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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대한민국에서는 제 아무리 그가 권력과 돈이 있다고 해도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감옥행을 피할 수 없었다. 그걸 잘 알기에 유재섭은 그 동안 철저히 자신의 죄를 입증할 만한 것들을 없애왔었다.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래서 궁금했다. 경찰이 가지고 있는 그 명백한 증거가 뭔지가 말이다.
‘일단 가 보자.’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경찰서 가서 경찰서장과 싸바싸바 한 다음 없애 버리면 될 일이었다.
뭐 좀 깊이 그 윗선까지 개입이 되었다면 거기까지 약을 치면 될 일이었고. 돈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여태 살아오면서 유재섭은 돈이면 해결 되지 않은 일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해서 유재섭은 비교적 덤덤하게 아내에게 자신의 변호사에게 연락하라는 말만 하고 순순히 형사들과 같이 경찰서로 향했다. 서울 평창동의 관할서는 종로경찰서였다.
“어이. 박 과장!”
경찰서 안에서 잘 아는 얼굴이 보여 유재섭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그랬더니 종로경찰서의 2인자로 불리며 경찰서장의 최측근 인사인 경무과 박순철 과장이 불쾌한 얼굴로 유재섭을 본척만척하며 지나쳤다. 순간 유재섭은 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였다. 그 동안 이곳 종로경찰서장과 간부급 인사들에게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
유재섭은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형사가 이끄는 조사실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조사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편하게 앉은 다음 조사하러 들어 온 담당 형사에게 말했다.
“조 서장. 어디 갔습니까?”
대충 이렇게 말하면 형사라면 다들 눈치껏 그를 정중하게 대했다. 형사에게 있어 누가 뭐래도 최고인사권자는 경찰서장이었으니까. 그런 경찰서장을 무슨 친구 부르듯 그 성만 읊조리는 유재섭이었다. 그 만큼 서장과 가깝다는 얘기. 머리가 있다면 그를 조심스레 대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우리 서장님이 어디 갔는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담당 형사는 유재섭이 알던 그런 형사들과는 그 괘를 달리했다.
“유재섭. 본인 맞죠?”
“네.”
“주소지가....”
담당 형사는 조사에 앞서 유재섭의 신상 정보부터 쭉 확인했다. 그리고....
“강석구, 조용희, 민재철....”
갑자기 사람 이름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최민석까지. 모두 23명에 대한 살인청부 혐의, 인정하십니까?”
“뭐, 뭐라고요?”
“그리고 정민구씨는 본인 손으로 직접....죽였고. 이것도 마찬가지로 인정하십니까?”
“이런 미친....지금 뭐하자는 거야?”
유재섭은 도를 넘기는 담당 형사의 일방적 취조에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뭐하긴. 너 같은 인면수심의 살인마에게서 모든 혐의를 자백 받으려 하고 있지.”
“자백?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리고 살인마? 너 그 말 지껄인 거 곧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그 말과 함께 유재섭은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종로 경찰서장인 조정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걸 보고 담당 형사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팔짱을 꼈고....
“뭐, 뭐야? 왜 안 받아?”
조 서장이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자, 유재섭은 재빨리 이곳 경찰서의 2인자인 박순철 경무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 역시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걸 보고 담당 형사가 말했다.
“누가 조사 중에 전화 하라고 했습니까?”
그러며 일어서서 유재섭의 손에 핸드폰을 뺏으려들자, 유재섭이 재빨리 그 손길을 피하며 말했다.
“한 통만 더 전화 합시다.”
그 말에 담당 형사가 피식 웃으며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도로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 유재섭은 종로 경찰서장 말고, 불과 사흘 전 자신과 골프를 쳤던 혜화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혜화 경찰서장인 유민형이라면 자신의 전화는 무조건 받을 거라 믿었으니까. 그 만큼 그와는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씨발....”
그런데 평소라면 전화 연결 음이 한두 번 울리면 반갑게 그의 전화를 받았던 유 서장이 10번도 넘게 울려도 받지를 않았다. 순간 유재섭은 이번 일이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복잡하게 꼬여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유재섭은 이때까지도 크게 걱정을 하진 않았다. 꼬인 실타래야 풀면 될 일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그에게는 돈이 있었다. 그 돈이면 그가 감옥살이 할 일은 결단코 없었다.
* * *
“이, 이건....”
