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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833화 (83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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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딱히 의도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오늘 경기에서 자신을 실력으로 이긴 상대와 안면을 트기 위해 접근하면서 별 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다. 한데 그게 듣는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크로포드가 바로 사과를 했다.

“이런....미스터 백. 내가 좀 전 실언을 한 거 같아. 정말 미안해.”

“뭐 됐고. 왜 불렀어?”

이미 미국에서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얼마나 공공연히, 다방면에 걸쳐서 이뤄지고 있는지 몸소 체득하고 있던 준열이었다. 그랬기에 크로포드가 보인 반응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던 터라, 준열은 크로포드의 사과를 가볍게 받아주며 그가 왜 자신에게 왔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너 같이 뛰어난 선수와 MLS에서 같이 뛸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다. 뭐 뛰는 소속 팀이 좀 많이 아쉽긴 하지만....”

크로포드는 자신이 준열을 보자고 한 이유를 있는 그대로 밝혔다. 단지 그가 소속 되어 있는 팀이 꼴찌 팀인 뉴욕 시티FC라는 점에 대해 끝말에 살짝 디스를 했지만. 근데 그게 준열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릴 줄 크로포드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우씨. 뉴욕 시티FC가 뭐 어때서?”

“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자신에게 삿대질까지 해가며 따져드는 준열. 그런 준열의 반응에 크로포드는 놀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자신의 실태를 바로 깨달은 크로포드가 준열을 향해 말했다.

“뉴욕 시티FC가 MLS의 꼴찌 팀이란 걸 몰라서 이래?”

“알아. 알지만 한번 꼴찌가 영원한 꼴찌는 아니잖아? 듣자하니 FC신시네티가 오늘 지면 뉴욕 시티FC가 꼴찌 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도 하고.”

그때였다. 뉴욕 시티FC 벤치에서 누가 외쳤다.

“FC신시네티가 방금 DC유나이티드에 2대 1로 졌다.”

그 소리에 크로포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고, 반대로 그것보라며 준열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야. 그럼 우리 꼴찌 아니네?”

“탈꼴찌가 대체 얼마만이냐?”

“에휴! 지금 꼴찌 벗어난 걸 좋아할 때는 아니지. 강등권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지.”

“쩝....그렇기는 한데....

그때 벤치로 털레털레 걸어가며 뉴욕 시티FC선수들이 떠드는 말에, 웃고 있던 준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대신 굳었던 크로포드의 얼굴이 풀리면서 목소리 톤을 최대한 낮춘 그의 목소리가 준열의 귀에 들려왔다.

“뉴욕 시티FC와 어떤 식으로 계약했는지 모르지만....우리 팀으로 와라. 너만 오면....올해는 좀 어렵고....내년 우승에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을....”

하지만 크로포드는 자신의 말을 끝까지 준열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준열이 짜증 섞인 얼굴로 크로포드의 말을 댕강 끊어 버렸으니까.

“마이클! 그거 내 가방이야. 당장 손 떼!”

준열에게는 크로포드의 말 같지 않은 영입 제안보다는, 자신의 가방을 뒤지려는 마이클을 제지하는 게 더 우선이었다. 그 말 후 후다닥 벤치로 달려가는 준열을 크로포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넋 놓고 바라만 봤다.

* * *

나의 활약으로 강등을 확정 짓는 걸 피한 뉴욕 시티FC. 닉 감독이야 두말 할 거 없고 대표인 브래들리에게 붙잡혀서 10분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겨우 뉴욕 시티FC의 홈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구단주인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아마도 구단주가 강등 될 팀을 구하기 위해 필드에서 직접 뛰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축구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뭐 어째든 뉴욕 시티FC의 강등을 막은 건 구단주로서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원래는 라커룸에서 씻고 나오려했는데 닉 감독도 그렇고 뉴욕 시티FC선수들도 나를 무슨 영웅 취급해서, 도저히 그들과 같이 한 공간에 머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씻지도 못하고 나온 터라 찜찜했던 나는....

“호텔로 GO!”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가자고 내 차에 같이 타고 있던 문대식 팀장에게 말했다.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진동으로 해 둔 내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내 수행비서 김종훈이었다. 내 대신 미국에서 내 비즈니스를 위해, 지금도 두발로 열심히 뛰고 있는 그였기에, 나는 그의 전화를 바로 받았다.

“왜요?”

