수비 위주라며 눈총을 받고 있지만 매년 MLS에서 상위권 성적을 거두고 있는 강팀이었다. 그런 몽레알이 불과 얼마 전까지 꼴찌 팀이었던 뉴욕 시티FC에 먼저 첫 골을 내어 주다니!
“빨리 빨리 올라가!”
늘 그래왔듯이 몽레알의 감독은 이번 경기도 FC 몽레알의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점차 빌드 업해서 뉴욕 시티FC를 압박해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몽레알 감독의 전술은 지금에 와서 그의 머릿속에서 싹 지워지고 없었다.
* * *
몽레알 감독의 재촉에 몽레알 선수들은 허겁지겁 골을 넣기 위해서 상대 진영으로 밀고 올라갔다. 그래도 MLS의 강팀답게 FC 몽레알은 뉴욕 시티FC를 강하게 압박하며 문전을 위협했다.
“끄응....”
하지만 쉽게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최근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하더니....”
MLS 리그에서 뉴욕 시티FC는 공, 수에서 그 약점이 두드러진 팀이었다. 그나마 공격력은 제법 준수해서 스코어 상 0패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1골 넣고 3-4골을 먹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랬던 뉴욕 시티FC가 몽레알 감독이 보기에 싹 달라져 있었다. 특히 탄탄한 허리라인을 시작으로 견고한 수비진이, 몽레알 공격수들을 유기적으로 잘 막았고 골키퍼도 미친 선방 능력을 선보여서 저렇듯 홈 팬들을 열광케 만들고 있는 거 같았다.
“이리 줘.”
몽레알의 중앙미드필더가 사이드라인으로 내려와서 측면 윙어 안토니오에게 패스를 넣었다. 안토니오가 손을 들며 적극적으로 공을 요구했기에.
척!
그 공을 받은 안토니오는 그대로 라인을 타고 공을 치고 위로 올라갔다. 그런 그를 따라 붙는 뉴욕 시티FC의 윙백.
파파파팟! 파악!
상대의 타이트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안토니오는 라인 밖으로 밀려나지 않고 버티며 개인기로 공을 키핑하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때 그의 눈에 페널티 박스 안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는 몽레알 공격수들이 보였다.
퍽! 퍽!
하지만 뉴욕 시티FC 윙백의 압박이 너무 거세서 안토니오는 어쩔 수 없이 몸을 틀면서 공을 뒤로 뺐다. 그 공은 뒤쪽에 있던 몽레알의 중앙미드필더에게 전해졌다. 아니 정확히는 전해 지는 것 같았다.
턱!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검은 머리 선수가 그 공을 인터셉터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 저....”
파파파파팟!
검은 머리 선수는 커트 한 공을 그대로 치고 하프 라인을 훌쩍 넘어서 쭉쭉 앞으로 치고 나갔다.
“막앗!”
그런 검은 머리 선수를 몽레알의 중앙미드필더가 악착같이 따라 붙었고, 그 앞쪽으로 몽레알의 센터 백이 달려들었다.
만약의 역습에 대비해서 다행히 남아 있던 몽레알의 센터 백. 그와 중앙미드필더가 협력한다면 무난히 검은 머리 선수를 막아 낼 수 있을 터였다. 그건 안토니오 뿐 아니라 지금 경기를 뛰고 있는 몽레알의 모든 선수들의 생각이 같았다.
“어어....”
그런데 그런 그들의 예상이 산산이 부서졌다. 검은 머리 선수가 순식간에 몽레알 중앙미드필더를 따돌리고 앞으로 쑤욱 치고 나가더니, 자기 앞을 막아 선 몽레알의 센터백 역시 사포(공을 발목으로 공중에 띄워 수비수를 돌파하는 드리블 기술)로 제쳐 버린 것이다.
투툭!
그 뒤 그대로 골라인으로 한 마리 야생마처럼 달려 들어가는 검은 머리 선수. 그 선수가 유려한 몸동작으로 몽레알의 수문장마저 젖히고 골대 안으로 골을 툭 차 넣는 순간, 경기장은 원정 온 뉴욕 시티FC팬들의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백! 백! 백! 백!”
