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820화 (81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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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런 이대수에게 김정수 지검장이 재차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유재섭은 살인죄를 비롯한 살인청부, 교사 및 범죄 조직을 이끌며 수십여 가지 범죄에 개입 한 정황이 명백히 드러난 자입니다. 법사위원장님께서 그런 자와 어떻게 연루 된 건지 모르지만....더 이상 개입하시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릅니다.

“지, 지금 저희 의원님을 겁박하시는 겁니까?”

김정수 지검장의 날선 반응에 한동수 의원의 최측근 인사 이대수, 그가 발끈했다. 그럴 만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히 검찰 수장인 검찰총장도 벌벌 기는 법사위원장을 향해서 협박조의 말을 건네다니 말이다.

-겁박이라니요? 무슨 큰일 날 소리를....저는 단지 알려 드리는 겁니다. 한 위원장님께 잘 보이려고요.

“네?”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란 말인가? 이대수의 귀에는 분명 협박으로 들렸는데 그게 잘 보이려고 한 소리라니 말이다. 그에 대한 썰은 김정수 지검장이 바로 풀어 주었다.

-저도 우연히 들은 얘긴데....삼명그룹에서 유재섭의 처분에 대해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더군요.

“뭐, 뭐라고요? 지, 지금 삼명그룹이라고 하셨습니까?”

이대수가 화들짝 놀랐다. 그럴 것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삼명그룹이란 이름이 김정수 지검장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에. 삼명그룹이 어떤 곳이던가? 무려 대통령을 갈아치운 곳이다.

쉬쉬하지만 삼명그룹이 전대 대통령을 하야 시키고 새로운, 지금 대통령을 청와대에 입성 시킨 걸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었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청와대 위에 삼명그룹, 이었고 그 말 때문인지 몰라도 청와대의 어르신이 괜히 공직사회 기강을 잡겠다고 생난리를 피우고 있는 거였고.

한마디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삼명그룹을 건드린다는 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격이었다. 따라서 김정수 지검장의 말이 맞다면 이건 진짜 그가 한동수 의원에게 잘 보이려고 한 말이 맞았다.

-네. 오늘 삼명그룹 비서가 저를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으니까요.

김정수 지검장의 말은 얼마든지 확인이 가능했다. 이대수만 해도 검찰에 아는 사람이 꽤 많았고, 그 중에는 서울 중앙 지검에 있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의원님께는 제가 잘 말씀 드리도록 하죠.”

-아이고.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그럼 바쁘실 텐데 이만....”

이대수는 김정수 지검장이 무슨 말을 더 하기 전에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곧바로 서울 중앙 지검에 아는 사람에게 연락해서 삼명그룹 비서가 정말 오늘 거기 왔는지 알아봤다.

“뭐? 진짜야? 허어....”

그랬더니 김정수 지검장의 말이 사실이었다.

“알았어. 내 다시 연락하지.”

이대수는 이번에도 그가 먼저 통화를 끝내고는 한동수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의 전화는 꼭 받는 한동수. 이번에도 그는 이대수의 전화를 받았다.

-뭔가?

근데 통화 상태가 별로였다. 한동수 의원 주위가 제법 시끌벅적한 것이....

“의원님. 긴히 드릴 말씀이....”

그 말은 주위에서 한동수 의원의 통화 내용을 누가 들을 수도 있단 거고. 해서 이대수는 한동수 의원에게 통화 장소부터 바꿔 줄 것을 요구했다. 눈치 빠른 한동수 의원이 그걸 알아차리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주위에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무래도 한동수 의원이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거 같았다.

한동수 의원은 딸들 말고 아들 둘이 빨리 결혼을 했다. 그래서 손자들을 벌써 다섯이나 본 탓에 이렇게 가족 모임을 하게 되면 시끌벅적했다. 이대수는 핸드폰을 들고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뭔데 그러나?

주위가 조용한 가운데 한동수 의원의 목소리가 정확히 이대수의 귀에 들려왔다. 그제야 이대수가 본격적인 용건을 한동수 의원에게 밝혔다.

“의원님. 유재섭 말인데요.”

-어. 그래. 어떻게 됐어? 중앙 지검장이 그 자를 풀어주겠데?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사실은....

이대수의 얘기를 쭉 듣던 한동수 의원. 그는 이대수의 입에서 삼명그룹이 언급되자....

-뭐? 삼명그룹? 씨발. 지금 장난해? 당장 거기서 나와. 그리고 그 일에서 손 떼!