-화이자 말인데 주식 매입이 더는 어려워졌습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벌어질 펜데믹에 대한 대비로, 김종훈을 시켜 미국 내 다국적 제약사의 주식을 아름아름 끌어 모으게 했다. 한데 그런 내 움직임을 화이자 측에서 눈치 챈 모양이었다.

“쯧....들킨 겁니까?”

-네. 일본, 홍콩, 대만, 말레시아 투자사로 접근해서 7%까지는 사들였는데 중국 자본이 끼어들면서....

나는 김종훈의 중국 자본이란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게 지금 말고도 내 투자에 시시콜콜 개입해서 망치고 있는 게 바로 그 중국 자본이었으니 말이다.

“하아. 이 짱깨새끼들이 진짜....”

문제는 미국 내 중국 자본 잠식률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단 점이었다. 뭐 그걸 가만히 두고 보고 있을 미국 정부가 아니었지만....

어째든 미국 정부가 아직 나서지 않고 있기에, 그 피해를 내가 겪고 있었다. 그때 김종훈이 진중한 목소리로 내게 조언을 했다.

-아무래도 미국 내 투자는 이쯤에서 끝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왜요?”

-중국 자본에서 저희 투자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요.

김종훈의 그 말에 내 입에서 절로 묵직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허어....”

정보력에서 나는 중국 자본을 이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곳 미국에서 나는 돈 좀 많은 동양인일 뿐이지만 중국 자본은 공산당을 등에 업고 있는 조직이었다. 따라서 내 투자를 그쪽에서 분석해서 따라 들어온다면 나는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주는 신세를 면치 못할 터였다. 내가 남 굳이 좋은 일을 시켜 줄 이유가 없었다. 고로....

“그럽시다. 화이자 투자를 끝으로 미국 내 투자는 이쯤에서 정리하는 걸로....”

-휴우....

내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안도의 한숨부터 내 쉬는 김종훈. 그 의미까지는 잘 모르겠고 나는 김종훈이 노는 꼴은 볼 수 없었기에 그에게 다른 맡길 다른 일을 머릿속에서 떠올렸고....

‘아아. 그거면 되겠네.’

마침 내 대신 누가 빨리 처리해 줘야 할 일이 생각났다.

“내일 즉시 호주로 건너가세요.”

-네에?

내 예상대로 쉴 생각이었던 듯 김종훈이 호주라 가란 내 말에 기겁하면서 말했다.

-호, 호주는 왜요?

“CSL 리미티드 주식 좀 사게요.”

-CSL 리미티드면....

“맞아요. 요즘 급성장중인 호주 생명 공학 산업의 리더가 될 회사죠.”

다국적 제약회사를 생각하니 자연 호주의 CSL 리미티드가 떠올랐던 것. CSL 리미티드는 이 당시에만 백신, 바이오 베터 등 임상 중인 약물만 십여 종이 넘었다. 그러니 CSL 리미티드는 사 두면 무조건 돈이 됐다. 특히 펜데믹이 터졌을 때는 몇 배, 아니 몇 십 배까지 투자 이익을 내게 안겨 줄 것이고 말이다.

* * *

안 봐도 뻔했다. 입이 삐죽 나와 있을 김종훈이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나와 한 내기에 진 덕분에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그로서는 내 지시를 따를 수밖에.

“대신 CSL 리미티드의 주식을 10%까지 매수해 낸다면 10억을 보너스로 지급하도록 하죠.”

거기다가 그가 귀가 솔깃할 당근까지 던져 주었다. 그랬더니....

-10억이요? 그, 그렇다면 그 이상으로 매수해 내면....

역시 김종훈 답다고나 할까? 욕심도 대단하고 잔 머리 돌아가는 건 타의를 추종했다.

“10%에서 시작해서 그 이상 수치에 억 단위를 붙이면 되겠네요. 11%면 11억, 12%면 12억....”

-그럼 20%를 매수하면....

“20억을....아아. 이런....실수할 뻔했네요. 20%까지 매수한다면....100억을 드리죠.”

-150억!

“뭐 좋습니다. 150억!”

10년 뒤 CSL 리미티드의 시총은 대략 114조 달러다. 그 중 20%가 내 것이 된다는 데 까짓 150억 쯤 못 쓰겠나?