놀랍게도 FC 몽레알의 홈구장인 콤플렉스 스포르티프 클로드-로비야의 관중석에 천여 명이 넘는 뉴욕 시티FC 원정 팬들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수는 홈 팀 관중과 엇비슷한 수였다. 그 만큼 뉴욕 시티FC의 팬들이 열성적으로 뉴욕 시티FC 선수들을 응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오늘 경기만 이기면 뉴욕 시티FC는 강등 권 탈출이었다. 그 기념비적인 순간을 함께 하고 싶은 뉴욕 시티FC 팬들이 머나먼 캐나다까지 날아와 준 것이었고.
그런 만큼 더 더욱 한 마음이 되어 준열을 열호 하는 뉴욕 시티FC 원정 팬들이었다.
* * *
몽레알 감독은 전반 26분에 한 골을 더 얻어맞고 나서야 부랴부랴 준열에게 전담 마크맨을 붙였다. 하지만 공격수도 아닌 중앙미드필더인 준열에게 마크맨은 몽레알 전력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수비 측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준열이 더 미쳐 날 뛰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삐이이이익!”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준열이 더는 골을 넣지 못했으니 말이다. 준열은 마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 듯 중앙미드필더로서 경기를 조율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준열이 만들어 낸 창조적인 패스는 몽레알 감독은 물론 오늘 경기를 관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저 병신....”
“그걸 못 넣냐?”
“똑바로 좀 해라.”
대신 준열의 킬 패스를 받아서 골로 연결시키지 못한 뉴욕 시티FC의 공격수들은 팬들의 원성을 실컷 들어야 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욕을 얻어먹은 것이 바로 뉴욕 시티FC의 스트라이커 마이클였다. 그는 발 만 갖다 대도 넣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전반에만 세 차례 날려 먹었다. 그러니 홈 팬들이 그런 그를 가만 내버려 둘리 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의 잘못을 전혀 몰랐다.
“패스가 별로였어. 좀 더 내 앞으로 왔었어야지.”
그는 되레 자신에게 패스를 넣어 준 준열을 원망했다. 그러던 말든 준열은 라커룸에 들어가자 바로 수건을 얼굴에 덮어썼다. 그 말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란 소리였다.
“헤이. 백! 너....”
그런 줄도 모르고 준열에게 다가가는 마이클.
턱!
그런 그의 앞을 누가 막아섰다.
“뭐야. 비켜!”
그 사람을 밀치려던 마이클은 그가 누군지 확인하고는 움찔하며 바로 몸을 뺐다. 그럴 것이 그가 바로 라커룸에서 왕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인 닉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이클. 준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라. 보다시피 나도 그를 건드리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평소 마이클을 호의적으로 대하던 닉 감독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빛은 싸늘하다 못해 서늘했다.
“네. 보, 보스.”
마이클은 힐끗 준열을 쳐다보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땀을 닦고 음료를 마시며 적절히 수분을 섭취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런 그의 귀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닉 감독의 말이 들려왔다.
“그 따위로 공격할 거 같으면 수비라도 좀 잘 협력해서 해주던지....당최 마음에 드는 게 하나 없어.”
강팀 몽레알을 그것도 적진에서 싸워 전반에만 두 골을 넣고 2대 0으로 앞서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당연히 뉴욕 시티FC 감독인 닉은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 2골을 뽑아 낸 준열이 당연히 예뻐 보일 수밖에. 그에 비해서 준열이 제공한 골 찬스를 시원스럽게 날려 먹고 염치도 없이 그에게 불만을 토로하려는 마이클. 그에 대한 기대가 와르르 무너진 닉은 여태 하지 않았던 말을 서슴없이 해대고 있었다. 그게 자신에게 한 소리란 걸 바로 알아들은 듯 마이클이 벌레라도 씹은 얼굴로 변했다.
