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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814화 (81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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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김 비서를 나름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에 내려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그녀 곁에 경호원이라도 한 명 붙여 두었다면 또 모를까? 그녀는 지금 혼자서 서울의 한 도심 공원에서 강제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도심 공원의 장점은 언제든 사람이 있다는 것. 도심 안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었기에, 공원 안에는 사람을 구경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흔치 않았다.

해서 철수도 안심하고 그녀를 거기 두고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고.

“세르게이. 쭉정이들 좀 빨리 처리해야겠어.”

“쭉정이?”

아직 한국말이 서툰 세르게이가 쭉정이란 말의 뜻을 이해 못한 듯 운전하다가 힐끗 옆 자리 철수를 쳐다봤다.

“쭉정이는 껍질만 있고 속이 빈 곡식을 말해. 한마디로 가치 없는 것을 말할 때 쓰이는 말이지.”

“아아....”

친절한 철수의 설명. 그 얘기를 듣고 철수가 말한 쭉정이의 뜻을 바로 간파까지 한 세르게이가 말했다.

“그 여자를 납치하려는 자들의 졸개들을 말하는 거로군.”

“맞아. 아마 지금쯤 김 비서 오피스텔 주위를 샅샅이 뒤지고 있을 거야.”

“그런 것들 처리라면 간단해. 단지 뒤처리가 귀찮을 뿐.”

세르게이의 그 말에 철수가 자신의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열심히 뒤지며 대답했다.

“뒤처리는 걱정하지 마. 으음....여기 있다.”

그리곤 핸드폰 전화번호부에서 찾는 번호를 찾은 듯 곧장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어. 박 사장. 나야. 어. 나야 잘 살지. 왜 전화 했냐고? 혹시 지금 당장 용역 차 좀 빌릴 수 있을까? 에헤이....이거 왜 이러실까? 용역들 출퇴근 차량들, 지금 퍼질러져 있는 거 모르는 사람 있나? 몇 대? 2대면 될 거 같아. 그리고 거기 물건 실은 인력 한 명 태우고. 그래. 맞아. 어. 뭐 더 필요하면 또 연락하지. 어디로? 여기가....”

철수는 누군가 꽤 길게 통화 후 전화를 끊었고, 그 사이 세르게이가 운전하는 SUV차량은 김 비서의 오피스텔 근처까지 이동해 있었다.

“저기 쯤 차 대.”

그래도 지금 타고 있는 SUV차량을 몰고 김 비서의 오피스텔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놈들도 그곳 CCTV를 통해서 김 비서가 어떤 차량을 타고 오피스텔 건물을 빠져 나갔는지 파악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해서 철수는 그 오피스텔 근처 길가에 SUV차량을 세워 놓고 세르게이와 함께 걸어서 김 비서의 오피스텔 건물로 움직였다.

“저기 한 놈 있네.”

그때 오피스텔 근처 상가를 뒤지고 있는 조폭스러워 보이는 녀석 한 놈이 보였다. 그걸 또 귀신 같이 찾아 낸 세르게이를 보고 철수가 말했다.

“근처에 딴 놈들도 있을 거야. 그러니 가급적 조용히 처리해.”

“....후훗....”

철수의 그 말에 세르게이는 대답 대신 콧방귀를 뀌더니 피식 웃으며 상가 쪽으로 움직였다.

* * *

지금은 입대사업자인 유재섭은 과거에 왕십리 일대에 조직의 부 두목 자리까지 올랐다가, 두목의 견제에 어쩔 수 없이 조직을 떠나서 옥수동에서 사채업을 벌여 제법 돈을 모았다.

유재섭은 그 돈으로 조폭들을 끌어 모았고 옥수동을 비롯해서 청구동까지 영역을 넓혀갔는데 겁도 없이 한남동으로 진출했다가, 이태원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당시 서울의 거대 조직인 서방파에 아작이 나면서 한때 죽을 뻔 했다.

서방파에 자신이 그 동안 벌어 온 돈과 사업체를 넘기고 나서 겨우 목숨을 구한 유재섭. 그는 그 이후 진짜 악귀가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 어떤 짓도 서슴지 않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유재섭은 다시 돈을 벌 수 있었고, 그 돈으로 더는 조폭들을 끌어 모아서 조직을 키우려는 어리석은 짓은 저지르지 않았다.

대신 임대사업자로 변신해서 동네 유지로서 다방면에 걸쳐서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지금 유재섭은 아무나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유재섭이지만 그가 깡패 출신이란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 말은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조직원들을 실제 자기 곁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경호원이라는 합법적인 고용형태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유재섭을 경호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자들을 처리하는 위험한 짓까지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씨발년.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유재섭의 경호원 중 한 명인 문재구는 계집하나 납치해서 두목, 아니 사장님 앞에 데려가는 일이 이렇게까지 귀찮아질 줄 몰랐다. 경호원들 중에서도 성격이 제일 급하고 또 생색내기를 좋아하는 문재구. 그는 다른 경호원들이 오피스텔 건물 주위를 뒤질 때, 홀로 오피스텔에서 10여분은 걸어야 나오는 상가로 움직였다.

