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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래도 희망이라면 유재섭이 퇴직금으로 얼마라도 챙겨 주는 건데....
“설마 빈손으로 내 보내려는 건 아니겠지?”
강동욱은 그래도 자신이 독립하겠다고 하면, 유재섭이 10년간 그의 뒤치다꺼리를 해 온 자신을 홀대하진 않을 거로 봤다. 그런데 막상 그 동안 유재섭이 밑에 사람들에게 하는 걸로 미뤄 본 결과, 그는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만약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강동욱은 자신의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차 키를 꺼냈다. 그 차키의 키링에 USB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 USB에 그 동안 유재섭이 지시한 온갖 더러운 일들에 대한 갖은 정보가 들어 있었다.
그게 만약 경찰의 손에 들어간다면....유재섭은 꼼짝 없이 감옥행이었다. 그리고 무기징역, 사형은 따 놓은 당상이었고.
그럴 게 유재섭이 살인을 지시한 게 십여 개도 넘었고, 그 증거들이 어디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고스란히 USB에 담겨 있었으니까. 그 중에서 하이라이트는 단연 유재섭이 직접 살인하는 장면이 찍혀 있는 동영상. 그 동영상 하나로 유재섭의 살인죄는 증명되고도 남았다.
“그나저나 왜 이리 안 와?”
수하들을 내 보내서 그 여자를 찾아오라고 시킨 지 한 시간이 다 됐다. 그런데 그 여자를 데려 오기는커녕 수하들에게서 전화한통 걸려오지 않고 있었다. 물끄러미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던 강동욱. 수하 중 하나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고 생각할 때였다. 오피스텔 방 밖 누가 온 듯 디지털 도어록에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왔군.”
강동욱은 이 오피스텔 방에 들어오기 위해서 마스터키를 이용했다. 이곳 오피스텔 관리인의 목에 칼을 갖다 대고 단단히 겁박해서 얻어 낸 거였는데, 당연히 강동욱의 수하들이라면 문을 두드리고 문 열어달라고 떠들었을 터.
그렇지 않고 이렇게 바로 도어 록에 비밀번호를 누른다는 건, 이 오피스텔 방의 주인인 김혜인 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동욱은 김혜인이라 확신하며 즉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여자를 맞으려 나섰다. 하지만 정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온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그것도 외국인으로다가.
“이건 뭐지?”
황당한 얼굴의 강동욱이 빤히 자기보다 20센티는 더 키가 큰 외국인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자, 놀랍게 외국인의 입에서 능숙한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뭐긴 뭐야. 사람이지.”
“....”
그 말을 듣고서 강동욱의 눈이 살짝 더 크게 떠졌을 때였다. 갑자기 둔탁한 느낌이 가슴에 일었다.
퍽!
“크으윽!”
신음성과 함께 가슴에 충격과 함께 뒤로 벌러덩 자빠진 강동욱. 그가 오피스텔 방바닥을 한 바퀴 구른 뒤, 몸을 일으켰을 때 어느 새 그 앞에 또 다시 나타난 외국인. 그의 얼굴이 갑자기 훅하니 강동욱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빠악!
강한 충격이 강동욱의 얼굴에 전해지면서 순간 그의 의식의 끈이 뚝 끊겼다.
* * *
세르게이는 상가에 이어서 오피스텔 건물 쪽으로 움직이면서 눈에 띠는 조폭들을 족족 처리했다. 그때마다 철수가 나타나서 위치를 어딘가로 알렸고, 몇 분 뒤 나타난 용역 승합차에 쓰러져 있는 조폭들이 족족 태워졌다.
그렇게 김 비서를 잡으러 오피스텔 밖으로 나온 조폭들이 다 처리가 되자, 철수는 세르게이와 같이 그녀의 오피스텔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녀의 오피스텔 방이 있는 층으로 올라간 직후 철수가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거기 내려 준 사람인데. 방 비밀번호가 어떻게 됩니까?”
-아니. 도대체 무슨 짓을....
철수의 물음에 김 비서는 자신의 방 비밀번호는 말해주지 않고 이 일의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하지만 철수는 여자에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주제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김 비서는 백준열의 여자다. 어떤 식으로든 엮여서 좋을 게 전혀 없었다. 해서 철수는 딱 끊어서 냉철하게 말했다.
“지금 당신 방에 들어가 있는 불청객을 그대로 둬도 된다면 말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
철수의 그 말에 잠시 말이 없어진 김 비서. 그녀가 이내 말했다.
-8282요.