누구보다 삼명그룹에 대해 잘 아는 한동수 의원이었다. 그랬기에 삼명그룹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손절부터 하고 보는 그에게 이대수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대수는 향후가 걱정 되었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상대가 삼명그룹인데 뭘 어떻게 하겠나? 섣불리 움직였다가 자칫 삼명그룹의 신경이라도 건드리면....그때는 정말 끝장이었다. 국가정보원보다 더 많은 정보 루트를 가지고 있다는 삼명그룹이었다. 어쩌면 삼명그룹에서 지금 그의 주변을 캐고 있는 지도 몰랐고. 그런 마당에 이대수가 할 수 있는 건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 거뿐이었다.

“오늘 일찍 퇴근하겠네.”

덕분에 아이들 좋아하는 치킨 두 마리 사서 일찌감치 집으로 향하게 된 이대수.

보좌관 생활을 10년 넘게 했으니, 어차피 연금이야 나올 테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정년퇴직은 너무 일렀다. 이대수는 한동수 의원이 제발 무사하기를 속으로 빌면서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한동수는 드디어 큰딸의 입맛에 맞는 혼수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자 기분이 좋았다.

아들들도 욕심이 많았지만 큰딸인 한효주는 그들을 다 합쳐 놓은 거 보다 더 욕심이 많았다. 혼수도 충분히 해 줬지만 거기에 +알파로 강남의 빌딩을 원했다. 그래야 자신의 남편이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공직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나 뭐래나?

하지만 강남의 빌딩이 어디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눈은 어찌나 높던지 500억 이하 빌딩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한데 한동수와 그의 아내가 봐도 마음에 들었던 강남의 노른자위에 위치한 빌딩을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인 헐값에 사들일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러려면 귀찮은 일 하나를 처리해 줘야했지만, 법사위원장인 그의 영향력이면 그 정도 청탁은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나설 것도 없이 자신의 수석 보좌관인 이대수에게 그 일을 시켰고.

“여보. 저번에 우리가 마음에 들어 했던 그 빌딩 있지? 그래. 맞아. 거기. 그 빌딩 헐값에 살 수 있을 거 같아.”

당연히 그 사실을 아내에게 알렸는데 하필 그 자리에 큰 딸년이 같이 있을 게 또 뭐란 말인가? 큰딸이 좋아서 팔짝팔짝 뛰고 아내도 잘 됐다고....그렇게 당장 오늘 저녁에 가족 모임을 바로 그 강남의 빌딩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가지게 됐다.

“호호호호. 자기. 이제 여기가 우리 빌딩이 되는 거야.”

“장인어른. 장모님. 고맙습니다.”

그 가족 모임에서 큰딸과 예비 사위가 넙죽 한동수 부부에게 큰절을 올렸고, 그걸 지켜보는 다른 가족들, 특히 한동수의 아들들의 아내들, 즉 며느리들의 질투어린 시선이 아까부터 한효주와 예비신랑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효주만 자식입니까?”

“뭐라고?”

그러다 아들 녀석들 중 술이 좀 과했던 장남 한주혁이 불만을 표출하면서 가족 모임의 분위기가 급격히 식어갈 무렵....한동수는 측근 이대수 보좌관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맙소사. 삼명그룹이라니....”

이건 제대로 똥을 밟은 거다. 이대수에게 빨리 그 일에서 손 떼라고 지시한 후 뒤룩뒤룩 눈알을 굴리던 한동수.

“내가 손을 쓰려한 사실을 삼명그룹에서 모를 리 없어. 그렇다면....”

한동수는 다급히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그가 기댈 곳에 나름 어필이라도 해보려고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법사위원장의 전화다. 청와대 비서실장도 그 전화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받긴 했는데....자세한 내막을 한동수로부터 전해들은 청와대 비서실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내가 한 의원 같으면....알아서 그 자리에서 내려오겠소.

“실, 실장님....하아....그래서 말인데....”

하지만 한동수가 무슨 말을 할 줄 안다는 듯 비서실장이 딱 끊어 말했다.

-한의원. 행여나 어르신께 부탁할 생각 마시오. 오히려 그 사실을 아시면 어르신께서 당신을 가만 두지 않을 테니 말이오. 요즘 청와대 금기어가 바로 삼명그룹인데....

단호한 비서실장의 말에 한동수는 별로 건진 것도 없이 청와대 비서실장과 통화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끝났군.”

한동수는 세상이 무너진 듯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한데 그런 그의 통화 내용을 전부 다 듣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으니....그게 바로 한동수의 큰딸 한효주와 한 달 뒤, 결혼하기로 한 한동수의 예비사위 임성호였다.

