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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844화 (84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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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골키퍼의 경우 다치면 경기장 안에서 바로 치료가 가능했다. 특히 다친 부위가 머리라면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했다. 해서 FC 댈러스의 골키퍼 막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 FC 댈러스 벤치의 팀 닥터가 골에어리어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막스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막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아?”

그러자 아직 정상이 아닌 거처럼 보이는 막스가 오히려 팀 닥터에게 되물었다.

“닥터 데릭. 혹시 골 먹은 겁니까?”

그 물음에 팀 닥터가 흠칫하더니 목소리 톤을 확 낮춰 대답했다.

“어. 자네가 얼굴로 슈팅을 막긴 했는데....그 공이 상대 선수에게 도로 날아가는 바람에....”

그러니까 준열이 때린 슈팅을 막스가 막았지만 하필 튕겨 나간 공이 그 슈팅을 때린 준열에게 도로 날아갔고 준열이 방향만 살짝 바꿔 골포스트 안에 기어코 공을 때려 넣었단 얘기였다.

“FUCK....”

팀 닥터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들은 뒤 막스의 입에서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욕설과 함께 멍하던 머리도 확연히 맑아졌다.

“으윽....이제 괜찮아 진 거 같아요.”

막스가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팀 닥터 데릭이 다급히 말했다.

“천천히 일어나. 혹시 모르니까.”

“네.”

막스는 팀 닥터의 지시에 일단 상체만 일으켜 앉았고 그 사이 팀 닥터 데릭이 그런 막스의 동공을 자세히 살피면서 물었다.

“멍하거나 어지러운 건 어때?”

“많이 좋아졌어요. 아니....이제 괜찮은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일어나 봐.”

데릭이 먼저 몸을 일으켜 선 뒤 막스에게 손을 내밀었고 막스가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자....

“와아아아아....”

경기장에 환호성이 일었다. 그제야 막스는 여기가 원정 온 상대 팀, 뉴욕 시티FC의 홈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환호성의 의미도....순간 막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럴 것이 골 먹은 상대 골키퍼가 여기 홈 팬들에게 얼마나 예뻐 보이겠는가? 반대로 그의 주위에 걱정스런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팀 동료들의 얼굴에는 절망의 그림자가 다들 끼어 있었다.

하긴 좀 전에 막스가 먹은 골로 스코어가 5대 0이었다. 그 점이 감안 된 것일까? 주심은 막스의 상태가 괜찮다는 걸 알게 되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대로 휘슬을 불었다. 전반 추가 시간을 무시한 거다. 그렇게 전반전이 종료가 되었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상대 팀, 그러니까 이곳 홈 팀인 뉴욕 시티FC 선수들은 다들 라커룸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걸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막스에게 팀 닥터 데릭이 물어왔다.

“어떻게 혼자 걸을 수 있겠어? 부축해 줄까?”

“아, 아뇨. 혼자 걸을 수 있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데릭의 접근을 일단 막은 뒤 막스가 불과 한 시간 전에 자신이 걸어 나온 라커룸 터널 쪽으로 발걸음을 내 디딜 때였다.

“괜찮아?”

팀 동료가 그의 옆에 다가와서 물었다.

“어. 빌. 난 괜찮아.”

그 대답에 팀 동료가 뭔가 안쓰러운 얼굴로 툭툭 막스의 어깨를 두드린 뒤 그보다 빨리 라커룸 터널 쪽으로 걸어갔다. 그걸 보고 막스가 의아해 할 때 그의 귀로 근처 다른 동료들끼리 대화 내용이 들려왔다.

“....동양인 말이야. 일부러 막스 얼굴에다가 공을 찬 거 같지?”

“뭐 그렇게 까지야 했으려고....”

“아냐. 맞아. 너도 봤잖아. 골을 넣고 나서 그 자리에 서서 막스를 비웃는 거.”

“하긴....골을 넣었으면 세레머니 하기 바빠야지. 쓰러진 막스를 그렇게 쳐다보고 서 있는 건 좀....”

팀 동료들의 얘기를 들으며 걷던 막스의 얼굴이 빠르게 분노에 물들어갔다.

‘마늘 냄새나는 노랑 원숭이 새끼가....’

슈팅으로 자신의 얼굴을 일부러 맞춘 것도 용서가 안 되는 데 그를 비웃기까지 했다니....

‘두고 보자....’

후반전에 반드시 복수할 것을 다짐하는 막스. 하지만 그는 그 전에 자신이 준열에게 팔꿈치로 가했던 그 비신사적인 행동 따윈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 * *

뉴욕 시티FC과 FC 댈러스의 MLS 리그 경기 전반전이 끝났다. 양 팀 선수들은 다들 지친 얼굴로 자기 팀의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한쪽 선수들의 얼굴은 밝은 반면 다른 팀 선수들의 얼굴은 거의 흙빛을 띠고 있었다.

