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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어?”
이근석은 자기 눈앞에서 생글거리고 웃고 있는 한 남자를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하지만 이미 담가져서 생사를 오락가락 하거나 죽었어야 할 자가, 너무도 멀쩡한 모습으로 지금 떡하니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이근석은 다시 한 번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저 남자는 그대로 그 앞에 멀쩡한 상태로 서 있었다.
아니....그 남자만이 아니었다. 이제 보니 그 남자 뒤로 그 남자의 수하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형, 형님....”
잔뜩 쥐어 터져서 얼굴도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의 한 남자가 이근석 앞으로 튀어 나왔다.
“너, 너는 동호?”
이동호라고 이근석의 수하들 중 그가 제일 아끼는 녀석이었다. 영리하고 눈치가 빨라 이근석의 심중을 누구보다 빨리 캐치해 내는 녀석. 이근석이 OB파의 보스가 되면 장차 2인자는 녀석의 몫이었다. 그런 이동호가 지금 묵사발이 된 채 이근석 앞에 나타났다. 그게 무슨 뜻이겠는가?
“씨발....”
이근석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런 이근석에게 정병수가 말했다.
“아이고. 이걸 어쩌냐? 내가 이렇게 살아 있네?”
“병, 병수 형. 우리 이러지 맙시다. 내가 자세한 내막을 설명할 테니....”
이근석은 어떡하든 지금 이 위기만 넘기자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세치 혀를 놀렸는데 정병수는 무심히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쑤시기만 할 뿐, 애초부터 이근석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러다 이근석이 툭하니 옆에 수하에게 내뱉듯 말했다.
“팔다리 힘줄 끊어.”
“네. 형님.”
그리고 잠시 뒤에 정병수의 수하들에 의해 꼼짝못하게 사지를 붙잡힌 이근석. 그의 처절한 비명이 룸살롱의 복도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악!”
그렇게 팔다리의 힘줄이 끊긴 이근석. 친절하게도 정병수는 자른 힘줄 부위를 붕대로 칭칭 감아 출혈로 인해 이근석이 어떻게 되는 일이 없게 막아 놨다.
“죽여....이 XXXX야. 빨리 죽이라고!”
사지의 힘줄이 끊겨 이제 더는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이근석이 악에 받쳐 정병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근석도 이런 상태로 병신이 되어 남은 삶을 처참히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즉 정병수로 하여금 자신을 죽이게 만들려고 일부러 정병수를 욕해 그를 도발하고 있었는데....그걸 모를 정병수가 아니었다.
“누구 마음대로 죽어? 넌 좀 더 살아야 돼. 죽여 달라고 매일 애원하면서....크흐흐흐흐.”
정병수의 잔인한 얼굴과 함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비릿한 웃음에서 이근석은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앞으로 살아도 산 게 아닌 끔찍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될 거란 걸 말이다.
순간 비장한 얼굴로 돌변한 이근석. 그리고 점점 더 얼굴이 시뻘게지고 두 눈이 붉게 충혈 되는 이근석을 보고 정병수가 다급히 외쳤다.
“저 새끼 입 벌려! 빨리!”
비록 팔 다리 힘줄이 끊겨서 사지를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근석의 턱은 무사했다.
이근석은 죽기 위해 혀를 깨물었고 그걸 뒤늦게 인지한 정병수가 수하들을 시켜 억지로 그의 입을 벌리게 만들었지만, 그때는 이미 다량의 피가 이근석의 목으로 넘긴 뒤였다. 그 피가 응고하면서 정병수의 기도를 확실히 막았고....
“....죽었습니다.”
이근석은 뜻한 바를 이뤘다. 하지만 정병수는 이근석에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응징을 가하지 못했다.
“이 씨발XXX...."
퍽! 퍽! 퍼억! 퍽!
죽었지만 아직 식지 않은 이근석의 시신에다가 뒤늦게 발길질을 해대며 분을 풀어 보려는 정병수. 하지만 죽은 자에게는 그 어떤 고통도 가할 수 없었고, 대신 시신을 걷어 찬 그의 발만 아팠다. 씩씩 대던 정병수. 그가 한 마지막 분풀이는....
“이 새끼....돼지 농장으로 보내. 거기 사료기계 있지? 거기 갈아버려.”
정병수는 이근석의 시신이 이 땅에 남는 것조차 탐탁찮게 여겼던 것이다. 그때 이근석의 측근 수하인 동호의 뒷덜미를 잡고 있던 정병수의 수하가 말했다.
“이놈은요?”
