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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FC 신시네티가 그 사이 또 한 골을 실점 했으니. 이제는 역전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다가 꼴찌 팀에 그냥 지는 것도 아닌, 대패하는 수모를 겪을지 몰랐다. 물론 이때까지 반데라스는 오늘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4골 차의 격차는 실로 컸지만 그걸 만회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여전히 남은 상황. 하지만 그 전에....
“저 녀석을 막지 않고서는....”
그 모든 게 요원한 일이 될 터. 반데라스의 시선이 검은 머리의 동양인 선수에게로 가서 꽂혔다. 이때 준열은 기가 막힌 어시스트로 팀의 네 번째 골을 터트리고, 유유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아....”
반데라스로서는 저 녀석 때문에 당장 4골 차 이상으로, FC 신시네티가 뉴욕 시티FC에 굴욕적인 대패를 당하는 게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공격진의 변화가 아닌, 준열을 대인마크 중인 지친 로빈 대신 생생한 콜트로 바꾸려는 것이었고.
“콜트. 몸 다 풀면 바로 투입 시켜.”
“네.”
반데라스 감독의 말에 코치가 대답과 동시에 서둘러 콜드에게 가서 뭐라 말을 했고, 콜트는 이미 몸은 풀렸다며 입고 있던 저지를 벗었다.
그 사이 공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갔고 주심은 바로 교체를 허락했다. 그러자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로빈이 퇴장을 했고 새로운 피, 콜트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어이. 잘 해 보자고.”
그는 준열 옆에 껌 딱지처럼 딱 달아 붙으며 입을 털었다. 그런 그를 보고 피식 웃던 준열은 자신에게 오는 공을 보고 바로 앞으로 내달렸다.
“어딜....어어?”
콜트는 준열의 유니폼을 잡아채면서 그를 쫓아 움직였다. 근데 좀 전까지 가벼웠던 몸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휘청!
그 사이 준열은 자신의 유니폼을 잡은 콜트의 손을 뿌리치고 탱크처럼 밀고 나갔고, 그 힘에 준열의 유니폼을 놓친 콜트는 중심을 잃고 자빠지는 우스운 꼴을 당했다.
“푸하하하....저기 봐. 웃기네.”
“아니. 저 새끼는 왜 저래? 여기가 무슨 방송국이야 뭐야?”
“그러게. 무슨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고 난리일까?”
콜트를 보고 웃는 뉴욕 시티FC의 원정 팬들과 대다수 홈팀을 응원 중인 FC 신시네티의 팬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한 소리씩 했다. 그 사이 준열은 콜트를 두고 벌써 페널티 박스 근처에 다다라 있었다.
촤아악!
그때 준열을 향해 거침없이 들어오는 태클. 부상 우려 때문에 준열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솟구쳤고, 그 공을 발로 건드려서 기어코 동료 선수에게로 넘긴 뒤 몸을 일으키는 FC 신시네티의 ‘공수의 키’라 불리는 플레이메이커 미드필더 나바스. 그는 준열을 일별하고 곧장 공격을 위해 뉴욕 시티FC 진영 쪽으로 달려갔다.
“쳇! 괜히 에이스가 아니야.”
준열은 나바스에 감탄했다. 그는 미드필더 중에서 중원장악력과 공중 볼 경합, 그리고 수비력마저 확실히 뛰어난 선수였다. 하긴 그러니 MLS에서 주급을 많이 받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비싼 선수겠지만.
나바스는 왜 자신이 몸 값이 비싼지 오늘 경기에서도 그걸 여지없이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그때 자기 쪽으로 헥헥 거리며 뛰어오는 콜트를 보고 준열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지쳐서야....”
그걸 보고 준열은 진작 전반부터 이 능력을 쓸 걸 하고 후회를 했다. 그랬다면 전반에 자신을 대인 마크했던 로빈을 필드 위에서 기어 다니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 * *
준열의 보유 스킬 중에 「개 스트레스」가 있는데 역 스킬이었다. 즉 준열 자신이 직접 쓰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에게 거는 스킬이란 얘기다. 근데 그 「개 스트레스」의 개별 능력 중에 ‘물 먹은 솜’이라는 능력이 있었다.
준열도 오늘 알게 된 그 능력은 바로 사람의 몸을 물 먹은 거처럼 무겁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듣기에 따라서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능력인 거 같아서, 준열이 시험 삼아 한 번 바뀐 싱싱한 체력의 자기 마크 맨에게 써 봤는데, 쓰자마자 바로 그 효과가 발휘 되었다.
로빈 대신 준열을 대인 마크하기 위해 필드로 들어 온 콜트라는 선수의 몸놀림이 갑자기 느려터졌던 것이다. 덕분에 쉽사리 마크 맨을 털어 내고 다시 득점 찬스를 잡은 준열.
‘마이클이 오늘 컨디션이 괜찮을 거 같군.’