“아무튼 후반에도 그따위면 바로 교체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비록 마이클만 못하지만 뉴욕 시티FC에도 공격수 자원은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마이클처럼 준열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독단적인 플레이를 펼치진 않을 터였다. 거기다 체력도 여유가 있으니 협력 수비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고.
2대 0으로 앞서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점수를 지킬 수 있는 수비 지향적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공격수의 교체는 닉 감독으로서도 그리 나쁜 카드는 아니었다.
“하아....협력 수비에 좀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선수는 실력으로 말하는 법. 지금 마이클은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 반면 준열은 중앙미드필더로 벌써 두 골을 넣었다. 그러니 지금은 마이클이 굽히고 들어가야 맞았다. 그 정도는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축구를 해 온 마이클도 알았다.
‘두고 보자.’
속으로 바득 이를 가는 마이클. 일단 숙이고 들어가서 후반전에 골을 넣고 난다면 그때는 다시 자신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이끌어 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때까지 일시적으로 준열에게 고개를 숙일 생각이었던 마이클. 하지만 그 속을 모를 준열이 아니었다.
‘넌 절대 골을 못 넣어.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자신에게 날을 세우는 마이클에게 준열은 알려 줄 생각이었다. 자신의 눈 밖에 나면 제 아무리 팀의 에이스 스트라이커라도 필드에서 뛸 수 없단 걸 말이다.
* * *
마이클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가 생각해도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오늘 경기에서 제대로 죽을 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건 들어갔다.’
윙어의 시원스런 돌파에 이은 센터링. 공은 정확히 마이클의 가슴에 맞고 발 아래로 떨어졌다. 거기다 운 좋게 몽레알 수비수들이 공중에서부터 뒤엉키면서 그를 제지하는 몽레알 선수도 없는 상황. 마이클은 그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몽레알 골키퍼를 피해서 살짝 방향만 틀어 공을 골대 안에 차 넣으면 됐다.
MLS 리그 경기에서 이런 식의 개인 돌파 후 골을 자주 넣어 온 마이클에게 이런 건 거저 넣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어?”
그런데 분명 공의 방향만 바꿔서 툭 갖다 댄 그의 발이 힘차게 공을 차고 있었다. 그 결과 공은 골대를 훌쩍 넘어가 버렸고.
“......”
골대 너머 뉴욕 시티FC 홈팬들이 너무 황당해서 다들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우우우우....”
뒤이어서 들려오기 시작한 비난 섞인 야유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마이클도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널따란 축구장 안에 그런 구멍이 있을 리 없었다.
“빌어먹을....”
결국 대 놓고 욕설을 내 뱉으며 자괴감에 사로잡힌 그의 눈에 준열이 보였다.
“뭐, 뭐야? 지금 웃어?”
준열이 마치 그것도 못 넣냐는 듯 그를 비웃는 걸 확인한 마이클은 안 그래도 기분이 나빴는데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렸다.
“내 저 새끼를....”
하지만 경기장에서 폭력을 행사 할 순 없는 노릇. 그랬다간 아예 축구장에 발을 디딜 수 없을 터였다. 축구를 사랑하는 그에게 그건 절대로 있을 수도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었다. 해서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건 화를 억누르는 것이었다.
“Fuck! 어디 두고 보자고....”
지금의 수모를 되갚아주려면 당장 필드에서 골을 넣어야 했다. 공격수는 골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마이클은 악착같이 뛰었다.
‘이건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절호의 찬스. 마이클의 개인기에 이은 감아 찬 공이 그대로 골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들어가는 공이었다.
툭!
그런데 몽레알 골키퍼가 뭘 잘못 먹었는지 완전히 몸을 날려서는 기어코 그 공을 건드렸고....
텅!
그 결과 골대로 빨려 들어가야 할 공이 굴절 되면서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다.
“말도 안 돼!”
절망하는 마이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아예 필드에 주저앉는 그를 뒤에서 지켜보고 웃는 선수가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넣긴 무슨 골을 넣어.”
그건 바로 백준열이었다. 준열이 일부러 마이클이 골을 넣을 찬스 때마다 이를 방해했던 것이다. 자신의 능력까지 사용해 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