* * *

임성호는 자신이 큰물에서 놀 것을 의심치 않았다. 잘생긴 얼굴에 큰 키. 거기에 공부도 잘해서 국내 최고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뭔가 더 자신을 빛내 줄 간판이 필요했고, 그래서 선택한 게 사법고시였다. 임성호는 열심히 고시 공부를 했고 운 좋게 턱걸이로 사법고시에 합격을 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보다 더 한 사법연수원의 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임성호는 그 벽 앞에서 여러 번 좌절을 맛봤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들렀던 클럽에서 그는 한효주라는 동아줄을 잡았다.

“뭐? 아버지가 3선 국회의원이신데 법사위원장이라고?”

한효주의 배경을 알고 난 뒤 임성호는 그녀를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해서 혼신을 다했다. 그녀를 위해 간 쓸개 다 떼어놓고 비위 맞추려 노력했다. 그 결과 드디어 그녀의 마음을 얻게 된 그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법사위원장인 한동수 의원의 예비사위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나 화장실 좀....”

한효주의 가족 모임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하게 된 임성호. 그는 그 자리에서 온갖 시기와 질투어린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씨발. 누가 빌딩 달라고 했나?”

어차피 한효주가 혼수로 챙겨 오는 건 다 그녀 명의였다. 그러니 강남의 빌딩의 소유주 역시 그녀 일터. 물론 임성호가 그녀의 남편이 되면 그 빌딩에 대해 적절한 권리 정도는 행사할 수 있게 될 테지만....

“게임이나 하고 가자.”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본 뒤 임성호는 가시방석 같은 가족 모임 장소로 돌아가지 않고, 칸막이 안에서 소리를 묵음으로 해 놓고 핸드폰 게임을 즐겼다. 바로 그때 한동수 의원이 화장실에 들어왔고 누구와 통화를 했다.

처음에 임성호는 장인어른이 될 한동수 의원의 통화 내용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삼명그룹이란 말이 튀어나오고 나서 임성호는 게임을 접고 본격적으로 귀 기울여서 그의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

“씨발....좆 될 뻔했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의 장인이 될 예정인 법사위원장이자 3선 국회의원인 한동수가 이제 끝장났다는 걸 말이다.

“건드려도 하필....삼명그룹이라니....”

임성호는 더 볼 것도 없이 곧 한효주가 주인이 될 강남의 빌딩을 빠져 나왔다. 그러자 한효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

임성호는 그 전화를 무신경하게 받았다.

-자기 어디야? 화장실 간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감감 무소식인 건데?

“나? 지금 집에 가는 중.”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가족 모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기가 차다는 듯 한효주가 따지듯 임성호에게 말했는데, 평소라면 그녀 말을 끝까지 다 듣고 말했을 임성호였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효주씨. 미안. 우리....결혼 다시 생각해 보자.”

-뭐, 뭐라고?

“안녕!”

임성호는 한효주에게 작별을 고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곧바로 한효주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는데, 임성호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아예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그걸로 한효주와 임성호의 인연의 끈도 완전히 끊어졌다.

* * *

보름의 시간이 훌쩍 흐르고 일찌감치 출근한 김정수 서울 중앙 지검의 검사장. 그는 조회를 위해 중앙 지검의 강당에 가기 전에 따끈한 차를 마시며 신문을 읽었고 있었는데, 신문 일면의 기사를 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결국....끝장 나버렸군.”

일면에 커다랗게 난 사진 속에는 김정수도 잘 아는 얼굴이 나와 있었다. 그는 바로 여당의 3선 중진 의원에다가 법사위원장으로 소위 말해 잘나가는 정치인이었던 한동수였다. 하지만 그는 2주 전 전격적으로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놓았는데, 그걸 로도 해결이 되지 않은 듯 결국 의원직까지 내려놓았다. 말이 좋아 일신상의 이유로 의원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지, 다들 알았다. 그가 삼명그룹의 눈 밖에 나서 어쩔 수 없이 의원직을 내 놓았을 거라는 걸 말이다.

“이건 또 뭐야? 대전 교도소 수감자가 살해 돼? 허어....법무장관께서 골치 좀 아프시겠군. 그나저나 죽은 자가....인천 OB파 구정제?”

강력계에 몸담은 적이 있는 검사라면 인천에서 손가락 안에 조폭 조직 중 OB파는 알았다. 그 정도로 인천을 비롯한 경기도 일대에 꽤나 악명을 떨쳤던 조직이 바로 OB파였다. 그때....

똑똑똑! 달칵!

노크 소리 후 지검장 실 안으로 들어 온 수행 비서관이 말했다.

“지검장님. 조회 가실 시간입니다.”

“어어. 그래.”

김정수는 보던 신문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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