앞서 마이클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온 걸 골로 연결 시켰던 준열. 이번에는 반대로 준열이 마이클에게 그와 같은 기회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파파팟!
공을 치고 파죽지세로 올라가던 준열. 그런 그를 노리고 다시 태클로 공을 뺏으려는 나바스.
촤아아!
휙! 척!
하지만 이번엔 준열이 그런 나바스에게 당해주지 않고 먼저 공을 띄우고는 가볍게 나바스의 태클을 피한 다음 패널티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오른발로 강력한 슈팅을 때렸다.
“막아!”
FC 신시네티 수비수들이 몸을 날렸지만 그보다 먼저 날아간 준열이 슈팅한 볼. FC 신시네티의 골키퍼도 넋을 놓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만큼 공은 빠르고 정확히 골대의 사각지대로 날아갔고 누가 봐도 골망을 가를 것처럼 보였다.
텅!
하지만 골대 근처에서 살짝 휘어진 공은 골대를 때리고 튕겨 나왔다.
“휴우...”
체헉과 FC 신시네티 수비수들이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 쉴 때였다.
“어어...”
공이 하필 슈팅을 때린 뒤에도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골 에어리어로 달려 들어오고 있는 준열 앞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준열이 슈팅을 때릴 거라 여긴 FC 신시네티 수비수들이 몸을 날렸다. 거의 육탄 방어 수준....
툭!
하지만 준열의 선택은 슈팅이 아닌 패스였다. 바로 그의 옆으로 쇄도해 들어오고 있었던 뉴욕 시티FC의 공격수 마이클.
뻥!
준열 대신 마이클이 그 공을 다이렉트로 찼고, 그 공은 FC 신시네티의 골키퍼의 머리 옆을 그대로 통과해서 골망을 갈랐다.
철썩!
FC 신시네티 골키퍼가 전혀 반응도 못할 정도로 빠르고 강한 슈팅이었던 것이다. 그 만큼 마이클의 발에 제대로 얹힌 슈팅은 거의 시속 120Km은 될 거처럼 빨랐다. 그 슈팅을 보고서 준열의 머릿속에 문득 슈팅 속도에 대한 잡 지식이 떠올랐다.
축구를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흔히들 이른바 'UFO 슈팅'으로 전 세계를 뒤집었던 호베르투 카를로스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기네스 북에 올라 있는 가장 빠른 축구 슈팅의 기록 보유자는, 바로 스페인 축구 선수 출신 하비에르 갈란으로 시속 129Km다.
스페인 하부리그 아마추어팀에서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18년 전 콘테스트에서 시속 138Km 슈팅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 호베르트 카를로스의 슈팅은 시속 121Km를 기록했고, 레반테 소속 리마의 슈팅은 시속 122Km였다. 그러나 그 기록은 기네스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훗날 그는 스페인 TV 카메라 앞에서 시속 120Km 슈팅 기록을 수립했고, 그게 현재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공인 기록이다.
이 시속은 스페인 도로 제한 최고 스피드 보다 빨랐다. 이 기록 측정은 승부차기 거리에서 이뤄졌고, 공이 발을 떠났을 때 바로 기계로 측정했다.
당시 3번의 기회를 주고 측정했는데, 갈란은 스페인 스포츠전문지 아스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슈팅은 시속 117㎞ 정도라고 알고 있다. 내 슈팅도 일반적이다. 똑바로 차는 게 포인트다. 감아 차는 게 아니다 똑바로 앞으로 날아가게 차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이 아닌 캐스트롤사가 디자인한 로봇이 찬 슈팅의 스피드 기록은 시속 210Km.
공식 기록이 아니라 인정되지 않지만 인간이 찬 가장 빠른 슈팅의 스피드는 시속 200Km, 스포르팅 소속 브라질 출신 론니 헤베르손이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기는 하다.
“땡큐. 백!”
마이클의 외침이 준열의 상념을 깨웠다. 그는 자신이 넣을 수 있었음에도 자신에게 일부러 패스를 넣어 준 준열에게 고마워하며 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어휴. 땀 냄새. 좀 떨어져.”
여자라면 모를까. 시커먼 수컷이 자신을 끌어안는 게 유쾌할 리 없었던 준열. 하지만 보는 눈이 워낙 많은 관계로 준열이 웃는 얼굴로 말했는데, 마이클은 그걸 농담으로 받아 드린 모양이었다.
“진짜 고맙다. 이리 와. 쪼옥! 쪽!”
안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준열의 볼에 뽀뽀까지 하는 마이클. 그 만큼 준열이 고마웠던 모양인데 준열은 그런 그의 반응에 진저리를 쳤다.
“에이. C. 더럽게....”
막 준열 입에서 쌍욕이 튀어 나올 그 타이밍에 다른 선수들이 들이닥치며 준열이 마이클을 감쌌다. 그 덕에 준열의 욕설이 묻혔다.
‘내가 다시 저 새끼한테 어시스트 해주나 봐라.’
