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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등번호 99번의 선수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필드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주심의 들어오라는 사인을 보고서....
그 99번 선수는 곧장 필드 왼쪽에 위치한 뉴욕 시티FC 진영으로 들어갔고, 비어 있던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섰다. 그러자 필드 한가운데 서 있던 주심이 재깍 입에 호루라기를 가져갔고....
“삐이이익!”
길게 강하게 휘슬이 울리면서 뉴욕 시티FC의 킥오프로 후반전이 시작 되었다.
공은 바로 중앙 미드필더인 준열에게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공을 받은 준열은 ‘휘이’ 주위를 훑어본 뒤 공을 옆으로 돌리며 외쳤다.
“한 바퀴 돌리자.”
후반 시작과 동시에 벌써 경기 완급 조절에 들어간 것이다. 당연히 평소의 준열이라면 이러지 않았겠지. 아마추어 수준의 준열이라면 패스를 받으면 골을 넣기 위해서, 무조건 상대 골대를 향해 냅다 드리블 해 달려가기 바빴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준열의 몸에는 원혼 호세 가르시아가 빙의된 상태였다. 즉 준열은 호세 가르시아의 지시에 따라 시기적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준열의 지시에 뉴욕 시티FC의 다른 미드필더들이 자기들 끼리 공을 주고받다가 뒤쪽 수비수에게로 백 패스를 했다.
그 공은 이내 앞쪽에서 받을 준비를 하고 있던 준열에게로 돌아왔는데, 준열은 그렇게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경기 템포를 최대한 떨어트렸다.
스코어 0대 2!
뉴욕 시티FC는 전반에 같은 연고지의 MLS팀인 뉴욕 레드불스에 개 쳐 발렸다. 골키퍼 선방이 있었기에 2점이지 아니면 4-5점은 내줬을 정도로....
확실히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맹렬히 상대를 몰아쳐야 할 뉴욕 시티FC. 하지만 뉴욕 시티FC는 공격은 안하고 뒤로 열심히 공을 돌렸다. 그러니 그걸 지켜보는 상대팀 뉴욕 레드불스의 벤치와 필드 안의 레드불수 선수들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저것들 뭐야? 지금 장난해?”
“큭큭큭....경기 포기한 모양인데?”
“하긴 이대로 2골 차로 지면 덜 쪽팔리기는 하겠지.”
“누구 마음대로....나 오늘 해트트릭 할 거거든.”
레드불스 선수들은 후반전에는 전반보다 더 소극적으로 나오는 뉴욕 시티선수들을 보면서, 자기들도 모르게 긴장과 방심의 끈이 확실하게 풀어져 버렸다. 바로 그때였다.
파파파팟! 팟팟!
준열이 갑자기 공을 치고 빠르게 하프라인을 넘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뉴욕 레드불스 진영에서 한 선수가 날쌔게 뛰어나와 준열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그걸 보고 준열도 흠칫 놀라며 공을 뒤로 뺐다. 그러자 준열 옆에 다가선 그 선수가 툭하니 준열을 건드리고는 패스 된 공을 쫓아 움직였다.
‘9번....레드불스의 스트라이커 그렉....’
전반에 두 골을 넣은 명실 공히 뉴욕 레드불스의 에이스이자 골게터였다.
그는 정말이지 해트트릭을 하고 싶은지, 후반전 초반임에도 전 반전 만큼이나 의욕적으로 뛰어주고 있었다.
‘괜찮은 녀석이야.’
공격수가 상대 미드필더를 괴롭혀 주면 그 만큼 뒤에 수비수들이 상대 공격에 대처하기 수월해 진다. 따라서 그렉의 이런 활발한 움직임은 분명 뉴욕 레드불스 진영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때 준열의 머릿속에 호세 가르시아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뭐해? 공 받으러 움직이지 않고.]
호세 가르시아의 외침에 준열은 그가 지시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때 호세 가르시아가 말했다.
[어이. 이봐. 축구는 혼자 잘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니야.]
한마디로 팀, 패스 플레이를 하란 소리였고 준열은 자기에게 온 공을 원터치로 곧바로 전방 뉴욕 시티FC의 공격수인 마이클에게 연결했다. 그야말로 상대 중앙 수비 라인을 관통하는 기가 막힌 스루패스였다.
“나이스 패스!”
준열의 그 키패스에 기뻐하며 골대 정면에서 마이클이 그대로 중거리 슈팅을 때리려 할 때였다.
촤아아아!
“으헉!”
태클이 들어왔고 슈팅이 그대로 무산 되었다. 하지만 깊은 태클에 주심이 반칙을 불었다. 그리고 태클을 넣은 상대 선수에게 주심이 옐로카드를 꺼냈다. 뉴욕 레드불스 센터백이 거친 태클로 반칙으로 인해 뉴욕 시티FC에 프리킥 찬스가 주어졌다.
