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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만 서울의 제안을 받아드리자.”
여기서 조직 간부 이근석이 정병수에게 말한 서울이라 함은 태석파를 지칭 함이었다.
-그, 그건....
“우리 자리 그대로 보장해 준다잖아? 그런 배포 큰 보스 찾기 어렵다. 너도 그건 인정하잖아?”
-태석파의 양태석이 난놈은 난놈이지. 하아....그래. 그러자.
“그러면 내가 서울에 연락한다?”
-그래라.
결정 장애가 좀 있기는 하지만 한 번 마음먹으면 좌면우고하지 않고 직진하는 정병수였다.
“어떻게 인천 가면 술 한 잔 같이 할까?”
-아니. 됐다. 어째든 모셨던 분인데....이런 식으로 재껴도 되는 건지....
그 새 나이를 처먹어서일까? 약한 소리를 하는 정병수. 그런 그에게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임을 알려주려 이근석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이근석은 그렇게 정병수와 통화를 끝내고 담배 한 대를 피운 뒤 태석파 쪽에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씨발. 혼자 의리 있는 척은....이 바닥에 그런 게 어디 있다고....”
조직의 2인자인 정병수가 못 마땅한 듯 이근석. 그가 반짝 눈빛을 빛내며 마저 하던 말을 이어서 했다.
“....그러니까 너도 같이 가라. 정제 형님 따라서 지옥으로. 크크크크.”
만년 조직의 3인자인 이근석. 그는 이번 기회에 보스인 구정제를 제거하면서 그 곁다리로 조직의 2인자인 정병수까지 처리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구정제는 태석파에서 제거해줘도 정병수까지는 아니었다.
해서 정병수 처리는 이근석이 자체적으로, 그러니까 직접 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 이근석은 자신을 추종하는 조직원 5명을 따로 빼 놓았다. 기존의 것들은 머리에 똥만 가득 차 있기에 배제하고 싱싱한 신입 조직원들로다가. 그런 그들을 정병수는 매일 만나서 세뇌를 시켰다.
그 결과 지금 그들은 은밀하게 정병수의 뒤를 쫓고 있었다. 언제든 기회가 왔을 때 정병수를 담그게 말이다.
“어디....”
이근석은 그들 5인조 신입 조직원 중 리더인 형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형님.
“어디야?”
-연수동 이자카야 쿠체 앞입니다.
형수의 대답에 전화하고 있던 이근석의 입 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그럴 것이 그곳은 정병수의 단골 술집 중 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술집의 화장실은 2층에 있었다.
정병수는 쿠체의 가게 분위기와 직원까지 다 마음에 드는데 화장실 가는 게 영 싫다고 이근석에게 말했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이근석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
“거기 말인데. 미리 2층에서....”
어떻게 정병수를 담글지 이근석이 형석에게 자세히 얘기를 했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석으로부터 확답을 들었다. 그렇게 형석과의 통화를 끝낸 이근석은....
“됐다!”
대 놓고 어퍼컷 세레머니를 날리며 기뻐했다. 보스인 구정제가 제거되기 전에 2인자인 정병수를 담그는 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 사실을 며칠 감추는 건 조직의 3인자인 이근석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보스인 구정제마저 제거된다면....
“OB파의 보스 자리는....내 차지가 되는 거지. 크크크크.”
음흉하게 웃던 이근석. 그의 얼굴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뭔가 중요한 게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기라도 한 거처럼 말이다.
“가만....내가 보스가 되는데 굳이 태석파 밑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이근석의 눈알이 열심히 돌아갔고 그의 욕심이 어느 새 도를 넘어섰다.
왜 욕심이 사람 죽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욕심이 너무 지나치면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위태로운 일까지 거리낌 없이 하게 됨을 비유한 말인데 지금 이근석이 그랬다.
자신의 몸 담고 있는 조직의 보스가 될 욕심에, 그만 자신이 배신하려는 곳이 서울의 밤을 지배하는 태석파란 걸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인천 OB파에 갓 들어간 조직원들. 그 중에서 제일 똘똘한 놈이 배형석이었다. 조직의 3인자인 이근석은 바로 그 배형석을 자기 수하로 끌어 들이기 위해 제법 공을 들였다.
자주 만나서 술 사주고 용돈 주고. 가끔 술집 여자와 빠구리도 시켜 주고 말이다.
그래서 배형석을 자신의 수하로 포섭하는 성공한 이근석. 그는 배형석에게 녀석을 따르는 신입 조직원 4명을 끌어들이게 했고, 그들을 본격적으로 챙겨 주었다.
조폭들에게 그 정도 해주면 녀석들도 다 알았다. 이근석이 그들에게 뭔가 시킬 게 있다는 걸 말이다.