철수는 김 비서에게서 비밀번호를 듣자마자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한심하다는 뜻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세르게이에게 말했다.
“들었지?”
세르게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김 비서의 오피스텔 방 앞으로 가서 도어록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잠시 안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고 더는 아무런 기척이 일지 않자, 그제야 김 비서의 오피스텔 방 안으로 들어간 철수.
그가 널브러져 있는 조폭 녀석에게 다가가서 녀석의 품을 뒤졌다. 그러다 발견한 녀석의 차키. 그 차키의 키링에 매달려 있는 USB가 철수의 눈에 들어왔고....
“어디 보자.”
김 비서의 오피스텔 방에는 당연히 노트북이 있었다. 철수는 그 노트북에 차키 키링의 USB를 꽂았다. 그리고....
“와아....하하하하.....이거 봐라?”
그 안의 파일들을 전부 다 확인한 철수의 입 꼬리가 한껏 올라간 걸 보고 세르게이가 물었다.
“돈 될 만한 거라도 찾았어?”
그러자 철수가 환하게 웃은 얼굴로 세르게이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찾았지. VIP가 엄청 좋아할 만한 걸로다가.”
철수의 VIP라는 말에 세르게이의 얼굴도 이내 환하게 웃음꽃이 피었다. 그럴 게 VIP 백준열이 그 동안 그들에게 안겨 준 돈이 얼마던가? 화끈한 그의 성격 상 이번 일로 챙길 수 있는 돈이 엄청 날 거란 거 정도는 세르게이도 벌써 파악이 됐던 것. 그래서 세르게이가 더 서둘렀다.
“빨리 연락 해. VIP에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철수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서 뉴욕에 있는 백준열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차키 키링에 매달린 USB 속에 내용들을 그에게 전했다. 그러자 그가 크게 기뻐하며....
“씨발....이게 0이 몇 개냐?"
백준열이 보내 준 격려금에 철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그 옆에 세르게이....
“철수. 우리 짐 싸자.”
“짐은 왜?”
“하와이 가야지.”
세르게이의 하와이라는 말에 철수가 황당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럴 게 올 여름 피서로 하와이가자고 말한 적이 있었던 세르게이. 하지만 철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백준열에게 일을 맡아서 본격적으로 돈 맛을 보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고 이제 곧 연말이었다.
“하와이라....”
비록 지금은 이혼한 처지지만 철수도 연애 하고 결혼도 했었다. 그리고 신혼여행으로 간 곳이 바로 하와이였고. 신혼여행을 달리 허니문 이라고 하겠나? 그때 좋았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르며 철수도 하와이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돼!”
단호한 철수의 말. 그 말에 세르게이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런 그에게 철수가 달래듯 말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그리고 VIP 의뢰가 아직 다 끝난 것도 아니고.”
철수의 입에서 VIP라는 말이 나오자 불만 가득한 세르게이도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도로 삼켰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돈이 아니겠나? 그 돈을 자신들에게 펑펑 써 주는 VIP의 의뢰만큼은, 세르게이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던 것.
“알았다. 하와이는....VIP 의뢰 끝내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고.”
하지만 절대 하와이를 포기하지 않는 세르게이의 집요함에 철수를 혀를 내두르다가 이내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몇 분 뒤 나타난 두 사람, 그들이 끌고 온 커다란 캐리어 안에 오피스텔 방 안에 쓰러져 있는 강동욱을 욱여넣어졌다. 그리고 그 캐리어를 끌고 두 사람이 오피스텔 방을 나서자, 그걸 보고 있던 철수가 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박 사장. 나야. 짐은 다 실은 거 같아. 처리? 으음....며칠 보관하고 있다가 풀어주자고. 당연히 보관료 더 내놔야지. 얼마 더 줄까? 뭐? 2천? 미쳤어?”
철수가 또 돈 가지고 싸우자 그걸 보고 세르게이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정작 그럴 때 마다 철수를 말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철수가 돈 가지고 이렇게 싸워서 진적이 없었거든. 그 말은 곧 철수가 맡은 바 의뢰 해결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그 만큼 아꼈다는 얘기고, 그 아낀 돈이 어디 가겠나? 다 세르게이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왔지. 그러니 그걸 아는 세르게이로서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입을 꾹 다물 수밖에.
* * *
김 비서는 사색에 잠긴 채 도심 공원을 홀로 걸었다. 처음에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대체 백준열이 뭐라고 했기에 양태석이 자신에게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화도 많이 났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그 두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확실히 밝혔다. 자신의 복수는 자기 손으로 할 거라고 말이다. 그랬는데 그들이 그런 그녀의 뜻을 무시하고 이런 식으로 나선 탓에, 그녀의 복수가 벌써부터 많이 희석 된 느낌이었다.