왜냐하면 그 여자가 뭔가 급하게 사야 할 게 있거나 미용실, 필라테스 같은 데를 이용하러 움직인 거라면 분명히 상가 쪽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상가로 오자마자 미용실과 필라테스와 네일숍 등을 뒤졌다. 하지만 그곳들에서 그 여자를 찾지 못한 문재구는 이제 닥치는 대로 상가를 뒤지고 있었다.

“쳇....여기도 없군.‘

세탁소 안을 대충 훑어보고 막 몸을 돌리던 문재구. 그런데...

턱!

누군가와 부딪쳤다. 분명 문재구가 세탁소까지 오는 동안 그의 앞에 사람은 없었다. 그 말은 뒤에서 문재구를 따라 온자가 있었다는 거고,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서 부딪치기까지 한 건 의도적으로 그런 거라 볼 수밖에 없었다.

“뭐야?”

누가 깡패 출신 아니랄까? 문재구가 신경질적으로 험상궂게 인상을 쓰며 자신과 부딪친 자를....올려다봤다. 상대는 문재구보다 족히 30센티는 더 키가 컸고 체구도 좋았다. 거기다가....외국인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외국인에 문재구가 어쩔 줄 몰라하며 ‘어버버’ 거릴 때였다.

퍽!

갑자기 복부에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문재구의 상체가 절로 앞으로 숙여지고 하체가 뒤로 쭉 빠졌다. 그 상태에서 숨을 못 쉬는 듯 문재구의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두 눈까지 붉게 충혈이 됐다. 그런 문재구의 머리 위로 외국인의 꽉 쥔 주먹이 떨어져 내렸다.

퍼억!

“....어억!”

무슨 해머에 머리를 맞은 듯 문재구가 단말마와 함께 두 눈을 까뒤집고 그 자리에 픽 쓰러졌다. 그런 문재구를 잠시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보던 외국인. 그가 세탁소 입구 앞에 널브러진 문재구를 옆으로 대충 치우고 나서는 이내 그 자리를 떴다. 그러자 잠시 뒤 그곳에 철수가 나타났고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여기가....아름 세탁소 앞인데....수거 부탁 해.”

그리고 통화를 끝내자 바로 외국인이 사라진 방향으로 뛰어갔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승합차 한 대가 나타나서는 외국인이 쓰러트린 문재구를 싣고 누가 볼 새라 휑하니 사라졌다.

* * *

툭! 팡! 파앙!

세르게이의 얼굴 양 옆으로 날카로운 잽과 스트레이트가 연이어 스쳐 지나갔다. 쭉정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법 싸울 줄 아는 녀석을 만난 것이다. 복싱 능력이 거의 프로급의 진짜 실력자를 말이다.

‘재미있군.’

세르게이 역시 다른 격투술보다 복싱에 진심이었기에, 그는 속으로 흥미로워하면서 가드를 올린 상태로 머리를 움직였다.

그의 위빙 동작에 상대의 훅이 허공을 갈랐을 때, 세르게이의 주먹이 녀석의 복부를 기습적으로 때렸다.

퍽!

‘으음....’

하지만 얕았다. 데미지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기에 상대의 날카로운 반격의 주먹이, 바로 세르게이의 안면을 향해 날아 들었다. 이건 일종의 카운터펀치라 할 수 있었다. 제대로 체중이 실린....

촤악!

그 스트레이트 펀치가 세르게이의 귀를 스쳤다. 자칫 그 펀치에 맞을 뻔한 세르게이.

“오오....”

그가 놀람의 탄사와 함께 몸을 뒤로 뺄 때였다. 주먹을 회수한 상대가 허리를 돌리며 잽싸게 레프트 훅을 휘둘렀다.

부웅!

다행히 몸을 빼던 중이라 주먹은 이번에도, 세르게이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몸과 같이 방향을 틀면서 움직이자 상대가 즉시 잽과 원투를 던지면서 세르게이의 접근을 막았다.

‘제법이네.’

쭉정이들 쯤이야 쉽사리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생각이 틀린 것을 깨달은 세르게이.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세르게이를 어쩔 수 있는 수준의 강자까지는 아니었다. 세르게이가 자신의 킬러로서 살인 본능을 끌어내게 되면 눈앞의 상대는 10초 안에 죽여 버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지금은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단지 10초에 끝낼 상대를 짧게는 1분, 길게는 10분까지 가지고 놀다가 처리해도 됐으니까. 즉 세르게이는 눈앞의 상대를 좀 더 가지고 놀 생각이었던 것.