-지금 즉시 호주로 날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굳이 열심히 일하겠다는 김종훈을 붙잡지 않았다. 그렇게 김종훈과 통화를 끝냈을 때 조수석의 문대식 팀장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백미러를 통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

내가 묻자 문대식이 재빨리 나를 향한 시선을 거두고 모른 척 정면을 주시했다. 갑자기 김종훈에게 없었던 동료애라도 느끼는 걸까?

그러고 보니 문대식과 그 팀원들은 미국 땅에 와서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여기 미국은 총기소지 허용 되는 곳이다 보니 내 경호팀원들로서는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을 터. 하지만 무턱대고 그들을 쉬게 할 수도 없는 게, 앞으로 뉴욕 시티FC의 강등을 막기 위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축구 선수가 되어야만 했다.

해서 당장 5일 뒤에 있을 FC 신시네티와의 강등 단두대 매치에서 뛰기 위해 신시네티로 날아가야 했다.

물론 그 전 3일 동안은 뉴욕 시티FC에서 팀 훈련을 해야 하고 말이다. 그런 나를 경호팀원들이 지켜줘야 했기에 사실상 그들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은....

“내일 하루뿐인가?”

내일은 뉴욕 시티FC 선수들도 회복을 위해서 하루 쉬니 말이다. 내친김에 나도 하루 푹 쉬고. 그래서 내가 막 앞쪽 조수석의 문대식에게 내일 하루 경호팀원들과 같이 쉬라고 말하려는 데 내 핸드폰이 울렸다.

“어?”

확인하니 한국에 있는 김 비서였다. 지금 이 시간에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어 올 일이 있었던가? 나는 어리둥절해 하며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표님. 저예요. 김 비서.

“어. 그래. 무슨 일 있어?”

당연히 무슨 일이 있으니 김 비서가 내게 이 시간에 전화를 건거겠지.

-저....

한데 김 비서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벌써 자신이 내게 전화건 용건을 다 말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녀가 이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보고 기다려 주었다. 그랬더니....

-우선....고마워요.

“뭐?”

-제 복수를 도와주신 거 말이에요.

“아아....”

나는 그제야 김 비서가 내게 왜 전화 했는지 알 거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복수를 도와주는 건 이미 한국에 있을 때부터 그렇게 해주기로 마음먹었던 거라 딱히 그녀에게 생색 같은 걸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거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뭐라고?”

전화 받던 내 목소리 톤이 갑자기 확 올라가면서 상체가 저절로 앞으로 기울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 비서가 뜬금없이 여기로 오겠다니 말이다.

* * *

“그, 그래. 조심해서 와.”

오겠다는 그녀를 나는 도저히 말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참....”

김 비서가 자기 입으로 분명히 내게 말했다. 내가 보고 싶어서 오겠다고 말이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 오지 말라고 내 입으로 감히 말 할 수 있겠나?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미국으로 오는 걸 허락하고 말았다.

“다 왔습니다.”

김 비서와 통화로 혼이 쏘옥 빠져 있던 나는, 차가 호텔 입구 앞에 멈춰 섰는데도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멍 때리고 있었다.

“대표님!”

“어? 어어....”

그런 나를 보고 문대식 팀장이 나를 불렀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얼떨떨한 가운데 차에서 내려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내 방으로 들어가자 마침 그 안에 있던 두 여자가 나를 반겼다.

“준열....웁스....이거 무슨 냄새에요?”

그 중 특히 냄새에 민감한 쥬리가 나를 안으려다 코를 잡고 뒤로 물러났다. 반면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뭔지 바로 알아차린 타미라가 내 대신 쥬리에게 대답했다. ‘

“이거 땀 냄새잖아?”

“땀 냄새요?”

타미라의 말을 듣고 쥬리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럴 게 이 정도 땀 냄새가 날 정도로 내가 뛴 이유가 궁금한 거 같았다. 그건 쥬리 옆에 타미라도 마찬가지고. 해서 나는 짧게 그 이유를 그녀들에게 설명했다.

“축구를 요?”

“네가 선수로 뛰었다고?”

그랬더니 내 설명을 들은 두 여자가 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녀들에게 나는 먼저 양해를 구했다.

“자세한 건 나 좀 씻고 나서 얘기해 주면 안 될까?”

“그래요.”

그 말에 냄새에 민감한 쥬리가 여전히 손으로 코를 막은 채 냉큼 찬성했고, 반면 타미라는 빨리 내 대답을 듣고 싶었던지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이내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래서 나는 곧장 두 여자를 지나쳐서 내 방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훌훌 옷을 벗고 욕실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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