하긴 전반전의 스코어가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다. 5대 0! 무슨 야구 스코어도 아니고 축구에서 5골이 그것도 전반에만 터진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았다. 특히 그게 프로 축구에서는 더더욱....

그런 가운데 이기고 있는 홈 팀 뉴욕 시티FC의 라커룸의 경우, 코칭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선수들에게 시원한 음료를 건네고 마사지를 해 주기 바빴다. 닉 감독은 7분 정도 뉴욕 시티FC 선수들이 쉴 수 있게 배려했다.

“자자. 이제 모여 봐.”

그 뒤 선수들을 소집한 닉 감독이 무표정한 얼굴로 선수들을 훑어 본 뒤 입을 열었다.

“일단 전반전은 잘 뛰었다.”

닉 감독의 말에 전반전을 나름 열심히 뛴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전반전만 5골을 몰아쳤으니 말이다. 후반은 널널하게 선수 교체 해가며 살살 뛰어도 됐다. 하지만 닉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후반에도 잘 뛰어 주기 바란다.”

“네?”

“교체 없습니까?”

황당한 얼굴의 고참급에 해당하는 선수 두 명이 바로 닉 감독에게 물었다. 그러자 닉 감독이 바로 대답했다.

“없다. 골은 더 넣지 않아도 좋다. 대신 팀워크를 쌓는데 주력해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백?”

닉 감독이 말을 하면서 준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준열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 닉 감독은 자신이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먼저 몸을 일으켜서 라커룸을 나섰다.

웅성웅성!

라커룸 안의 뉴욕 시티FC 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들까지 그런 닉 감독의 반응에 어리둥절해 하며 쑥덕댔다. 하지만 닉 감독의 뜻은 단호하고 확고부동 해 보였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번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그런 가운데 전반전에 뛰었던 뉴욕 시티FC 선수들은 다들 얼떨떨한 얼굴로 필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뉴욕 시티FC 주장인 마이클이 누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자자. 다들 파이팅하고 이왕 넣는 김에 두 자리로 이기자.”

그 말에 뉴욕 시티FC 선수들은 피식 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FC 댈러스 선수들의 표정은 다들 벌레라도 씹은 듯 변했다.

두 자리 수의 골이라면 10골을 넣겠단 소리였다. 축구가 무슨 야구도 아니고 말이다. 치욕스런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전반에만 5골을 때려 넣은 뉴욕 시티FC이었다. 후반에 5골을 더 넣지 말란 법은 없었다.

이에 FC 댈러스 벤치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당장 후반 전술 부터가 바뀌었다. 공격수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 수비. 전반에 비해서 더 적극적으로 걸어 잠그는 전술이 발휘 되었고 뉴욕 시티FC의 반코트 경기가 후반전 시작부터 시작 되고 있었다.

“패스! 패스!”

준열이 공을 잡자 양쪽 윙어 뿐 아니라 전방의 공격수들도 손을 들었다. 후반이 시작 되고 뉴욕 시티FC은 일방적으로 FC 댈러스를 두들겼다. 하지만 FC 댈러스 선수들은 두 자리 수로 패배하기 싫었던지 악착같이 방어에 집중했고 그 효과를 발휘했다. 그 결과 후반 15분까지 뉴욕 시티FC은 추가 골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러자 닉 감독은 무슨 생각인지 준열을 뺀 나머지 미드필더들을 빼고 3명의 공격수를 더 집어넣었다.

이렇게 되자 준열 혼자 미드필더를 맡고 나머지 6명의 공격수들이 FC 댈러스 진영에 자리를 차지하고 골문을 두들겼다.

준열은 포백과 함께 하프라인에 일자진을 치고서 계속해서 공격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준열이 찔러 넣어 주는 킬 패스들을 공격수들은 허무하게 날려 먹고 있었다.

“하아....”

답답한지 닉 감독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흘러 나왔다. 그런 닉 감독이 이해가 되는 듯 토미 수석 코치를 비롯한 공격 코치가 터치라인에 거의 붙어서 뉴욕 시티FC 공격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야! 패스를 해. 아니. 그런 패스 말고. 좀 더 유기적인 패스를....”

“하아....그렇게 혼자 해결하려 들지 말고....기회를 좀 만들어서....”

토미 수석 코치와 공격 코치는 공격수들에게 서로 협력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공격수들은 그 말에도 기어코 욕심을 내서 골을 넣으려 들었고 결국 공은 골라인을 넘어 골킥을 내 주었다.

뻐엉!

FC 댈러스 골키퍼 막스게 길게 공을 찼고 그 공과 함께 허겁지겁 하프라인을 넘어 오는 FC 댈러스 공격수. 하지만 그 공격수가 공을 잡기 전에 뉴욕 시티FC 수비수가 헤딩으로 그 공을 준열이 있는 쪽으로 틀어 놓았다.