유재섭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럴 것이 담당 형사가 내 놓기 시작한 그가 살인청부를 했다는 명백한 증거들 때문에. 그리고....
“맙소사!”
유재섭의 믿기 어렵다는 듯 부릅뜬 두 눈, 그리고 두 손이 그의 머리채를 잡고 있었다. 또한 절망어린 눈빛을 내 보이고 있는 유재섭. 그럴 것이 지금 그의 눈앞에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는 동영상 화면에 그가 버젓이 사람을 때려죽이고 있었으니까.
‘좆 됐다.’
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유재섭은 눈앞의 빼박 증거들 앞에, 왜 담당 형사가 이렇게 자기 앞에서 자신만만해 하고 있는 지 알 거 같았다. 하지만....
‘이것들....다 없애야 해. 그러려면....’
유재섭은 목이 마르다는 이유로 잠깐 조사를 중단 시켰고 그때 담당 형사에게 말했다.
“핸드폰 좀 씁시다.”
“아직....하아....뭐 그러시든지.”
담당 형사는 유재섭을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그가 핸드폰을 쓰는 걸 허락했다 그러자 유재섭은 바로 종로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유재섭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유재섭이 종로 경찰서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몇 군데 더 전화를 했고 역시나 그 사람들도 전화를 받지 않자, 유재섭은 잔뜩 굳은 얼굴로 그들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조사를 막 이어가려 할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유재섭의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 울림 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재섭이 담당 형사에게 말했다.
“문자 좀 확인하고 합시다.”
그 말에 담당 형사는 찌푸린 얼굴로 대답했다.
“빨리 확인하세요.”
그렇게 유재섭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날아온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고, 그 사이 몇 통의 문자 메시지가 더 전송 되어왔다. 그것까지 확인하면서 유재섭의 얼굴은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갔다. 반면 그런 유재섭의 얼굴을 확인하고 담당 형사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어렸다.
“아아....”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확인 한 직후 유재섭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오자 그걸 보고 있던 담당 형사가 말했다.
“자아. 조사 계속 합시다.”
그리곤 담당 형사는 앞서 보여주지 못한 유재섭의 다른 여죄들의 증거들을 그 앞에 내 놓았고 이제는 자포자기라도 한 듯 유재섭은 완전 넋이 나간 얼굴로 담당 형사에게 말했다.
“변호인 없이 더 말 할 수 없소.”
그 말에 담당 형사가 기가 차하며 유재섭에게 말했다.
“이렇게 증거가 확실한데 뭘 더 버티려고....빨리 자백하고 죄값을 치르는 것이....”
그때 유재섭의 변호사가 조사실에 들어왔고....
“김 변. 왜 이제 와?”
유재섭이 죽다가 살아난 얼굴로 반갑게 자신의 변호사를 맞았다. 그러나....
“유 사장님.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희 법무법인 태평양은 더 이상 유 사장님과 인연을 이어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뭐, 뭐라고?”
유재섭이 매년 10억에 가까운 돈을 쓰면서 적어도 법으로는 누구도 자신을 어쩌지 못하게 해주던 곳이, 바로 국내 3대 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태평양이었다. 그런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유재섭을 손절하겠다고 나섰다는 건, 곧 유재섭이 더는 법의 비호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돈, 돈이라면 얼마든지 더 줄 수 있소. 그러니....”
“푼돈이 문제가 아니라서 요.”
“푼돈이라니? 몇 십억이 무슨....”
“유 사장님 때문에 저희가 몇 천억의 손실에다가, 법인 청산 절차를 밟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 그게 무슨....”
“저희 법무법인 내부의 일을 유 사장님께서 아실 필요는 없고요. 저희 뜻은 본인께 확실히 전달 했으니....저는 이만....”
“김 변. 잠, 잠깐만....”
유재섭은 어떡하든 자신의 고문 변호사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법무법인의 시니어 변호사인 김형태는 슬쩍 유재섭 손길을 피해서 곧장 조사실을 나가버렸다. 그런 그를 뒤쫓아 조사실을 나가려는 유재섭. 당연히 그런 그를 붙잡는 담당 형사.
“안 돼! 김 변....이, 이거 놔!”
“조사 중에 마음대로 나가시면 어떡합니까?”