"내가 찬다.“
키커로 준열이 나섰고 구단주인 그의 결정에 대해 뭐라 말할 간 큰 뉴욕 시티FC의 선수는 없었다.
“여기!”
“네.”
준열은 주심이 지정해 준 위치에 공을 갖다 놓으면서 주위를 살폈다. 위치는 페널티에어리어 박스 한 가운데에서 채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
직접 골을 노려도 되고 세트피스 골로 연결이 가능 한 위치. 그걸 아는 뉴욕 시티FC 선수들이 주심이 지정해 준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일렬로 늘어섰고, 그 사이 사이에 뉴욕 레드불스 선수들이 끼어들며 뉴욕 시티FC선수들의 팔과 유니폼을 붙잡아댔다.
준열이 공을 차기도 전에 양 진영 선수들의 자리싸움이 장난이 아니었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준열이 한 팔을 머리 위로 높게 들어 올렸다. 약속된 플레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때 준열은 뉴욕 시티FC의 공격수 마이클과 눈짓을 주고받고 있었다.
준열이 막 움직일 때 마이클을 보고 살짝 고개를 까닥 거렸다. 즉 그에게 공을 보내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비켜!”
그걸 확인한 마이클이 자기 앞을 막고 있던 뉴욕 레드불스 수비수를 밀쳐 내며 공간을 확보했다.
순간 그 뒤의 뉴욕 레드불스 수비수가 마이클의 팔을 잡았지만, 마이클이 그걸 뿌리치고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켜 냈다.
준열은 마이클이 뉴욕 레드불스 수비수와 몸싸움을 하면서 자기 자리를 끝까지 고수하는 걸 보고 그쪽을 향해 공을 찼다. 호세 가르시아의 원혼이 빙의 된 상태의 백준열 몸이었다. 호세 가르시아의 능력이 그대로 발휘가 되었다.
해서 공은 준열이 지정한 공격수 마이클에게 정확히 날아갔고, 어쩐 일인지 점프 타이밍도 절묘하게 마이클의 몸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공이 마이클의 머리에 맞는 순간 그가 고개를 골대 쪽으로 틀었고 공은 골포스트와 크로스바 사이 사각지대로 날아갔다.
골키퍼가 막을 수 없는 위치라 뉴욕 레드불스 골키퍼는 그냥 제자리에 서 있었고, 골대 사이드에 서 있던 수비수가 폴짝 뛰면서 어떻게든 머리로 그 공을 걷어 내 보려 했지만 공이 더 빨랐다.
철렁!
그야 말로 교과서 적인 헤딩골이 터졌다. 빠르고 간결한 킥을 공격수가 상대 수비수와의 거친 몸싸움을 이겨 내고 점프를 했고, 절묘한 타이밍에 공을 머리에 갖다 대면서 공의 방향이 틀어지면서, 그게 또 골키퍼가 보고도 막지 못할 골대 사각지대로 날아 들어간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골을 터트린 마이클이 괴성을 내지르며 뉴욕 시티FC 벤치로 달려갔다. 그리곤 닉 감독과 포옹을 하더니 해괴한 골반 세레머니를 펼치면서 준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 * *
뉴욕 레드불스의 감독인 에르난데스는 후반이 시작되고 자신의 선수들이 전반보다 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상대 뉴욕 시티FC를 짓눌러 버릴 것을 확신했다. 그만큼 전반전에 보여 준 뉴욕 시티FC 선수들의 기량은 도저히 프로라 보기 어려웠다. 한데....
“허어....”
후반이 시작되고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뉴욕 시티FC에 한 골을 내주었다. 세트피스에 당한 것이다.
“그래도 세트피스 훈련을 열심히 한 모양이네.”
하지만 에르난데스는 전혀 걱정 같은 건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레드불스 선수들이 곧 골을 터트려 줄 테니 말이다. 특히 레드불스의 공격수 그렉은 해트트릭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렉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면 에르난데스는 바로 그렉을 빼 줄 생각이었다. 선수 보호 차원도 있고 그렉이 오늘 경기에서 자신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면 그 즉시 퇴근시켜 달라고 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뭔가 있는 모양인데 에르난데스는 굳이 그런 선수 개인사까지 간섭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그렉이 확실하게 제 몫을 다 해준다면 경기 중에 그를 빼내서, 얼마든지 그 자리에서 퇴근 시켜 줄 수 있었다.
그 세 번째 골을 넣기 위해서 그렉이 움직이고 있었다. 골을 내어 준 뉴욕 레드불스의 킥 오프로 경기가 재개됨과 동시에.
한데 후반전에 추가골을 노렸던 뉴욕 레드불스가 되레 뉴욕 시티FC에 골을 내주자, 그 페이스가 흔들리며 선수들이 살짝 동요를 했다. 그게 겉으로 티 나지는 않았지만 준열의 눈에는 그게 훤히 보였다.