바로 그럴 때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외국인과 같이 나타나서 그녀를 여기로 데려다 놓은 그 남자 말이다. 한데 뜬금없이 그 남자가 그녀 오피스텔 방의 비밀번호를 물었다. 당연히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김 비서는 당장 머릿속에 떠오른 말들을 떠들었다. 그랬더니 그 자가 그랬다. 지금 그녀 방에 들어가 있는 자를 계속 거기 있게 내버려 둘 생각이면 비밀번호를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아아....”
순간 김 비서도 깨달았다. 자신이 진짜 위험할 뻔했단 걸 말이다. 만약 지금 그녀와 통화 중인 남자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꼼짝없이 원수인 유재섭이 보낸 자들에게 잡혀갔을 터. 그리고 놈들에게 어떤 험한 짓을 당했을지 몰랐다. 그 생각에 그제야 등골이 오싹해지는 김 비서.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자신의 오피스텔 방의 비밀번호를 말했다. 그러자....
뚜뚜뚜뚜뚜....
그걸 듣고 바로 전화를 끊는 그 남자. 그 뒤 김 비서는 반쯤 넋이 나간 채 걸었다. 그러길 20여분....그때 그녀 핸드폰이 또 울렸고 김 비서는 그 남자의 전화인줄 알고 황급히 그 전화를 받았다. 그랬는데....
-김 비서. 나야.
너무도 귀에 익은 목소리. 근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김 비서의 두 눈에서 주르르 두 줄기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친....내가 왜 이러지?’
그를 보지 못한 지 이제 갓 2주가 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먹먹한 가슴과 이 그리움의 감정은 뭐란 말인가? 그녀는 갑자기 백준열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영상으로 통화하면 안 될까요?”
-안 되긴. 되지.
잠시 후 김 비서의 핸드폰에 백준열이 얼굴이 나왔고 그걸 본 김 비서의 얼굴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대신 김 비서를 보고 반가워하며 웃고 있던 백준열의 얼굴이 굳었다.
-울었어?
“아, 아뇨. 울긴 누가 울었다고....”
김 비서는 딱 시치미를 떼면서 백준열에게 다소 시니컬하게 말했다.
“얼굴에 살이 오른 게, 미국 물이 대표님에게 잘 맞나 봐요?”
-그래? 나 살쪄 보여?
김 비서의 말속에 있는 뼈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실실 거리던 백준열. 그런 그를 김 비서가 막 한심하게 쳐다볼 때였다. 백준열이 툭하니 말을 뱉었다.
-복수하기 쉽지 않지?
사실 별 말 아니었다. 자신과 백준열 사이에서 말이다. 백준열은 김 비서의 원수가 누군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과 달리 백준열의 입에서 다정스럽게 그 말이 나오자, 김 비서의 그 동안 꽁꽁 숨겨왔던 속마음이 너무도 허무하게 허물어졌다.
동시에 참아왔던 울음보가 터지면서 김 비서는 백준열이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 그런 그녀를 핸드폰 화면에 백준열이 말없이 묵묵히 지켜보았다.
* * *
백준열은 자신의 해결사 철수의 전화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김 비서의 복수....생각보다 손쉽게 해결 될지도....”
순간 백준열은 갑자기 김 비서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굳이 당장 그녀에게 전화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일부러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는데 이심전심이랄까? 김 비서가 영상통화를 하잖다. 백준열은 기뻐하며 그녀와 일반 통화를 영상 통화로 전환시켰다. 다행히 국제 전화임에도 김 비서와 영상 통화가 됐다. 근데 그를 본 김 비서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왜 저러지?’
의아해 하면서도 백준열은 가만히 김 비서를 지켜봤다. 그가 아는 김 비서는 강한 여자였다. 그래서 곧 진정이 될 거로 봤는데....생각보다 길게 10분 가까이 울고 나서야 김 비서가 백준열에게 다시 그녀 얼굴을 보여주었다. 딱 봐도 진정이 된 거 같은 그녀에게 백준열이 말했다.
“실컷 울었어?”
-네.
“그럼 내가 김 비서에게 전화 건 진짜 용건을 말할까 하는데?”
-말하세요.
김 비서의 허락이 있자 백준열이 차분히 말을 시작했고 그 말을 듣던 김 비서의 얼굴이 점점 기묘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