해서 이근석이 배형석을 시켜서 조직의 2인자인 정병수를 담그라고 했을 때 녀석들은 그리 크게 놀라지 않았다.
“잘 됐다.”
“그러게. 이번 기회에 우리가 누군지 확실히 보여주자고.”
오히려 그들은 그 일을 자신들의 일생 일대 기회로 여겼다. 이근석이 정병수를 재끼고 조직의 2인자가 된다면 그들도 조직에서 한 자리 꿰찰 수 있을 거로 본 거다.
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법 아니겠는가?
그렇게 배형석과 4명의 신입 조직원들은 조직의 넘버 투 정병수를 담그기 위해 그의 뒤를 쫓았고, 드디어 정병수를 담글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들은 이근석의 지시에 따라서 정병수의 단골 이자카야에 잠입해 들어가 있었다.
“으으....취한다.”
정병수가 단골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지 한 시간 쯤 지났을까? 오줌이 마려웠던지 드디어 정병수가 단골 이자카야의 화장실로 움직였고, 하필 그곳 화장실은 2층에 있었다.
정병수는 툴툴거리면서 화장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고 2층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막 화장실 안에 들어섰을 때....
“지금이다.”
와락!
화장실 문 옆에 숨어 있던 조직원 하나가 정병수를 끌어안았고 그때 화장실의 칸막이 안에 숨어 있던 배형석이 밖으로 뛰쳐나와서 손에 쥐고 있던 칼로 정병수의 배를 찔렀다.
“뭐, 뭐야? 너희들. 헉!....크으윽!”
하지만 이 일을 계획한 이근석과 그걸 실행 중인 배형석이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젠장....”
바로 배형석이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칼로 사람을 찔러 본 적도 지금이 처음이었고.
그 동안 폼나게 칼로 사람을 위협하고 휘두르는 거야 조폭이니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사람의 배에 칼을 찌르는 게 처음인 배형석. 그런 그가 제대로 정병수의 배에 칼을 찔러 넣었을 리 없었다. 그리고 막상 그걸 하고 나자 현타가 찾아 온 배형석. 그는 정병수의 배에 깊숙이 칼을 찔러 넣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재차 빼서 정병수의 배에 수차례 칼침을 넣지도 못했다. 그저 칼을 찌른 채 현타가 와서 멍하니 서 있기만 했을 뿐. 그 사이....
“크아아악! 이 씨팔 새끼들이....”
술에 취했고 갑작스럽게 습격을 받아서 살짝 정신이 없었지만 정병수는 조직의 넘버 투였다.
그 자리를 단지 운 좋게 뽑기로 오른 게 아니었다. 실제 사람도 여럿 자기 손으로 죽여 보기까지 한 정병수. 그런 그가 눈앞의 햇병아리들에게 순순히 담가져 줄 리 없었다. 게다가 그의 배를 찌른 놈이 제대로 찔러 장기까지 손상을 시켰다면 꼼짝없이 쓰러졌을 테지만, 깊이 찌르지 못한 탓에 정병수는 몸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컸다.
휙!
“으아악!”
자신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던 놈을 유도의 한팔로 어깨매치기로 날려버린 뒤, 자신의 배에 칼을 꽂은 놈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정병수.
퍽!
“으허억!”
그렇게 자신을 습격한 놈들을 뿌리치는 데 성공한 정병수가 화장실 밖으로 버럭 소리를 쳤다.
“야 이 개새끼들아~ 빨리 안 와!”
같이 술을 마시고 있던 자기 밑에 수하들, 그러니까 OB파 조직원들을 불렀다.
* * *
배형석은 이근석이 시킨 대로 정병수의 단골 이자카야 화장실에 숨어서 기회를 엿봤다. 그러다 정병수가 화장실에 들어왔고 준비한 대로 시행을 했다. 배형석과 같이 이 일을 맡은 4명의 신입 조직원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좋은 녀석으로 하여금 이근석을 붙잡게 하고, 그 사이 배형석이 직접 칼로 정병수를 담그는 것으로 말이다.
푹!
‘됐다.’
배형석이 정병수의 배에 칼을 찌르는 순간, 배형석은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근석이 시킨 대로 조직의 2인자인 정병수를 자신의 손으로 담근 것이다. 그 희열에 배형석이 씨익 웃을 때였다.
그에게 칼침을 맞은 정병수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더니 그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던 조직원을 화장실 바닥에 매다 꽂았다. 그러더니 대뜸 배형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맞는 순간 비틀거리며 배형석은 자신이 숨어 있었던 칸막이까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 사이 정병수가 화장실 밖에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밑에 그의 수하 조직원들을 부른 것이다.