단지 아쉬운 점은 현재 뉴욕 시티FC의 공격 라인 가지고는, 저 흔들리고 있는 뉴욕 레드불스 수비진을 완전히 붕괴 시키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삐이익!
“젠장....”
중앙 미드필더인 준열에게서 한 번에 뉴욕 시티FC 공격수에게 들어가는 롱 패스는 기가 막혔고, 결국 앞서와 못지않은 좋은 자리에서, 마이클이 또 반칙을 얻어 냈다. 이번 역시 상대 뉴욕 레드불스 센터백이 마이클을 상대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반칙을 저질렀던 것.
“후아....”
준열이 주심이 가리키는 곳에 공을 놓고는 호흡을 고르며 그 앞에 섰다. 공의 위치는 페널티에어리어 정면에서 살짝 좌측으로 2미터 정도 떨어진 곳.
“아깝다. 쩝!”
그때 벤치의 닉 감독이 입맛을 다셨다. 왜냐하면 아까 준열이 프리킥을 찰 때 그는 오른발을 사용했다. 즉 오른발잡이인 그가 감아 차서 골을 터트리기에는 까다로운 위치였던 것. 즉 이번 역시 준열은 직접 슈팅 보다는 뉴욕 시티FC 선수들을 이용해서 골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골대로 쇄도해 들어가는 그들의 머리나 흐른 공이나 수비에 맞고 굴절 된 공을 공격수들이 주워 먹거나, 그게 아니면 수비수의 몸 맞고 골인이 되는 행운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닉 감독이나 뉴욕 시티FC 선수들 모두 준열이 빠르게 센터링을 올릴 거라 여겼다. 그런데 공을 놓고 뒤로 물러난 준열이 슬쩍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준열 저거 왜 저래?”
“그러게요."
오른발잡이인 준열이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서 있는 걸 보고 닉 감독과 벤치의 코칭스태프들, 그리고 나머지 뉴욕 시티FC 선수들이 의아해 할 때 준열의 시선이 주심을 향했다. 그러자 준열과 눈이 마주친 주심이 즉각 휘슬을 불었다. 준열은 그대로 공을 보고 달려갔다.
뻥!
준열은 달려 든 탄력을 그대로 발에 실으면서 공을 감아서 찼다. 그 공은 크게 휘어지면 뉴욕 레드불스 선수들의 벽을 넘어 골포스트 우측 하단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썩!
골이 들어갔는데 준열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당연히 들어 갈 골이 들어갔다는 듯 태연했다.
반면 준열이 센터링을 할 거라 확신하며 골대로 쇄도해 들어갔던 뉴욕 시티FC 선수들과 그들을 마크하던 뉴욕 레드불스 선수들은 다들 허탈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저, 저....”
“말도 안 돼!”
벤치의 닉 감독과 코칭스태프들, 뉴욕 시티FC 선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럴 것이 좀 전 준열이 환상적으로 감아 차서 골을 터트린 그 발이 오른발이 아니라 왼발이었기 때문이었다.
“맙소사! 저 양반....양발 잡이였어?”
“....”
닉 감독의 반쯤 넋 나간 물음에 코칭스태프들, 뉴욕 시티FC 선수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 * *
반면 그 옆의 뉴욕 레드불스 벤치의 감독과 코치들, 나머지 선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우와! 대체 얼마나 휜 거야?”
“완전 바나나킥이네. 바나나킥이야.”
“휜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빠른 게 문제지.”
“저 선수....대체 누구야?”
뉴욕 레드불스 벤치에서 전반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껏 쭉 앉아 있기만 했던 에르난데스 감독의 무거운 엉덩이가 드디어 떨어졌다. 그런 그의 시선은 골을 넣고 동료 선수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는 넘버 99번, 검은 머리의 동양인 선수에게서 좀 체 떨어질 줄 몰랐다.
“....훌륭하군. 짝짝짝짝!”
친선 경기였기에 에르난데스 감독은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멋진 킥을 두 번이나 보여 준 상대 중앙 미드필더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이로써 스코어는 2대 2. 원점으로 돌아왔다.
후반전에 내리 두 골을 먹은 뉴욕 레드불스가 센터서클에서 킥오프로 시합을 재개하며 공을 미드필더 쪽으로 돌렸다.
뉴욕 레드불스의 중앙 미드필더는 힐끗 남은 시간을 보고 오늘 경기가 한골 차 승부가 될 거로 봤다. 물론 레드불스가 펠레 스코어, 즉 3대 2로 이길 거였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한번 불붙기 시작한 뉴욕 시티FC 선수들이 미쳐 날 뛰기 시작하면 그걸 막기 어렵다는 걸 말이다.
“올라가자. 빨리!”
준열은 뉴욕 시티FC의 공격진은 물론 2선 허리 라인을 이끌고 아예 하프 라인을 넘었다.
“어어....”
파파팟!
그리고 강력한 뉴욕 시티FC의 압박에 뉴욕 레드불스가 바로 말려들면서 허무하게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