그 말에 동호를 힐끗 쳐다 본 정병수. 그가 싸늘하게 말했다.
“같이 데려 가.”
“안, 안 돼! 형, 형님. 살, 살려주십시오.”
하긴 누가 돼지 사료가 되고 싶겠나? 동호가 살아보겠다고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정병수는 이미 뒤돌아서 저 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동호가 그런 정병수를 쫓아가려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어딜....”
그의 뒷덜미를 잡고 있던 정병수의 수하가 그걸 제지했고 곧 동호의 배에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바로 옆에 정병수의 또 다른 수하가 발로 동호의 배를 걷어찬 것.
“커억....”
허리를 앞으로 직각 이상으로 수그린 동호. 그런 녀석의 머리로 재차 강력한 충격이 전달되었고, 순간 까마득히 의식을 잃고 픽 쓰러진 동호가 눈을 떴을 때....
우우우우웅! 촤라라락! 슈웨에에엥!
시끄러운 기계 돌아가는 소리.
“으아아아악!”
거대한 파쇄기의 칼날이 그의 눈앞에서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뭐든 들어오면 다 갈아버릴 거처럼 맹렬하게....
* * *
서울 중앙 지검. 한 통의 전화가 그곳 지검장에게 걸려왔다.
“....네. 네.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걱정 마십시오.”
아직도 무소불위까지는 아니지만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지검장이건만, 전화를 받는 동안 그가 책상에서 일어선 채 연신 굽실 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나자 지검장이 바로 누군가를 호출했다. 잠시 뒤....
“찾으셨습니까?”
서울 중앙 지검의 강력범죄수사부의 수장인 이인혁 부장검사. 그가 지검장 앞에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지검장이 결재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이 부장검사에게 말했다.
“삼명 쪽에서 사람이 올 거야. 그 사람과 협조해서 사건 하나 처리 해.”
“네?”
이인혁은 자신이 노크하고 지검장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지검장을 쏘아봤다. 하지만 지검장은 여전히 결재서류만 쳐다 볼 뿐 여전히 이인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 그에게 이인혁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외압에 의한....표적 수사라도 하란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드디어 결재서류만 쳐다보고 있던 지검장의 시선이 이인혁을 향했다.
“외압? 표적수사?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지검장님이 좀 전에 그러셨잖습니까? 삼명 쪽 사람과 협조해서 사건 하나 처리하라고.”
이인혁의 말에 지검장이 기가 차다는 듯 두 손으로 깍지를 꼈다. 그걸 본 순간 이인혁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럴 것이 그가 아는 지검장이 제대로 빡 치면 저렇게 깍지를 꼈던 것.
이인혁이 검사로 갓 임관했을 때 지검장은 자신의 소속 부장검사였다. 그랬기에 누구보다 지검장에 대해 잘 아는 그로서는, 지검장이 빡 치면 제대로 마가 낀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삼명이 하면 그게 다 외압이고 표적수사냐? 하아....그 사람 만나보고 나서 다시 얘기 해.”
다행히 세월이 흐른 만큼 지검장도 성질이 많이 죽어 있었다. 분명 빡 쳤는데 그 사이 득도라도 한 듯, 그 화를 가까스로 참으며 이인혁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이인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는 후다닥 지검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부서인 강력범죄수사부로 돌아갔을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이인혁 부장님. 삼명그룹 비서실에서 나온....”
삼명 쪽 사람이 벌써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명함을 건네받은 이인혁.
“아네. 이쪽으로....”
이인혁은 그 삼명 쪽 사람을 부장실로 데리고 들어갔고, 잠시 후 그 사람에게서 증거 자료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들을 수 있었다. 삼명 쪽에서 원하는 바를 말이다.
“이건....”
그냥 평범한 범죄자를 처벌하는 문제였다. 물론 그 범죄자가 다수의 사람을 죽인 대단한 살인마란 점에서 분명 이슈가 될 만한 큰 사건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걸 왜 삼명그룹이....이인혁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삼명 쪽 사람이 말했다.
“유재섭 같은 자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아아....”
그 말에 그제야 이인혁은 삼명 쪽에서 검찰에 뭘 원하는 지 깨달았다. 더불어 지검장이 왜 지검장실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법과 원칙에 따라서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인혁은 삼명 쪽 사람에게 검찰에서 늘 말하는 원론적은 대답을 내 놓았다. 하지만....
