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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조폭들이라고 다치는 게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다친 후 양길현에게 치료를 받아 본 조폭들은, 다들 그와 다시 만나는 걸 꺼려했다.
그들이 그런 이유는 양길현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조폭들에게 좀 거칠게 치료를 했기 때문에. 그리고 괴팍한 양길현의 성격 상 좀 체 그의 마음에 드는 조폭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고.
즉 다친 조폭 중 열이면 아홉이 양길현의 치료에 끔찍한 고통을 경험했단 소리다. 그렇다보니 실제 양길현을 만나면 조폭들은 그를 모른 척하기 급급했다.
막나가는 조폭인데 자신을 아프게 한 양길현을 성질대로 패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랬다가 조폭들 중 누가 크게 다쳤는데 치료해 줄 의사가 없어 병신이 되거나 죽는다면?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조폭과 조폭 의사는 서로 의지하고 있어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쪽도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운 관계였던 것. 그러니 조폭들이 아무리 싫어도 조폭 의사인 양길현에게 절대 손 댈 수 없는 거고.
그렇다면 나머지 한 명은....단지 운이 좋아서 양길현의 치료를 받고 무사한 걸까? 당연히 아니다.
현 시대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건 조폭들도 마찬가지고.
그 말은....맞다. 양길현에게 아프지 않게 치료해 달라고 돈을 찔러 넣어 준 조폭. 그 조폭은 양길현에게 아프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양길현도 자신이 조폭들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예외는 두었다. 바로 조직의 간부급 인사들, 그 중에서 특히 조직 보스의 경우는 그냥 마취제를 쏟아 부어서라도, 하나도 아프지 않게 치료를 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 양길현의 눈에 배때기에 칼을 꽂고 있는 OB파 2인자 정병수의 모습은, 사실 그리 반갑지 않았다.
거기다 뭔 일인지 몰라도 정병수가 많이 화가 나 있는 거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아니 그의 쌍욕 욕설이 쩌렁쩌렁하니 이자카야 안에 울리는 게 말이다.
“야이. XXX....YYY....ZZZ....”
양길현도 이제는 적응이 된 조폭들의 욕설. 하지만 두목급 조폭의 욕설은 뭔가 달랐다. 가슴을 쿡쿡 찌르는 뭔가 있달 까?
아무튼 양길현은 최대한 웃으며 정병수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를 발견한 정병수의 수하가 그의 귀에 뭐라 속삭였고, 정병수의 고개가 곧바로 양길현 쪽으로 돌았다. 그리고 정병수와 양길현의 눈이 딱 맞추졌고....
“우리 길현이 왔네?”
사납던 정병수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 근데 살벌하게 생긴 인간이 억지로 웃는 게 사실 양길현은 더 무서웠다. 왜냐하면 저런 얼굴로 정병수가 손수 사람을 때려 죽이는 걸 양길현이 직접 본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 그 기억이 양길현에게 있어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기에 티내지 않으려 했지만 양길현의 몸은 벌써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거 봤나?”
양길현이 정병수와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다랐을 때, 정병수가 칼이 꽂힌 자신의 배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양길현은 한 걸음 더 걸어가서 발걸음을 멈춘 채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양길현의 배에 꽂혀 있는 칼을 자세히 살폈다. 그건 양길현 말고 정병수를 비롯한 주변 조폭들이 보기에 그렇다는 얘기고. 실제 양길현은 정병수의 배를 살피고 있었다.
‘핏자국과 붓기로 봐서 찔린 지 한 시간쯤 됐군.’
그나마 잘한 건 저 칼을 뽑지 않은 거다. 성급하게 정병수가 칼을 뽑았다면 장기 손상은 물론, 당장 출혈부터 문제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움직이는 걸로 봐서....장기 손상은 없는 거 같긴 한데....’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지만 정병수의 상태는 그리 위중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일일수록 부풀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뜯어 낼 게 많아지고, 또 생색도 더 크게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아쉬운 건 정병수 같은 보스급 조폭들에게는 뜯어 낼 게 없단 점. 그러니 생색이라도 크게 내야지.
“으음....”
저들 눈에는 칼을 보고 있는 조폭 의사 양길현. 그런 그가 심각한 얼굴로 침음 성을 흘리자 그걸 보고 들은 정병수와 그 밑에 수하 조폭들의 얼굴이 굳었다. 특히 당사자인 정병수는 억지웃음을 지우고 양길현에게 물었다.
“왜, 왜 그러나?”
“그게....자칫 위험할 뻔 했습니다.”
양길현의 입에서 흔히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라 잔뜩 겁만 주는 의사들의 전유물인 멘트들이 줄줄히 흘러나왔다.
당연히 그 말에 뭘 모르는 정병수가 움츠러들었고. 더불어 주위 살벌했던 분위기가 싹 사라지면서 정병수는 양길현과 자신의 최측근 수하 한 명만을 남기고 나머지 수하 조폭들을 이자카야 밖으로 내 보냈다.