준열에게 단단히 찍힌 줄도 모르고 그 뒤로 준열 바라기가 된 마이클. 그는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그 골을 넣은 뒤로부터 그에게로 향하는 패스가 뚝 끊겼다. 중앙에서 준열이 갑자기 속도 조절에 들어가면서 말이다.
‘이쯤 하면 됐어.’
무려 다섯 골이다. 상대에게 내어 준 골은 여태 한 골도 없고.
5대 0! 준열은 지금 스코어에 만족한 듯 보였다. 경기 템포를 최대한 늦추면서 시간을 끌었고 그 사이 시간은 흘러 후반전도 5분밖에 남지 않았을 때까지 그 스코어는 그대로 유지 되었다.
* * *
FC 신시네티는 뭔가 하려고 노력은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하프 라인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뉴욕 시티FC의 중앙미드필더 준열이 FC 신시네티의 공격 맥을 죄 끊어 놓다보니 말이다.
“믿을 수가 없군. 저런 선수가 있었다니....”
FC 신시네티의 반데라스 감독은 준열의 플레이에 반해 완전 넋이 나가 있었다. 자기 팀이 참패하게 생겼는데도 그의 얼굴은 슬픔이나 실망이 아니라 경이감에 고무 되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장면을 또 TV카메라가 잘도 찍었다.
그걸 두고 중계진에서 뭐라고 했는데 그걸 본 듯 FC 신시네티 운영진에서 얘기가 있었고, 그 말을 전해들은 코치가 반데라스 감독에게 뭐라고 하자, 그제야 그는 벌어진 입을 다물고는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그 사이 시간은 흘렀고 후반전 45분도 지나 전광판 시계가 추가 시간으로 흘러 갈 때였다.
이미 추가 시간으로 3분이 더 주어진 가운데 FC 신시네티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 중이던 미드필더 나바스가 적진 깊숙이 들어가 있던 팀 동료 공격수 카세미루에게 길게 패스를 시도했다.
파악!
피지컬로 MLS에서도 비빌 선수가 없다는 카세미루. 그가 뉴욕 시티FC의 수비수 뒤로 절묘하게 롱 패스를 찔러 넣어 준 나바스의 공을 가슴으로 받아 낸 뒤 바로 몸을 돌렸다.
“어딜...”
그때 뉴욕 시티FC의 센터백 잭슨이 강하게 카세미루를 밀어 붙였다.
파팟! 팍! 팍! 팍!
그러자 치열한 경합 중 공이 흘렀고 그 공을 협력 수비차 도와주러 온 뉴욕 시티FC의 풀백이 냅다 걷어찼다.
그 공이 훌쩍 하프 라인을 넘겼는데 그걸 보고 냅다 달리기 시작한 준열.
“어어....”
경기 끝나기 1-2분 전에 누가 이렇게 빠른 스프린터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준열은 순식간에 FC 신시네티 선수 둘을 통과해서 내달렸고 상대 진영에서 하프 라인을 넘어 온 공으로 접근하던 FC 신시네티 수비수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팟! 파악!
하지만 몸을 사리며 움찔한 FC 신시네티 수비수와 달리 준열은 기어코 공을 건드려서 방향을 바꿔 놓은 뒤, 몸을 비틀어 스케이트 선수 회전하듯 한 바퀴를 턴을 한 뒤 착지와 동시에 공을 쫓아 움직였다.
“우와아아아...”
거의 묘기와 같이 유려한 준열의 움직임에 관중성에서 환호성이 크게 일었다. 그 소리의 대부분은 FC 신시네티 홈 팬들이 내지른 것이었다.
골수까지 FC 신시네티의 광팬들인 그들도 여태 많은 경기를 관전했지만 좀 전 준열이 보여 준 스케이트 턴 같은 동작으로 아름답게 상대 수비를 제치는 건 처음 본 것이다.
촤아아아!
준열은 그대로 공을 치고 내달렸고 지쳤지만 FC 신시네티 수비수가 억지로 달려와 태클을 가했다. 하지만 준열은 이미 통과한 뒤였고 뒤늦은 태클로 인해 우스꽝스런 모습만 연출하게 된 FC 신시네티 수비수는 괜히 애꿎은 잔디만 뜯어서 신경질적으로 준열을 향해 내던졌다.
그때 준열은 아크 정면에 다다라서 슈팅을 때리고 있었다.
‘들어갔다.’
차는 순간 준열은 직감했다. 무회전으로 쭉 뻗어 나간 공은 FC 신시네티 골키퍼가 다급히 몸을 날렸지만 그 손끝을 살짝 스치며 골대 구석으로 파고 들어갔다.
“와아아아아!”
그 플레이에 FC 신시네티 홈구장인 TQL 스타디움 열광에 휩싸였다. 홈과 원정 팬 가릴 거 없이 구장 안의 모든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함성을 내질렀다. MLS에 새롭게 등장한 축구 천재의 등장에 경의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