그때 배형석은 여전히 정병수의 배에 꽂혀 있는, 자신의 칼을 보면서 뭐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 되었음을 직감했다. 불룩하니 튀어나온 정병수의 배의 두꺼운 지방층을 아무래도 자신의 칼이 뚫지 못한 거 같았다.
“젠장....야! 다들 조져!”
하지만 화장실 안에는 배형석 말고도 4명의 조직원들이 더 있었고, 만약을 대비해서 그 중 3명의 손에는 배형석처럼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들이 지금이라도 나서서 정병수를 담그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덤벼! 이 씨발 새끼들아!”
정병수는 고작 신입 조직원 다섯 명에 쫄아서 자신의 목숨을 내 놓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조폭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병수의 외침에 벌써 계단을 뛰어 올라오기 시작한 그의 수하 조폭들이 외치는 온갖 욕설들.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배형석을 제외한 4명의 신입 조직원들은 멘붕이 왔고, 배형석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게 정병수를 살렸다.
“이리 내놔! 이야아앗!”
뒤늦게 배형석이 혼자서라도 정병수를 죽이기 위해 넋 놓고 있던 신입 조직원들 중 한 놈의 칼을 뺏어 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퍼억!
배형석 혼자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는 정병수였다. 급한 나머지 정병수를 향해 칼을 찌르기 급급했던 배형석의 훤히 드러난 얼굴에 정병수가 재차 자신의 주먹을 꽂아 넣었고....
털썩!
배형석이 카운터펀치에 맞아서 쓰러지면서 조직의 넘버 투 정병수를 담그기 위해 잠입했던 배형석 일당의 무모한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형님!”
“뭐야? 이것들은?”
“이 씨발 놈들이....일단 조져.”
퍽! 퍽! 퍼억! 퍽! 퍽! 퍽!
“크아아악! 살, 살려 주세요.”
그 사이 화장실 안으로 난입해 들어 온 정병수의 수하 조직원들이 배형석 일당을 발견하고 개패 듯 그들을 두들기기 시작한 것.
“멈춰!”
그런 그들을 제지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게 칼침을 맞은 당사자 정병수였다.
“형님. 병원부터....”
“됐어. 길현이 새끼 부르고....저 새끼들 데리고 내려 와.”
정병수는 그 말 후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배에 꽂힌 칼 때문에 아픈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기어코 1층 이자카야로 내려갔다.
* * *
양길현은 의사다. 하지만 그는 보통 사람들이 아는 그런 의사가 아니라, 조폭 의사였다.
7년 전에 불법 도박과 마약 투약 혐의로 의사면허가 취소된 외과 전문의 양길현.
그는 할 줄 아는 게 아픈 사람 고치는 거라 그 길로 불법적으로 의술을 펼쳤고, 그 소문이 퍼지자 조폭 조직에서 연락이 왔다. 그걸 시작으로 지금은 조폭들의 전담 의사, 즉 조폭 의사가 된 것이다.
일반사람들에게 조폭 의사란 말은 생소할지 모르지만 실제 조폭 의사들이 제법 있었다.
양길현이 아는 인천에서 활약 중인 조폭 의사만도 3명이나 됐고 말이다. 누가 조폭 의사 아니랄까? 조폭 의사 세계에도 조폭 조직의 나와바리처럼 구역이 나뉘어져 있었다.
양길현은 인천 중구와 연수구 쪽 일대의 조폭들의 전담 의사였다. 그리고 그들은 주로 밤에 그를 찾았기에 양길현은 부엉이 삶을 살고 있었다. 낮에는 주로 자고 밤에 깨어 있다가....
♪♩♫♬~,♪♩♫♬~
이렇게 전화 연락이 오면 그 전화를 받고 왕진을 가는 거다.
“어디요? 이자카야 쿠체? 아아....동춘동 행복 교회 맞은 편....알겠소. 지금 바로 가지.”
치료에 필요한 의료기기들은 그의 차에 실려 있었다. 하지만 귀한 약액들과 주사기는 늘 왕진 가방에 넣어서 직접 들고 다니는 양길현이었다. 그는 자신의 왕진 가방 속에 응급처치와 그 치료에 꼭 필요한 약액들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왕진 가방을 챙겨 들고 자신의 집을 나서서 환자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기군.”
누가 봐도 자신의 환자가 있을 곳으로 보이는 곳. 그곳 주위에 딱 봐도 조폭들로 보이는 녀석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양길현은 그곳으로 가서 녀석들 보란 듯 갓길에 자신의 차를 주차 시켰다. 그러자 당연히 주변 조폭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고 그가 차에서 내리자....
“....”
말없이 그들의 시선이 딴 쪽으로 돌아갔다. 양길현이 누군지 그를 쳐다 본 조폭들도 다 아는 것이다. 그러니 그를 보고 못 본 척 시선을 딴데로 돌려 버린 것이고.