* * *
알고 보면 조폭들이 더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다. 매도 맞아 본 놈이 더 잘 맞는다고 정병수 같이 사람을 죽여 본 놈이 더 죽음에 민감한 법이었다. 그랬기에 조폭 의사 양길현의 겁주기 멘트가 정병수에게 제대로 먹혔다.
“저 새끼들. 율목동 폐창고로 데려 가. 내 치료 받는 대로 바로 거기로 갈 테니까.”
“네. 형님.”
정병수의 지시에 그의 배때기에 칼을 꽂은 놈들을, 그의 수하 조폭들이 이자카야 밖으로 끌고 나가자, 정병수가 옆에 자신의 최측근 수하인 원철에게 말했다.
“너만 남고 나머진 다 내 보내라.”
“네.”
원철은 정병수의 지시에 이자카야 안에 수하들을 다 밖으로 내 보낸 뒤, 정병수를 부축해서 이자카야에서 가장 긴 소파에 그를 눕혔다. 그러자 조폭 의사 양길현이 알아서 그쪽으로 와서 마치 수술이라도 하려는 듯, 메스를 비롯한 외과적 시술 장비들을 소파 옆 테이블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원철이 잔뜩 쫄아 마른 침을 꼴깍 삼킬 때 정병수가 목소리 톤을 낮춘 채 양길현에게 물었다.
“살살 좀 부탁해. 아프지 않게.”
“네.”
정병수의 말에도 양길현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조폭 의사에게 조폭들은 환자에 불과했다. 그건 정병수도 마찬가지고. 양길현은 먼저 정병수의 옷을 가위로 찢어내서 칼이 꽂힌 환부부터 확보한 뒤 그 위에 바로 소독제를 들이부으려다가 말았다. 평소의 양길현이라면 그렇게 했을 텐데. 지금 그가 보고 있는 환자는 그냥 조폭들이 아니었다. 해서 양길현은 먼저 주사기와 약병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악병의 약액을 주사기에 가득 담은 다음 정병수의 칼이 꽂힌 배 주위에 주사기 바늘을 꽂으며 부분 마취를 시작했다.
칼이 꽂혀 있었던 탓 때문일까? 그 주위를 바늘로 찌르는 게 별로 아프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정병수가 가만히 누워 있었고 충분히 마취가 되자 양길현은 정병수의 배에 꽂힌 칼을 뽑았다. 마취제에 이어 출혈제까지 투여가 된 상태라 칼을 뽑았다고 피가 튀는 일은 없었다. 양길현은 칼이 뽑힌 배의 자상을 자세히 살핀 뒤 정병수에게 말했다.
“진짜 운이 좋았습니다. 칼이 1미리만 더 들어갔어도....”
정병수에게 잔뜩 겁을 줬던 양길현이 희망적인 말을 하자 그제야 잔뜩 굳어 있던 정병수의 얼굴이 펴졌다. 그걸 힐끗 확인한 양길현은 기본적인 자상 치료에 들어갔고, 봉합용 바늘과 실을 꺼내서 정병수의 자상을 꿰매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분 뒤 정병수의 처치가 끝나자, 양길현은 정병수가 당분간 먹을 항생제와 진통제를 꺼내 놓으면서 그가 당장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얘기했다.
“당분간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무리하게 움직이는 것도 안 되고....”
물론 조폭 새끼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 처먹지 않을 것을 정병수도 알았다. 하지만 그랬기에 그는 더 놈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몇 번에 걸쳐 떠들었다. 그래야 다친 부위가 재발해 다시 그를 찾아왔을 때, 두둑이 돈을 뜯어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보스급인 정병수에게는 딱 한 번만 말했다. 왜냐하면 이런 놈들은 같은 말을 자꾸 하는 걸 싫어하니까.
“수고했어.”
“그럼....”
정병수의 치료를 끝낸 양길현은 자신이 가져 온 치료 도구를 다 챙겨서 막 이자카야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길현아?”
갑자기 정병수가 그를 불렀다. 몇 걸음만 더 걸어가면 이자카야 출입문 앞인데. 양길현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대답과 동시에 뒤돌아설 때 찌푸린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머금어져 있었다.
“네.”
“바쁘냐?”
“네?”
“아까 봤던 놈들 말이야. 캐낼 게 좀 있는데....죽어 버리면 안 되거든.”
정병수의 그 말에 양길현의 얼굴이 죽상으로 변했다. 왜냐하면 조폭 의사가 가장 꺼려하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왜? 못하겠어?”
“아, 아닙니다.”
양길현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병수의 독사 같은 날카로운 눈길에 차마 못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좋아. 그럼 나하고 같이 좀 가자고.”