준열은 귀신같이 헤딩의 방향을 잃고 그쪽으로 달려가서 공을 받아 낸 뒤 툭툭 치고 하프 라인을 넘었다. 하지만 전반과 달리 FC 댈러스 선수들은 준열을 막기 위해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준열이 다가오자 근처 두 선수가 달려들며 세 명이서 준열을 에워싸려 했다. 때문에 준열은 공을 뒤로 보낸 뒤 몸을 뒤로 뺐다.

준열이 작정을 했다면 FC 댈러스 선수 3명을 뚫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준열은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은 멍청한 짓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님을 누구보다 준열 자신이 잘 알았으니 말이다.

이미 승리가 확실한 경기에서 혼자 더 설쳐서 그가 얻는 건 상대 팀 선수들의 악의뿐이었다. 안 그래도 후반 시작과 동시에 자신을 향해 대 놓고 적의를 뿜어대고 있는 상대 골키퍼. 골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가면 절대 자신을 가만 놔 두지 않을 기세였다. 그래서 후반에는 일부러 몸을 사리며 페널티박스 안까지는 들어가고 골에어리어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패스만 넣어주고 있던 준열이었다.

툭! 투툭! 뻐엉!

준열은 빠르게 측면을 돌아들어가는 측면 윙어를 보고 풀백으로부터 패스 받은 공을 지체 없이 찼다. 준열이 찬 공은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측면 윙어의 발에 정확히 떨어졌다. 그런 멋진 패스를 받은 측면 윙어. 하지만 그는 퍼스트 터치가 좋지 않아 상대 수비수에게 공을 뺏기고 말았다.

“아아....”

아쉬워하는 측면 윙어와 뉴욕 시티FC 공격수들. 하지만 준열은 별 대수롭지 않게 뒷걸음질을 치며 하프 라인 너머로 되돌아가 자기 자리를 지켰다.

* * *

준열이 골 욕심을 내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뉴욕 시티FC은 후반 30분까지 득점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준열이 그렇게 떠 먹여 주는 찬스를 뉴욕 시티FC 6명의 공격수들이 대차게 날려 먹는 걸 보고 닉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의 얼굴은 점점 암울해졌다.

“하아....그걸 못 넣냐?”

“한두 번도 아니고....”

토미 수석 코치가 본 절호의 찬스만도 30여 번이 넘었다. 그 30여 번의 찬스에도 한 골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극악무도한 뉴욕 시티FC 공격수들의 득점력에 토미 수석 코치도 두 손 두 발 다 들은 얼굴이었다. 당연히 닉 감독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삐익!”

그때 FC 댈러스 진영에서 주심이 반칙을 불렀다. 준열의 롱 볼에 마이클이 헤딩으로 그 공을 떨어트리자 뉴욕 시티FC 공격수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 공을 건드렸는데 이때 FC 댈러스의 풀백이 다소 거칠게 그의 몸을 밀친 것이다. 균형을 잃은 뉴욕 시티FC의 공격수가 그라운드에 쓰러졌고 그걸 보고 주심이 휘슬을 분 것이다.

FC 댈러스 선수들은 정당한 몸싸움이었다고 주심에게 항의를 했다. 하지만 주심은 그 항의를 묵살했다.

당연하다는 듯 뉴욕 시티FC 공격수들이 그 공을 차겠다며 나섰다.

“토미 코치.”

그때 후반 시작 후 말 한 마디 없었던 닉 감독이 토미 수석 코치를 찾았다.

“네. 감독님.”

“프리킥.... 백 보고 차라고 해.”

“알겠습니다.”

토미는 닉 감독이 뭘 생각 중인지 알겠다는 듯 후다닥 터치라인으로 뛰어가서 외쳤다.

“백! 네가 차!”

그 말에 하프 라인에 서 있던 중앙 미드필더 준열이 프리킥을 차기 위해 적진 한 가운데로 움직였다. 그리고 막상 그 자리에 서자 직접 프리킥으로 골을 노리기에 지금 위치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 뉴욕 시티FC 공격수들이 너도 나도 킥을 차겠다며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었고. 실제 뉴욕 시티FC 공격수들은 그 때문에 준열이 그들 곁에 와 있는 것도 몰랐다. 그때 벤치에서 프리킥을 찰 선수를 직접 지명했다.

“뭐?”

“백 보고 차라고?”

공격수들은 다들 얼굴을 찌푸렸다. 킥력이나 킥의 기술이라면 아무래도 자신들이 중앙 미드필더인 준열보다 낫다고 그들 스스로 생각들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벤치에서 떨어진 지시에 대해 감히 이의를 재기하는 공격수는 없었다.

“쳇....”

투덜거리며 뉴욕 시티FC 공격수들이 어디 알아서 해 보라며 물러나자, 준열이 주심이 찍어 준 위치에 공을 놓고 뒤로 다섯 걸음 쯤 물러났다. 그리고 정면에 벽을 쌓고 있는 FC 댈러스 선수들과 그 뒤편의 골키퍼와 골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때 마이클을 비롯한 뉴욕 시티FC 공격수들이 촘촘하게 서로 밀착한 상태로 페널티에어리어 안으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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