“좋군요. 그게 저희 쪽에서 바라는 바입니다. 부디 제대로 된 법 집행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그 말 후 삼명 쪽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내 부장실을 나갔다. 잠시 후 이인혁은 자기부서인 강력범죄수사부에서, 특히 악질 범죄자에게 유독 세게 양형을 부과하기로 소문 난 검사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였다.
* * *
유재섭은 김혜인이라는 년을 잡아오라고 보낸 문재구에게서, 여태 아무런 연락도 없이 깜깜무소식이자 점점 속이 타들어갔다. 당연히 한 시간 전부터 지속적으로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게 안 되자 문재구 뿐 아니라 문재구가 데리고 간 다른 녀석들에게도 전화를 했다. 하지만....
“이 새끼들이....”
대체 뭘 하고 있기에 이렇게 다 연락이 안 되는 건지, 유재섭은 뒤룩뒤룩 눈알을 굴리며 생각을 했다.
“가만....이것들 혹시....”
김혜인은 미인이었다. 그것도 한번 보면 절대 잊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그런데 그년을 잡으러 간 놈들은 강간을 밥 먹듯 하는 질 나쁜 조폭 출신들. 그러니 막상 김혜인을 납치하고 나서 그녀를 보고 놈들이 성욕이 들끓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 일부러 연락 딱 끊고 김혜인과 그 짓을 하러 어디 모처로 가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뭐 그렇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차피 그년 잡아오면 수하들에게 돌림 빵 시키고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주인에게 허락도 없이 그런 짓을 저지른 놈들을 유재섭은 좋게 봐 줄 생각은 없었다.
“오면....혼쭐을 내 줘야겠군.”
그렇게 유재섭은 문재구와 자신의 경호원들이 납치에 성공한 김혜인을, 놈들의 욕구 해소를 위해서 어디 딴 데로 빼돌렸다고 확신했다.
“쩝쩝....아쉽군.”
김혜인의 아름다운 얼굴이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자, 유재섭은 자기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그 만큼 김혜인의 미모는 단연 아름다웠고, 사실 그랬기에 유재섭도 김혜인을 한 눈에 알아봤다. 더불어 그녀가 왜 자신을 몰래 감시하고 뒤를 캐고 있는지도 바로 눈치를 챘고.
“그 아비에 그 딸이야. 멍청하긴....아니지. 순박하다고 해야 하나?”
김혜인의 부친은 참으로 호인이었다. 배포도 컸었고. 남자로서 유재섭도 반할만한 위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착했다. 그래서 유재섭의 손에 정말 어이없이 죽었다. 자신이 가진 걸 모두 유재섭에게 헌납하고서 말이다.
“아주 고마운 양반이었지.”
그자가 가진 선산을 팔아서 유재섭은 처음으로 목돈을 손에 쥐었다. 그 돈으로 지금까지 승승장구해 왔고. 그러니 유재섭에게 있어서 김혜인의 부친은 진짜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랬는데 최근 그 딸년이 복수라도 하려는 듯 그의 뒤를 캤다. 하지만 그년도 순진하지. 그렇게 해서 복수할 방법을 찾아낸들 무슨 소용이겠나? 제 아비처럼 자신의 손에 죽어버리면 끝인 걸 말이다.
“하여튼 TV나 영화가 사람을 다 버려 놓는다니까. 아아. 아니다. 그것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편하게 귀찮은 일을 처리하며 살고 있는 건데 말이야. 오히려 TV나 영화에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크크크크.”
유재섭은 평창동 자신의 저택에서 평소처럼 거하게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나서 가볍게 자신의 저택 안 마당을 산책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났고 이내 문이 열리면서 웬 건장한 남자들이 그의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당신들 뭐야?”
당연히 저택 안에 유재섭의 경호원들이 그들을 제지했다. 그 순간 저택 안에서 저들에게 문을 열어 준 그의 아내가 창백한 얼굴로 그를 향해 외쳤다.
“여보. 경찰들이 왜....”
순간 유재섭은 직감했다. 뭐가 잘못 됐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유재섭은 너무 안일했다. 현 자신의 지위와 돈의 힘을 너무 믿었던 것이다. 하긴 그가 아는 경찰서장만 해도 몇 명이던가? 설사 죄가 있다고 해도 그 죄를 없애 버릴 힘이 그에게 있었다. 하지만....
“당신을 살인과 살인청부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그를 체포하며 형사가 한 말을 듣고 유재섭은 ‘아차’ 싶었다. 형사가 너무도 명백하게 자신의 죄목을 그 앞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 말은 곧 그의 죄가 유죄임을 확신하고 있단 거고, 그건 명백한 증거가 경찰에 있단 얘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