그래서 그는 양길현과 같이 OB파의 아지트 중 한 곳인 율목동 폐창고로 갈 수밖에 없었다.
* * *
“으으으으....”
“제, 제발 살려....크아아악!”
폐창고 안에는 세 명의 남자들이 폐창고 대들보 밑으로 내려와 있는 밧줄에 손목이 묶인 채 매달려 있었다. 그런 그들을 쇠파이프를 든 조폭들이 수시로 두들겨 패고 있었고.
처음 그들을 향했던 양길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폐창고 한쪽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두 명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시신 마냥 창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쯧쯧....”
그쪽으로 가서 그들의 목의 경동맥부터 손으로 집어 본 양길현의 입에서 절로 혀 차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둘 다 맥박이 전혀 뛰지 않았던 것. 그러니까 양길현이 본 대로 그들은 이미 시신이었던 것. 그때였다.
“불었어?”
어느 새 폐창고 안에 있던 사장님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앉은 정병수가 물었고 그 물음에 피묻은 쇠파이프를 들고 있던 그의 수하가 대답했다.
“네. 근석이 형님이 시켰다고....”
“뭐?”
근석이란 말에 막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던 정병수가 불도 붙이지 않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으윽!”
그러자 바로 배에 고통이 일었고 와락 얼굴을 찌푸린 정병수가 힐끗 양길현을 쏘아봤다. 마치 어떻게 치료를 했기에 배가 이렇게 아프냐고 말이다. 하지만 꿰맨 지 한 시간 좀 넘은 상태에서 저렇게 무리하게 움직이면 꿰맨 곳부터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는 정병수도 아는 지 양길현을 향했던 시선을 대들보에 매달려 있는 세 명의 남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린 정병수. 그가 천천히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정병수 옆으로 피묻은 쇠파이프를 든 수하가 쪼르르 따라 붙더니 셋 중에 가운데 매달린 녀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이 그랬습니다.”
정병수는 곧장 대들보에 매달려 있는 녀석들 중 가운데 녀석에게 다갔고, 하도 두들겨 맞아 기절한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매달려 있는 그 녀석의 턱을 손으로 받쳐 들어 올렸다. 그러자 녀석의 퉁퉁 부은 얼굴이 그대로 정병수에게 보였다. 당연히 얻어터져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름이 뭐냐?”
그래서 녀석의 이름을 묻자 역시나 피 묻은 쇠파이프를 든 수하가 대답했다.
“배형석이라고....”
“배형석?”
분명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이었다. 정병수는 시선을 배형석의 퉁퉁 부은 얼굴에 고정 시킨 채 열심히 생각을 했다.
“이근석....배형석....아아!”
배형석의 배후가 조직의 3인자인 이근석임을 떠올리자 그제야 생각이 났다. 최근 새로 들어 온 신입 조직원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띠었던 녀석.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을 이근석이가 낚아채 갔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거 같았다. 그 모든 게 정병수의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였고 이내 그는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우리 근석이가, 나를 재끼고 OB파 보스가 되고 싶은 모양이네.”
그 말을 내 뱉은 순간 정병수의 두 눈에서 섬뜩한 살광이 폭사되었다. 잠시 후....
“그래도 온 김에 안 죽을 만큼 치료는 해 주고 가라.”
정병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폐 창고를 빠져 나갔다. 졸지에 폐 창고에 남게 된 양길현은 속으로 똥 밟았다 생각하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빨리 내려. 매달아 놓고 치료 못하니까.”
양길현이 괜히 자기들에게 신경질을 부리자 폐 창고 안 조폭들의 인상이 단박에 일그러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대놓고 뭐라고 하지 못했다.
휙!
그때 피 묻은 쇠파이프를 여전히 손에 들고 있던 조폭이, 그 쇠파이프를 아무렇게나 폐 창고 구석으로 던져버리고는 매달려 있는 세 남자들에게 다가갔고 그걸 본 다른 조폭들이 그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폐 창고 대들보에 매달려 있던 세 남자들은 여전히 두 손은 묶인 채 창고 바닥에 눕혀졌고 양길현이 빠르게 그들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정병수의 말처럼 당장 죽지 않을 정도로 적절히 치료를 하고나서 왕진 가방을 챙겨 들고 폐 창고 밖으로 나갔다.
“씨발....”
근데 신경질을 부려서인지 폐 창고 안에 조폭들이 꿈쩍도 않고 그 안에 그대로 있었다.
덕분에 양길현은 1시간은 족히 걸어서 큰길로 나갔고 거기서 겨우 택시를 잡아 탈 수 있었다. 그때 OB파 말고 다른 조직에서 연락이 왔고, 양길현은 그 길로 그 조직의 아지트로 곧장 달려갔다. 다행히 거기서는 보스급이 아닌 일반 조직원들이 다쳤고 치료비로 그의 하루 일당만큼 뜯어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