담당 형사의 완력이 더 강했기에 유재섭은 도로 자기 자리로 가서 앉혀졌다. 그런 그에게 담당 형사가 경고조로 말했다.
“한 번 더 허락 없이 조사실을 나가려 든다면....수갑 채우겠습니다.”
담당 형사가 대 놓고 자신을 범죄자 취급하자 유재섭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속속들이 드러나는 명백한 증거들 앞에서 유재섭이 할 수 있는 말은 어차피 그 말 뿐이었다.
“변호사 없이 말 할 수 없소.”
* * *
유재섭이 변호사 타령을 했지만 경찰은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그를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유재섭을 기소했고....그 담당인 서울 중앙 지검의 강력범죄수사부의 심문실에서 유재섭은 그토록 찾았던 변호사를 만날 수 있었다.
“국선 변호사 민태구입니다.”
“뭐, 뭐라고? 국선 변호사?”
유재섭은 기가 찼다. 그의 드러난 재산만 수백억이 넘었다. 그런 그에게 국선 변호사라니.
돈 없어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 나라에서 선임해 주는 변호사가 바로 국선 변호사가 아니던가?
“집에 전화 좀 합시다.”
그 자리에서 유재섭은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그의 전화를 받았고, 유재섭이 바로 따지듯 아내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게 국선 변호사라니?”
-그럼 어떡해요. 당신 변호 맡겠다는 변호사가 한 명도 없는데.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돈 때문이야? 돈이라면 내 금고 번호 알려 줄 테니까....”
-그게 아니에요. 내가 좀 알아보니까....외압을 받는 거 같았어요. 당신 변호를 맡으면 곤란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 변호사들이 다들 당신을 꺼리는 거 같달 까?
“뭐? 외압?”
유재섭은 아내의 외압이라는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만약 그녀 말이 사실이라면....경찰과 검찰이 그를 상대로 표적 수사를 진행 하고 있을 공산이 컸다.
‘이대로 뒀다간 큰일 나겠네.’
유재섭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신이 아는 한 최고 권력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한동수 국회의원님 보좌관 이대주님 되십니까?”
-그런데요?
유재섭이 무려 3년을 공들여서 인연을 맺은 현 여당의 3선 국회의원인 한동수. 그라면 유재섭의 조커 노릇을 충분히 해 줄 수 있을 터였다. 역시나 한동수의 이름이 나오자 움찔하는 심문실 안의 검사와 수사관.
“안녕하십니까? 저는 유재섭이라고....”
유재섭이 자신이 누군지 한참 설명하고 나자, 한동수 의원의 보좌관도 그제야 그가 누군지 알겠다는 듯 반갑게 말했다.
-저희 작년 선거 때 의원님 확실하게 후원 해 주신 평창동 임대사업자분이시로군요? 그런데 어쩐 일로....
“그게 제가 지금 서울 중앙 지검인데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어서요.”
-중앙 지검이요? 거기는 무슨 일로....
일단 유재섭이 서울 중앙 지검에 있다는 말에 한동수 의원의 보좌관의 밝았던 목소리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러자 유재섭이 황급히 말했다.
“전에 의원님께서 관심 깊게 보셨던 이태원에 청림 빌딩 있잖습니까?”
-네. 뭐....
“그거 싸게 팔겠습니다.”
-아아. 네....
누가 들어도 유재섭이 자신의 빌딩을 한동수에게 넘기겠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그 대가는....유재섭을 중앙 지검에서 빼내 주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를 닳고 닳은 3선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일단 유 사장님의 뜻은 제가 의원님께 잘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저는 이 보좌관님만 믿겠습니다. 이번 일만 잘 성사시켜 주시면 제가 중개수수료는 섭섭지 않게 챙겨 드릴 테니까요.”
중개수수료라는 말에 한동수 의원의 보좌관 이대수의 목소리에 바로 훈풍이 불었다.
-하하하하. 역시 유 사장님은 통이 크시군요. 제가 지금 바로 의원님께 전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동수 의원의 보좌관과 통화를 끝낸 유재섭. 그가 득의만만한 얼굴로 심문실 안에 검사와 수사관을 쳐다봤는데....
‘뭐야?’
좀 전 분명 한동수 의원 이름이 유재섭의 입에서 거론 될 때까지만 해도 놀랐던 그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도도하고 까칠한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유재섭을 여타 다른 범죄자 보듯 똑같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