툭!

상대의 빠른 잽을 던져오자 세르게이도 바로 맞서 레프트 잽을 던졌다. 이때 상대의 눈이 세르게이가 자신을 봐주고 아래로 보고 있음을 간파한 모양이었다. 그게 녀석을 진심 화나게 만든 듯 세르게이를 잡기 위해서 상당히 공격적으로 압박을 가해 오기 시작했다.

이에 세르게이는 상대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잽을 던지며 움직임의 범위를 최대한 넓게 잡아갔다.

휙! 휙!

상대의 왼손 잽이 세르게이의 시야를 최대한 좁히려 들었고, 플리커 잽(Flicker jab, 변칙적인 잽)까지 던지며 세르게이에게 혼선을 주려 했지만, 세르게이는 이미 상대의 잽 던지는 패턴을 간파하고는 잽싸게 카운터(Counter)펀치를 찔러 넣었다.

부웅!

이번에도 상대는 겨우 허리를 숙이며 세르게이의 펀치를 피했다.

하지만 고개를 숙였던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세르게이의 레프트 어퍼컷이었다.

뻐억!

숙였던 상대의 고개가 위로 훅 들어 올려 졌다가 도로 내려갔다.

‘걸렸다.’

이번엔 주먹에 묵직함이 남았다. 세르게이는 제대로 카운터펀치가 상대에게 들어갔음을 깨닫고 원투로 상대를 더 찌르며 몰아쳤다.

퍼퍽! 펑! 펑! 퍼엉!

세르게이의 원투 스트레이트에 이은 레프트 훅이 상대 가드 위를 연달아 강타했다.

그러자 뒷걸음치는 상대에게 빠르게 쇄도해 들어오는 세르게이의 라이트 바디 블로우!

퍼억!

제법 묵직한 타격 음이 울리고 비틀거리는 상대를 향해 세르게이가 빠르게 달려들자 그걸 기다렸다는 듯 상대의 매서운 주먹이 뻗어 나왔다.

부우웅!

순간 백스텝으로 상대의 레프트 훅을 피한 세르게이.

재차 가드를 올리고 상대에게 파고 들어간, 세르게이의 주먹이 상대의 왼쪽 옆구리를 강타하는 데 성공했다.

“큭!”

상대의 가드가 내려오는 걸 본 세르게이. 그가 즉시 라이트 어퍼컷을 날렸다.

뻐억!

세르게이는 어퍼컷에 그치지 않고 좌우로 훅을 날렸다.

퍽! 뻐억!

세르게이의 주먹은 상대의 턱에 한 방, 그리고 다른 한 방이 관자노리에 정확히 꽂혔다.

정석적인 콤비네이션(Combination)펀치였다. 제대로 충격을 받은 상대의 입에서 헛바람 소리와 함께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때 세르게이가 날카롭게 상대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라이트 훅을 날렸다.

빠악!

그러자 상대의 머리가 크게 흔들리더니 그대로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털썩!

기절한 한 상대가 길바닥에 널브러지자 그제야 세르게이가 양손을 눈높이에 올리고 뒷손은 오른쪽 뺨에 붙이고 있던 복싱의 기본자세를 풀며 말했다.

“좀 아쉽군.”

이제 막 몸이 풀렸는데 더 싸울 상대가 없으니 말이다.

* * *

유재섭의 꼬임에 넘어가서 벌써 10년째 그의 뒤나 닦아 주고 있는 신세의 강동욱. 하지만 유재섭은 그가 아닌 이제 들어 온지 3년도 채 안 된 표명석을 더 신뢰하고 아꼈다. 그래서 주로 돈이 되는 일은 표명석에게 몰아주고, 대신 자신에게는 돈이 안 되고 손만 많이 가는 궂은 일만 맡겼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여자 하나 납치해서 유재섭 앞에 데려가는 일을 왜 자신에게 직접 시키느냐 이 말이다. 그 말고도 이제는 고참으로 역량이 되는 경호원들도 있는데 말이다.

“씨발....손 털고 나갈 때가 된 건가?”

강동욱은 이걸 유재섭이 자기보고 그만 나가라도 등 떠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게 맞다면 강동욱도 이제 유재섭 밑에서 독립을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유재섭도 왕십리 조직에서 나와 지금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렇다면 강동욱도 그리 못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밑에 애들 대 여섯 명 쯤 데리고 서울 외곽으로 가서 거기서 유재섭처럼 사채업을 시작하면....

“쳇....그것도 돈이 있어야지.”

하지만 지금 강동욱에게는 유재섭처럼 사채업을 할 자금이 충분치가 않았다. 강동욱이 돈 좀 어떻게 빼돌려 볼까하면 유재섭이 그걸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손을 써왔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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